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성소수자, 일상이 투쟁같아도.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소소부부의 동네 친구가 전하는 말 “살다 보면 즐거운 날이 옵니다!”

동네 술친구가 놀러 왔다. 고민이 있거나 힘들고 어려울 때 기꺼이 만나 술 한 잔 같이 기울여주는 그런 동네 술친구. 꼭 고민이 있거나 힘들 때가 아니더라도 기쁜 일이 있거나, 혹은 별일이 없더라도 자주 서로 술을 따라주는 동네 친구. 그녀는 그렇게 우리 부부에겐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변호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

소소부부 “사람 박한희보다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너무 주목받아서 힘들거나 불편한 건 없었어?”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아주 많고 다양한데 사람들은 어떤 성격에 곧잘 집중하기도 한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다른 다양한 면이 잘 안 보여서 그 사람에 대해 온전히 알기가 힘들어지기도 하니까. 마치 우리 부부가 동성부부라는 정체성으로 너무 알려지다 보니 소성욱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김용민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려져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부부처럼, 한희도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에만 이목이 쏠려 힘들었던 시간이 있을 것 같았다.

한희 “한 번은 클럽에 놀러 갔는데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고 ‘변호사님 화이팅!’ 해주시는 거야. 그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놀고 싶었는데 민망해서 흥이 식어버리더라고(웃음). 그런 일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예전에 정말 힘들었던 것은, 나는 변호사로서의 내 실력을 키워서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트랜스젠더라는 타이틀로만 주목받을 때가 있어서 힘들었어. 내가 변호사로서 어떤 일을 어떻게 잘하는 지보다 트랜스젠더라는 것만 부각되니까. 그러는 한편 역량을 강화하고 성장하고 싶은 내 욕구는 채워지지 않고….”

사실 우리 부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2019년에 결혼식을 올린 것은, 정말 그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우리 생에 두고 싶어서 사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한 것인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운동적 의미가 부여돼 있었다. 한희랑 이야기 나누며 고민해보니,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아직 일상 속의 수많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보려 하지 않고, 그 성소수자들이 갖는 다양한 삶을 상상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지만, 이 사회는 우리의 현실을 상상조차 못 하니.

한희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어. 숙명여대에 트랜스젠더 A씨가 입학하는 것을 두고 난리가 났던 때야.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가 엄청 뜨거울 정도로 전화가 쇄도했었어. 그때 ‘아, 나의 이 역할이 이 사회에,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역할이구나’ 생각하기 시작했지. 그러면서 오히려 걱정하기 시작한 건, 사람의 생김새가 다양하듯 저마다의 삶이 다 다르고 다양한 것처럼 트랜스젠더의 삶도 다양하고 다 다를 텐데, 내 모습이나 내 이야기만으로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생길까 염려되더라고.”

우리 부부도 공감했다. 언론에 알려지는 이야기들이 전부가 아니기에 생길 수 있는 오해나 편견을 우리 부부도 염려한다. 그래도 언론이나 활동을 통해 크든 작든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그 모습이나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이의 사회에 꼭 필요하겠다고 생각돼 그런 것 같다.

  박한희 변호사(왼쪽)와 소소부부 [출처: 소소부부]

한희 “어떤 분이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청소년 트랜스젠더로서 너무 감사하다고 연락이 왔었어. 내가 인터뷰한 기사를 부모님한테 보여주면서 ‘이것 봐, 나 변호사도 할 수 있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대. 부모님이 아마 이 청소년 트랜스젠더분한테 ‘그래서 너 이제 뭐 먹고 살래’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셨다나 봐. 그 후에 그 부모님도 어느 정도 편해지셨다 하더라고. ‘아, 내 아이가 성소수자여도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구나, 잘 살 수 있구나’ 말씀하시면서.”

물론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 성소수자의 삶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세상이 성소수자의 피해 서사, 피해자로서의 성소수자 이야기만 자주 찾고 그것만 다루려 하다 보니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잘살고 있는 성소수자들의 행복은 상대적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이웃으로서, 동료시민으로서의 모습이 잘 비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사회가 성소수자의 삶은 불행하기만 할 것이라 착각하거나, 행복한 성소수자의 삶을 잘 상상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성소수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더 많은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의 실질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정치적 과제, 법제도 개선을 꾸준히 말하고 외쳐야겠다. 정치가 귀를 잘 기울여야 할 텐데.

3월 31일은 트랜스젠더 가시화(International Transgender Day of Visibility, TDoV)의 날이다. 이날을 맞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에서는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삶을 말하고 보여주는 오픈마이크 행사를 4월 1일에 개최한다(행사 정보 바로가기). 특별한 날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우리 부부는 한희에게 트랜스젠더 인권증진을 위해 필요한 최우선 과제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지 물었다. 한희는 문제가 많은 자본주의 체제의 전환과 양당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정치의 변화를 제일 먼저 필요한 것으로 말했고, 다음으로는 성차별의 해소, 그리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난수화와 같은 성별이분법 문제 해결을 꼽았다.

한희 “요즘 정말 많이 느끼는 것이, 지금 이 체제와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 지금의 체제가 앞으로도 그대로라면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정치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것 같아. 항상 외면하니까. 그리고 성차별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성차별이 없어져야 이분법적 성역할의 문제도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주민등록증에 성별정보가 들어가는 건 정말 실생활에서 너무 불편한 문제야. 성별정보가 사실 필요가 없는데 표기해놓으니까 병원이나 어디 갈 때 자꾸 차별이 발생하고….”

소소부부 “온갖 군데에서 성별정보를 불필요하게 수집하더라고. 설문조사 같은 것도 그렇고, 아니 도서관 가입하는데 성별정보를 왜 입력하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한희 “국회의원회관 출입할 때 적는 종이에 원래 성별을 표기하게 되어 있었거든? 내가 관계자한테 그거 없애야 한다고 건의했었는데 내가 건의해서 없어진 건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없어졌더라고. 지금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잖아. 이렇게 불필요한 성별표기를 없애는 것, 이게 정말 중요한 변화고 작더라도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해.”

우리는 한희에게 마지막으로 《워커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한희는 특별히 성소수자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한희 “사실 소주도 그랬던 것처럼, 나도 어렸을 때 긍정적인 미래를 꿈꾸거나 상상하기가 너무 힘들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게 놀고 있잖아. 이렇게 될 줄 몰랐지. 어떻게 보면 ‘버티면 된다’라는 말이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바뀌고 있으니까 혹시 이 글을 보는 성소수자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

소소부부 “무슨 말?”

한희 “버티자. 잘 살자. 살 수 있다는 말. 힘들 때도 분명 있겠지만 살다 보면 꼭 즐거운 날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