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소중한 재산으로 가져가고 싶은 19명 동지들”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47) 대성산업 본사에서 고용승계 요구 단식농성 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⑤ :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정민규 씨 이야기

12월 16일,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이 미국 게이츠와의 교섭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운영하던 흑자기업 한국게이츠(대구 달성산업단지 소재)의 일방적인 폐업과 해고에 맞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한 지 539일 만이다.

합의 내용의 구체적인 부분은 비공개이며, 한국게이츠가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청구했던 3억 5000여만 원의 손해배상 문제를 포함한 각종 법률 문제 해결이 포함됐다. 고용문제와 관련해서는 게이츠 측이 한국 판매법인 철수 계획을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한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은 합의와 함께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본사 앞 천막농성을 해제했다. 이후 대구 공장 앞 천막농성도 해제할 예정이며, 대구 시청 천막농성장은 당분간 유지할 계획이다. 한국게이츠지회는 합의에 즈음한 감사 인사와 함께 이후에도 외국투기자본을 규제할 수 있는 법 제정을 위해 함께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11월 대성산업 본사에서 14일 간의 점거농성과 13일 간의 단식농성을 했던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정민규 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으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최근 상경투쟁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부디 539일 동안 힘겨운 투쟁을 전개한 19명의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잘 치유하고 일상으로 잘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두 건강하게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 <필자주>


  12월 16일, 합의가 이루어지고 서울 대성산업 본사 농성장을 정리한 후에 단체사진 촬영 중인 한국게이츠 19명의 노동자들 [출처: ‘스튜디오 알’ 제공]

내려오라 카면 내려가는 거다

“속도 자꾸 울렁거리고 구토 증상도 있어서 왜 이러지 했는데, 검사를 하니까 전해질 밸런스가 다 깨졌다고 해요. 하루아침에 될 건 아니고 밖에서 투쟁도 하고 있는 상황이라 밖에서 몸 단도리 하겠다고 의사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게 마음이 편하지 싶어서….”


대성산업 본사에서 14일 간 점거농성과 13일 간 단식농성을 했던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정민규 씨가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민규 씨는 병원에 후송된 지 이틀 만에 담당 의사와 절대로 무리하지 않고 물과 소금 등을 규칙적으로 섭취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퇴원했다고 한다. 민규 씨와 전화통화를 했던 11월 24일 오후, 대성산업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의 투쟁사업장 순회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대구에서 한국게이츠 투쟁에 함께 해 온 노동자들까지 올라온다는 소식에 병원에 있을 수가 없었다. 미음을 먹고 있어 기력은 없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 마음은 편안하다고 했다.

민규 씨는 지금도 대성산업 본사에서 농성하던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했다. 문제 해결 이전에 대성산업에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인간으로서의 모멸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11월 24일 서울 대성산업 본사 앞에서 진행된 민주노총 서울본부 순회투쟁 ‘한국게이츠 해고사태 문제 해결 촉구 결의대회’ 장면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가진 사람들이 정말 더 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쨌든 사람이라는 기준을 두고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우리보고 돈 더 받아내려는 폭도들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대성산업에 돈 달라는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우리는 대성산업이 그렇게 싼 값에 그 땅을 산 데에는 우리 고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면담 요구를 한 거잖아요. 근데 그 사람들은 그 땅이 살 사람이 없어서 가격이 떨어진 거고 너희하고 상관없이 산 건데, 왜 우리한테 와가지고 하노. 이렇게 얘기를 하고 우리를 사람으로 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기가 나서 더 열심히 대성산업 본사 안에서 투쟁을 하고, 결국 단식농성까지 하게 된 거라고 했다. 민규 씨는 단식농성 후에 채붕석 지회장과 동료들이 눈물 흘리며 내려가던 모습이 몹시 가슴 아팠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자 오히려 독기가 생겼고, 남은 5명은 더욱 의지를 다졌다. 나중에 기운이 없어 구호조차 외치기 힘들게 됐을 때는 누워서 투쟁을 했다.

“그 동지들도 끝까지 남아 있고 싶었던 사람들인데, 쇼크가 오니까 눈물 흘리면서 내려가는 모습이…. 우릴 남겨놓고 가는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내라도 있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계속 있다 보니까 끝까지 갔던 거죠. 한 사람 실려 나갈 때마다 정신이 더 번쩍번쩍 들었어요. 더 나가면 안 된다, 더 나가면 안 된다. 다섯 명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우리는 절대로 실려 가거나 우리 발로 내려가지 않는다. 내려오라 카면 내려가는 거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운동하고 물 많이 먹고 하자.”


12월 2일 교섭 일정이 잡히면서 단식농성을 해제하고 내려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5명의 노동자들은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농성을 계속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교섭하는 조건이 우리가 내려오는 거라고 해요. 우리가 그동안 교섭한다고 투쟁을 그만둔 적은 없었어요. 결과가 나와야 그만두는 건데…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우리가 안 내려가면 교섭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교섭이 안 되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 텐데, 어떻게 하지?’ 걱정도 있었지만, 게이츠 자본이 얼마나 악독한지 알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내려왔습니다.”


위장폐업, 투쟁하면 돌아갈 수 있겠다

한국게이츠 오토텐셔너 조립 부서에서 20년 동안 일해 온 정민규 씨는 지난해 여름 투쟁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5백일 넘게 투쟁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민규 씨는 회사가 처음에 폐업 공고를 할 때 위장폐업이 맞다는 확신을 하고, 희망퇴직이 아닌 공장 재가동·고용보장 투쟁을 선택한다.

“정규직 다 내보내고 비정규직 뽑아서 돌릴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우리 정리되면 그렇게 들어올 거다. 그래서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위장폐업이기 때문에 우리가 투쟁하면 돌아갈 수 있겠다. 일하고 있는데 당일 아침에 와서 그렇게 얘기하는 건 정말 아니잖아요. 흑자 나고 기계도 쌩쌩 돌아가고 있는데….”


코로나19로 미국 원정투쟁은 못했지만, 한국게이츠를 압박하기 위해 청와대와 국회, 현대자동차 등 전국 곳곳을 다니며 투쟁했다. 한국에 들어와 단물만 빼먹고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떠나는 외국 투기자본의 횡포를 알려내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게이츠 문제는 잊혀 가는 것 같았다.

민규 씨는 지난 여름 이후 대성산업의 인수를 앞두고 20년 동안 다루어온 기계가 하나하나 실려 나가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 했던 게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한국게이츠가 농성하는 노동자들에게 3억5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청구와 부동산 가압류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한국게이츠는 민규 씨가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 보증금까지 가압류를 걸었다.

  12월 8일, 대구 달성산업단지 한국게이츠 공장 앞 천막농성장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기계 나갈 때 처음에는 진짜 죽겠더라고요. 진짜 우리 끝났다 이런 생각까지 들고…. 포장해서 가져가는 기계도 있었는데, 50% 넘는 우리 소중한 기계들을 밖에 끄잡아 내놓고 장비가 그걸 다 부숴버리는 거예요. 고철로 나가는 거죠. 내가 일했던 기계가 부서지는 걸 보고 마음이 많이 안 좋았죠.”


12월 미국 게이츠와의 교섭이 잡히면서 현장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기계가 없는 빈 공장을 생각하면 막막함이 밀려오는 것도 사실이다. 교섭에 임하는 회사 측에 바라는 것을 이야기 해달라는 요청에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던 민규 씨는 “정상적인 사고로 교섭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청산을 담당했던 회사 측 관리자들의 악랄한 모습을 떠올리면 ‘저 사람들하고 다시 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민규 씨 자신을 위해서도 다시는 한국게이츠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한국게이츠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야기한다.

한국게이츠의 폐업 과정에서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나간 백 여 명의 노동자들 중에 회사에 취업을 하거나 자영업·보험설계사 등의 일을 하고 있는 이들은 10명(10%) 이하 밖에 되지 않는다. 대구에서는 한국게이츠에 다녔다고 하면 ‘강성노조’라는 이유로 취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종의 블랙리스트다. 한국게이츠는 임단협 등 노사 교섭이 있을 때마다 자본 철수를 들먹이며 노조 측의 양보를 강요해왔고, 임단협이 끝나면 그에 대한 보상 요구처럼 물량 압박을 하곤 했다. 그럼에도 한국게이츠는 흑자 회사를 폐업하는 명분으로 ‘강성노조’ 운운하기도 했다. 그저 헌법에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고 최소한의 노조 활동을 한 결과가 이리도 혹독해야 하는 것일까. 19명의 노동자들이 투쟁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이다.

  12월 7일,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본사 앞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천막농성장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죽을 때까지 소중한 재산으로 가져가고 싶은 19명의 동지들

그동안 싸워온 노동자들은 투쟁도 힘들었지만, 가족들과의 관계가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계속되고, 가족들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하면서 압박도 점점 심해졌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투쟁할 때도 새벽 6시 좀 넘으면 집에서 나와 밤 8시 정도에 집에 들어갔거든요. 근데 밖에 있는 14시간 보다 집에 가서 자기 전까지 가족들하고 보내는 2시간 정도가 너무 힘든 거예요. 들어갈 때부터 집에 눈치가 보이니까…. 금방 끝난다는 말도 하루 이틀이잖아요. 통장 바닥난 지 오래되고 보험도 해약 할 거 다 했는데도 안 되다보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이런 상황이 화가 나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부부싸움도 하게 되고. 가족한테 미안한 게 사실인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이러고 싶어서 이러느냐 하면서 화가 나는 거죠. 너무 힘들어서 계속 이래는 못 하겠다. 이렇게 투쟁해서는 10년이고 20년이고 끝이 안 나겠다. 올라가서 죽을 각오로 싸우면 끝이 안 나겠나. 그런 생각을 갖고 올라왔던 거죠.”


민규 씨는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서울에 올라와 단식농성 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민규 씨의 어머니가 “내가 죽을란다. 빨리 단식 끝내라”며 울면서 전화를 해서 나중에는 단식농성을 풀고 밥을 먹고 있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11월 11일, 서울 대성산업 본사 점거농성 3일차 한국게이츠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길어진 투쟁과 함께 또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투쟁을 함께 시작한 동료들이다. 19명의 노동자가 이 긴 시간을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에게 바라는 점을 물으면 많은 이들이 “19명의 동지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우리 19명 조합원들 진짜 저는 너무 자랑스러워요. 이렇게까지 남아 있을 줄도 몰랐어요. 다 힘든데, 그 때 그 때 고비를 같이 손잡고 넘겼고, 서로 가족까지 다 챙겨가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자기 몸 아픈데도 옆에 괜찮다 얘기를 해요. 형제나 다름없어요. 이 투쟁이 끝이 나더라도 이 19명의 동지들은 죽을 때까지 소중한 재산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모두 건강하게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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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평촌놈

    얼마나 힘들실까요. 직장을 나오면 바로 생활비가 문제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지요. 한동안 힘든 투쟁을 하고 계시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건강들 하십시요.

  • 문경락

    우리 19명 조합원들 진짜 저는 너무 자랑스러워요. 이렇게까지 남아 있을 줄도 몰랐어요. 다 힘든데, 그 때 그 때 고비를 같이 손잡고 넘겼고, 서로 가족까지 다 챙겨가면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을 때도 자기 몸 아픈데도 옆에 괜찮다 얘기를 해요. 형제나 다름없어요. 이 투쟁이 끝이 나더라도 이 19명의 동지들은 죽을 때까지 소중한 재산으로 가져가고 싶어요. 모두 건강하게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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