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협상, 정말 자신 있으십니까?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2) - 아무도 모르는 마지노선, 3년간 미공개까지

국민 앞에 나서서 공청회라는 요식행위 한 번 제대로 할 자신도 없이 군사작전 단행하듯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 협상에 대해서, 노무현대통령은 얼마 전 국민과의 대화에서 영화배우 이준기 씨에게 “한국영화 정말 자신 없습니까”라는 말로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말문을 막아버리는 아이러니한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도대체 한미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 이론적 배경이라도 있는가. 한국개발연구원(KDI)·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산업연구원(KIET) 등 8개 국책연구원이 나서 집필한 종합연구보고서라고 하는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에 등장하는 ‘용세계화’론이라는 신조어를 들이밀고 있다. ‘세계화로 인해 얻게 되는 이득을 세계경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보호해 나가는 데 이용하는 사회안전망을 갖춘 글로벌 강국을 지향’해 나가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화, WTO 자유무역체제가 양극화와 빈곤을 낳았다고 하는 얘기는 있어도 양극화와 빈곤을 세계화를 통해서 극복했다는 논리는 아직 없다. 이 신개발품은 단지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에서만 통하는 논리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영미식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제 3의 길’이라는 신기루를 따라 갔던 유럽의 사회당, 노동당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현실이 자명하게 입증하다 보니, 하물며 무슨 금과옥조나 된 양 ‘제 3의 길’을 칭송하던 갈대와 같은 그 지식인들조차도 ‘용세계화론’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상황이고, 그러니 이제는 예의 그 ‘대세론’이라는 것을 들고 나온다. 남들이 가는 길이니 우리도 가야하고 더구나 일본도 마다하는 미국과 모험을 걸어야 한다고, 그 조폭식 뚝심을 들이미는데 서슴이 없는 것이다. 논리가 안되니 뚝심이라, 이제는 국민들을 설득할 레토릭조차 없는 참여정부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최근 수치조작에 대한 논란을 뒤로 밀고, 무망한 기대 일랑 아예 접어두고, 그렇다면 노무현대통령이 그토록 신임하는 유능한 관료가 있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작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작년이 FTA 추진원년이었다면 올해는 FTA 추진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밝힌 대로 의지는 과잉되어 있지만 ‘원년’을 언급할 정도로 FTA협상과 관련한 경험은 일천하다. 실제로 한·칠레 FTA 발효 전에는 148개 WTO 회원국 중 FTA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가 우리나라와 몽골, 단 2개국 뿐이었다는 현실을 알고나 계시는지.

다른 예를 들어보자. 칸쿤 WTO 각료회의 막바지에 이르러 농업과 싱가포르 이슈 두 가지 부문이 타결의 걸림돌로 남았을 때의 얘기다. 대다수 개도국들이 싱가포르 이슈 자체를 공식 협상의제로 논의조차 안 된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어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은 논의의제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투자와 경쟁은 제외하더라도 정부조달 투명성, 무역원활화 등 2개 이슈만이라도 다루자는 안을 제시하여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한국대표단 만이 4가지 이슈를 포함하는 싱가포르 이슈를 통과시키자고 우기다 선후진국 양쪽으로부터 힐난당한 적이 있다. 도대체 이런 사안파악도 안 되는 관료들을 어떻게 믿으란 말인가?

작년 쌀협상을 상기해 보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정감사에서 조차도 '이면합의'가 없었다고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명명백백하게도 인도와 이집트산 쌀 추가 구매하기로 한 이면 합의, 미국의 국가별 쿼터제 요구를 수용했던 과정, 쌀 이외에도 사과·배·가금육 등 수많은 품목의 개방을 약속했던 그 무수한 내용들이 '쌀 협상' 이면에 숨겨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저 멀고도 가까운 역사의 현장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나라의 개방을 이끌어 낸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 그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은 조선의 해안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조선에서 일본인이 죄를 지어도 조선정부가 재판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 조선에서 일본 화폐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조선은 일본 상품에 대하여 일체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되어있다. 자기를 개방시킨 미국의 한 수 지도를 받아 일본이 들이밀어 강제로 체결한 협정 내용, 그것은 13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SOFA와 FTA를 합친 미국의 요구와 너무도 닮아있지 않은가? 미국이 외국에 대한 침략적 식민주의로 해결해나가고자 신흥 제국주의의 대결에 끼어든 19세기 중엽 이후, 혹은 최소한 페리에 의한 일본개방을 이끌었던 미일통상조약이 있었던 1858년 이전부터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통상과 관련한 협상을 하고 조약을 맺어 온 나라가 미국이다.

그 미국 조차도 FTA를 체결하기 위해서는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각 부분의 의견을 청취하고 의회에 협상할 내용에 대해 보고 하는 협의 기간을 가진다. 그리고 지금은 일시적으로 유효한 무역촉진권한(TPA)에 의거 행정부가 협상을 하고 보고·비준하는 절차를 거치지만, 통상적으로는 협상과정을 의회가 주도하여 무역대표부는 협상의 목표를 보고하고, 끊임없이 협상 진행과정을 보고하게 되는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가? 전 국민적인 반대와 우려가 잇따르자 김현종 통상본부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마지노선이 지켜지지 않으면 한일 FTA 협상처럼 중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무역촉진권한(TPA) 시한을 감안해 가능한 한 내년 3월까지 협상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에 급급해하는 협상을 하지는 않겠다"고 화답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얘기하는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누구도 모른다. 마뜩찮긴 하지만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조차도 그 마지노선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물며 본 협상 이전의 2차 사전협상에서 김종훈 수석대표가 한 말은 더욱 가관이다. “한미 FTA 최종합의문은 협상이 타결되자마자 즉시 공개하되 그 외의 모든 협상문서들은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돕고 '협상전략이 제3국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년 간 일반에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FTA 즉 자유무역협정은 국제통상법으로 국내법보다 상위에 있다. 이 부분은 약간의 이견이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던 한칠레FTA 때도 그랬고 한싱가포르FTA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협상이 타결되면 국회 법제처를 거쳐 이것과 상충되는 다른 국내법들을 모두 바꾸어서 국회 비준에 들어가게 된다.

지난한 의견수렴을 거쳤든, 목숨을 건 투쟁을 통하였든 그간 만들어진 법들은 노무현대통령이 신임하는 관료의 손에 아니 그보다는 미국의 손에 놀아나게 된다. 그리고 마라케쉬협정에 의거하여 협정이 체결이 되면 최소 10년간 유효하고, 설혹 파기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통고 후 10년 간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도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협상 내용이 한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옭죄어 올 것을 알면서도 이처럼 무작정 강행하고 있다는 것, 그 무모함이 초래할 재앙을 도대체 어떻게 감당하겠다는 것인지....

다시 역사 성찰로 돌아가보자. 강화도조약 이후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실제적인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전국역사교육모임에서 지은 대안교과서에는 그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폭동을 일으킨 하급군인들은 정부에 고용된 도시의 하층민들로 대부분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생계를 잇기 위하여 상업과 수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과의 무역이 시작되면서 크게 타격을 받았다. 군인들이 일본 공사관을 공격한 이유 중에는 이런 경제적인 측면도 있었다”

그간 한미FTA가 노동자 농민 그리고 민중에 미칠 해악에 대한 제기는 많이 있어왔다. 그리하여 이미 한칠레FTA를 체결하면서 FTA특별법을 제정했듯이, 무역자유화의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는 '무역조정지원법'을 연내에 제정하는 것으로 민심을 달래기는 마뜩찮아 보인다. 농민을 달랠 심산으로 FTA특별법을 통해 내놓은 그 119조의 80%에 해당하는 96조원은 이미 편성된 농림부 예산이나 다른 부서의 농업관련 예산을 포함한 액수라는 사기행위를 이미 농민은 잘 알고 있기에.

한미FTA가 초래할 노동자 민중의 비극으로 사회적 안전이 우려되신다면 잠깐 눈가림으로 넘어갈 법안을 만들기 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IMF와 맺은 구조조정협약을 120% 이행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대중 정부가 사설경비에게 총기를 소지하는 법안을 제정하려다 반발이 심해서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적이 있었다. 굳이 한미FTA를 체결하겠다고 한다면 어디 창고를 뒤져서라도 그 법안을 찾아 먼지 털어서 다시 입법화하는 것이 두 다리 뻗고 주무시기에 도움이 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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