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오도엽] |
사람들은 그를 ‘직업이 일정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길 정도로 농성 현장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루시아는 어엿한 직장인이다. 하루 연대를 하기 위해 전날 야근을 하며 다음날 일을 처리하고 휴가를 내어 농성장을 찾는다. 밤샘의 피곤한 얼굴을 말끔히 감춘 채 노동자들을 찾아 반갑게 손을 내민다.
루시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농성장에 갈비를 들고 와 연대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하면서다. 루시아는 ‘갈비연대’라는 묘한 이름으로 농성장의 노동자를 찾아다녔다. 천막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하고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나누자는 시민들이 모여 만든 조직 아닌 조직이었다.
지난 주 희망 뚜벅이들이 인천을 찾았을 때는 진보신당의 밥차와 함께 등장해 앞치마를 두르고 소매를 걷었다. 콜트악기에서 정월대보름 잔치를 할 때도 직장인에게 소중한 휴일을 반납한 채 밥을 짓고 안주를 차렸다.
박희경은 오늘 뚜벅이와 함께 걷고 싶어 연차휴가를 내고 이른 아침 상록수역으로 찾았다. 뚜벅이와 함께 하는 휴가를 위해 어제 야근을 하며 곱빼기로 일을 했단다. 박희경은 말한다.
“연대라는 게 별 거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트위터를 통해 노동자들의 소식을 알리는 일과 같이 농성장을 찾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루시아의 등장 이상으로 반가운 소식도 찾아들었다. 어제부터 열두 시간의 교섭 끝에 오늘 새벽 세종호텔 노사가 합의를 했다. 만약 교섭이 결렬이 될 경우 오늘 저녁에 뚜벅이들이 세종호텔로 달려가기로 되어 있었다. 세종호텔은 희망 뚜벅이의 첫째 날 종착지이기도 했다. 파업이 끝났음에도 세종호텔은 희망 뚜벅이와 함께 걷고 있다. 희망 뚜벅이가 있었기에 파업을 끝낼 수 있었다고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천일 넘게 싸운 장기 투쟁 노동자들은 마치 자신의 사업장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
[출처: 오도엽] |
뚜벅이 열흘째 날은 외롭지 않았다. 금속노조 경기지부 식구들이 신발 끈을 단단히 여미고 왔다. 상록수역에서 삼십리 길을 걸어 수원 성균관대학교 앞에 도착하니 수원 시민들이 박수를 치며 뚜벅이들을 반긴다. 점심을 먹고 경기도청에 갔더니 전국철거민연합 식구들이 마중을 나와 있다. 30명이 출발했는데 걷다보니 백여 명이다.
아침 일정은 빡빡했다. 안산에서 수원까지 딱 한번을 쉬고 내리 걸었다. 어제 추위에 호되게 고생했던 뚜벅이들에게 오늘은 바람이 불지 않아 봄날과 같았다. 열흘 동안 걸었던 경륜이 발바닥에 붙어 이제 걷는 것에 별로 힘들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처음 참가한 뚜벅이들에게는 쉼 없이 한 시간 이상 내리 걸으니 호흡이 가빠 보인다.
오늘은 특별한 만남이 이어졌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희망 뚜벅이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전국 사업장을 돌며 오는 11일 평택 쌍용자동차에서 있을 ‘3차 포위의 날’을 알리는 선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원정공을 찾았던 이 선전단이 수원에서 만난 것이다.
[출처: 오도엽] |
오는 11일 희망 발걸음의 종착지에는 전국에서 다양한 ‘희망’들이 모여든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지난 1월 30일부터 전국 200여개 투쟁사업장을 돌며, 각 사업장의 염원이 담긴 소원지를 받아 ‘소금꽃 열매’를 가꾸고 있다. 이 열매는 이윤엽 판화가 등이 만들어 쌍용자동차에 세워진 소금꽃 나무에 결실을 맺을 것이다. 11일 수백 개의 소금꽃 열매가 세상을 향해 희망을 터뜨릴 예정이다. 절망의 공장이 희망으로 포위되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희망 뚜벅이와 함께 곳곳에서 평택으로 몰려들고 있다.
오늘 뚜벅이가 걸은 길은 20킬로미터 남짓이다. 저녁 7시에 수원역에서 수원 시민들과 촛불문화제 함께 하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힘든 뚜벅이들의 발은 갈수록 희망으로 가벼워진다. 절망을 함께 디디며 걸으니 그 자리에서 희망이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잠시 신발을 벗고 발 쉼을 하는 동안 하얀 햇빛이 뚜벅이들 머리 위에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