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붕어빵 노점상과 건설노동자의 죽음

전경련의 '미래한국비전'의 암울한 미래

노동자가 또 분신했다. 노점상이 목을 맨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다.

130일이 넘도록 파업을 하며 요구한 것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단체협약 체결이었다. 주 44시간 노동, 토요 격주 휴무 보장과 같은 생 기초적인 요구였는데, 사측은 교섭에 불성실했을 뿐 아니라 파업 참가 조합원에게 손배 가압류 청구 협박을 가하는 등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인천 전기원 파업은 정당하다고 소리치며 분신하기까지, 우리 사회 한 노동자가 가슴에 품었던 한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붕어빵을 팔던 노점상이 목을 매 운명을 달리했을 때도 그랬다. 노점상이 목숨을 끊기 하루 전날 고양시는 300여 명의 용역을 동원해 노점 단속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8명의 노점상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13년간 붕어빵을 팔면서도 남들 앞에 한 번도 부끄러운 일을 한 적이 없다던 한 노점상은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비극과 절망의 우리 사회의 단면을 폭로했다.

참여정부 들어 자살자 수는 해마다 늘어났고, 2005년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에 24.7명꼴로, 이는 자살 사망자가 가장 많은 헝가리의 22.6명을 능가했다. 통계청의 ‘2006년 사망 및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총 사망자 수는 24만3934명으로 하루 평균 688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고 이중 자살자는 1만 700명에 달한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회구성원의 죽음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다.

전기원 건설노동자와 붕어빵 노점상의 죽음은 삶을 비관한 단순 자살이 아니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한다. 다수 사회구성원을 자살로 내모는 배경이 현실 사회안전망의 붕괴와 미래 사회 전망의 불투명함 따위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자살은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는 단체협약을 요구하다 막다른 절망에 다다랐고, 붕어빵 노점상은 단속 중단을 호소하며 죽음으로 내몰렸다.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절규한 사회적 요구였다. 일전에는 허세욱 노동자가, 전응재 노동자가 각각 한미FTA 협상 반대, 임금삭감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 이들의 죽음이 어찌 당사자의 우발적이고 우연한 일이라며 방관할 수 있겠는가.

이런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24일 발표한 '미래한국비전 보고서 - 선진한국을 위한 선택 잘 사는 나라, 행복한 국민'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보고서는 차기 정부 임기 내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내총생산(GDP) 1조5000억 달러, 연평균 경제성장률 7.1% 실현을 제시했다. 한국이 2020년까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성장 잠재력 확충, 시장경제의 확산과 정착, 공공부문 경쟁력 제고, 안보.외교역량 강화 등 4대 정책과제 60개 주요 정책 대안 실천이 필수적이라고 정리했다.

전경련의 이번 보고서는 이명박 후보의 대선 공약과 유사하다는 점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작은 정부 구현, 감세와 재정지출 효율성 제고, 정부조직 축소와 공무원수 삭감, 공기업 민영화와 준공공 부문 통폐합, 공교육 확대 대신 고교평준화 궁극적 폐지, 대학 규제 철폐, 교육영리법인 등의 내용을 담았다. 따라서 이 내용들은 참여정부의 시장주의 정책보다 훨씬 자본 친화적이고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명박,정동영,문국현 후보 등 대선 주자들이 제시한 향후 5년간 경제성장률은 각각 7%,6%,8%, 전경련이 요구한 7.1% 성장을 자신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경제성장률을 높게 잡은 것과 달리 실 내용으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규제 완화''중소기업 육성''일자리 창출' 등의 표제어 뿐이어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7% 성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시장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임기 4년 동안 연평균 상장률은 4.3%에 그쳤다. 성장률과 관계없이 시장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사회적 빈곤과 양극화를 초래했고, 이 기간동안 죽음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한 사회구성원의 숫자는 늘어나고만 있었다.

전경련 보고서가 제목처럼 미래한국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사회 구성원의 삶과 생존의 문제를 놓고 볼 때 경제성장률과 국민소득 규모가 사태의 본질이었던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사회구성원이 부의 분배 몫을 얼마나 나눌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얼마나 적절한 규제가 가능한가를 따지지 않는 한, 상대적 박탈감과 생존 위협에 시달리는 사회구성원들의 반발과 저항, 그리고 극단적이고 불행한 선택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건설노동자와 노점상의 죽음은 850만 비정규직의 생존의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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