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취약 300만명의 요구를 국회 담벼락에서 외치는 사람들

[이슈] 윤 정부 내년도 예산, “공공임대주택 33년 역사 정면 부정”

연말을 앞둔 가운데, 《워커스》는 집을 나와 농성장을 꾸리고 밤낮없이 투쟁 중인 이들을 만났습니다.

[출처: 은혜진]

국회 담벼락 앞에는 한 달 넘게 윤석열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 7천억 원 삭감’을 막기 위해 밤낮없이 농성 중인 이들이 있다. 이들은 전체 가구의 43.8%(2021년 11월 기준)를 차지하는 무주택자들이고, 오랫동안 공공주택사업을 촉구해온 쪽방 주민이며 공공임대주택 입주자이기도 하다. 공공임대주택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았던 이들은 초록색 천막으로 집을 지었다. 이들의 “내놔라 공공임대” 요구는 공공임대주택 33년의 역사를 지켜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워커스》는 지하·옥탑 등으로 떠밀려 보이지 않게 된 주거취약계층의 목소리가 국회에 닿기 위해 농성 중인 이들을 만났다.

줄어든 공공임대, 늘어난 분양주택 “균형감을 상실한 예산”

윤석열 정부는 취약계층 공공임대주택 33만8천호를 2023년부터 2027년까지 공급하겠다고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2017~2021년, 28만7천호) 때보다 5만1천호 늘어난 물량이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 반지하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발표된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오히려 대폭 삭감된 상태로 발표됐다. 반지하 참사를 외면했다는 비판일 일자, 정부는 올해까지 2년간 한시 도입된 공공전세사업 종료(1조9천 억)와 건설형 임대주택 물량의 자연적 감소(1조7천 억)가 공공임대주택 예산 감소의 주된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건설임대주택인 영구임대·국민임대·행복주택이 지난해부터 통합공공임대주택으로 유형 통합이 이뤄지면서 신규 공급 물량이 없다는 것인데, 늘어난 통합공공임대주택 예산은 고작 4,373억 원이었다.

공공임대주택 유형별 예산 합계는 2016년(7조8,161억 원)부터 2022년(20조4,555억 원)까지 꾸준히 늘어왔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무려 5조7,729억 원(28.2%) 삭감하는 안을 발표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이 꾸준히 늘어온 이유는 그만큼 주거 취약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고(지하·옥탑방·고시원)에 거주하는 가구는 2020년 기준 83만980가구로, 일반 가구 수 대비 4.0%다. 같은 해 서울시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공공임대주택 입주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주거 안전 취약계층(고시원·판잣집·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거주)의 84.0%, 전체 가구의 46.7%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은 주택 구매 여력이 있는 이들을 향해있다.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거 삭감한 정부는 대선 공약이었던 청년원가주택과 역세권첫집 등을 위한 공공분양주택을 확대할 계획이다. 청년원가주택·역세권첫집은 청년·신혼부부 등 무주택자들에게 시세의 70% 수준으로 분양하는 정책이다. 국토교통부의 2022년, 2023년도 기금운용계획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공공분양주택의 신규 공급 물량은 6만3,139호로 올해(7,023호)보다 9배 늘었다. 분양주택 관련 예산 역시 올해(3,163억 원)의 4배 이상(1조3,955억 원) 뛰었다. 주거권 운동 단체들이 “균형감을 상실한 예산”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통합공공임대·매입임대·전세임대의 경우 내년도 신규 공급 감소분은 6만4,859호인데, 민간임대·분양주택 증가분은 6만9,616호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에 대해 정부의 내년도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을 분석한 홍정훈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지난 10월 31일 토론회1에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 주택 예산을 줄이고, 주택 구입 여력이 있는 중간 소득계층 이상의 청년 세대 일부에게 편중된 공공분양 주택 정책을 추진하려는 점이 (윤 정부) 임기 첫해 수립한 예산안에서부터 드러난다”면서 “정부는 한정된 공적 자금을 장기공공임대 주택보다 공공분양주택, 구입·전세자금 대출 지원, 민간임대주택 활용 정책에 더 많이 투입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밝혔다”라고 평가했다. 또 그는 민간임대주택은 임대료 책정기준·입주자 선정 기준에 관한 규제가 없고, 공공분양주택은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해도 최소 수천만 원의 자기 자금, 수억 원에 이르는 부채의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이유로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이 될 수 없다고도 설명했다.

[출처: 은혜진]

정부가 등한시한 ‘내 집 마련’이 어려운 청년들

정부가 청년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는 주택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국회 앞의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장에서 만난 청년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농성 32일 차인 지난 11월 17일 만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30대 초반 활동가인 서동규 씨는 청년을 위한 분양주택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서동규 활동가는 “정부는 시세의 70%에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줄 테니, 청년들에게 희망을 품으라고 한다.

하지만 5억 원을 대출해준다고 해도 40년 동안 100~200만 원의 원금·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청년·노동자 중 월급의 200만 원씩을 대출 상환금으로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고 지적하며 “주택에 대한 시세 차익 보장, 청년들에 대한 대출 지원 등 정부가 집을 상품으로 만드는 구조를 유지하려 한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1억2,600만 원 전셋집에 살고 있다는 서동규 활동가는 전세자금 대출(9,600만 원)을 받아, 매달 18만 원가량의 이자를 내고 있다.

그와 함께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민달팽이유니온의 20대 가원 활동가는 윤석열 정부가 민간 임대시장에서 집을 빌려 사는 청년들을 전혀 돌보지 않겠다는 신호를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원 활동가는 “매입임대주택, 전세임대주택 등에 대한 청년들의 경쟁률이 매우 높은 상태에서 공공임대주택의 예산을 삭감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격이 컸다”라고 전했다. 현재 가원 활동가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비영리 주거모델인 달팽이집에 거주하고 있다. 그가 살고 있는 4인 셰어하우스의 임대보증금은 1,400만 원, 월 임대료는 30만 원이다. 지난해 1월 완공된 ‘빈집활용 토지임대부 사회주택’2인 이곳은 주변시세의 80% 이하의 임대료로 공급되고 있는데, 가원 활동가는 현재의 주거 비용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공공임대주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쪽방 주민들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니면, 쫓겨난다

[출처: 은혜진]

이날 저녁엔 주거권을 주제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의 거리 강연이 농성장 앞에서 진행됐다. 행사 30분 전부터 도시정비사업 등에서 이주 대책을 촉구하는 쪽방 주민 등 공공임대주택이 자신의 요구가 된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인사를 건넨 기자에게 양동쪽방주민회 위원장 박종만 씨는 현재 양동(현 서울 중구 남대문로 5가)에 공급될 공공임대주택 면적이 14㎡(약 4평, 최저주거기준)에 불과한 문제로, 주거 면적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민간개발이 확정된 양동에서는 2019년부터 쪽방 건물주들이 주민들을 쫓아내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양동 쪽방촌 주민들은 그해 말부터 ‘선이주’ 대책을 촉구하며 싸웠다. 그렇게 지난해 6월, 공공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수립됐다.3 박 위원장에 따르면, 그동안 쪽방 주민들이 쫓겨난 결과, 500명이었던 주민은 현재 180명도 남지 않았다. 주거권 단체들은 공공주택사업이 아닌, 민간이 시행하는 도시정비사업으로 선이주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쪽방 개발 역사상 최초의 일이었다고 얘기한다.

동자동공공주택사업추진주민모임의 위원장 김영국 씨와 부위원장 백광헌 씨도 농성장을 찾았다. 국내 최대 쪽방 밀집 지역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2월 5일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힌 곳이다. 민간 개발과 달리, 정비기간 주민의 임시 거주지와 재정착을 보장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동자동 주민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그러나 계획 발표가 이뤄진 지 1년 9개월을 훌쩍 넘겼지만, 사업 시행을 위한 첫 단계인 ‘공공주택지구의 지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초 계획은 지난해 12월까지 지구 지정을 완료하고 이후 절차를 밟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국토교통부는 최근까지도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라면서도 “토지 · 건물 소유주들이 민간 개발과 공공개발을 같이 하자고 요구하는 가운데 서울시와 국토부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를 하면서 쪽방 주민들이 하염없이 불안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종부세 대상 120만 명, 주거 취약계층 300만 명

이날 거리 강연에 나선 최은영 소장은 쪽방 주민, 청년 주거권 활동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철거민들의 투쟁과 희생의 결과라고 말했다. 관련해 그는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정화를 이유로 강제 철거와 아파트를 만드는 사업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당시 수십 명이 죽고 다쳤는데, 이 때문에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사람 죽인다는 평가도 있다”라며 “철거민들의 투쟁으로 공공임대주택이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영구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공공임대주택은 저절로 지켜지지 않고, 현재 공공임대주택의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한 농성 투쟁이 공공임대주택의 앞으로 30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내는 이들보다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지만, 정치권은 이들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하 · 옥탑 · 고시원에 살거나 너무나 좁은 집,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 사는 가구가 200만 가구, 사람으로 치면 300만 명 이상이다. 10가구 중 1가구는 그렇다고 보면 된다”면서 “과거 판잣집에 살았던 이들이 현재 지하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보니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해 관련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종부세를 내는 사람이 120만 명인데,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이 열악한 주거환경에 살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음날 만난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이번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은 공공임대주택 33년의 역사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는 사람들이 비상한 행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많은 단체가 농성장을 차리게 됐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농성의 의미엔 “공공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인 의미를 운동 진영뿐 아니라 정치권에도 환기하자는 것도 있다”라고 했다.

한편 지난 11월 2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국민의힘 의원들 등이 불참한 가운데, 정부가 삭감한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을 복구하는 안을 의결했다. 이제 내년도 예산안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 이어 예결특위 전체회의를 거쳐야 한다. 법정 시한인 오는 12월 2일에는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에 대해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예산 증액과 관련해서는 정부 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여야의 합의가 있어야 (복구된 공공임대주택 예산안이) 본회의로 갈 수 있기 때문에 그 합의 과정에서 불안함이 크다”라며 “국토교통부는 매입전세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대해서는 동의한다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삭감된 예산의 복구 여부가 유형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11월 4일 민주당은 영구임대·국민임대 예산 7천억 원만을 복구하는 예산 심사 방향을 정했다가 시민사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유형, 금액 등에서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출처: 은혜진]

정부는 주거 취약계층의 희생으로 지어온 공공임대주택 역사를 외면하고, 발생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반지하 참사를 잊은 채 지난 8월 30일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올해 대비 28% 삭감하는 안을 내놨다. 그리고 두 거대 정당이 서로의 예산을 놓고 싸우는 가운데, 오늘도 주거취약계층은 빌딩 숲 사이 자신의 쪽방으로 향한다. 쪽방에서 6년째 살고 있다는 홈리스행동 홈리스야학 학생인 겨울 씨는 지난 11월 16일 열린 기자회견4에서 “쪽방의 바퀴벌레는 신경을 긁는다. 바퀴벌레는 적응도 되지 않는다. 이제 늙고 힘이 없다. 쪽방을 나가 차라리 노숙하겠다. 쪽방을 나가는 방법 중엔 죽어서 나가는 방법도 있다. 쪽방 주민들의 60%는 60대 이상이다. 제가 사는 건물에도 1년에 두 명이 사망했고, 이때까지 6명을 그렇게 보냈다. 집안의 먼지는 다 입으로 들어오는데, 쪽방 주민 모두는 건강도 좋지 않다”라며 “(이런 우리를) 부자들과 국회의원들은 외면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각주>
1.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 등이 지난 10월 31일 개최한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 토론회’
2.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장기간 방치된 빈집을 매입 후, 해당 부지를 활용해 ‘빈집활용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주거 관련 사회적 경제 주체가 토지를 임차하고 청년·신혼부부 등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시세 이하의 저렴한 임대료로 공급하도록 한다.
3. 비마이너, 〈쪽방주민들 “오세훈이 살아도 좋을 공공주택 지어라”〉, 2022. 9. 26.
4. 내놔라 공공임대 농성단은 지난 11월 16일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에 국민의힘이 동조하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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