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 공화국에 가다

[방방곡곡99절절](14) 도미니카 공화국 여행기

2월 말에서 3월 초까지 12일 정도의 일정으로 도미니카 공화국을 다녀왔다. 도미니카 공화국(La República Dominicana)은 아이티와 함께 에스파뇰라 섬(히스파뇰라 섬)을 공유하고 있는 카리브해에서 쿠바 다음으로 큰 섬나라이다.

카리브해로는 첫 여행이라 같은 스페인어권이지만 남아메리카의 나라들과 비교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따뜻한 기후 때문인지 도미니카 사람들은 외지인에게 상당히 개방적이고 친절한 편이었고, 과연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어디에나 춤과 음악이 넘쳐나는 것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방송제작을 위한 여행이라 혼자 움직이며 개인적인 관심사를 따라가 볼 여건은 못 되었지만, 아직 많은 한국인들이 찾지 않는 이 나라를 들여다볼 수 있는 몇 가지 점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콜럼버스의 흔적을 찾아

  에스파뇰라 섬 지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지금의 도미니카 공화국에 첫 발을 디딘 유럽인이다. 그는 1492년 스페인을 출발, 대서양을 건너 바하마제도에 처음 도착했으며, 이후 쿠바를 거쳐 에스파뇰라 섬에 닿았다. 4차에 걸친 항해를 하며 카리브해와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를 탐사하고 식민화했다. 그가 오기 전 에스파뇰라 섬에 살았던 타이노(taino)인들은 노예 노동과 질병으로 사라졌고, 몇몇 암각화와 동굴 형태의 주거지만이 그들이 존재했다는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에스파뇰라 섬은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기 위한 길목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16세기 초반 잠깐의 영화를 누리다 그 지위를 잃었다. 그래서인지 도미니카 공화국에는 멕시코나 페루처럼 식민지 시절 건물이나 유산이 많이 없는 편이었고, 소나 꼴로니알(zona colonial: 식민지 구역)이라 불리는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오랜 건축물들을 조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래도 산토도밍고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인이 최초로 세운 도시다 보니 그곳 건물들엔 아메리카 대륙 최초라는 수식어는 빠지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첫발을 디딘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인 1992년, 도미니카 공화국 정부는 콜럼버스 기념 등대(Faró a Colón)라는 큰 기념관을 지어 건물 한 가운데에 콜럼버스의 유해가 든 상자를 안치했는데, 사실 스페인과 도미니카 공화국 사이에는 콜럼버스 유해의 진위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해왔다. 에스파뇰라 섬에 묻히고 싶다는 콜럼버스의 바람에 따라 아들 디에고는 1509년 총독으로 부임할 때 아버지의 유해를 산토 도밍고로 가져왔다.

  콜럼버스 기념 등대 안의 콜럼버스 유골함
하지만 스페인이 1795년 바실레아(바젤) 조약을 통해 에스파뇰라 섬 전체를 프랑스에 넘기게 되자 스페인 당국은 그의 유해를 프랑스인들의 손에 둘 수 없다고 판단, 쿠바로 이장했고, 1898년 스페인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진 뒤 마지막 남은 식민지였던 쿠바와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 넘기게 되자 이를 다시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겼다. 스페인의 국력이 쇠퇴함에 따라 콜럼버스의 유해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1877년 산토도밍고 대성당에서 작업하던 인부들은 ‘저명하고 고귀한 남작, 돈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고 쓰여진 납으로 된 유골함으로 발견하면서 문제가 되었다. 과연 스페인이 가져간 것이 콜럼버스의 유해가 맞는지의 여부부터 불투명해진 것.

스페인은 스페인대로 세비야에 있는 유해가 콜럼버스의 것이라는 것을 DNA검사를 통해 확정했고, 도미니카 공화국은 거대한 기념관까지 지어 그의 유해를 두었으나 DNA검사는 거부하고 있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어디 있으나 큰 상관있을까 싶은데, 콜럼버스의 존재가 지니는 상징성이 크다보니 스페인이나 도미니카 공화국의 입장에서는 또 쉽게 양보할 수는 없는 문제인 것 같다.

쌀이 주식이어서 편안했던 여행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쌀을 주식 수준으로 많이 먹기 때문에 여행이 수월한 편이었다. 그곳에서는 점심식사는 대부분 쌀밥에 다양한 요리나 곁들이 튀김을 같이 먹는다. 그리고 쌀밥에는 항상 아비추엘라(habichuela)라는 강낭콩 소스가 따라오고, 식용바나나인 쁠라따노(plátano, 영어로는 plantain)을 튀긴 또스똔(tostón) 역시 빠지지 않는다.

  현지에서 먹은 식사. 쌀밥, 콩소스 아비추엘라, 바나나 튀김이 보인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강낭콩 역시 멕시코 등 아메리카 대륙을 원산지로 하는 식물이다. 멕시코부터 남아메리카의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콩 요리는 상당히 광범위 하게 퍼져있고, 도미니카 공화국 역시 수퍼마켓에서 다양한 콩과 구근류를 볼 수 있었다. 강낭콩의 원산지답게 중남미에서는 이 콩을 부르는 이름이 프리홀, 프레홀, 뽀로또, 아비추엘라 등으로 다양하며, 쿠바, 뿌에르또리꼬, 도미니카 공화국 등의 카리브 지역에서는 콩으로 걸쭉한 소스를 만들어 쌀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 보편적이다. 바나나 튀김 역시 카리브와 남아메리카의 북부 지역인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지에서 많이 먹는데, 이때 요리에 쓰이는 바나나는 한국에서 수입해서 먹는 부드러운 과일용 바나나가 아니라 매우 단단하고 크기도 큰 녹색바나나이다. 이 바나나는 단맛이 거의 없어 튀겨서 빵처럼 식사에 곁들여먹을 수 있고. 도미니카 사람들의 매 식사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필수 재료이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쌀이나 식용 바나나를 많이 먹게 된 것은 흑인 노예들과 같이 그 땅에 들어와서 정착된 식습관이 아닌가 싶었다. 여행을 다녔던 2월의 평균 기온은 그나마 낮아 28도씨 정도였지만 열대 기후답게 망고, 과야바, 파인애플, 파파야, 레몬 등의 열대 과일이 매우 흔하고 맛이 좋아 미각을 깨우는 데 최고였다.

아이티와의 불편한 동거

에스파뇰라 섬 하나를 두 나라가 나누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의 관계가 쉽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원래 섬 전체는 콜럼버스 이후 스페인의 식민지로 존재했다. 하지만 해적들이 출몰해 주민들과의 밀무역이 늘어나자 식민지 당국은 섬의 서쪽에서 사람들을 철수시켰고, 그때부터 부커니어(buccaneer)라고 불린 프랑스 해적들이 섬의 서쪽을 장악해 프랑스는 힘이 약해진 스페인에게 섬의 일부를 요구했다. 스페인은 1697년 리스윅 조약을 통해 섬의 서쪽 1/3을 가량을 프랑스에 양도했고, 1795년 바실레아(바젤) 조약을 통해서 에스파뇰라 섬 전체를 프랑스에 양도한 기간도 있었다. 1821년 도미니카는 공화국은 ‘아이티 에스파뇰라’(스페인계 아이티라는 뜻, ‘아이티’는 타이노 원주민들이 섬을 부르던 토착 이름이다)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지만 흑인 노예들의 혁명으로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아이티가 이듬해 이들을 점령했고, 아이티의 지배는 1844년까지 이어졌다.

두 나라 사이에 잊을 수 없는 비극이 있는데 이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독재자였던 라파엘 트루히요(Rafael Trujillo)가 저지른 아이티인 학살사건이다. 1930년에서 61년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을 통치한 독재자 트루히요는 반아이티주의자로서 37년 군인들을 동원해 국경지역의 아이티인들과 아이티인들을 부모로 둔 도미니카인들을 대량 학살, 2만에서 3만명의 아이티인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그는 공식적으로 만 팔천 명의 아이티인들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한 사람당 ‘29달러’씩, 총 52만 2천달러의 보상금을 지불했다. 프랑스어와 크레올어를 쓰는 아이티인들에게 ‘뻬레힐’(‘뻬레힐’은 파슬리라는 뜻) 이라는 스페인어 단어를 발음해보게 해 아이티인이라는 것을 가려내 죽였기 때문에 이 사건은 ‘뻬레힐 학살’이라고 불린다.

  두 나라의 국경 마을 히마니에서 열린 장터에서 본 아이티인들
한때나마 아이티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지배하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아이티인들이 경제적으로 훨씬 나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살아간다. 라리마르(Larimar)라는 광석을 채취하는 광산에 갔더니 그 입구에서 만난 몇몇 광부들은 대부분이 아이티 사람들이었다. 원래 불법, 합법 이주자를 포함해 100만 명이 넘는 수준이었으나 2010년 지진 이후 아이티인들이 급속히 유입되어 200만 명 혹은 그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이티 사람들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도 하지만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대체로 아이티인의 매우 까만 피부로 그들을 구분하는 듯 했다. 백인과의 혼혈로 인해 갈색빛이 도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흑인계 인구와 달리 아이티인들의 피부는 훨씬 더 검은 편이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며칠만 지내다 보면 그 둘의 미묘한 피부색 차이를 대체로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최근 두 나라 사이의 아이러니는 2010년 1월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의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물자 생산이 중단되자 도미니카 공화국을 통해 국제 원조물자가 공급되고 생필품에 대한 대 아이티 수출이 늘어나면서 도미니카 공화국 경제에 큰 동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너무나 가까이 있는 미국과 리조트 투어  

실제 이 나라에 가보니 관광책자나 가벼운 안내서에서 말해주지 않는 점이 있었는데, 그건 나라 전반에 미국식 문화가 엄청나게 침투해있다는 점이었다. 접한 책들이 대부분 영어권 저자들의 책이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도 없고 언급도 없었던 듯하다.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인데 헤어질 때 ‘바이바이’로 인사를 하고, 산토도밍고 국제공항에는 도미노 피자 체인점이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유독 야구의 인기가 높고 많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배출하는 것도 미국과 미국문화와의 인접성 때문이다. 유럽에서 건너 온 축구가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는 남아메리카와 달리 미국과 가까운 카리브해 나라들인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베네수엘라 등에서 야구를 훨씬 많이 하는 것을 비교해보면 흥미롭다. 중미, 카리브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과 남미에 압도적인 유럽 문화의 영향이 확연히 비교되기 때문이다.

공항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이 넘치고 이들 대부분은 도미니카 인들의 실제 삶을 알 필요는 전혀 없이 바로 멋진 해안가에 자리 잡은 리조트로 직행, 며칠간 휴가를 누리며 해변과 햇살을 즐긴다. 리조트는 숙박비에 모든 음식과 술값이 다 포함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운영되니 ‘가상의 천국’인 리조트에서 원없이 먹고 마시며 수영과 선탠을 즐기다 다시 공항으로 직행해 자국으로 돌아가는 관광이 매우 널리 퍼져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페데르날레스의 오염되지 않은 해안

북미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가상의 천국’으로 소비하듯 도미니카인들 역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미국을 생활의 기반으로 삼고, 그 문화를 수용한다. 도미니카 상류층은 비행기로 서너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플로리다나 뉴욕을 또 하나의 집으로 삼아 살아가고, 그럴 여력이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미국에 직업을 구해 정착하는 것을 큰 성공이자 기회로 여긴다. (후안 루이스 게라의 메렝게 곡 “Visa para un sueño꿈의 비자”의 가사를 보면 미대사관 앞에서 끝없이 줄서서 하염없이 미국비자를 기다리거나 이것도 실패하면 바다를 통해 밀입국을 시도하다 상어 밥이 되는 자국인들의 처지를 슬프고 코믹하게 이야기한다.) 도미니카 공화국 어딜 가나, 특히 식당에서 1회용품 쓰는 습관이 매우 널리 퍼져있어서 미국과의 빈번한 접촉 때문에 이런 것마저도 미국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며

열악한 도로사정, 자국 산업이 취약해 사람들 소득 대비 물가가 비싼 것 등 고질적인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도미니카 공화국은 20세기 초중반의 뜨루히요 독재기를 지나 2000년대 이후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구가하는 듯 했다. 천편일률적인 리조트 투어를 하는 북미인들의 존재는 유쾌하지는 않아도 관광업을 중요한 수입으로 하는 카리브 해 나라로서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일테고, 매우 훌륭한 자연환경이 있으니 좀 더 다양한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보였다. 개방적이고 친절한 사람들, 매력적인 음악과 춤 이 있어 ‘지구상에 이렇게 다른 자연 환경 속에서 다른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구나’하는 것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여행이었고, 그 점 하나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오랫동안 신선하게 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정승희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스페인어와 중남미 문학을 전공했고, 4년간 칠레에서 중남미 문학을 공부하고 생활하는 동안 중남미 사회, 역사, 원주민에 실질적으로 눈을 뜨게 되었다. 중남미 문화와 소식을 전하는 블로그 blog.naver.com/yupanqui를 운영 중이다.

* <방방곡곡99절절>은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www.glocalactivism.org]가 기획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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