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터 라인보우, 옮긴이 서창현, 도서출판 갈무리, 2021.10.9 |
나도 출판사가 이 책의 표지를 기가 막히게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거위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이야기이자 메시지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라인보우는 이 책에서 몇 번이나 아래 시 구절을 인용한다. 이것은 잉글랜드가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식민 지배를 확대하던 17세기에 아일랜드에서 불리던 것이다.
“법은 사람들을 가두어 놓지/ 공통장에서 거위를 훔치는 사람들을./ 하지만 더 나쁜 놈들은 풀어주지/ 거위에게서 공통장을 훔치는 놈들을.”
이 구절은 ‘감옥에 있는 도둑들은 대개 무지와 어리석음과 가난과 차별의 피해자들이고, 그들에게서 빵을 훔친 진짜 도둑은 감옥이 아니라 의회로 간다’던 조지 버나드 쇼(Geonge Bemard Shaw)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도둑이야!』에서 라인보우는 이 진짜 도둑들에 대한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분노에 찬 일갈도 인용한다.
“그들은 꿀을 거두어들이지도 벌집을 짓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게으른 향락을 위해 살아가는 수벌이고 기둥서방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사람들이 경계 없이 누리던 ‘공통장’(commons: 땅과 물, 산림 등)에 울타리를 쳐서 사적 소유의 경계를 세우고 훔쳐가는(‘인클로저’) 것에 있고, 무언가를 도둑질이라고 규정하는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진짜 도둑이라는 것이 라인보우의 관점이다.
이러한 인클로저와 시초축적은 자본주의 초기만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고, 자본주의적 축적은 식민주의적 축적, 여성혐오적 축적, 인종차별적 축적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그는 또한 토지를 훔치는 사람들, 바다를 오염시키는 사람들, 숲을 파괴하는 사람들, 강을 약탈하는 사람들, 산을 없애는 사람들이 다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축적과 지배의 연결성은 저항과 연대의 연결성으로 이어진다. 라인보우는 공장에서 노동조합을 통해서만 “진정한 투쟁”이 벌어지고, 나머지는 “이차적인 운동”이라는 “흔한 이해방식”을 거부하고 원주민 봉기, 노예제 폐지 투쟁, 농민 반란, ‘기계-파괴’ 등을 모두 자본주의적 축적에 맞선 투쟁으로 자리매김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 정설을 거부하고 이처럼 탈식민주의적, 페미니즘적, 상호교차적인 관점을 추구하는 라인보우는 ‘공통장이라는 하나의 유령이 마르크스주의를 괴롭히고 있다’고 본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아니라, “공통장”(commons)에서 ‘공통적인 것’(the common)을 훔쳐가는 자들에 맞서서 ‘공통화’(commoning)를 추구하는 ‘공통인’(commoner)들의 ‘공통주의’ 전통이다.
토머스 페인, 칼 마르크스, 윌리엄 모리스, 에드워드 파머 톰슨에 이르기까지 생생한 “공통주의” 전통이 존재하고, 이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외국인, 이주민, 범법자, 반역자였고 무엇보다 ‘공통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 한국 광주의 해방구도 그런 공통주의 전통의 일부라고 본다. 그 전통을 잘 드러낸 윌리엄 모리스의 말도 인용한다.
"내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주인도 노예도, 게으른 사람도 과로하는 사람도, 골치 아픈 두뇌 노동자도 가슴 아픈 육체노동자도 없는, 한마디로 말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조건에서 살아가고, 자신들의 일을 헛되지 않게 관리하는, 그리고 한 사람에게 해로운 것은 만인에게 해로운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하는 사회의 조건이다. 이것은 ‘공통체’COMMONWEALTH라는 단어의 최종적인 의미의 실현이다.”
이런 관점에서 라인보우는 청년 마르크스가 물질적 이해관계와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꼽히는 ‘라인 지방 모젤강 목재 절도 문제와 도벌꾼 처벌법’ 문제를 새롭게 해석한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시 관습적으로 쓰러진 나무, 죽은 나무들을 주워 땔감으로 쓴 농민들이 처벌받는 것에서 청년 마르크스가 사유재산권의 효과를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아직 ‘노동계급의 발견과 코뮤니즘의 정치학으로는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라인보우는 그 당시 절도범으로 잡혀서 감옥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급증한 기록을 밝혀낸다. 이것을 공통장에 대한 인클로져에 맞선 공통인들의 저항으로 재해석하며 그 속에서 “노동계급의 가치형태들 중 하나를 유지하고 증대하기 위한 투쟁”을 발견한다.
이 책은 이처럼 마르크스주의 ‘정통’에서 벗어나 있는 공통주의적 ‘이단’아 피터 라인보우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쓴 열다섯 편의 다양한 주제와 내용의 글을 모은 것이다. 공통장의 역사가이자 활동가인 라인보우는 살아 숨쉬는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공통장의 상실에 맞서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한 저항의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그는 한편으로는 공통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고, 한편으로는 공통장과 공통주의의 내용을 살펴본다.
공통장을 수탈하고 사유화해온 역사와 세력들에 대한 고발 속에서, 치열하고 첨예하게 진행되었던 공통주의적 계급투쟁의 역사와 사상이 되살아난다. 그것은 공통장을 되찾기 위한 저항의 과제로 이어진다. 물론 공통장의 역사와 사상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목적을 위해 쓰인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약간 읽기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형식과 틀을 벗어난 글쓰기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라인보우는 늑장 부리기, 장난치기, 시 쓰기, 투덜거리기, 대문 부수기, 울타리 부수기, 나무 훔치기가 모두 “다양한 형태의 인클로저에 대한 저항”이라고 주장한다. 공장, 목장, 논과 밭, 강과 바다, 인터넷, 소셜미디어에서 우리 모두는 “공통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인보우의 많은 글에 자주 등장하는 아메리카 선주민 지도자이자 전사인 ‘테쿰세’는 1810년에 인디애나의 주지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땅을 팔다니요! 그럼 공기도, 구름도, 저 드넓은 바다까지 팔아넘기지 그럽니까? 이 지구까지 팔아넘기지 그럽니까?”
그리고 테쿰세는 답을 알고 있었다.
“이 악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모든 인디언들이 단결하여 이 땅에 대한 공통의 권리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 땅은 나뉘는 일 없이 모든 이들을 위해 쓰였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기 때문입니다.”
공통장에 대한 폭력적 유린과 수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예컨대 오늘 아침에도 나는 페이스북에 접속해 자신의 지식과 앎, 정보와 소식, 경험과 감정, 정성들여 쓴 멋진 글들을 ‘공통화’하려는 이들을 본다. 그러나 주커버그와 페이스북 경영진은 그것을 모조리 자신들의 이윤으로 둔갑시키며, 우리가 서로 분노와 혐오만을 주고받도록 알고리즘화 한다.
또한, “공통장을 종합하는 곳 중 하나가 감옥”이라는 라인보우의 지적을 보면 생각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뉴스타파’가 심층취재하고 책으로까지 묶어낸 <죄수와 검사>이다. 이것은 죄수들이 가진 지식과 정보를 이용해 실적을 올리고 나아가 사건을 조작하던 검사들의 이야기이다.
결국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밝히며 정의를 세우려던 죄수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감옥에 있는 죄수의 말을 어떻게 믿느냐’며 그것을 들으려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라인보우는 ‘진짜 죄수’인 그 검사들을 향해 외쳤을 것이다. “도둑이야!”
다른 하나는 내가 넷플릭스에서 애청하던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이다. 미국의 한 여성교도소를 배경으로 한 이 다채로운 드라마에는 다양한 인종, 젠더, 계급, 연령, 외모, 정체성의 죄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펼쳐내는 이들 각각의 사연은 과연 무엇이 이들을 죄수로 만들었는지, 누가 ‘진짜 죄수’인지 묻게 한다.
드라마의 막바지에 교도소 당국의 억압과 폭력 속에 흑인 성소수자인 푸세가 사망하고, 분노한 죄수들은 폭동을 벌여 교도소를 유쾌한 ‘공통장’으로 만든다. 결국 진압 당하지만 폭동을 이끈 흑인여성인 테이스티의 절규에는 공통주의 정신이 담겨 있다.
“후회는 자유를 가진 사람의 특권이고, 지옥에 갇힌 우리들에겐 사치에요. 갇혀있는 건 우리지만 짐승은 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