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 섬에 편의점을 생각했을까

[칼럼] 천연기념물에 현금출금기를 설치하는 자본의 폭력

마라도는 120년 전까지 금도(禁島)였다. 유배지 제주도에서도 또 유배당한 사람이 화전을 일구다 죽어간 곳이다. 1883년 이 섬에 처음 뛰어들어 정착한 이는 김성오라는 10대 소녀였다. 제주 대정읍에서 살던 김 할머니는 무덤으로 쓸 땅 한 평 없이 죽은 아버지를 풍장(風葬)으로 보낸 뒤 어린 두 아우와 아버지의 뼈 항아리를 들고 원시림이 무성한 마라도에 들어가 정착했다. 불을 질러 서 마지기 남짓 화전을 일구는 동안 어린 동생들은 야생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김 할머니는 이 섬을 한번도 떠난 적 없이 아흔 넘게 장수했다. 마라도에는 아직도 김 할머니가 퍼뜨린 김해 김씨가 100여명에 이른다. 마라도는 천연기념물 제423호다.

이 섬에 도시의 맹렬 땅 투기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이 나라가 ‘3저 호황’에 취해있던 80년대부터다. 노무현 정부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자 이 섬엔 외국인들의 땅 투기가 급증했다. 급기야 GS25가 11월 26일 이 섬에 편의점을 열었다. 이제 이 섬에서도 24시간 현금출금기 앞에서 카드만 넣으면 돈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7일 정동영 대통령 후보는 제주선대위 출범식에서 “지도를 거꾸로 보면 제주는 한반도의 입구고 마라도는 선구적인 섬”이라며 제주특별자치도를 세계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참 무서운 세상이다. 천연기념물에다 현금출금기를 설치하겠다는 생각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천민재벌이 아니고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다.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가 광흥창 교통신호탑 점거를 풀었다. 그 신호탑 앞 서강대교만 건너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서강대교 중간에 밤섬이 있다. 지금은 한강으로 떠내려 온 쓰레기와 매연에 썩어가는 나무만 무성한 무인도지만 조선 초기 밤섬은 길이가 7리나 되는 큰 섬이었다. 물론 사람도 살았다. 밤섬은 조선말 김정호의 지도에서 여의도와 붙어있다. 여의도의 ‘여’자와 밤섬의 한자어 ‘율’을 합쳐 ‘여율도’라 불렀다. 조선 백성들은 밤섬 쪽에 뽕과 약초를 길렀고, 여의도 쪽에는 양과 염소를 놓아먹였다. 여율도 사람들은 거센 물살 때문에 한양 사람들과 차단돼 살았다. 그 때문에 숨 막히는 유교의 도덕체제에 때 묻지 않았다. 동성동본을 따질 것도 없이 친척끼리도 마음만 맞으면 서로 시집 장가갔다. 명종실록 11년 4월의 기사는 “남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이 섬에는 남녀가 서로 껴안고 업고 건너는 것이 음란하기 그지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연의 섬에 휴대폰 기지를 만들고 투기꾼을 불러들이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을 만드는 자본의 폭력 앞에 우린 속수무책이다.
덧붙이는 말

이정호 님은 공공노조 교선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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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 천민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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