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미끄럼틀:한장의정치](14)인터넷실명제 네티즌의 불행과 인터넷강국의 비극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이 오픈했다. 문화연대는 '미끄럼틀'에 대해 "급진적 행복을 찾아 상상력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미끄럼틀' 중 '한장의 정치'를 기획 연재한다. '한장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급진적 정책을 상상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정책칼럼"으로 "만화가, 미술작가, 활동가, 교사, 평론가,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과 함께해온 이들이 상상하는 정책칼럼이 게재될 예정"이다.[편집자주]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7일, 사이버 선거운동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공지를 내보냈다.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자는 선거운동기간 중 인터넷홈페이지와 그 게시판, 대화방 등에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글이나 UCC물, 또는 후보자의 정보를 게시하고 전자우편을 발송하는 등 사이버공간에서 선거운동이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180일 전부터 선거운동을 제한한 선거법 93조가 적용되고, 올해 1월 중앙선관위가 마련한 ‘선거 UCC 운용기준’이 규제 대상과 범위를 폭넓게 잡은 데 대한 네티즌의 반발이 커진 데다, 인터넷상의 선거 참여가 저조하자 부랴부랴 선거 기간 중 선거 참여가 가능하다는 홍보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그런데 중앙선관위는 선거운동이 가능한 27일부터 선거법 82조 6에 의한 선거 시기 실명제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서 홍보하지는 않았다. 이미 후보자를 지지.반대하는 글이나 ucc를 만들더라도 실명인증을 통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게시판에 올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포탈 등 거대 싸이트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정하는 제한적 실명제가, 800여 개 인터넷언론 싸이트는 공직선거법이 정하는 선거 시기 실명제가 각각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 실명제는 2004년 3월 당시 정개특위가 선거법을 합의하면서 개정됐고, 2006년 5.31 지자체 선거 당시 처음 적용되었다. 선거운동 기간 중에 인터넷언론사는 모든 게시판, 대화방에 이용자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를 해야 하고 그러지 않을 경우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일부 규모가 큰 인터넷언론이 아닌 이상 과태료 부담은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조치이며, 대부분의 인터넷언론은 '손배가압류식' 법 집행 앞에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실명인증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말았다.

일부 언론은 인터넷실명제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를 구성하고 활동에 나섰다. 지난 19일, 22일 기자회견도 하고, 실명제 폐지 홈페이지를 만들어 네티즌의 목소리도 모으고 있다. 게시판을 운영하되 운영주체를 바꾸는 편법으로 네티즌의 익명 게시를 보장하는 언론, 독자와의 소통을 중단하며 실명인증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언론, 싸이트 자체를 폐쇄한 언론, 게시물을 남기되 한시적으로 기자들만 볼 수 있도록 한 언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실명제 시행에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언론이 실명제에 저항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이유는 동일하다. 언론의 사회적 책임과 여론의 다양성을 위해 네티즌 어느 누구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실명제가 무엇이든 자유롭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데 어떤 장애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람이 누려야 할 원초적인 영역을 공격한다는 데 공분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서 실명 글쓰기를 강제하는 발상은 국가가 시민사회를 감시, 통제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가 되는 표현물은 언제든 추적해서 관리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포탈 등 대형 싸이트 외에 p2p나 웹하드까지 실명제 적용 대상으로 거론하는 데다, 법무법인들이 저작자와의 완전한 합의도 없이 네티즌을 고소고발하는 현실은 특허권과 저작권 강화에 깔려있는 상품논리의 무자비함마저 확인시켜준다. 정보통신망법 상의 국가보안법 관련 게시물 삭제 명령도, 통신비밀보호법 상의 전기통신사업자의 로그 기록 의무 보관과 같은 조치도 모두 같은 맥락위에 놓여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통제 강화는 전체주의적 속성과 분리되지 않는다. 여기에 특허권과 저작권 강화라는 상품논리가 결합되고,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 구성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제약하는 입체적인 시도와 기제가 작동하는데, 따라서 선거 시기 실명제는 그저 선거운동 기간만 눈 딱 감고 지나치면 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에 훔쳐보기 좋아하고, 일러바치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리고 감시 고발에 필요한 세련된 장비와 프로그램 개발에 영특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상주한다. 2004년 당시 선거법을 만든 정개특위, 2006,7년 정보통신망법, 통신비밀보호법 개정 시행을 추진한 입법 주체들, 그 법제도들을 관리,통제,감시,고발의 현장에서 집행하면서 눈꼽만큼의 죄의식도 갖지 않는 집단들...

국가와 자본이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하고 고무하는 이상, 사회구성원들은 재갈 물린채 침묵을 강요당하고, 자기검열의 일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응당 네티즌의 불행과 인터넷강국 대한민국의 비극은 중단되지 않는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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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실명제 , 미끄럼틀 , 한장의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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