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측은 한화생명지회와 같은 산별노조인 사무금융노조 소속의 정규직 노동조합(한화생명지부)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며, 교섭창구 단일화 요구를 핑계로 설계사 노동조합인 한화생명지회와의 교섭을 1년 동안 거부해 왔다. 1년에 가까운 한화생명지회 투쟁의 결과, 2월 14일 대표자 교섭이 열릴 예정이다.
4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보험설계 노동자들을 대표하여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요구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한화생명 보험 설계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주>
여의도 바람을 우습게 알면 안 돼요
1월 11일 늦은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63빌딩 앞. 한화생명 보험을 판매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보험설계사들의 노동조합(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 한화생명지회) 임시 사무실이자 천막농성장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지난해 3월 3일 꽃샘추위 속에 사측에게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한화생명(대표이사 여승주) 본사가 있는 이곳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315일 째 되는 날이다.
“붕어빵 좀 드세요. 이거 20분 기다려서 구워갖고 온 거예요. 줄 서는 집이더라고요.”
“빨리 드신 분은 한 마리 더 먹을 수 있어요.”
김태은 지회장과 김갑선 수석부지회장, 김미정 사무국장이 노동조합 설립 1주년을 맞아 준비하고 있는 ‘단체교섭 촉구 투쟁기금 마련 후원주점’ 티켓 판매를 하고 오면서 붕어빵을 사가지고 왔다.
“기자님, 이거 드시고 다이어트 하세요.”
“지금부터 먹는 거는 다 키로(kg) 가요.”
10년~30년 보험설계사 일을 해온 여성노동자들의 유머와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천막에서 보낸 다섯 시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몇 번 경험한 듯하다.
“여러분, 일어납시다!”
잠깐 몸을 녹인 한화생명 노동자들과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 등이 퇴근선전전을 하기 위해 일어난다.
“이거 입으세요. 롱패딩 드릴게요. 우리는 단련이 돼서 괜찮은데, 여기 추위가 만만치 않거든요. 여의도 바람을 우습게 알면 안 돼요.”
내 차림새가 추워보였는지 조합원들이 농성장에 있는 큰 패딩을 입으라고 챙겨준다. 입고 있던 점퍼 위에 다시 패딩을 입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이리 와 봐요. 엄마가 해줄게요. 아, 머리를 넣어야 되는데, 팔뚝에다가 머리를 넣으면 안 되죠. 아이고, 엄마가 옷도 다 입혀드렸어요.”
김태은 지회장이 패딩에 이어 주황색 노동조합 조끼를 입혀주며 이야기한다. 민망한 가운데 계속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천막 밖으로 나오자 영하 10도의 날씨에 여의도 강바람 까지 불어오는 곳임에도 정말 눈밭에 굴러도 춥지 않을 것 같다.
▲ 한화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앞에서 퇴근선전전을 하고 있는 보험설계사지부와 한화생명지회 간부들 [출처: 연정] |
설계사들이 뼈 빠지게 일해 피눈물로 만든 빌딩
퇴근선전전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63빌딩 각 입구를 지키고 있던 용역노동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처음 보는 나에게도 각별한 시선이 따라다닌다. 내가 처음 도착해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을 때는 누구인지 확인을 하려는 듯이 다가와 말을 건네기도 했다.
“우리 화장실 들어가면 ‘들어간다, 오바’ ‘나간다, 오바’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여자 경호원이 쏙 들어와요. 말은 안하고 그냥 있는 거예요. 변비가 온다니까요. 예전에는 한두 명 씩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많아졌어요. 우리가 천막 치는 걸 용역들이 막는 과정에서 성추행 문제가 발생하니까 여자 용역을 고용한 거죠.”
한화생명지회 김태은 지회장은 점심시간에 피켓팅을 할 때는 조합원 한 명 당 용역 20명 씩 붙을 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저 사람들 일자리를 창출해줬다”며 웃는다. 노동가요가 울려 퍼지자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단체교섭 즉각 실시하라!’, ‘한화생명금융서비스는 손보시책비 떼먹지마라!’ 등의 피켓을 든 노동자들이 선전전을 시작한다.
이중 반사유리를 활용한 ‘커튼월(Curtain Wall)’이라는 공법으로 1만 3천 장 이상의 창문이 태양 각도에 따라 색상이 변해 출근길에는 은색 퇴근길에는 황금색이 된다는 63빌딩. 그 빌딩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보험설계 노동자들과 작은 천막농성장.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 듯한데, 실제로 보니 꽤 잘 어울린다.
1985년 대한생명의 모기업 신동아그룹이 완공하여 2천 년 대 초반 까지도 ‘국내 최고층’ 빌딩 타이틀을 유지하던 63빌딩의 현재 이름은 ‘63스퀘어’다. 1999년 ‘옷로비사건’ 등의 과정에서 신동아그룹이 해체된 이후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2002년) ‘한화63시티’를 거쳐 ‘63스퀘어’가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63빌딩’이라고 부른다. 이 빌딩의 또 다른 이름은 ‘피골탑’. 한화생명 보험설계사들은 63빌딩을 2만 명의 설계사들이 뼈 빠지게 일해서 피눈물로 만든 빌딩이라는 의미로, ‘피골탑’이라고 부른다.
63빌딩 내부 공간의 90% 이상은 보험회사인 한화생명과 한화생명의 자회사 한화생명금융서비스 본사 사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 보험상품 개발과 자산운용 업무 등을 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근무한다. 이 빌딩을 만든 2만 명의 보험설계 노동자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헌법에 명시된 단체교섭권을 보장받기 위해 1년 가까이 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 한화생명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 63빌딩과 그 앞에 있는 한화생명지회 천막농성장 [출처: 연정] |
사명감 갖고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극한직업이에요.”
20대 후반에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해 올해로 26년 차가 된다는 김태은 지회장의 농담반 진담반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보험설계사라는 일도, 그 일을 좀 더 잘 해보고자 시작한 투쟁도 극한직업이다.
“이 일을 시작한 게 좀 빨랐죠. 여기에 사명감 갖고 들어온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저도 어쩌다가 자장면 한 그릇 얻어먹고 그냥 미안해서 나왔다가… 왔으니까 또 끝까지 가는 거고. 저도 제가 이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줄은 몰랐어요. 애들 어릴 때 재취업하기 전에 워밍업이다 하고 왔거든요. 근데 보험회사가 보기하고는 달리 할 일이 되게 많아요. 보험 영업이 20년을 넘어가면 뼛속까지 다 보험이에요.”
물 위에 편안하게 떠있는 오리가 쉬지 않고 발놀림을 하고 있듯이, 설계서 몇 장을 들고 웃으면서 고객을 만나는 설계사 역시 이를 위해 끊임없는 사전 준비와 노력을 해야만 한다.
▲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 앞에서 퇴근 선전전을 하고 있는 한화생명지회 김태은 지회장 [출처: 연정] |
“우리가 교육을 할 때, 보통 연수원 들어가면 상품 교육을 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인문학을 해요. 고객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고객들 유형도 파악을 해야 하잖아요. 말 잘하는 사람이 보험 잘할 것 같지만, 사실 안 그래요. 진정성 있고 성실한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10년 동안 한화생명 설계사로 일해 온 김미정 씨(한화생명지회 사무국장)가 고객이 근무하는 회사 앞에서 고객을 기다리고 서류를 받아 몇 년 동안 청구해주는 일만 해주다가 처음으로 재계약에 성공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미정 씨는 보험회사에서 10년이면 ‘신인’(신입사원)이라고 했다.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의 큰 흐름이 시작되고 있어
특수고용 노동자 중에 노동자 수가 가장 많은 직종인 보험설계사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은 것은 최근이다. 2020년 12월 31일 사무금융노조 보험설계사지부가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설립신고필증을 교부받은 게 처음이다. 보험설계사 노동자들은 2000년 ‘전국보험모집인노동조합’라는 이름으로 첫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20년 만에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성을 인정받았다.
보험설계사지부 오세중 지부장은 한화생명지회가 “보험설계사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신고필증 교부를 통한 노동조합법상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 이후 첫 번째 단체협상 사례”로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만큼, 보험회사들의 저항도 셀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많은 보험회사들이 한화생명지회 사례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삼성화재에서 한국노총 정규직 노동조합이 설계사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몇 달 만에 3천 명 넘게 가입했다고 해요. 거기도 단체교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거기 성과도 여기 성과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여기에 힘입어 올해 또 어디에서 설계사 노동조합이 만들어질지 모르죠. 설계사 노동조합의 큰 흐름이 시작되고 있는 거죠.” (오세중 지부장)
▲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화생명 본사 앞에 있는 한화생명지회 천막농성장 [출처: 연정] |
저녁식사를 마친 노동자들이 줌으로 보험설계사지부 회의를 하고, 이날 후원주점 티켓 판매 정산을 하며 저녁 농성을 이어간다. 처음 찾아온 필자는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하며 늦게 까지 질문을 계속 한다. 한화생명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도, ‘뼛속까지 보험’인 노동자들 이야기에 푹 빠져 떠나지 못하는 기록하는 사람의 일도 ‘극한직업’인가 싶다.
보험 설계노동자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설 명절을 앞두고 멸치와 김·된장 등 고객들에게 줄 선물 준비를 한다. 18년 동안 한화생명에서 보험설계 일을 해온 김갑선 부지회장은 선물을 사서 포장 작업을 할 때 기분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지금은 그걸 못해 많이 아쉽다. 대신에 고객들에게 정성을 다했던 것처럼, 어렵게 만든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정성을 다해 오늘의 투쟁을 하고 있다. 그것이 나중에 고객들에게 큰 선물이 될 날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치킨을 팔다가 마약조직을 검거한 마약반 형사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극한직업>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일석이조, 일타쌍피,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그런 이야기다. 지금은 거리에서 극한투쟁을 하고 있는 한화생명 보험설계 노동자들이 승리하여 보다 나은 일터에서 고객들을 만나며 일할 날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