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하는 곳은 종합사회복지관으로써 지역주민들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을 하고 그 댓가로 임금을 받는다.
그런데 나의 고용주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그 이유는 민간위탁이라는 제도때문인데.
여기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자.
암튼 내 임금은 시나 구에서 나오는 보조금에서 지급이 되고,
나의 인사권은 성결교회유지재단이라는 기독교재단에서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복지관에서 가장 높은 직책이라 할 수 있는 관장조차도 그런 형편이니 더 할 말이 없다.
요즘 유행하는 개그 ‘같기도’가 떠오른다. ‘이건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도 아니여...’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면 사회복지전문요원이 있다. 이 요원들은 그야말로 ‘공무원’들이고 법정저소득층인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수급권자의 숫자도 빈곤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기보다는 국가예산에 따라 고무줄처럼 적용이 되는데다 그나마 이를 지원하기에도 턱없이 모자란 숫자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무원도 민간인도 아닌 복지노동자들이 하는 일은 세분화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주로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복지혜택의 고무줄에서 아슬아슬하게 튕겨져나간 사람들에 대하여 다양한 자원을 조직하여 지원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고무줄이 얼마나 탄력적인가 하면 말이다. 우리 복지관에서 담당한 사례 중에 조손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죽으면서 소유하고 있던 낡은 집이 손자에게 상속이 되었는데, 당시 손자가 미성년자여서 거동조차 어려운 할머니가 재산권을 관리하게 되어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급권자가 되지 못했다. 집은 손자의 소유였으므로 어린 손자가 부양의무자가 된 셈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 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몇 년 동안 할머니를 돌보아왔던 이 손자에게 군대 입영 영장이 나왔다. 할머니의 건강상태가 아무리 간병인을 파견한다 해도 도저히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상태라 이를 사유로 입영연기를 신청하였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손자는 부양의무자가 아니라는 것. 그러면서 몇 십 년간 연락조차 되지 않던 부산엔가 산다는 할머니의 다른 아들 주소를 알려주며 이렇게 부양의무자가 따로 있으므로 손자는 군대를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담당 사회복지사가 병무청에 편지도 써보고 참으로 별짓 다해보았지만, 결국 얼마 전 그 손자는 군대를 가야만 했고, 몸도 불편한 그 할머니는 혼자 남겨졌다.
복지정책을 주도하는 것이 국가이고 따라서 전달체계도 딱 그들 - 자본과 국가 - 가 원하는 만큼만 만들어 놓았다. 그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부끄럽고 또 암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희망은, 내가 이곳을 선택하게 만들었던 그 이유. 바로 이곳이 나의 현장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이곳에 몸담고 있기에 정말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 민중들을 만날 수 있고, 때때로 그것이 나를 향한 비난일지라도 그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가진 자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톱니바퀴.. 그것이 견고하게 보이지만, 톱니가 하나라도 어긋나면 그 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톱니바퀴에 균열을 내는 일은 나의 현장에서 만나는 민중들이 이 시스템에 부조리함을 느낄 때 가능하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눈이라도 크게 부릅뜨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진의 사회복지현장이야기를 시작하며..
꽤 오래전에 이 글을 제안받고, 써보겠노라고 약속하고서도 글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건데, 이는 나 자신이 치열하지 못해서이다.
찾아보면 이유는 있다. 연초와 이어진 상반기는 복지관 업무적인 면에서 올해의 사업을 계획하고 시행하는 시기라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행정적으로 바쁜 시기이다. 게다가 이제 돌 지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으니 일단 계속 아프기 시작했고, 평소에 안하던 다양한 행동(이를테면 반 년 넘게 자신을 돌봐준 아빠를 외면하고 엄마한테만 매달려서 안아달라고 한다던지^^;)을 하고, 밤만 되면 서너 번씩 깨어나서 울어댔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의 현장에 대해서 성찰하고 사색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과정이 생략된 채 하루하루를 별일없이 치러내기에도 벅찼다. 이것은 시간이 없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글은 시간이 있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과 실천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이 좀 더 치열해져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어렵게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여건이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을 추스려보려는 하나의 움직임이다. 어렵고 고단한 삶을 꾸려나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보는 나의 노동현장. 사회복지현장의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