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미국이 ‘디폴트 선언’ 할까?

미국의 재정 위기, 죽거나 나쁘거나

미국의 재정 악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면서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비록 일시적이라도 디폴트를 일으키면 미국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어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다시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실제로 디폴트가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보고 있지만, 미 정부가 8월 2일까지 연방 채무 한도를 14조 3000억 달러에서 더 높일 수 없다면 미 국채의 이자지급이나 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된다. 즉, 미국이 일시적인 디폴트 상태에 놓일 가능성은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 설마 디폴트?

이미 5월 16일 미 정부는 채무 상한선인 14조 3000억 달러에 도달한 상태라 국채의 추가발행이 불가능해져, 미 의회에서는 국채 발행 상한을 놓고 여야간에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오바마 대통령은 국채 발행 상한선을 올려야 하며, 동시에 부자 감세의 종료와 증세를 통해 재정 적자를 보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화당은 연방재정의 축소 즉, 사회보장비 등의 축소를 통한 ‘긴축’을 먼저 해야 한다며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 재무부는 공무원 연금 지급을 위해 저축한 돈을 가지고 돌려막기를 했지만 그 한도를 8월 2일까지라고 못 박았다. 때문에 산술적으로 7월 22일 까지 국채 발행한도를 높이는 법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8월 2일 이후 미 국채의 원금 상환과 이자지급이 동결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어찌보면 이것은 ‘증세냐, 긴축이냐’하는 케케묵은 논쟁처럼 보인다. 얼핏보기에 긴축보다는 부자감세 중단과 증세를 얘기하는 오바마의 얘기에 귀가 더 솔깃하다. 게다가 미 연방재정 악화의 주요 원인이 ‘긴축’, ‘작은 정부’를 목 놓아 외쳤던 공화당 출신의 부시 행정부가 두 차례나 치렀던 전쟁과 금융위기 대응 때문이다. 막대한 전쟁비용은 두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 등 금융위기가 터져 나온 것도 부시행정부 말기였다는 점에서 공화당의 ‘긴축’ 얘기가 도대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주 정부의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위스콘신 노동자들의 투쟁

그러나, 오바마 미 대통령이나 민주당의 얘기도 핵심을 비켜간 얘기에 다름아니다. 최근 미 정가의 논쟁은 재정악화의 대처방법을 놓고 벌어진 논쟁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것에 있다. 증세든, 긴축이든 당장 국채발행 상한선을 올리자는 것인데, 미 국채의 추가발행은 빚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이자를 주고 그저 돌려 막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8월 2일 이후 단 2주 동안에만 미 정부가 채무 상환을 해야 하는 금액이 사회보장기금 610억 달러, 단기 국채 상환 570억 달러, 국채 이자지급 256억 달러 등 14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게다가 S&P 등 주요 국제신용평가 기관들은 원리금 상환이 지연될 경우, 미국의 등급설정을 ‘AAA’에서 하향 조정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고, 나아가 미국이 국채의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면 “기술적인” 디폴트로 간주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한다면...직접적 세계경제위기 초래
위험자산 투매, 주택시장 침체 가속화, 유럽 등 디폴트 도미노 확산


미 공화당 일각에서는 디폴트를 감수하더라도 긴축정책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터라 사태의 심각함이 더해지고 있다.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미 국채의 원리금 상환이 유예되거나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면 그 충격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채는 세계 채권시장의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면 전 세계의 국채뿐만 아니라, 주식이나 펀드와 같은 다른 위험 자산 전체로 투매가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보험 회사나 연금 기금, 뮤추얼 펀드 등은 보험이나 연금의 상환금 지불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2010년말 현재, 생명보험이나 손해보험 회사의 미 국채 보유액은 모두 2530억 달러다. 뮤추얼 펀드는 2960억 달러, 연금 기금은 487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지불이나 상환을 위해서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생기면, 국채를 간단히 매각할 가능성이 있다.

또 MMF(머니마켓펀드)는 2010년말 현재, 단기채를 중심으로 335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미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위험자산들은 디폴트에 따라 동반 부실이 일어 날 것은 자명해 보여 일시적으로라도 디폴트가 현실화 된다면 이 자산들의 투매 현상도 피해나가기 어려울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의 모기지 금리, 기업 대출 금리, 다른 차입 코스트도 직간접적으로 미 국채 이자율과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연방 정부의 대출 비용이 상승하면, 소비자나 기업도 차입 비용의 상승으로 연결되고 있다.

따라서 국채 이자율 상승으로 대출 금리가 상승하면, 침체된 주택 시장이나 주택 가격을 한층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뿐 아니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의 침체를 부를 수도 있다. 결국 미국은 장기침체로 빠져들 공산이 매우 커진다.

게다가 미국의 디폴트 선언은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국가채무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유럽 국가들의 디폴트 도미노를 낳게 될 수도 있다. 미국이 디폴트를 선언하는 마당에 다른 나라라고 버틸 재간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디폴트는 재정위기를 겪는 다른 나라들이 손쉽게 디폴트를 선언할 명분이 되기 때문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결과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나 이어진 유럽의 재정위기의 여파보다 더욱 거대할 것으로 보인다.

디폴트 선언 안하더라도...빚 돌려막기에 불과
긴축 또는 인플레이션 확대, 재정악화 심화


이런 충격 때문에 일시적인 유예는 있을지라도 국채 발행의 상한선을 올리는 것으로 미 의회와 행정부간에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대가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노동자 서민의 피를 말리는 ‘긴축’이거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물가폭등’ 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신용도 추락이다. 최근의 문제는 금 다음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지던 미 국채에 대한 신뢰도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국채를 발행하더라도 불안한 자산이 된 미 국채를 누가 사갈 것인가 하는 점인데, 이 때문에 미국의 국채 이자율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 얘기는 국채를 발행하는 데에 앞으로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빚을 지게 되어 미국 재정 건전성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거액의 채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중국 인민은행을 필두로 외국의 중앙은행들은 미 국채의 구입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다. 3월말 현재, 외국인에 의한 미 국채 보유액은 4조 4800억 달러. 그 중 70%를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

미 재무부의 데이터에 의하면, 2010년 9월부터 2011년 3월까지의 사이, 외국인에 의한 미국채 구입액은 1개월을 제외하고 매월 감소하고 있다. 중요한 요인으로 달러 하락에 대한 우려로 외국 중앙은행이 달러에 편중 한 포트폴리오의 분산을 진행시키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편, 미 국채는 외국의 경우 3월말 현재, 중국이 1조 1000억 달러로 1위, 2위는 일본으로 90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채의 최대 보유처는 다름 아닌 미 연준(FRB)이다. 연준은 QE2(2차 양적완화)에 따라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국채 보유액이 최대인 1조 50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QE2는 6월말 종료되었고, 추가 양적완화 계획이 없는 상황이라 미 국채의 구매 수요는 더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미국이 국채 매입 상한선을 올려 국채발행을 지속한다 하더라도 높은 이자율을 물지 않으면 미 국채의 발행이 어려워지거나 외국 중앙은행들의 투매 현상까지 일어 날 수도 있다.

다시 상황을 조금 뒤로 돌려 국채 발행 조건을 살펴보자. 미 의회와 행정부가 국채 발행의 대가로 긴축을 선택한다면, 유럽의 재정위기 사태와 같이 공공부문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원하는대로 부자감세를 없애고 증세기조로 간다고 하더라도 피해나갈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인플레이션(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자산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침체 상황이 계속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 연준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를 통해 디플레이션을 막고 통화량을 팽창시켜 나갔다. 그것이 신흥국에는 통화량 폭탄이 되어 물가폭등과 함께 환율전쟁을 부추겼고,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이것이 다시 미국 내 물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보도에 따르면, QE2가 도입된 지난해 11월 이후 6월까지 달러가치는 10% 떨어진 반면 19개 주요 상품 항목으로 구성된 로이터-제프리스 상품(CRB)지수는 11% 올랐다. 16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오를대로 오른 상품과 에너지 가격이 다소 하락하면서 1년만에 하락세로 돌아서 0.2%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근원물가지수가 상승하고 있어 물가는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미 정책당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적절한 수단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QE2를 통해 미 국채를 대량 매입하면서 채권가격이 떨어졌고 채권금리는 올라갔다. 사실상 금리가 오른 것이다. 그럼에도 인플레이션 조짐은 계속되고 있어 정책당국은 금리를 더 올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이번에 긴축을 하지 않고 국채 발행을 한다하더라도 인플레이션 때문에라도 긴축이 불가피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게 된 재정위기를 국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또는 ‘긴축’을 통해서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시키면서, 국제적으로는 세계 경제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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