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은 왜 ‘사람 잡을까’ 공포에 떠나

[코로나19 특별기획] 감염병 종식도 해결 못하는 인력 부족

코로나19 보고서: 멀고 낮은 곳부터 파괴했다

차례

① 코로나 재택 치료 72시간, 엄마는 깨어나지 못했다
② 코로나19의 정부, 차별과 배제를 더 넓게 더 깊게
③ 코로나19 이후, 국민은 ‘의료 인력·공공병원 확충’ 원한다
④ 간호사들은 왜 ‘사람 잡을까’ 공포에 떠나
⑤ 의료민영화 흐름 속 공공의료 확대 가능한가
⑥ 돌봄 노동자에게 감염병이 특히 버거웠던 이유
⑦ 이주민이 많은 도시, 차별은 같았다
⑧ 장애인의 일상이 여전히 재난인 이유
⑨ 코로나19 2년, 안녕하지 못했던 사람들
⑩ 전염병과 봉기, 혐오와 차별의 역사
⑪ 감염병은 ‘혐오’를 먹고 자랐다
⑫ 10명 중 6명 “코로나19 이후 혐오 표현 늘어”...‘사회적 양극화’ 때문
⑬ 질문들 감염병 시대, 처벌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⑭ 99%의 경제 코로나19 대응, 시장 솔루션의 한계

“오늘 다른 환자들은 버렸다.”

간호사가 담당 환자 모두를 감당할 수 없을 때,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을 나누면서 사용하는 말이다. 하나뿐인 생명 앞에서 누구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간호사들은 ‘혼이 나간 상태’로 일하며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실수를 경험한다. 감염병이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기 전부터 이들은 이미 ‘재난’을 경험하고 있었다.

하반기 코로나19 재유행이 우려되는 가운데, <참세상>은 혼란스러웠던 지난 2년 반 동안의 병원 현장을 살펴봤다. 코로나19 병상에서 일반 병상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도 이직 생각이 가득하다는 민간 상급종합병원의 한 간호사는 인력 문제가 개선된다면 “일이 너무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재유행도 공포지만, 감염병 이전의 ‘일상’이 찾아와도 문제였다. 간호사 부족으로 병원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정부와 병원이 듣지 않기에 <참세상>이 간호사들에게 물었다. 의료기관은 감염병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요?

간호사 부족으로 있어도 없는 병상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응급의료센터 [출처: 은혜진 기자]

병원들은 코로나19 병상을 운영하기 위해 기존 간호인력을 차출했다. 이에 따라 일반병상이 있어도 운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시 서울대학교병원운영 보라매병원의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병원 코앞에서 직원이 다쳐도 죽을 수 있다”라는 얘기가 돌았다. 보라매병원 인근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병원 직원들이 다치는 일이 발생하며 나온 얘기다. 병상이 있어도 담당할 간호사가 없으니 병상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김혜정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부분회장에 따르면, 기존 17~18개 병상으로 운영되던 보라매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은 코로나19 간호인력 차출로 12병상만 열렸다. 김 부분회장은 “중환자가 응급실에 와도 입원할 병상이 없으면 죽는다. 그동안 병원은 중환자실에 병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느라 전쟁을 치렀다. 실제로 병상이 없었던 적이 있었다”면서 “병상이 있어도 간호사가 없으면 소용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서울의료원은 5차 대유행 이후에도 간호인력 부족으로 병상을 모두 운영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다.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은 1차 대유행 당시부터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본원의 전체 병상을 코로나 확진자 전용 격리병상으로 운영해왔다. 현재는 감염병 전담병원 지정이 해제됐고, 8월 초에 모든 병동이 열릴 예정이다. 이동환 의료연대 본부 새서울의료원분회 분회장은 “병동마다 약 50병상이 있는데 이를 운영할 간호사 수가 부족해 모든 병상에 환자를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구체적인 병상 운영 현황은 8월 초에 병동을 돌아다니며 확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며 공공병원의 역할을 충실히 해온 서울의료원은 어쩌다 간호사들이 기피하는 병원이 됐을까. 서울의료원 간호사의 사직률이 높다는 점은 병원 측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병원보다 유독 낮은 임금 때문으로 파악된다. 지난해 11월 서울특별시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는 서울의료원의 낮은 급여가 20% 이상의 높은 사직률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송관영 서울의료원장은 “노사발전 재단에서 저희의 임금컨설팅을 했을 때도 (임금의) 30%를 올려야 된다는 결론이 나왔는데 이는 너무 부담인 것 같다”면서도 “(임금) 총액의 10% 정도는 올려야 간호사 이직이나 그 외 직원들의 이직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직원들의 열악한 임금 수준을 인정한 바 있다.

간호사 이직률, 코로나19 이전에도 전체 산업군의 3배

높은 노동 강도도 간호사들의 주된 이직 사유다.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올해 보건 의료 노동자 정기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들이 이직 사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열악한 근무조건·노동강도(48.9%)’였다. 그리고 ‘낮은 임금 수준(27.4%)’ 때문이라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간호사들의 이직률은 얼마나 높아졌을까. 1차 대유행이 발생한 대구·경북 지역의 유일한 국립대병원인 경북대병원은 2020년 들어 간호사 사직률이 대폭 증가했다. 의료연대본부 경북대병원분회가 경북대병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전체 현원 대비 사직자 비율은 4.7%로 전체 산업군 이직률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70% 늘어난 8.0%를 기록했다. 지난해(9.4%)에도 1.4%P 증가했다. 올해는 현재(지난달 30일 기준)까지 4.0%가 퇴사했는데, 2019년 한 해 사직률(4.7%)과 불과 0.7%P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코로나19로 노동 강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19 종식만으로 인력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코로나19 이전 진행된 보건의료노조 2019년 현장 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 이직률은 15.2%였다. 이는 그해 전체 산업군 이직률인(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 조사) 4.9%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민간 상급종합병원인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중환자실에서 7년째 근무 중인 한 간호사는 “코로나19 영향이 아니더라도, 1~2년 차 간호사들의 퇴사율이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면서 “연차가 쌓여도 교대근무 형태가 적응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업무 강도를 낮춰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를 줄여야 한다”라고 했다.

김혜정 부분회장은 환자의 생명이 하나인 이상, 병원 측에서 간호인력 충원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1월부터 지난달 초까지 보라매병원에서 한 병동의 간호사 26명 중 9명이 사직했는데 이들 모두는 2~3년 차 간호사들”이라면서 “현재의 노동 강도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규 간호사들은 병원에 중환자도 너무 많고, 해야 할 것도 많다 보니 이러다 ‘사람 잡으면 어떡해’라는 심정으로 차라리 사직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병원 엘리베이터 버튼을 못 누르고 집으로 가버리는 응급 사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대학교병원 [출처: 은혜진 기자]

이들의 말대로, 낮은 연차의 간호사일수록 사직률이 높은 특징이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국립대병원 간호사 퇴직자의 절반 이상이 입사 2년 이내의 간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대학교병원 본원의 경우도 지난해 사직자의 81.5%가 근무한 지 3년 이내의 간호사였다. 병상을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사직 행렬을 막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간호사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나 지난 2년 반의 코로나19 재난 속에서 정부는 병원이 간호사들을 더욱 쥐어짜도록 방치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코로나19 병상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발표했지만, 이를 준수하는 병원은 없었다. 반면, 5차 유행을 겪는 동안 의료인력 확충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는 높아지고 있다. 최근 <참세상>이 전국 3천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감염병 재유행에 대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의사 및 간호인력 확충’(48.9%)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간호사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방법

간호사 수는 환자의 안전과 직결된다. 간호사 확보 수준과 환자 사망 간의 관련성을 조사한 한 연구는 “일반 병동 간호사 1인당 병상 수가 6.0개 이상인 의료기관과 비교해 3.5개 미만인 의료기관의 환자사망률이 일관되게 낮다”면서 하지만 “연구 대상 의료기관 중 일반 병동 간호사당 병상 수가 3.5개 미만인 기관은 196개로 21.5%에 불과하다. 반대로 (2016년) 간호관리료 차등제의 최저 기준인 간호사당 병상 수가 6.0개 이상인 의료기관이 60.0%로 확인돼 우리나라 의료기관의 간호사 배치 수준이 매우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더 많은 의료기관이 충분한 간호사를 확보하도록 정책 개선방안이 시급하게 요청된다”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간호사가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을수록 누락된 간호가 발생해 욕창, 낙상, 감염 등이 증가하고, 이는 소생 실패 및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병상 수는 많고, 간호인력은 부족한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한국 병원의 전체 병상 수는 OECD 국가 중 2위다. 인구 1천 명당 12.4개로 OECD 평균(4.4개)의 무려 2.8배다. 반면 같은 해 기준 인구 1천 명당 간호사 수는 4.2명으로 OECD 평균(7.9명)보다 3.7명 적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의료현장에서의 ‘실수’는 아찔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한 상급종합병원의 7년 차 간호사는 지난 3월 제주대병원에서 발생한 영아 사망사고를 떠올리며, 병원의 구조적 문제에 공감했다. 사망 영아는 간호사의 투약 오류로 사망했다.

“저도 헷갈려요. 어떤 환자한테는 혈압을 올리는 약을 써야 하고, 다른 환자한테는 혈압을 낮추는 약을 써야 하는데 이게 바뀌어 버리는 거죠. 너무 피곤하니까요.

혼이 나가버리는 거예요. 한 번은 죽기 직전 상태로 병원에 이송된 환자가 있었어요. 심장이 거의 안 뛰는 이런 환자들은 약으로 심장을 뛰게 하거든요. 이 환자에게는 시간당 4cc의 약을 줘야 했는데, 그보다 더 빨리 주입한 사건이 있었어요. 원래 이런 약을 과하게 주입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환자가 사망하게 돼요. 속도에 맞게 주입해야 하는데, 수액 연결만 하고 자리를 벗어나니 약이 후두두 떨어진 거죠.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바쁘기 때문이에요. 당장의 일을 하면서 다음 일을 생각해야 하는데 집중이 안 될 수밖에 없어요. 저 입사 초반에는 이런 풀 드롭(full drop)사건이 몇 번 있었어요. 다행히 그 환자는 다른 직원이 목격해서 미연에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죠.”

  왼쪽부터 현지현 의료연대본부 정책국장, 박희정 경북대학교병원 간호사 [출처: 은혜진 기자]

6차 재유행을 앞둔 지금, 간호사들은 무엇보다 신규 간호사 교육체계를 비롯해 감염병에 대응할 인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전했다. 감염병이 확산할 때마다 신규 간호사를 투입하는 방식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정부가 졸업일을 앞당긴 국군간호사관학교 간호장교들과 생도들을 의료현장에 파견하는 일도 있었다. 간호 현장에서는 정부가 ‘간호사 숫자 채우기식 대책만 내놓는다’라는 비판이 일었다. 관련해 경북대병원의 응급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박희정 간호사는 “숙련된 간호사와 신규 간호사는 천지 차이다. 신규 간호사가 업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한다”면서 “화재가 없다고 해서 소방관들이 모내기를 하진 않는다. 항상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국립대에서조차 인건비가 낭비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환자를 실제 돌보는 노동자들이 감염병 대응과 관련해 병원 측과 지속적인 논의를 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혜정 부분회장은 “병원은 그동안 코로나19 대응 논의에 노조를 단 한 번도 참여시킨 적이 없다. 한쪽의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는 감염병에 대응할 수 없다. 실제 환자를 돌보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다. 감염병 시기 인력은 어떻게 수급할 것인지, 동선은 어떻게 세울 것인지에 대해 함께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코로나19를 거치며 적정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해 병상 종류에 따른 구체적인 인력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긴 병원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러한 내용의 ‘간호인력인권법’은 지난해 10월 10만 국민동의청원을 달성했다. 현행법상 의료인 정원 기준 위반 시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지만, 처벌이 이뤄져도 과태료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왔다.

특히 간호인력인권법에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의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인력 기준도 담겼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보호자나 간병인이 상주하지 않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4시간 전문간호(간병)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때문에 일반 병동보다 두 배 이상의 간호사가 배치돼 있다. 앞서 병원들은 코로나19 병상 운영을 위해 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을 일반 병동으로 전환하며 인력을 확보했다. 감염 병동 운영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인력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올해 2월부터 공무원 준비를 했다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의 한 간호사는 “7년을 일하면서 간호사의 노동 조건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간호인력인권법이 제정되면, 이직 생각이 사라질 것 같다”면서 “간호사들의 노동환경은 환자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했다.

보라매병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일반 병동으로 전환한 지 불과 몇 달 되지 않았는데, 최근 코로나 확산세로 또 코로나 병동으로의 전환을 시작할 예정이다. 간호사들은 많이 지쳤다”면서 “정부는 간호사들의 번아웃을 해결하기 위해 간호인력 배치 기준을 법제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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