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일이 남았잖아요~. 네, 3일이 남았습니다.”
12월 7일 저녁, 서울 명동 세종호텔(대표이사 오세인)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던 김란희 씨가 이야기한다. 파업과 로비농성 6일 차이자 해고 예정 사흘 전이다. 3일, 의미심장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시간이다. 해고통보를 받은 세종호텔 12명의 노동자에게는 아직 싸울 수 있는 시간이, 세종호텔 사측에게는 해고를 철회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남았다는 의미다.
“아직 할 시간이 충분한데, 회사는 저희가 하는 로비 점거농성을 철수하라는 명령을 했어요. 직장폐쇄 한다는 공고문을 벽마다 붙였습니다. 목요일(12월 9일) 아침 8시까지 철거하라고 명령을 내렸더라고요. 판이 더 휘몰아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싸우고 큰 소리 나는 게 솔직히 겁이 나죠.”
▲ 12월 7일 저녁, 세종호텔 앞에서 퇴근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 [출처: 연정] |
김란희 씨는 세종호텔에서 비서실과 총무팀, 인사팀 등에서 30년 동안 근무해왔다. 최근에는 룸메이드 업무를 하다가 코로나19 이후 사측이 이 업무를 용역업체에 넘기면서 조리팀 주방 보조 업무를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일을 하던 중에 해고통보를 받았다. 세종호텔은 ‘위드코로나’를 앞두고 뭐가 그리 급했는지 기존에 예약된 예식과 연회 일정을 막대한 위약금까지 물면서 취소하고, 식음사업부(조리팀·식음료팀·컨세션사업팀)를 폐지했다. 그리고 준비된 수순처럼 11월 초에 해고예고 통보를 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해고돼 싸우기보다 해고를 막기 위한 각오로 지난 12월 2일 세종호텔 로비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사측의 변화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란희 씨는 갈수록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대오가 단단해지고 있다고 했다.
“조용하게 잔잔하게 가면 좋겠지만, 파고가 세게 일면 또 그만큼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거니까 잘 넘겼으면 좋겠어요. 무능한 경영진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하고 있잖아요. 고진수 위원장이 제일 힘들 텐데, 위원장 격려하면서 우리도 함께 가자고 우리끼리 이야기 했어요.”
세종호텔은 세종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소유한 대양학원의 수익사업체다. 2005년 113억 원의 회계 비리와 부정으로 물러났던 주명건 대양학원 전 이사장이 2009년 7월 세종호텔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세종호텔노조의 긴 투쟁이 시작된다.
▲ 세종호텔 로비 농성장에 붙어있는 사측의 직장폐쇄 공고(왼쪽)와 이에 대한 노동조합 입장이 담긴 공고문 [출처: 연정] |
내가 모시는 분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돼
오전에는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소속)등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이 대양학원 최세모 이사장(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 판사) 자택인 서울 ○○동 현대아파트 앞에 일인시위를 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데, 근무 중이던 경비노동자가 갈고리로 피켓을 내리친 것이다. 피켓은 부서지고, 이 과정에서 피켓을 들고 있던 노동자가 갈고리에 정강이를 맞았다. 경비노동자는 직접 경찰을 불렀다. 현장에 온 경찰들이 “일인시위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자, 이 경비노동자는 “내가 모시는 분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고 한다. 고진수 지부장은 어이없고 화가 나는 한편, 마음이 아렸다고 했다. 같은 상황을 회사가 당했다면 100% 고소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같은 노동자라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폭력행위에 대한 경비노동자의 사과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왔다고 한다. 그 덕분에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최세모 이사장의 집이 어디인지 알게 되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본인들도 서비스 노동자이지만, 고객들에게 그렇게 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 대양학원 최세모 이사장 자택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던 중에 경비노동자의 갈고리에 의해 조각난 피켓과 그 과정에서 정강이를 갈고리에 맞은 세종호텔 노동자 [출처: 연정] |
“어떻게 보면 그분도 자기 직업에 최선을 다하다 보니까 오버하신 것 같기는 한데, 너무 심한 것 같았어요. 그분도 그게 생계 수단이니까 저희도 그분한테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하려고 많이 노력한 거죠.”
갈고리로 정강이를 맞은 세종호텔 노동자는 잘 사는 사람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해서 얼마나 뭘 많이 얻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씁쓸해한다. 이날 처음 사용한 5만 원 짜리 피켓 대금을 배상받지 못한 사실은 나중에서야 생각이 났다. 최세모 이사장 자택에 다시 가게 되면 그 피켓 대금을 꼭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최세모 대양학원 이사장은 전직 서울고등법원 판사 출신의 변호사다. 최 전 이사장이 판사를 하던 시절부터 근무했던 경비 노동자라면 오죽했을까 싶다. 이 경비노동자가 최세모 이사장에게 충성심을 인정받았을지, 아니면 문제를 만들었다고 질책을 당했을지는 알 수 없다.
대양학원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변희찬 개방이사, 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도 있다. 주명건 전 이사장은 서울고와 공군사관학교 등 자신의 인맥을 대양학원 임원으로 영입해왔다.
올해 2월, 교육부는 주명건 전 이사장과 주 전 이사장의 서울고 동창인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학교 재산을 부당 관리한 책임 등 교육부의 종합감사 결과에 따라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내렸다. 대양학원 임원직에서 물러난 두 사람은 교육부의 이러한 처분이 부당하다며 임원취임승인 취소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을 도와주고 있는 이들 역시 대양학원 임원으로 있던 주명건 전 이사장의 인맥들이다. 세종호텔지부는 여전히 주명건 전 이사장이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이번 정리해고 문제도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로비농성 이후 세종호텔에 방문한 주명건 전 이사장은 “세종호텔 없애도 된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 세종호텔 이탈리안 레스토랑 ‘베르디’에 붙어있는 영업종료 공고문 [출처: 연정] |
위의 교육부 감사결과와 관련하여 대양학원 측은 “세종대 대양학원 재산확보율이 213%로 국내 일반대학 5위로 최고수준이며, 재정건전성이 아주 높다. 이것은 대양학원 임원들이 재산관리를 철저하게 한 덕분이다”(주식투자 수익률은 연 11%라는 내용도 있다)라는 자화자찬 식의 보도자료(2021.2.18)를 낸 바 있다. 대양학원 스스로 돈이 많고 경영상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대양학원의 기본재산 보유액은 3천억 원으로 전국 사립대학 법인 중 10위 안에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세종호텔 정리해고 사유가 심각한 경영상 어려움 때문이라는 사측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 중 하나다.
더군다나 교육부 감사결과에는 세종호텔이 부지를 저가로 임대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다. 세종호텔 측은 부지를 거의 무상으로 이용하는 상황에서, 정부 고용안정지원금과 고용안정협약지원금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 문제를 해결하면서 영업정상화를 해보자는 노동조합(세종호텔지부)의 제안을 재고조차 하지 않았다. 애초에 사측이 공고한 희망퇴직 인원의 두 배에 달하는 노동자가 세종호텔을 떠났고, 10년 전 250명이던 노동자 수가 40명으로 줄었다. 그럼에도 세종호텔은 마치 해고를 위한 해고를 하듯이 정리해고를 밀어붙였다.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은 정규직이 없는 비정규직 호텔을 만들고, 덤으로 바른말 하는 눈에 가시 같은 민주노조도 없애기 위한 목적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 12월 7일, 파업과 로비농성 6일 차 세종호텔지부의 로비 농성장 모습 [출처: 연정] |
직장폐쇄는 사용자가 방어적으로 행사해야
저녁시간이 되자 프론트에서 체크인 하는 투숙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배달음식을 받으러 로비로 내려오는 손님도 있다. 세종호텔은 특2급(4성급) 호텔임에도 조식이 나오지 않는다. 큰 마음먹고 호텔에 투숙한 손님들은 호텔에서 배달음식을 주문해서 먹어야 한다. 해고통보를 받은 노동자들은 조식 등 부대시설을 정상운영해서 제값을 받고 영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조식 뿐 아니라 예식, 연회 등 이번에 사측이 폐지한 식음료사업부는 잘만 하면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다.
달랑 액자 한 개뿐이던 세종호텔 로비는 농성하는 노동자들 덕분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등으로 멋지게 변모했다. 호텔 측에다 인테리어 비용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건네 본다. 하루 일정을 마친 세종호텔 노동자들이 모인다. 로비 농성장에서 밤 사수를 하고, 아침 출근 선전전부터 퇴근 선전전과 가수 송희태·손현숙·이씬 정석 씨 등이 참여한 민예총 서울지부가 주관한 저녁 문화제까지 긴 하루였다. 중간에 업무 유니폼을 입고 스튜디오 알의 영상 촬영도 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눈에는 피곤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후에는 사측의 직장폐쇄 공고와 관련해 법률적인 문제에 관한 조언을 듣고자 서비스연맹 조세화 변호사와 간담회를 한다고 했다.
세종호텔 사측은 아침 일찍 직장폐쇄 공고문을 붙이면서 복수노조인 한국노총 조합원들과 함께 해고 대상자가 아닌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에게도 공고문 붙이는 일을 시켰다. 직장폐쇄의 범위는 세종호텔지부 소속 조합원 중 쟁의행위 참가자인데, 유의사항에는 이 쟁의행위에 동조하는 외부인원의 출입도 금지한다고 되어있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은 “2012년 파업 당시 세종호텔 로비를 가득 채웠던 희망뚜벅이 참가자들 때문에 겁이 나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이야기한다. 곧바로 세종호텔지부는 사측의 직장폐쇄 공고가 '쟁의행의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차별적·공격적 직장폐쇄에 해당하여 정당성을 결여하였음이 명백하므로 이에 따를 수 없다'는 내용의 공고문을 게시했다.
▲ 조세화 변호사와 직장폐쇄 등과 관련한 법률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 [출처: 연정] |
“법률적으로 직장폐쇄의 적법성 요건을 판단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쟁의 행위로 인해 사용자가 받는 타격의 정도나 내용을 비교해서 이것이 사용자에게 방어적으로 행사되고 있느냐, 아니면 공격적으로 행사되고 있느냐 이걸 따지고요. 그 전제적인 문제로 그럼 이 쟁의 행위가 왜 벌어졌는가? 그걸 봐요. 그전에 교섭의 경과를 보는 거죠.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정리 해고 문제로 쟁의행의에 들어갔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사용자가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 노동조합은 어떤 태도로 임했는지를 봅니다. 또, 이 절차에서 이 분쟁의 주요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집니다. 직장폐쇄는 사용자가 방어적으로 행사해야하고 정당성 있는 비례 원칙을 갖춰서 해야만 합니다.”
조세화 변호사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직장폐쇄 공고에 관해 설명한다. 명분도 정당성도 없는 직장폐쇄와 정리해고, 다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측이 물리력을 사용하여 끌어내려 할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부당해고와 관련된 법률 절차가 어떻게 진행이 되는지,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등 평소 궁금하던 내용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질의가 이어진다. 싸워야 할 것도, 사측에 받아내야 할 것도 많다. 세종호텔이 왜 이런 무모하고 소모적인 행위를 하는 것인지, 그 비용과 시간을 호텔 정상화에 투자할 수는 없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직장폐쇄 예정일인 12월 9일 오전 8시에는 세종호텔 사측이 총무팀 등 남은 20여 명의 노동자들로 ‘구사대’를 만들어 로비 농성장을 침탈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장렬하게 끌려가 준다고~.”
허지희 사무국장이 각오를 밝힌다. 허지희 사무국장은 소성리 경찰침탈 시 집회 참가자들을 경찰이 가마를 태우듯이 내보내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 같았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나이도 있고, 숙련이 안 된 총무과 직원들의 가마는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
“솔직히 쫄았는데, 쫄면 안 되겠네요. 근데 우리 화장실은 갈 수 있나요?”
빵 터지는 순간이다. 진지하던 간담회 분위기가 스르르 녹는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나 역시 세종호텔이 출입을 봉쇄할 경우, 화장실 문제가 걱정되고 궁금하던 터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직장폐쇄란, 그런 거다. 웃음 속에 정리해고철회·영업정상화를 위한 파업·로비농성 6일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