11월 11일 오전.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지하 로비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고자하는 층을 입력하는 단말기에 숫자 11을 눌렀다.
“서비스 층이 아닙니다.”
“출입증을 사용하세요.”
냉정하고 사무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온다. 한국게이츠의 일방적인 폐업으로 발생한 해고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상경투쟁 8일 차이자 대성산업(회장 김영대) 본사 점거농성 3일 차가 되는 날, 대성산업 본사 건물 풍경이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본사 점거농성을 시작한 이후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서울 구로구 디큐브시티 건물 11층에는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는다. 10층에서 출입카드를 소지한 사람만 비상계단을 통해 들어갈 수 있고, 건물 입구는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공용 공간을 찍으시는 게 아니고 (층수를) 직접 누르신 다음에 세세하게 찍으신 거잖아요. 그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찍으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 신도림역 디큐브시티 엘리베이터 앞에서 11층을 누르자 나온 안내 문구 [출처: 연정] |
해당 장면을 촬영하자 잠시 후 디큐브시티 보안팀 직원이 와서 제지한다. 위에서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고 한다. 공문을 내린 곳이 대성산업인지 묻자 아니라며, 대상산업에서 연락을 받은 게 없다고 한다. 안내를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 보안팀 직원은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층수를 누르고 사진 촬영하는 것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안 되는지를 수차례 물었지만, 세세하게 찍으면 안 된다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깨끗하게 정돈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로비 농성장에는 ‘한국게이츠 공장부지 매입한 대성산업 문제해결 없이 공장부지 매입 어림없다’ ‘한국게이츠 공장부지 매입한 대성산업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피켓이 가지런하게 놓여있다.
“서비스 층이 아닙니다.” 정말 그랬다. 디큐브시티 11층에서는 멀리 대구에서 올라온 해고노동자들에게 그 어떤 서비스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소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할 식사와 수면에 필요한 침낭, 혈압약 등 의약품, 코로나19 시대에 필수품인 마스크 반입도 이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디큐브시티 로비에 마련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장 [출처: 연정] |
살고자 서울에 왔습니다
“대구에서 살고자 서울에 왔습니다. 대구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다 했지만, 대구에서는 한국게이츠 문제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곳 서울에서 끝장을 내겠다는 심정으로 올라왔습니다.”
‘대성산업 고용승계 및 한국게이츠 문제해결 촉구 시민사회-민중진보단체 기자회견’에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송해유 씨(전국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사무국장)가 이야기한다. 송해유 씨는 대구 달성산업단지에 있던 한국게이츠에서 20여 년간 일하다가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으로 지난해 7월 31일 해고를 당했다. 한국게이츠는 글로벌 게이츠 기업의 한국 사업장으로, 자동차와 산업용 동력전달 벨트류를 생산해오던 회사다. 한국게이츠는 20년간 순이익 1041억 원(연 평균 52억 원)을 기록한 대구 우량기업으로 2019년에도 45억 원의 순이익을 냈던 회사다. 코로나19에도 휴업이나 정부 지원금 없이 운영되던 한국게이츠는 갑작스런 폐업·철수 공고를 하고 한 달 뒤에 이를 실행에 옮겼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폐업 해고 희망퇴직’이라는 이름의 모순적인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19명이 남아 공장재가동과 고용보장 요구하며 5백일 넘는 투쟁을 해왔다. 공장사수 투쟁, 시청농성, 시민선전전과 서명운동, 도보행진, 삼보일배, 70여일의 릴레이단식 등 대구에서 안 해본 투쟁이 없다. 최근,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 공장 부지와 건물을 인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해고노동자들은 ‘끝장투쟁’이라는 심정으로 서울에 올라와 대성산업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대성산업은 석유가스와 기계 판매, 해외자원개발, 주상복합 디큐브시티 사업 등을 하고 있는 연간 당기순이익이 480억(매출액 4천 8백억)에 달하는 국내 중견기업이다. 대성산업의 주요 계열사로 대성히트에너지스(주)와 대성쎌틱에너시스(주) 등이 있다.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하자 대성산업 김영대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일제히 출근을 하지 않았다. 잠겨있는 임원 사무실에 자물쇠까지 걸었다. 농성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돼가도록 노동자들은 사측과 면담 한 번 하지 못했다. 대성산업은 공장 부지와 건물만 매입을 했기 때문에 고용승계 의무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면담을 할 필요조차 없다는 입장이다. 경영진과 임원들은 출근조차 하지 않으면서 농성 중인 노동자에 대응하는 역할을 대성산업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대성산업 노동자들은 농성 중인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물품 반입을 통제한다.
▲ 11월 11일,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본사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연정] |
식사할 거면 나가서 해라?
“대성산업에서는 위에 우리 동지들에게 식사와 침낭 그리고 사람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을 반입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조차 막고 있습니다. 마스크 한 개를 이틀 사흘 쓰고 있는 동지들이 도저히 냄새가 나서 못 쓰겠다고 새 마스크를 올려달라고 했는데, 대성산업에서는 마스크조차 반입을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역인 마스크조차 반입을 못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대성산업의 김영대 회장인 것입니다.”
송해유 씨가 동료들의 원치 않는 단식과, 마스크조차 반입을 막는 대성산업에 대해 격한 울분을 토해내자 음향조차 멈춰버린다. 대성산업이 코로나19 이후 사내 감염 위험 차단을 위해 1인 양압셀인 ‘클린 스페이스’를 만들어 주목받았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송해유 씨는 반드시 승리해서 대구로 내려갈 것이라는 결의를 밝히며 발언을 마무리한다. 이날 기자회견과 집회를 마친 후에 전국금속노조 김호규 위원장 등과 함께 대상산업 11층 농성장에 다녀온 송해유 씨는 “식사 반입을 막아 사흘째 굶고 있는 노동자들 옆에서 대성산업 직원들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라며 기가 막힌다고 했다. 아무 준비 없이 사무실 농성을 시작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청하며, 매시간 마다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심지어 반소매 옷을 입고 농성에 들어간 노동자도 있다. 고혈압·당뇨가 있는 노동자가 5~6명 되는데, 대성산업은 이들이 복용할 약 조차도 반입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CCTV가 있어서인지 개인적으로 물품을 나누거나 격려를 전하는 대성산업 노동자는 없다.
▲ 서울 구로구 디큐브시티 대성산업 본사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는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
대성산업 측은 식사를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며,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어떤 제지도 없다. 식사를 할 거면 나가서 하라고 했는데,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으니 본인들이 식사를 거르고 있다. 여기서 숙식을 모두 해결하면 나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요구하는 바를 갖고 농성을 하러 온 노동자들이 한 번 나가면 다시 못 들어오는 걸 알면서 밥 한 끼를 먹자고 나갈 생각을 할까. 한국게이츠지회는 물품 반입 조건으로 일부 노동자가 농성장을 나갔는데, 대성산업 측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맹꽁이 보존에는 50억, 해고노동자 목소리는 외면
현 신도림역 디큐브시티는 옛 대성연탄 공장이 있던 곳이다. 2000년 대 초반, 대성산업이 이 부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이곳에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117마리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대성산업은 착공 전에 맹꽁이들을 서울숲으로 옮겼다가 디큐브시티 내에 맹꽁이가 서식할 수 있는 습지가 있는 생태공원을 만들어 다시 옮겨왔다. 그 과정에서 들어간 비용이 50억 원이 넘는다. 또한, 대성산업은 2011년 디큐브시티를 준공하면서 신도림역 광장과 도림천 등을 공원화한 디큐브파크를 구로구에 기부하기도 했다.
반면 이날 대성산업 앞에 모인 노동자와 시민들은 회사가 본인이 인수한 공장 부지 앞에서 공장 재가동과 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를 인수했습니다. 19명의 노동자가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들 말로 고용승계 비용 얼마나 들겠습니까. 그리고 고용하면 일 안합니까? 대성산업은 이렇게 50억 넘는 비용으로 멸종위기종 이전을 하고 수 백 억에 달하는 공원을 기부하면서 마치 사회적 공헌을 하는 것처럼, 친환경 기업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한국게이츠 노동자 문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김진억 본부장은 스스로 윤리 경영과 정도 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를 책임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대성산업 본사가 있는 디큐브시티 건물 [출처: 연정] |
▲ 대성산업 본사 사무실에서 침낭도 없이 맨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
대성산업은 한국게이츠 노동자들과 아무 관련이 없어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세상에 아무 관련 없는 ‘완벽한 타인’이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불교의 어느 경전에는 옷깃을 한 번 스치기 위해서는 전생에 5백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한 나라에 같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1천겁의 인연이, 하루 동안 길을 동행하기 위해서는 2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계의 4억 3천 2백만 년을 1겁이라고 한다는데, 대성산업 본사 안에서 일주일 동안 농성하고 있는 한국게이츠 노동자들과 대성산업은 몇 겁의 인연을 맺고 있을까? 심지어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전원이 현재 대성산업의 모태인 연탄 제조회사 대성산업공사(창업회장 김수근)가 있던 대구에 살고 있고, 대구에서 도시가스 독점 사업을 하고 있는 대성에너지가 공급하는 도시가스를 이용하고 있다. 대구 시민인 한국게이츠 노동자와 가족이 지금의 대성산업을 만드는 데에 조금도 일조한 바가 없다고,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 할 수 있을까?
대구에서 올라온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전태일 열사 51주기가 되는 11월 13일부터 물과 소금만 섭취하는 단식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농성자 15명 전원이 단식에 돌입한 가운데, 15일에는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본부장이 건강상태 악화로 병원에 이송됐다. 서울 신도림역 디큐브시티에서 맹꽁이가 서식처를 잃지 않았듯이, 해고된 노동자도 일터로 돌아가는 소망을 이루기를 바래본다.
▲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등 15명이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가운데, 18일 이길우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본부장이 건강 상태 악화로 병원에 이송됐다. [출처: 금속노조] |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 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온 농민들이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배고픔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쫓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 <평화가 무엇이냐>(문정현·조약돌 글, 조약돌 곡)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