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대추리에서 평화를 만나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8) - 5월 18일 대추리에서

어스름 낀 마을은 온통 들어찬 경찰 차량들로 가득했다. 낮은 하늘에 떠 있는 헬기들과, 메스를 들이댄 수술부위처럼 마을 곳곳에 세워진 철조망들, 그리고 흡사 마네킹처럼 두 줄로 도열해 있는 전경들까지. 대한민국 땅에선 아직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지금 나는 어느새 전시 상황 속에 들어와 있었다. 갑자기 어지럼증이 일었는데, 그건 전에 와본 적 있다고 믿었던 공간이 기이하게 얼크러져 있을 때 느껴지는 이상하고 불쾌한 감각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네 마리의 개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분명 전에 왔던 곳이다. 그러나 그곳임을 가장 확실하게 말해줄 지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나 예뻤! 던 곳인데! 주위 사람들 하나하나 불러 모아 마치 내 것인 양 자랑하며 보여주고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해주고픈 곳이었는데, 이미 그곳은 사라지고 그 자리는 쓰레기더미만 몇 뭉치씩 남은 폐허가 되어버렸다.

알다시피 대추리는 곳곳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꾸며놓은 예쁜 마을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교실 창문 하나하나마다에 그려놓은 할머니할아버지 그림들에다 운동장에 서 있던 키 작은 구름다리, 그리고 동상들로 가득했던 대추분교는 평화의 마을 대추리의 상징이었다. 상징이 사라진 공간, 외부의 힘에 의해 상징을 잃어버린 공간은 ? 獵僿졈綬?했다. 나는 그 주변을 서성대며 전에 보았던 것을 찾아내려 했지만, 괜한 발걸음으로 애먼 동네 개들에게 겁을 주기만 했다.

담 너머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향하니 점점이 촛불들이 어둠 속에서 떠올라 있는 게 보였다. 머니 할아버지들이 동그랗게 등을 말고 앉아 그 품 안에 촛불을 안고 있었고, 저편으로는 내 허리춤 정도에 머리가 닿는 어린아이들 몇이 소리 지르며 뛰어놀고 있었다. 불 꺼진 집들 한복판에서 그래도 남아 있는 우리들을 보자니, ! 나는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보다도 ― 그런 걸 떠올릴 만큼 당시 내 마음이 훈훈하지를 못했다 ― 잘 어우러져 살아가던 집들을 탈탈 털어 모두 빈집으로 만들어놓은 서울의 저 빌어먹을 인종들이 떠올라 이가 갈렸고, 지금도 우리 머리 위로 소리 내며 날아다니는 헬기들을 하나하나 쏘아 떨어뜨리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아 사지 끝이 떨렸다.

거대담론은 잘 알지도 못하고, 별로 관심도 없다. 다만 그런 큰 이야기들이 오가는 속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이, 조망대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할지 몰라도 그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큰 충격이고 아픔인지에 대해서는 짐작할 수 있다. 짐작이 되는 딱 그만큼 나도 마음이 아프다. 주한미군이 주둔지를 옮겨 더욱 기민한 전쟁기계로 한반도 위에 군림한다는 것에 대해 느껴지는 긴박함이나 위협보다도 먼저 느껴지는 감각은, 그렇기에 슬픈 분노다.

전 생애에 걸쳐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사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도를 터득한단 말을 들었다. 그 도라는 게 이 산 저 산을 훅훅 날아다니는 그런 신묘함은 물론 아닐 테고, 아마도 그것은 동화(同化)가 갖는 힘일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의 굴레에서 벗어나 벼와 고추와 감자와 하나 되는 힘, 그것들이 내쉬는 호흡을 함께 느끼고 마을 전체! 에서 공명하는 힘이라든지 하는. 아마도 그래서, 농촌에서 씨 뿌리고 벼 거두며 일평생을 산 사람들을 우리들은 흔히 ‘순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모여서 순하게 살며 논농사 밭농사 짓는 사람들을, 그런데 왜 밖으로 내모는 것인지? 이젠 존재하기도 힘든 이런 공동체를 왜 가만 두지를 못하고 해체하려 하는지? 돈이면 다 된다는 심보에 보상금 툭 던져놓고는 왜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 서로 눈총 겨누게 하는지?

마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대추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물론 대추리가 잘 살고 있을 때는 굳이 알리지 않아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알리지 않고 묻어둘 수 없다. 알리는 것에 실패하는 순간, 대추리는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 학교가 교실 책상 하나 남지 않고 싸그리 사라져버렸듯 이 마을 전체도 그렇게 이름 없이 묻혀버리게 두고 싶지 않다.

예쁜 마을이라고 자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을 접는 대신 이젠 그 마을을 되살리자는 말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대추리로 불러 모으고 싶다. 도시 속에서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며 꾸벅꾸벅 졸 것이 아니라, 지금 사라져가는 이 작은 공간 하나를 우리가 또 다른 멋진 곳으로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평화’란 말도, ‘희망’이란 말도 사라지고 이젠 그 단어 자체가 희화화돼버린 시대지만, 이제 그것에 살점을 붙이고 몸을 만들어 눈으로 만지고 손가락으로 더듬을 수 있는 실체를 한 번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런 곳이 대한민국 땅에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예술가들이 벽마다에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새를 들고 있는 거대한 여자가 논 옆에 세워져 있고,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붓을 들고 달려들어 그린 그림들로 가득 차 있는 그런 마을이 있다는 것. 칠십 팔십 먹은 노인들이 김장철이면 이집 저집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김장을 하는 바람에 마을 김치 맛이 모두 똑같은 마을, 칠십 팔십 먹은 노인들이 600일이 넘게 저녁마다 촛불 하나씩을 밝혀들고 마을 가운데에 모여 앉아 이곳이 지켜지기를 기원하는 마을, 낮에 군대가 나타나 마을 여기저기를 흩뜨려놓으면 그 밤에 다시 모든 마을주민들이 나와 그것을 복구해놓고 그러고는 또 새벽같이 일어나 당신네들 논을 한 바퀴 둘러보고 아침상을 차려 먹는 마을.

내 일이 아니면 다 상관없다는 게 요즘 인심이라고들 하지만, 그러면서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런 저런 억울한 사연을 보면 그 다음날 다 같이 욕을 하고 화를 내는 게 우리들이기도 하다. 한낱 가십거리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남 일 같지 않고, 남 일이더라도 왠지 내 일처럼 화가 나는 그런 일들이 살면서 꼭 몇 번씩 있지 않은지. 사람 마음이란 그런 면에서는 다 같은 게 아닐는지.

내가 몇 번 채 가보지도 않은 경기도의 저 작은 마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아마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대추리의 할머니들을 보면 꼭 저어기 강원도에서 아직도 농사를 짓고 계신 외할머니가 생각나고, 대추리의 예쁜 벽과 집들과 조각을 보면 훗날 나이 먹은 내가 살고 싶은 이상의 공간이 생각나고, 포크레인 한 방에 힘없이 ! 무너진 구름다리와 학교 담을 떠올리면 바로 내 몸이 알지도 못하는 외부의 힘에 눌려 찢기고 밟히는 듯한 착각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막상 가면 할 게 없는데도 자꾸 대추리에 가고 싶고, 대추리에 가면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왠지 기분이 편해지고, 대추리에서 떨어져 있으면 내내 불안하고 온 신경이 그리로 쏠리는 것도 아마 다 그래서일 것이다.

한 번씩만 사람들이 그곳에 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 가서 마을의 ‘새 든 녀’를 만나고 할머니들 만나고 사람을 봐도 짖지 않고 고개만 갸우뚱거리는 개들을 만난다면, 아무도 대추리의 존재에 대해 비난이나 회의의 말을 쉽게 던질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는 폭력집단이나 빨갱이가 아니라, 노인들이, 그리고 노인들이 친자식처럼 여기는 벼와 고추와 열무가, 그리고 그 노인들을 친가족처럼 생각하는 지킴이들이 함께 밥을 지어 먹으며 촛불을 밝히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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