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투쟁 1500일, 우린 왜 미안함으로 남아 있는 걸까요?

[포토] 1박 2일 노숙 투쟁, “노동조합 인정 없는 순차·선별복직 못 받아”

  사진: 김용욱 기자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리는 일들을 매일매일 당하면서도, 100일을 숨도 쉬지 않고 달려왔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거리에서 1500일 이후의 투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차가운 새벽, 농성장 문 앞에서 한 중년의 사내가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라 놀랐는데 얼마 전 1년 후 복직 합의를 하며 사람들 마음에 “희망”을 새긴 한진중공업 조합원이었습니다.

본사 앞에 텐트도 치지 못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차량에서 철농을 하던 숱한 밤에도 많은 이들이 술에 취한 밤이면 화를 삭이지 못해 혜화동 본사 앞에 찾아와 철문을 두드리고 화분을 엎어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우린 왜 사람들 마음에 미안함과 슬픔으로 남아 거리에 서 있는 걸까요?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아마도 우릴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를 알고 있는 선생님들도 우리를 잊어버리고 싶어 할지 모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3800명의 조합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목소리를 냈던 날들은 12년의 시간동안 채 4분의1이 안됩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재능교육자본의 노동탄압에 맞서 현장에서 거리에서 악다구니를 하며 싸워야만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이들이 상처난 마음과 패배의 쓰라린 기억으로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떠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연전히 우리는 거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12명 해고자의 전원복직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11명만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99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 긴 시간을 함께해온 이지현 조합원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동안 우린 병문안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하고 그녀가 위독하다는 소리에 가슴을 쥐어짜며 숨죽여 울고 그녀가 떠나던 그 날 서럽게 울기만 했습니다.


고작 10여명이 조금 넘는 조합원들이 거대한 재능교육자본과 투쟁하고 있습니다. 적들보다는 내 앞에 있는 동지끼리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하루 하루 “투쟁”을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농성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

우리의 요구는 투쟁했기 때문에 빼앗겨버린 노동조합인정과 해고자 전원복직입니다. 저마다 조금씩 다른 이유로 거리에 서있습니다. 99년 12월 33일간의 점거파업으로 만들었던 “우리의 사랑 우리의 꿈 재능교육교사노동조합”을 다시 일으켜 세워 현장에서 웃으며 일했던 그런 날을 다시 만들고 싶은 사람, 10년간의 해고자 생활을 청산하며 예쁜 양복입고 커다란 관리가방을 등에 매고 출근하고 싶은 사람, 투쟁했기 때문에 빼앗겨버린 노동조합의 이름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 거대한 자본의 무차별 공격에 망가져 버린 생을 복수하기 위해 재능교육 간판을 내려 버리고 싶은 사람, 사랑하는 아이들과 나를 믿고 함께 해준 동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사람.



우리가 돌아갈 재능교육은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매달 성실히 일하고도 가짜회원회비로 얇아진 월급봉투에 맘 아프지 않아야 합니다. 아이들 앞에서 “학습지교사”라는 명함이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회사의 엄청난 성장에 밑돌이 되어 죽어나가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린 선심 쓰듯이 회사가 제안한 노동조합 인정 없는 순차복직도 선별복직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길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소박하지만 그 소박한 요구에 자본도 권력도 잔뜩 겁을 집어먹고 조금도 내주지 않겠다고 합니다.




노동자였던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성”을 빼앗고 무한한 착취를 일삼는 추악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 12명이 맞장을 뜨고 있는 우리의 “동화”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끝날 수 있게 그래서 모두의 마음에 “희망”을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700일 투쟁 당시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 [출처: 자료사진]

이 글은 1월 28일 오수영 사무국장이 1박 2일 농성 문화제에서 읽은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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