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히잡’에 흔들리는 나쁜 이란 체제

[INTERNATIONAL1]

1. ‘나쁜 히잡’의 저항

지난 9월 16일 이란에서 한 여성이 히잡을 썼지만 규정에 맞게 정확히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조사과정에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한 달 넘게 여러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등 저항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이란혁명 이후 여성은 항상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퇴행적인 신학을 강요하는 체제에 대한 저항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리고 이 저항운동의 중심에 ‘나쁜 히잡’, 즉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아 머리카락을 보이게 하는 전술이 존재한다.

1997년 개혁파 모하마드 하타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추진된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히잡 정책에도 변화가 있었다. 히잡 착용이 사적인 차원의 문제라는 시각이 대두됐고, 그 결과 하타미 임기 중에는 히잡 착용에 대한 통제가 상당히 느슨했다. 이후 2005년 보수파인 마흐무드 아흐메드네자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상황은 다시 변하게 된다. ‘나쁜 히잡’이 사회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새로운 법이 제정되고 올바른 히잡 문화 정착을 위한 사업들이 추진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2009년 대선 이후에는 ‘유연한 전쟁’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이 개념은 외부 세력들이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좌초시키기 위해 ‘나쁜 히잡’의 관행을 확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1)

  국제적으로도 이란의 히잡 반대 시위를 지지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10월 22일 영국 트라팔가 광장에서도 이란 시위를 지지하고자 시민들이 모였다. [출처: 트위터 @Checkmybadself]

‘나쁜 히잡’ 현상의 최근 사례로는 ‘하얀 수요일’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살펴볼 수 있다. 히잡 착용 의무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매주 수요일 소셜미디어에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사진을 올리는 방식이다. 또한 ‘혁명 거리의 소녀들’이라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테헤란 거리에 설치된 변압기 위에 올라, 막대기에 히잡을 걸고 서 있는 것이다. 마침 그 거리의 이름에 ‘혁명’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어 그런 명칭이 붙여졌다.

2021년에 선출된 극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이전보다도 더 강한 탄압으로 ‘나쁜 히잡’ 현상에 대응했다. 이번에 희생된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례는 그 비극적인 결과다. 이번에도 거리 시위와 함께 저항의 표시로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거나 머리카락을 자른다거나 히잡을 불태우는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아미니의 출신 지역인 쿠르드족 거주지역과 수도 테헤란 등이 중심이 돼 반체제운동으로 확대된 이번 사태에서 이란 정부는 강력한 탄압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 경찰의 대응이 더 강경한 양상을 띠고 있다. 심지어 군의 공습이 이뤄지기도 했다. 또 다른 소수민족인 발루치족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한 여성이 경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군이 이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발포해 약 93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저항운동이 쿠르드 지역과 유사하게 이란 내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청소년 및 청년, 여성, 소수민족 등 이란 사회에서 배제되고 억압에 시달리는 집단이 저항운동의 선봉에 서는, 최근 이란 사회의 경향이 다시금 확인되고 있다.

2. 히잡의 정치화

히잡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돼 왔지만, 공통점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강한 태양이나 모래바람과 같은 자극으로부터 안면을 보호하고자 했겠지만 다른 이의 시선으로부터 보호하거나, 수도자들처럼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는 공간에서 은둔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히잡의 의미가 여성의 특정 복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성의 삶과 몸이 세상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성별 분리의 극단적인 양상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이란 여성의 현실을 잘 반영한다. 여성의 히잡 착용 거부는 더 이상 남성에 의해 또는 의복에 싸여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길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 경찰의 역할 역시 단지 히잡 착용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영역에서, 심지어 일부 사적 영역을 포함해 남성과 여성의 분리를 강제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히잡 반대 운동은 온전히 여성해방운동이며 또한 권위적인 질서를 타파하는 민주주의 운동의 한 부분이다.

근대 이후 서구 지배 세력의 사고에서 베일을 쓴 여성은 아랍 또는 이슬람 사회의 이질성과 후진성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그러나 현실은 보다 복합적이다. 베일을 착용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풍습이 현대사회에서 부활하는 현상은 다양한 배경과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공통점은 복장이 공적인 사안이 된다는 점이다. 베일 착용은 강요되기도 하고, 금지되기도 한다. 이란의 경우, 여성의 복장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국가 지도층이 거론하던 사회적 이슈였다. 1979년 혁명 이전 이란은 팔라비 왕조가 다스리던 국가였다. 히잡 착용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것은 1926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인 출신 레자 샤 팔라비가 통치하던 1936년이었다. 그에게 히잡 착용 금지는 이란 사회 서구화의 일환이었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반체제운동에서는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의 복장을 두고 서구의 음모가 반영된 것이자 이란 사회 자체의 건강하지 못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올바른 복장은 이란 사회를 변혁하는 과정의 하나로 취급됐다.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이란 사회를 변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의 제국주의 세력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중요한 해결책이었다. 1979년 혁명이 성공한 직후, 여성들이 이슬람 공화국의 정신에 부합하게 의복을 착용해야 한다는 루홀라 호메이니의 발언이 있었다. 1983년에는 공공영역에서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이 제정된다. 히잡 착용에 찬성하는 진영이 수적으로 압도했고 “히잡이냐, 남성의 스토킹이냐”와 같은 구호를 내걸면서 논리적인 면에서도 반대 진영을 누를 수 있었다. 이렇게 이란 현대사에서 히잡은 줄곧 공적인 사안이었고 이런저런 식으로 정치적인 함의를 띠었다. 이번 히잡 사태도 이러한 히잡 정치화의 역사에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3. 여성의 몸으로 향하는 권력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히잡 착용은 이후 이란 신정체제의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히잡 강요에 함축된 여성의 표상은 불결하고 위험한 존재,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을 수 없는 존재, 근본적으로 남성에 비해 열등한 존재였다. “버스에서 여성의 몸이 남성의 몸을 스칠 때마다 그 진동이 우리의 혁명 기반을 흔들리게 한다.” 이란 혁명 직후 히잡 착용 의무화 조치를 이끈 호메이니의 발언이다. 이 청교도적인 강박관념은 히잡 문제를 넘어서 기존 체제에서 여성이 누릴 수 있었던 권리를 빼앗았다. 권위주의 체제를 뒤엎은 혁명에 앞장선 여성들은 역설적으로 혁명이 초래한 자신들에 대한 억압에 저항했다. “자유을 찾은 새벽, 자유는 없었다.” 그러나 저항은 새로운 체제에서 무참하게 진압됐고, 이후 40여 년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됐다.(2)

여성 복장에 대한 권력의 강박관념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유럽의 현재를 닮은 것이기도 하다. 유럽 내부에서 무슬림 사회에 대한 관심은 테러리즘과 함께 히잡에 집중돼 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이슬람주의 단체인 이슬람형제단과 같은 이들은 히잡 착용을, 일부 유럽 정부들은 학교 등 공공 영역에서 히잡 착용 금지를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다. 유럽 무슬림 공동체의 일각에서는 히잡이 서구로부터의 독립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것은 이슬람 혐오증이나 신식민주의로 간주된다. 그러나 정작 본국에서는 여성들이 자유와 평등의 상징으로 히잡 착용에 반대하기도 한다. 일반적 인식과 달리 이슬람권 국가들에서 히잡 착용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정도로 드물다. 역으로 알제리, 튀니지와 같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일부 유럽 국가들처럼 안면 대부분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요르단, 모로코처럼 히잡을 금하지도 강제하지도 않는 나라도 있다.

4. 이슬람과 공화국의 이름으로

이란의 권력자들은 여성들의 한 줌의 머리카락이나 매니큐어 칠한 발톱을 신정체제와 동급의 사안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알리 하메네이 등 이란 종교 지도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미국, 이스라엘 같은 외부의 적들이나 쿠르드 분리주의자들이 사주한 것이라며 비난하고 있는 것도 히잡 문제가 체제 수준의 사안임을 보여준다. 베일을 문제시하는 국가의 태도에서 우리는 어느 민족이나 종교 집단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일탈 현상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 이를 근거로 집단 전체를 비정상적인 집단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슬람이 유럽 국가들이 표방하는 공화국의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이나, 4500만 정도로 유럽 인구의 6% 정도를 차지하는 무슬림이 유럽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생각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란 여성들의 행동이 이슬람과 중동의 문화를 공격하는 서구 제국주의의 의도에 부합할 수 있다는 시각도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재 유럽은 이슬람 문화에 대한 공격보다 이 문화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이란 등 중동 지배 세력들과의 외교관계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제국주의가 공격하는 것은 자신들의 길에 장애가 될 수 있는 세력이다. 그것이 종교세력인지 세속적인 세력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튀니지의 엔나흐다와 같은 이슬람주의자들을 지지하기도 하고, 비종교적이고 반제국주의적인 나세르주의를 적으로 여기기도 했고, 반제국주의 성향의 알제리 이슬람주의자들은 악마화하면서 이들을 제거하려했던 권위주의적이고 친서구적인 정권은 지지하는 등 문화나 이념에 대해서는 일관되지 않은 행보를 보여왔다. 변함이 없었던 것은 자국의 이익이었다. 여성의 권리나 표현의 자유, 자주의 가치나 정교분리주의나 어떤 다른 가치보다 훨씬 우선시된 것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였다. 유럽이나 미국의 온건한 좌파나 우파 정권과 달리 일관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극우파들이었다. 이들의 입장은 일관되게 민족주의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이고 반이슬람주의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계급, 민족, 문화에 적대적이다. 극히 방어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로 무장된 것이다.

  10월 5일 이란 대사관 앞에서 이란 히잡 의문사 관련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인권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이번 사태 직전 우리는 살만 루슈디가 테러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히잡 관련 살해사건이 벌어진 것은 그 자체로는 우연이지만, 강경한 이슬람주의 세력이나 그 정점에 있는 이란의 신정체제가 느끼고 있는 위기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그리고 우연히도 두 사건 모두 이란 체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이다.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화국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통일된 대응,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은 유보될 수 있다. 공화국의 이름으로 히잡 착용을 금지한 프랑스와 유사하게, 공화국의 이름으로, 공화국의 안위를 위해 외세에 동조하는 의미가 있는 서구식 복장을 대상으로 한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슬람 혁명의 수호와 함께 공화국 수호를 표방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란 국민들의 투쟁은 이슬람을 사회운영의 원리로 강요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를 내세우며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공화국도 겨냥해야 한다. 공화국은 정치체제의 하나로 국가를 왕가 등 특정 세력의 전유물로 여기는 군주제와 달리 국가를 모두의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공화국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공화국이 소수의 독점세력이 아니라 다수의 다양한 정체성과 이해관계를 억압하게 될 때, 이는 민주주의나 평등에 반하게 된다.

5. 퇴행적 체제의 몰락을 재촉하는 저항

칼 마르크스는 혁명을 출산의 진통에 비유한 바 있다. 최근 상황이 이전과 다른 점은 혁명의 진통, 즉 저항운동이 분출하는 간격이 줄어들고 강도는 심해졌다는 것이다. 아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최근 몇 년간 이란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중 가장 심각한 상황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게다가 주변의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체제가 전복되는 경험을 하면서 이란의 신정체제도 이전보다는 위협감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2009년 대선 과정에 대한 문제 제기로 촉발된 ‘녹색 혁명’이나 기름값 인상이 야기한 2019년의 ‘빵 폭동’보다도 더 저항과 탄압의 강도가 세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다.

아래로부터의 봉기가 성공한 1979년 이란 혁명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성들의 역할이 컸던 점, 이번과는 양상이 정반대이기는 했지만 히잡 문제가 저항의 진원지가 된 점,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점 등의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차이점도 있다. 과거 이란의 국왕과 같이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 명확하지 않은 점이나 역으로 반정부 진영에 혁명을 이끌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낙관적인 전망을 주저하게 한다. 다만 체제를 거부하는 세력만이 아니라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 역시 변화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을 정도로 40여 년 전 냉전 시대에 수립된 이란 신정체제는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다.

(1) Ali Jafari, “Normes vestimentaires et répression sociale en République islamique d'Iran”, Outre-Terre 2011/2 (n° 28), pp.277-289
(2) https://www.lemonde.fr/idees/article/2022/09/28/iran-le-voile-est-devenu-l-un-des-rares-vestiges-religieux-d-un-regime-abusivement-presente-comme-celui-de-mollahs_6143467_3232.html, 2022년 10월 15일 검색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엄한진(한림대 사회학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김경진

    잘못된 종교적 규율에 틀을 깨야 합니다.
    종교가 평화의 선을 넘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신은 살인을 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