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주거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특집호] 임대사업자 특혜로 시작해 부동산세 완화로

차례

① 안전한 곳에 살고 있습니까?
② 무주택자만 ‘빚더미’ 앉게 만드는 ‘갭투기’
③ 부동산 법인, 주택임대업에 뛰어들다
④ 청년들, 부동산 ‘몰수’와 ‘사회화’를 가리키다
⑤ 문 정부 5년, 주거의 질은 나아졌나요?
⑥ 문재인 정부의 ‘주거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⑦ [인터뷰] 문재인 정부도 ‘주택공급 만능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⑧ 인포그래픽 세계 집값 지도
⑨ 재벌의 부동산 투기 50년사, 서울 두 개를 사들였다
⑩ [인터뷰] 모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법
: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
⑪ 워커스 사전: 성장
⑫ 한국의 주거권 운동과 실험들
⑬ [인터뷰] 도시 난민들의 운동, ‘사적소유’를 흔들어야 한다
: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정책팀장
⑭ ‘의료 사회화’처럼 ‘주택 사회화’도 가능하다
⑮ [인터뷰] 빌라왕 잡는 유일한 대안, “주택 사회화와 탈 상품화”
: 이안 클로트워시 베를린 주택 사회화 운동 활동가


[출처: 홍진훤]

“집주인의 대리인이 집주인 소유 집에 압류가 들어올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집주인이 집을 무려 200채나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에 가입하려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방문했는데, 집주인이 문제가 있어 보험 가입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때 집주인이 HUG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을 알았죠. 이사 가는 것을 추천하더라고요”

20대 중반인 A씨는 전세 계약만료일을 코앞에 두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앞서 그는 2019년 12월경 서울 은평구의 한 신축 빌라에 입주했다. 전세가와 매매r가가 1억1000만 원으로 같지만, 부동산 중개인의 “건물에 융자가 없어서 걱정할 것 없다”라는 말에 안심했다. 그러나 입주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압류 가능성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주인에게 바로 이사를 하겠다고 통보했으나, 9개월 동안 세입자는 구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집주인이 바뀌었다. A씨는 하루빨리 불안함과 공포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 준비를 위해 보증금을 준비해달라는 그의 요구에 집주인은 한 번도 확답하지 않았다. 곧 계약만료일이지만, 이사를 할 집조차 구하지 못했다. 집주인은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 이유가 집이 지저분해서라며 A씨 탓만 했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아온 그는 꿈을 이루고자 한국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임금 체불로도 고생한 그는 ‘헬조선’(지옥을 뜻하는 ‘hell’과 ‘조선’의 합성어)의 뜨거움을 맛봤다고 했다. 계약만료일인 12월, A씨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 계약금을 받을 수 있을까.


HUG에 따르면 수백억 원의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연락을 두절한 ‘갭 투기꾼’은 지난 8월 기준 129명이다. 이들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은 사례만 무려 2,160건에 달한다. 올해 초 갭투기대응시민모임이 갭투기 피해자 1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의 피해가 전세보증금 1~2억 원 사이 매물에서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 규제와 혜택을 함께 준 결과

문재인 정부는 임기 초인 2017년 주택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투기수요를 지목했다. 그해 발표한 8·3 부동산 대책에는 조정대상 지역 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10~20%P)와 장기보유특별공제 배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자기가 사는 집이 아니면 파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불과 4개월 뒤 발표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방안’은 앞서 발표한 규제를 무력화했다. 정부는 임대주택 등록 확대로 세입자 주거 안정을 꾀하겠다며, 등록 임대 사업자에게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비롯해 취득세, 재산세, 건강보험료 등을 감면하거나 면제해 줬다. 임대등록을 통해 세금 부담을 덜 수 있게 되자, 임대사업자 등록이 급증했다. 2018년 한 해에만 임대 사업자는 14만8천 명, 등록 임대주택은 38만2천 호가 늘었다.

갭투기도 성행했다. 지난 10월 3일 국토교통부가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서울시 자금조달계획서 현황’을 보면 앞의 두 정책이 발표된 후인 2018년 1월 전체주택 매매 건수 중 갭투기 비중이 2017년 9월 14.3%에서 33.1%로 급증했다. 정부도 보증금을 승계해 매수하는 소위 ‘갭투기’를 투기수요로 보고 관련 규제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그때마다 갭투기는 단기적으로 하락하다 다시 증가하는 모습이 반복됐다. 그 결과 올해 7월 갭투기 비중은 41.9%로 지난 2017년 9월 대비 약 3배 가까이 늘었다.


8·3대책 이후 발표된 종합부동산세 추가 과세 대책에서도 등록 임대주택은 제외됐다. 2018년 7월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종합부동산세 개편방안은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의 경우 과표 6억 원 이상이면 0.3%P의 추가세율을 물린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임대주택은 종부세 과세에서 제외되고 다주택자라도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면 세금 부담 완화의 길이 열려있다”라며 또 한 번 혜택을 쥐여 줬다.

공인중개사 장석호 씨는 “8·2대책이 효과가 있으려면 종부세를 강화하든지, 주택임대 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먼저 폐기했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주택임대 사업자 혜택은 가장 강력한 부동산 부양 정책이다. 문재인 정부 동안 부동산 시장은 어정쩡한 집값 안정 대책과 부양 정책이 싸움을 거듭하는 과정에 있었다. 결국 가장 강력한 부양 정책이 이겼고, 그래서 집값이 올라갔다. 이 두 정책이 같은 정부에서 나왔다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라고 말했다.

4·7 재·보궐 참패한 민주당, ‘감세’ 시작

지난해 정부는 세 부담을 강화하는 6·17, 7·10 대책을 발표하고 올해 6월 1일부터 증세를 시작했다. 이를 통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세율이 0.1%~2.8%P 인상됐고, 조정지역 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율은 기존 10%~20%P에서 20~30%P로 높아졌다. 그러나 여당은 지난 4·7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부동산세 완화 정책 기조로 돌아섰다.

“세 경감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4·7 보궐선거에서 대패하고도 민주당이 오만과 아집을 부린다는 비판이 제기될 것”


이는 더불어민주당 특별위원회가 종부세·양도세 완화안을 결정할 의원총회를 앞두고 민주당 소속 의원들에 배포한 내용의 일부다. 재·보궐선거에서 패한 민주당은 지난 6월 의원총회 표결을 통해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 ‘9억 원’에서 ‘상위 2%(2021년 기준 약 11억 원)’로, 양도소득세 비과세 기준도 공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당론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지난 8월, 1가구 1주택자의 종부세 과세 기준선을 11억 원으로 완화하는 종부세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시가 12억 원 이하로 상향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도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했다.

‘주거 사다리’에 오를 수 없는 사람들

여야 정당이 부동산 감세에 열을 올리는 사이, 주거 복지 정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앞서 정부는 취임 첫해,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실수요자들을 지원한다며 주거 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주거 사다리’ 마련을 통해 세대·계층 간 사회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취업, 결혼 등 생애 단계별 지원을 통해 자산을 형성한 주거 취약계층이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리의 전세·구매자금 대출이다. 하지만 대출 제도 역시 일정 비율의 자기 부담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산이 없는 무주택자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한국의 주거 정책 모델인 주거 사다리 정책은 월세에서 전세, 전세에서 자가로 가기 위한 정책이다. 이는 주택 구매 여력이 있는 계층에 혜택을 몰아 주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아무리 정부가 30년 저리 융자를 해주고, 초기 주택 가격을 낮춰 준다 해도 자기 부담금을 내기 위한 자산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며 연 소득도 고려된다. 신혼희망타운이나 주택 구매자금 대출 제도를 보면 연 소득 기준으로 최소 3천만 원 이상의 계층에 혜택을 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과거 정권 때부터 자가 가구는 늘지 않았고 오히려 월세 가구가 증가했다. 2008~2020년 사이 자가 거주 비율은 56.4%에서 57.9%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월세 가구 비율은 16.7%에서 23.0%로 6.3%P 상승했다.

그동안 공급된 주택들은 대부분 다주택자의 손에 들어갔다. 지난 2019년 경제시민실천시민연합과 정동영 당시 민주평화당 대표가 국세청·행정안전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8년~2018년 사이 주택 489만 호가 증가했는데, 이 중 50.9%(248만 호)가 다주택자들이 보유하고 있었다. 주거비 부담이 양극화되면서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의 질도 악화했다. 지난해 국토연구원이 정부 주거실태조사를 분석한 결과, 주거 면적 하위 20% 가구 중 고시원 등 주택 이외 거처에 사는 가구는 2008년 0.7%에서 2018년 9.4%로 크게 증가했다. 주택 이외의 거처는 오피스텔을 제외한 판잣집,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움막 등이 포함된다. 같은 기간 상위 20% 가구는 0.1%에서 0.4%로 소폭 증가했다.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은 점점 줄어든다

정부의 전세·구매자금 대출 지원을 받을 수 없다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는 방법이 있다. 정부는 지난 9월,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지난해 기준 8%(170만 호) 수준이라고 밝혔다. 무주택 임차 가구 731만 호 중 20% 정도를 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대비(135만 호) 26% 증가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저소득층 임대주택 비중이 오히려 축소된다는 것이었다. 전체 공공임대주택 중 최저 소득층용인 영구임대주택 비중은 지난 1989년 52.4%에서 2019년 4.1%까지 줄었다. 저소득층용 국민임대주택 비중도 2007년 67.5%에서 2019년 9.7%로 줄었다. 문재인 정부 동안만 보면, 영구임대주택은 2018년 5,497호 공급된 후 2019년 5,911호로 조금 늘었으나, 2020년 3,269호로 대폭 줄었다. 국민임대주택도 2018년 2만2707호에서 2020년 8,058호로, 2년 전 공급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반면, 소득 6분위까지 입주가 가능한 행복주택 공급은 늘었다.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행복주택 공급량은 2018년 2만7776호에서 2019년 3만4246호, 2020년 3만7534호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 6월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고한 행복주택 중 월 임대료가 가장 높은 단지는 서울 강남구 디에이치 포레센트(59m2) 신혼부부 형으로, 보증금 2억3520만 원, 월세 82만3000원이다. 가장 낮은 곳은 서울 광진구 엘리시아 1차(12m2)로, 보증금 2,992만 원, 월세는 10만2000원이었다.

지난달 18일 통계청이 밝힌 올해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14만2000원에 불과하다. 저소득층이 경쟁률을 뚫고 행복주택에 당첨된다 해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SH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의 보증금은 300만 원, 월세는 10만 원 이하다.

그렇다고 저소득층이 영구임대주택에 무조건 입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쟁률이 그만큼 치열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SH가 공급한 영구임대주택 경쟁률은 마포성산 172.2대1, 공릉1단지 52.0대1, 세곡3단지 32.0대1, 수서1단지 26.1대1이었다.

[출처: 홍진훤]

국민께 송구한 文 대통령…그다음은?

내년 3월에 치러질 대선에서도 부동산 문제는 주요한 쟁점이다. 지난 11월 14일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종합부동산세 고지서 발송을 앞두고 ‘내년 이맘때면 종부세 폭탄 걱정 없게 하겠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해 논란이 일었다. 글의 요지는 1가구 1주택자에 대해 세율을 인하하거나 면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예 종부세를 재산세에 통합하는 등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여기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국토보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맞섰다. 지난 8월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재명 후보는 국토보유세로 현재 0.17%에 불과한 보유세 실효세율을 1%로 늘려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최근에는 주택 공급 공약으로 ‘기본주택’을 내걸었다. 중산층을 포함해 무주택자 누구나 건설 원가 수준의 임대료로 30년 이상 거주할 수 있는 역세권 공공임대주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택 공급 목표인 250만 호 중 기본주택으로 100만 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토지임대부 분양을 포함하는 장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10%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의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에서 입주 대상을 확대하는 기본주택 공약이 주거 취약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는 “이재명 후보의 기본주택은 저소득층이 아닌 중산층까지 살 수 있는 도심형 임대주택으로, 행복주택의 이재명 버전”이라며 “현재의 임대주택 공급량은 무주택자의 규모를 따라가지 못하고, 저소득층은 비싼 행복주택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렵다.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누구에게 먼저 공급할 것인가에 대한 공급 순서가 없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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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문제는 공공임대주택 재고량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저소득층 임대주택 비중이 오히려 축소된다는 것이었다. 전체 공공임대주택 중 최저 소득층용인 영구임대주택 비중은 지난 1989년 52.4%에서 2019년 4.1%까지 줄었다. 저소득층용 국민임대주택 비중도 2007년 67.5%에서 2019년 9.7%로 줄었다. 문재인 정부 동안만 보면, 영구임대주택은 2018년 5,497호 공급된 후 2019년 5,911호로 조금 늘었으나, 2020년 3,269호로 대폭 줄었다. 국민임대주택도 2018년 2만2707호에서 2020년 8,058호로, 2년 전 공급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