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는 대량해고, 불법파견, 노조 탄압에 저항하며 2005년 8월 24일 공장점거농성에 들어갔다. 이달 20일은 투쟁을 시작한 지 15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기륭전자분회의 투쟁은 투쟁 천일을 기점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조합원들의 집단단식으로 작년 비정규직 문제의 화두가 되었다. 그러나 작년 촛불시민의 응원과 언론의 관심 속에도 기륭분회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기륭분회 조합원은 여전히 서울 가산동 기륭전자 구 사옥 앞(작년 11월 신대방동으로 사옥 이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8일 윤종희 기륭분회 조합원을 만났다.
회사에 대한 분노와 노조에 대한 신뢰가 조직화 무기
기륭분회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조합원이 적은 수는 아니었다. 기륭전자는 2005년 당시 생산관리직을 제외한 300명의 생산직 대부분 파견직이었다. 노조를 만들 때 이들 70%정도가 가입을 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이중에는 계약직, 정규직도 있었다. 공장 점거농성에는 약 150명이 동참했다. 윤종희 씨는 기륭분회 초기 높은 노조 가입률의 이유를 회사에 대한 분노와 노조에 대한 신뢰로 두 가지를 꼽았다.
“노조건설 준비를 3개월 정도했는데 많은 수가 가입할 거라 생각 못했어요. 대부분 근속년수가 6개월을 넘지 못해 서로 유대감도 적었거든요. 불법파견 판정이 난 뒤 회사가 해결책으로 낸 게 근속 1년 미만자를 해고한다는 것이었어요. 회사에 대한 분노가 노조 가입으로 이어졌죠. 그리고 그 동안 김소현 분회장같은 장기 근속자가 생활하며 얻은 신뢰가 구심점 역할을 했고요”
“공장 안과 밖을 넘나드는 힘이 필요”
높은 조직률과 파업에도 불구하고 단 한 줄의 합의문도 없이 2005년 10월 경찰에 의해 기륭전자분회의 점거농성은 막을 내렸다. 공장점거 농성이 끝난 뒤 많은 조합원이 노조를 이탈했다.
▲ 기륭전자분회 2005년 점거농성 모습 /참세상 자료사진 |
“무엇보다 생계문제였어요. 조합원 대부분이 실질 가장이어서 월급이 한두 달 끊기자 생계에 어려움을 느꼈죠. 점거농성이 끝난 뒤 지도부가 경찰에 연행되자 승리에 대한 확신도 많이 떨어져 노조 이탈이 심해졌고요”
기륭전자분회는 점거농성이 끝난 뒤 조합원이 50명 정도 남았고 소수가 남아 끈질기게 투쟁하는 전형적인 장기투쟁 사업장이 됐다.
윤종희 씨는 “파업을 할 때 사측은 ‘노조는 안 된다’며 고압적이었지만 위기를 느꼈어요.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죠. 공장 안에서 분회가 파업으로 회사를 압박했는데 공장 밖의 힘이 부족했어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가 교섭이라던 지 다른 힘을 보여줬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가 됐을거예요”라며 2005년 점거투쟁에 대한 아쉬움을 들어냈다.
“비정규직 문제는 기륭의 문제”
기륭전자는 2005년 노조의 파업으로 경제적 압박을 받았다면 작년은 사회적 압박을 받아야 했다. 작년 5월 투쟁 천일을 넘기면서 촛불시민들이 기륭분회 농성장으로 모여들었다. 참석자 100명을 넘기 힘들었던 기륭전자 앞 촛불문화제에 참석자가 200명을 넘기 시작했다.
기륭분회는 작년 6월 조합원 집단단식에 들어갔고 단식 50일이 넘어가면서 노동계는 물론 정치, 종교, 시민사회 인사들이 기륭전자 앞마당에 모였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자가는 목소리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작년 사회적 관심에도 기륭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 김소현 분회장은 94일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참세상 자료사진 |
“기륭은 기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어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 안 되는 문제가 됐죠. 모든 비정규직 문제가 그래요. 기륭이 싸운 뒤 주변(구로공단)에서 노조를 만든다고 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도 했어요. 작년 많은 장투사업장이 해결되기도 했고요. 장기투쟁은 우리도 힘들지만 자본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연대투쟁을 다닐 때 자기 사업장만의 문제로 한정짓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기도 해요”
“나 같은 사람이 투쟁해야”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해결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지난 4일 비정규직이 작년보다 5.7% 증가했고 월 평균 임금은 7.3%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노동계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복수노조 문제로 비정규직법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노동계 현실에 대해 윤종희 씨에게 질문하자 담담한 답이 돌아왔다.
“답답하죠. 전임자 임금, 복수노조 문제도 중요하지만 다수의 비정규직에게는 비정규직법 하나에 생계가 왔다 갈 수 있잖아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유예된다고 해서 비정규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요. 결국 저 같은 사람이 계속 비정규직 문제를 알리고 투쟁할 수밖에 없죠”
이 글은 오는 27일 오후 2시 만해NGO기념관에서 열릴 ‘비정규직 운동 전망 토론회’를 준비하며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참세상이 한 특별기획의 네 번째 글입니다. 이 토론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 10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보기 위한 논의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부딪히며 조직화를 고민하고 계신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