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마와 함께한 금요일

[INTERNATIONAL4] 기후식민주의와 팔레스타인 그리고 여성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기후위기는 이스라엘 군사점령 하의 취약점을 악화하는 이중고로 다가온다. 오랜 점령과 지속적인 공습으로 인구와 물자 이동이 제한적이고 개인 거주지, 농경지는 물론 사회 기간 시설이 파괴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위기에 대응할 자원과 역량 자체가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올해로 16년째 봉쇄 중인 가자지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물 자원을 통제하며 과도하게 지하수를 끌어다 쓴 탓에, 해안가 대수층의 지하수량이 해수면보다 얕아졌고, 이는 바닷물의 잦은 침습으로 이어져 농경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봉쇄로 인한 인구밀도 급증으로 민중들은 깨끗한 물에 접근할 권리를 박탈당했다. 2020년 UN은 가자지구를 물 위기로 인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태양광집광판을 설치하고 싶어도 봉쇄가 지속되는 한 집광판을 작동시키는 배터리 수입이 원활치 않아 ‘친환경 솔루션’도 통하지 않는다.

  지난 8월 23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팔레스타인평화연대가 '기후식민주의와 필레스타인'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온라인으로 참석한 아스마 아부메지에드 가자지구 활동가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지난 8월 23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기후식민주의와 팔레스타인’을 주제로 오프라인 세미나를 열었다.1) 외부 연사로는 가자지구에 사는 연구자 아스마 아부 메지에드(Asmaa Abu Mezieed)를 온라인으로 초청했다. 아스마는 젠더와 기후위기에 대한 다양한 조사를 해왔는데, 특히 여성의 돌봄노동을 둘러싼 경제정의와 팔레스타인의 정치·농업·환경적 정체성의 교차성에 초점을 둔 연구에 매진해왔다.

아스마는 평생을 가자에서 살았다. 영국과 미국에서 석사 학위 및 연구 활동으로 2년가량씩 떠나있었지만, 2017년 초부터 현재까지 쭉 가자에서 일하고 머물렀다. 그는 가자지구가 직면한 기후변화 양상을 누구보다 경험하고 연구한 전문가로서, 이러한 환경의 변화가 주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젠더적 관점으로 풀어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만성적인 전력난으로 냉장고 사용이 불안정해지면 여성들은 주 단위로 하던 장보기를 날마다 해야 하고, 세탁기 대신 손빨래를 해야 한다는 것. 기후위기와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 강도 변화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혹은 폭염으로 인해 가족 단위 소규모 농가가 수입에 직격탄을 맞으면, 가정 내 긴장감 높아지고 구성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증가하는데, 이 경우 최종적으로 여성을 향한 젠더기반 폭력이 상승한 점을 관찰했다. 여성들의 고된 일상을 한낱 푸념이 아닌 ‘기후위기가 삶에 끼친 영향’으로 패턴화한 것이다.

지난 9월 16일 금요일, 이전 세미나에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나눠보고 싶어 화상콜을 요청했다. 가족들과 왁자지껄한 주말 식사 후 설거지를 마치고 이제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았다는 아스마를 만났다. 가자지구의 만성적 전력난으로 원활한 인터넷 연결이 어려워, 결국 아스마의 카메라는 끈 채 화상콜을 진행했다.


  아스마 아부메지에드 가자지구 활동가

아스마, 다시 만나 반가워요. 한국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 밤이에요. 가자는 주말 오후 세 시네요, 가족들과 점심은 잘 먹었어요?

금요일 점심은 정말이지 정신없는 날 그 자체예요(웃음). 팔레스타인은 금요일과 토요일이, 한국의 토요일, 일요일과 같은 주말입니다. 그래서 보통 금요일 점심에 가족들이 다 같이 둘러앉아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죠. 평일에 저는 보통 오후 다섯 시쯤 돼야 집에 오고, 여동생은 낮 열두 시면 일을 마치고 오는데 조카들도 학교가 오전반, 오후반이 있어서 집에 오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한자리에 못 모여요. 그래서 금요일 점심은 늘 함께합니다. 부모님도 모두 형제자매가 많아 대가족인데다, 어머니 친구들과 그들의 딸들까지 20명은 족히 넘게 드나들며 종일 북적이는 날이에요.

지난번 세미나는 참석자들한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아스마가 그간 연구해왔던 것들을 보면 여성과 경제정의가 핵심 키워드였는데 기후위기라는 의제는 어떻게 접목하게 된 거예요?

음, 먼저 말해두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당신이 여성이든 남자든, 물론 여성인 경우 더 그렇긴 하지만, 기회 자체가 참 적다는 걸 의미해요. 커리어나 학업뿐 아니라 내가 정말 삶에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인생을 걸고 싸우고 싶은 가치가 뭔지, 이런 걸 발견할 기회가 적다는 말이에요. 솔직히 가끔 저는 지금 제가 파헤치는 주제들에 대해, ‘내가 다른 곳에서 살았어도 이것에 이렇게 매달렸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 더욱 다양한 선택지를 일찍이 제거당하고 박탈당하는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저 특정한 시점에, 내 주변에서, 마침 가능했던 기회를 따라왔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게 제가 열정을 갖게 된 분야는 여성과 경제적 정의의, 이것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맥락에서 갖는 교차성이었어요. 농업 스타트업이라던가 여성농업협동조합 등 주로 농촌 지역 여성들과 가까이에서 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날씨나 환경 이야기로 대화가 흐르곤 했죠. 여성들의 무임금 돌봄노동, 가사노동은 극단적인 기온을 보이는 여름, 겨울에 가중되는 흐름이 뚜렷했거든요.

농촌 지역 여성들의 경험에 주목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후위기와 연결됐네요.

제가 기후위기 이슈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내러티브로 팔레스타인인들이 땅과 맺어온 관계에 대해서, 농업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면 할 말이 없지는 않죠. 100년 전과 비교해 오늘날 팔레스타인인들의 농업에 대해 가진 정체성이나 ‘환경적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을 뜻한다. 이스라엘 건국 전후로 이뤄진 팔레스타인인 인종청소를 일컫는다.)’라는 개념에 대해 한동안 깊게 파본 적이 있는데, 그게 결국 기후위기와 연결되는 저의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연구나 활동을 하며 직접 만나본 팔레스타인 민중들은 기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던가요?

리서치 조사 방법론 중 (무작위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 위한 ‘센싱(Sensing)’ 단계가 있는데, 그때 자주 접한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어요. ‘기후위기라는 것이 당신이 관심을 갖는 문제라는 건 알겠는데, 우리의 가장 급선무 고민은 아닙니다. 내일 하루를 더 살아내기 위한 생존의 문제가 더 시급해서요.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일상을 위협하는 다른 리스크들에 견주어 봤을 때 가장 큰 위협은 아닌 것 같은데요’하는 식인 거죠. 만약 가자지구에 홍수가 나면, 홍수는 보통 주변화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열악한 동네에서 더욱 심각하기에 사람들은 홍수를 열악한 인프라와 먼저 연결하지,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거죠.

[출처: A Palestinian rides his trike through a flooded street following heavy rainfall in Gaza City on December 5, 2013. AFP PHOTOMOHAMMED ABED]

기후위기에 대해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체감 온도가 매우 달랐을 것 같기도 해요.

물론이에요. 예를 들어 농부들이 날마다 겪는 농업적인 리스크는 꽤 명확했지만, 택시 운전수의 경우 기껏해야 홍수가 났을 때 정도만 주행에 영향을 받는 식이었죠. 아, 그리고 이곳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에게 물어본다면 젊은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정말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들이 진짜 팔레스타인인으로서 이곳에 살면서 느껴서인지, 세간 NGO의 언어에 노출된 결과인지는 모르겠어요. 기후위기 이슈는 분명 인기를 끌고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웠어요. 여성들은 어렵지 않게, 기후위기와 연결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곤 했거든요. ‘전기가 끊기면 이런 일이 생겨요, 폭염이 오면 당장 내 하루엔 이런 일이 일어나요’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이분들의 이야기를 더욱 본격적으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들었어요.

이러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떤 자리에서 주로 오가곤 하나요?

다양한 여성그룹 모임들에서요. 팔레스타인에는 여성을 위한 모임들이 많아요. 학문적이고 지적인 토론을 하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 생활 정보 따위를 공유하는 모임이에요. 주제는 아주 다양해요. 자기 아들에게 나타난 알러지에 대해 서로 경험을 묻고 공유하며 정보를 얻기도 하죠. 저도 이러한 몇몇 그룹의 일원으로서, 이들의 교류를 자연스레 분석하기에 이르렀던 것 같아요.

단순한 감정적 교류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장이군요.

자치정부 내 의료 시스템이 무너진 팔레스타인 같은 경우, 사람들은 약을 구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결국 가족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합니다. 정부의 역할 부재를 감당하는 단위가 가족이 되는데, 많은 경우 여성이 그 비용을 치르는 양상인 거죠. 이런 곳에서 치료법을 공유 받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단, 여름에 폭염이 발생하면 이렇게 한 공간에 모여 앉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 되는데, 이렇듯 함께 모여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는 게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 또한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라고 볼 수 있겠죠.

[출처: Photo Karl SchembriOxfam]

기억에 남는 여성들의 증언은 어떤 것들이었어요?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전력난 때문에 새벽 2시에 일어나서 빵을 굽고 요리를 하느라 너무 힘들다고 하는 거예요. 가자에서의 삶은 전기가 언제 들어오느냐가 관건인데, 그 증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죠. 보기에 따라선 그저 모여서 고된 살림살이를 푸념하고 시어머니 흉이나 보는 걸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여성들의 대화는 사실 지역 사회에 대해 너무 많은 걸 알려줘요. 이를테면 어떤 여름에는 이런 질문들이 대거 등장해요. ‘아들이 이러이러한 피부병이 도졌어요.’, ‘제가 요즘 부쩍 피로감이 들어요.’ 그러고 공통점을 보면 폭염이 왔을 때와 일치하더라 하는 식인 거죠.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동안 팔레스타인 사회나 주류 연구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다수의 논문은 여성(노동력)의 경제적 효용에 대해 말할 때 ‘노동시장에 여성이 투입되면 XX만큼의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는 식으로 기술하고 말아요. 그러면 저는 납득이 가지 않는 거죠. ‘무엇을 근거로요?’ ‘예시가 뭔가요?’ 같은 질문들이 붙어요. 더욱 세분화된 예시를 들어서 이야기해달라고 요구해온 이유죠.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식 통계는 여성들의 농업 관여율을 최소한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여성의 노동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서예요. 공식적으로 양식을 갖춰 등록된 노동자로서 임금을 지급받는지, 공식적인 급여 지급서에 적혀있는 이름이 누구인지 등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인데, 많은 경우 여성들은 이 형식에 존재하지 않거든요.

존재하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는 여성들을 발견해내기 위해 아스마는 어떻게 달리 바라보나요?

제가 농업 분야에서 여성들을 볼 때 주의 깊게 보는 것은, 여성들이 어디에 위치하는가예요. 여성들은 보통 가족이라는 우산 아래서 씨를 뿌리는 등의 경작 초기 단계에 가장 많이 투입돼요. 그렇기에 홍수로 뿌려진 씨앗이 유실되면 이 가족의 한 해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첫 단계에 있는 거죠. 보통 여성 노동자는 보수도 받지 않는 비공식 인력인 경우가 많아서, 홍수로 씨앗이 유실돼도 정부의 보상시스템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요. 공식적인 노동자라 해도, 땅은 종종 아들 소유로 등록돼 있어서 정부의 보상은 실제로 경작을 하는 여성이 아닌 문서상 아들에게 주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구두 증언들이 충분히 분석되지 않은 채 공중에서 흩어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어요? 달리 말하면, 소규모 농가에서 농사와 가사노동을 병행하는 여성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기후위기를 감지하는 시그널로 도출한 과정이랄까요.

이곳 병원 중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과 운르와(UNRWA, UN팔레스타인 난민구제 사업기구)에서 운영하는 병원이 있어요. 여성들이 이유 모를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을 경우, 두 곳 모두 진료 기록을 남기긴 하겠지만 이러한 데이터가 다른 부처로 공유돼 활발하게 분석되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보건부나 환경부 간 정보를 공유하는 루트가 없는 거죠. 조사를 하다 보니 기후위기와 관련해 유일하게 공식적인 기관으로서 사람들에게 안내 공고를 발행하는 곳은 농업 관련 부처더라고요. 폭염이나 홍수가 있으면 공식 경고문을 발표해, 농부들에게 작물 보호를 위한 주의사항 등을 안내하곤 하죠. 이러한 기록과 여성들의 증언을 종합해서 만성피로감의 원인을 기후위기와 연결할 수 있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러한 다른 관점의 조사와 연구를 통해 더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를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는 흐름이 보이는지 궁금해요. 지난 세미나에서도, 말미에 결국 기후위기는 점령이나 인종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구조화된 억압과 장벽들을 건들지 않고는 본질적인 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사실 관련한 조사 과정에서 자주 접한 이야기는 이런 것 위주였어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바다를 정화해야 한다’ ‘쓰레기를 청소하자’와 같이 소셜미디어 등에 시각적으로 노출되기 쉬운 활동들 위주였죠. 기후위기를 (구조적인 억압의 문제로 바라보고)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적어도 가자에서는, 학문적 배경을 갖춘 자리가 아니면 잘 거론되지 않는 게 현실이긴 해요. 보통 이런 토론은 영어로 진행되는데, 여기 대중들은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죠. 아랍어를 하는 팔레스타인인 발제자가 있다고 해도 이런 이벤트는 보통 국제적인 큰 단체들이 개최하는 행사라 어차피 일반 대중들에게는 먼 이야기로 치부되곤 하니까요. 하지만 (넓은 차원에서 보면) 분명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서 커지고 있는 움직임은 맞습니다. 환경 정의를 이야기하며 점령과 기후위기와 연결 짓는 논의에 더욱 다양한 집단들이 참여하고 있고, 서로의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 전체 강연 영상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자지구의 물 부족과 오염 문제를 시각화한 이미지 [출처: Visualizing Palestine]

  가자지구 봉쇄에 따른 경제 붕괴 상황을 시각화한 이미지
[출처: Visualizing Palestine, Oxf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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