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채무불이행 극복? 고난은 지금부터

물가 포기하고 ‘저금리’ 유지할 듯

미국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 상황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민주, 공화 야당이 지난달 31일 연방 재정의 채무 한도를 2013년까지 모두 2조 1천억 달러를 증액하는 대신 향후 10년간 연방 재정지출을 약 2조 4천억 달러 감소시키기로 전격합의하면서 미 의회에서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있다.

공화당이 우세에 있는 미 하원은 1일(현지시간) 채무한도 인상 법안을 269 대 161로 통과시켰다. 상원은 미국 동부시간 2일 정오에 열릴 예정이며, 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다. 상원 통과 후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이 법안은 성립된다.

[출처: 백악관 홈페이지]

이것으로 미국은 당장의 디폴트 선언은 넘기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한숨 돌린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7월 29일 발표된 미국의 국내총생산(GDP)과 1일 제조업 지수가 나쁜 결과로 나와 채무한도 인상 법안이 2일까지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미국 경기 상황에 대한 불안이 다시 집중되게 되었다. 특히 5일 발표 예정인 고용 통계를 둘러싼 불안이 이러한 우려를 강화하고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실제 미국 미 상무부는 지난 1분기 성장률도 당초 1.9%로 발표됐지만 0.4%로 대폭 수정했다고 밝혔다. 2분기 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은 시장 예상치인 1.8%를 크게 밑도는 1.3%에 그쳤다. 이것은 미국 경제는 회복 기조가 꺾이는 가운데, 경기침체 위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1일 발표된 제조업 지수를 보면, 7월에는 제조업계가 거의 성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5일 발표되는 비농업부문 취업자 수가 매우 주목된다. 이 통계는 최근 2개월간 실망스러운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실업률은 6월부터 보합세인 9.2%를 보이고 있지만 조만간 발표된 통계에서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이 모든 경제지표가 나타내고 있는 것은 미국 경제가 아직도 바닥에서 헤매고 있다는 점이고 어쩔 수 없이 경기부양책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차 떼고 포 뗀 미국, 무엇으로 경기부양 하나?

그런데 문제는 어떤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당장 올해 채무 한도가 9천억 달러 증액된다고 하더라도 채무 삭감 논란 속에서 재정정책 면에서는 여지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 때문에 관심은 다시 미 연준(FRB)에 쏠리고 있다. 양적 완화 등 금융정책 면에서의 새로운 부양책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6천억 달러에 달하는 미 국채를 매입한 두 번째 양적완화(QE2)가 종료된지 불과 한 달 전이지만 금융자본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새로운 양적완화(QE3)를 주문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QE2에 의해 6천억 달러의 미 국채 구입에 의한 효과가 쇠퇴되어 있다. 그만큼 비슷한 수단으로 금융정책의 효과를 보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양적완화 정책을 구사할 수 없는 더 큰 이유는 바로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문제는 인플레이션, 양적완화도 어렵다

미국의 인플레이션률은 현재 많은 지표가 FRB의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 올해 2분기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연 3.1%로 변동이 큰 식료품, 에너지를 제외하더라도 2.1%로 이미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FRB가 새로운 금융완화책을 구사하게 되면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리게 되어 인플레이션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FRB가 6천억 달러의 국채 구입 계획을 진행한 지난해의 인플레이션 동향과는 현재 크게 다르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률이 하락하고 있었고 오히려 일본형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대규모 양적완화 조치가 통할 수 있는 조건이었지만 지금은 이와 정반대다.

때문에 FRB는 취약한 경기 회복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 찾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등의 문제 때문에 대규모 미국 채권구입 재개 등 과감한 추가 금융완화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오는 9일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연다. 이 자리에서 경기부양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플레가 고공 행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금융완화를 단행해도 적절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현상 유지의 자세를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모든 것을 희생해서 ‘저금리’ 유지 할 듯

그렇다면 이도저도 할 수 없는 미국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 결국 미국으로서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실상 인플레이션과 성장, 고용 등 모든 것을 희생해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채무상한 논란과 중첩되면서 저금리 기조가 감지되면 달러의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은 FRB는 2008년 이후 “장기간”동안 제로 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해오고 있다며, FRB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가 계속된다면, 저금리를 더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전했다.

애틀랜타 연방은행의 록하트 총재도 지난 주 한 강연에서 “FOMC는 금융 완화 정책 스탠스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을 명확하게 하는 한편, 비금융 정책이 효과를 올리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이 고공행진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무슨 수로 ‘제로 금리’를 지속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 하에서 금리를 인상시켜 물가를 잡는 법인데, FRB는 그것을 포기하고 ‘저금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양적완화와 같은 추가적 금융완화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가중시켜 정말로 심각한 상황으로 내 몰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쓸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저금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적완화를 하겠다는 립서비스’ 외에 달리 특별한 방안은 없어 보인다. QE2가 실시될 때에도 오랜 기간 FRB는 양적완화를 단행할 수 있다는 경고성 멘트를 이어 왔고 이게 실제 양적완화에 못지않은 효력을 가져왔다. 미국이 달러를 풀 것을 염두해 두었기 때문에 저금리 기조를 유지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FRB는 다양한 방법으로 저금리 시그널을 주겠지만 대부분 구두선에 그친 경고성 혹은 예보성에 그치면서 반복되면 될수록 효과는 반감될 공산이 크다. 이미 시장이 이것을 인지하고 있다면, QE2 상황과 같이 FRB의 멘트에 시장이 반응해 줄지도 미지수다.

인플레이션에 긴축정책으로 엎친데 덮친 격인 미국 노동자

공은 다시 FRB로 넘어 왔다.

미 행정부는 그나마 연방재정 채무 한도를 높였지만 경기부양 보다는 빚 갚는데 신경 써야 할 판이다. 게다가 10년 동안 2조 4천억 달러의 연방재정을 축소키로 하였으니, 미국의 노동자와 서민들이 겪어야 할 고초는 이만 저만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FRB가 금리를 올려 인플레이션을 잡기 보다는 보다 장기에 걸쳐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것이 더 분명해 보임으로써 물가인상의 부담을 또 져야 하는 노동자들로서는 2중 3중의 부담을 안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