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무현 발 기만적 개헌 논의

신자유주의 넘어서는 (헌법)체제 논의로 확대해야

엄동설한 한 겨울인데도, 경칩(驚蟄)에 개구리가 튀어 오르듯 불쑥 개헌문제가 제기되었다. 정치권 내외부에서 개헌문제를 공론화 하려는 시도는 전부터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던 것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깨어나기 시작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4년 연임으로 조정하고 이를 통해 대선과 총선 일정을 일치시켜 나가는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노대통령의 개헌발의는 스스로 밝혔듯이 군사독재의 연임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개정된 87년 헌법의 문제를 시대에 맞게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말대로 87년(헌법)체제는 87년 항쟁의 성과면서 동시에 군사독재정권과의 타협의 산물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87년(헌법)체제는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5년 단임제로 하였고 비상대권 및 국회해산권을 폐지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하게 축소하였다. 또한 국정감사를 도입하고 헌법재판소를 신설하는 등 3권 분립의 형식적 균형을 도모하게 되었다. 또한 몇 가지 기본권에 대한 규정도 강화되었다. 최저임금제 실시, 표현의 자유의 보장 확대 등의 조치가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87년 헌법은 군사독재정권과의 타협의 산물인만큼 군사문화의 잔재가 잔뜩 녹아 있으며, 국민의 직접선출기관도 아닌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시켜 놓았고 그 특권을 그대로 유지시켰다. 또한 남북간의 군사적 대결을 정당화시켜 놓고 있는 등 87년(헌법)체제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대통령 임기, 선거일정 조정, 선거구제 개편, 남북간의 대치상황의 극복 등으로 87년 헌법의 문제점으로 삼아 왔고 이에 대한 개헌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87년(헌법)체제는 이러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장보다도 경제적 권력관계에 있어서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의 관계를 바꾸어 놓았다는 점이다. 경제질서에 대한 87년 헌법의 핵심(헌법 제9장)은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줄이고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더욱 확대하는데 있다. 부분적으로 소득재분배와 지역균형발전, 복리증진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확대에 있다. 그 결과 관치금융의 철폐를 말하면서 은행을 통한 재벌지배체제를 해소 시켰고, 공공기관의 민영화, 개방화를 예비한 경제질서의 재구축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87년(헌법)체제는 반공-발전주의적 자본축적 구조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구조를 확장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87년 헌법은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화의 일부를 보장한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의 확장을 통한 자유주의적 시장개혁의 정신을 핵심으로 담고 있다.

이러한 87년 헌법의 결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부분적으로 형식적 민주화를 진행시켜 나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는 초국적자본에 완전개방 되었고, 공기업 민영화,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노동유연화 비정규직의 대거 도입 등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시로 인해 민중생존은 파탄 상태로 내몰리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 임기와 대선과 총선의 선거일정을 조정하는 문제만을 놓고 개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불완전한 87년(헌법)체제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 볼 수도 없을뿐더러, 87년(헌법)체제에 대한 의도적 왜곡 혹은, 외면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비용의 효율화를 목표로 한 선거일정 조정문제나 대통령 임기 등의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배질서를 보다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의 개헌인 것이다. 이는 군사독재와 타협함으로써 손상된 인민주권을 확대하는 조처가 아닌 것은 물론이요, 민중생존의 위기로부터 발생하는 지배체제의 위기를 개헌을 통해 안정화시켜 나가려는 의도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여야를 막론하고 개헌의 목적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개헌 시기에 대해서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기만이다. 만약 진정으로 87년(헌법)체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민중과 지배세력의 권력관계가 변하지 않는 권력 재생산 구조의 조정문제로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87년 이후 형식적 민주화의 성과를 확장함과 아울러 광범위하게 퍼진 사회적 빈곤화를 극복하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사회화와 사회공공성에 기반한 사회체제를 헌법적으로 만들어 가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기만적이고도 형식적인 개헌논의는 중단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의해서든 누구에 의해서든 개헌 논의가 필연적인 상황이 된 이상 본격적인 논쟁은 불가피하다.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 중단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개헌 논의로 확장하는 문제이다. 노무현식 개헌논의에 대한 찬반 표명을 넘어 개헌 논의의 진정한 폭발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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