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3차협상 국면, 초심을 잃지 말자

졸속성과 정보공개 넘어 한미FTA 자체를 반대해야

한미 협상단은 씨애틀에서 상품무역, 농업, 의약품·의료기기, 투자, 서비스, 금융서비스, 통신·전자상거래, 원산지·통관, 기술표준(TBT), 위생검역(SPS), 지적재산권, 총칙, 환경, 경쟁 등 총 14개 분과 협상을 시작했다. 섬유, 무역구제, 노동, 자동차, 정부조달 등 5개 분과는 8일부터 협상을 시작한다. 보도에 따르면 상품무역과 지적재선권 등은 품목별 검토에 들어갔고, 의약품·의료기기 협상은 난항을 겪고 있는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1,2차 협상을 '샅바싸움', 4차협상을 '배지기'로 비유하고 3차협상을 '힘쓰기' 단계라고 한 것처럼, 3차협상에서 '힘겨루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자동차·농업·의약품·금융·공공서비스·지적재산권 등에서 한국은 모두 수세의 처지다. 미국은 농산물도 예외없이 10년 내 관세 철폐를 들고 나왔고 섬유는 좀처럼 열지 않을 기세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들고 나온 것은 섬유, 반덤핑 등 무역구제, 개성공단 문제 정도인데, 미국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협상이란 주고받는 것인데 줄 건 많고 받을 건 없는 협상장에서 어떻게 힘겨루기를 하겠다는 건지가 의문이다. 한국 측 협상단 인원이 미국 대표단 98명의 두 배가 넘는 218명이라는데 설마 머리 숫자로 밀어붙일 생각은 아닐 테고.

심각한 문제는 3차협상이 시작되면서 한미FTA 협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세 차례에 걸친 대국민 발언, 협상단의 3차협상단 재편성, 한미FTA지원위의 선전 활동 등은 한미FTA를 둘러싼 대국민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시장,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국익을 위해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겠다는 반복 선전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이는 다시 말해 한미FTA에 대해 지금 수준의 저지 실천으로는 힘쓰기-배지기로 이어지는 이후 협상 흐름을 제어하기 어려울 공산이 크다는 걸 시사한다.

한미FTA 추진에 대해 현 정부와 한국 자본은 이미 판단을 굳힌 상태다. 주어진 일정 안에 반드시 끝낸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권도 한미FTA 추진을 대세로 받아들이고 있다. 졸속론과 신중론을 들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으나 협상을 중단하라는 강력한 저항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 오늘 여야 국회의원 23명이 한미FTA의 졸속성을 들어 정부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 소송을 낸 건 그 자체로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 소송 자체로는 협상을 중단하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정보 공개와 졸속성을 문제삼았을 뿐 한미FTA를 반대한다는 언급은 확인되지 않는다.

한미FTA는 한미 협상단 대표들이 무역과 관세를 놓고 벌이는 협상이지만, 정확하게는 초국적자본과 한국 자본의 대변자들이 벌이는 협상이다. 즉 두 나라 시장에서 모든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조정하는 협상이다. 따라서 한미FTA 협상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자본의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란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점이 한국 자본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곤란한 이유이다.

아울러 한미FTA 협상 반대의 근거로 졸속성과 정보 공개 여부를 강조하는 것도 위험을 내포하므로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한다. 물론 당장은 지배계급 내부의 균열로 작용해 일정 정도 한미FTA 저지 운동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중국이 먼저든 EU가 먼저든, 더군다나 나프타플러스라는 높은 수준의 한미FTA를 제대로 준비해서 제대로 추진하자는 주장을 옹호하는 것이라면 지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진정한 이유는 유불리와 졸속성 문제가 아니다. 한미FTA를 반대하고 저지 실천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협상 체결 이후 자본이 사회구성원 절대 다수를 상대로 전방위로 저지르게 될 노동 착취와 인권 유린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3차협상 국면에 접어들면서 한미 협상단의 힘겨루기 뉴스와 협상 진행 자체에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는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일수록 올 초 한미FTA 협상 반대와 저지 실천에 나설 때 가졌던 초심을 환기하고, 그때 그 다짐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한미FTA 협상을 저지할 힘의 원천, 그것은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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