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비세 인상, 어떻게 볼 것인가?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3) 일본 소비세인상을 둘러싼 논쟁과 교훈

차디찬 한겨울을 내달리고 있던 열차에서 연료로 쓸 땔감이 부족해졌습니다. 갈 길이 먼 지금 속도를 줄일 수도 없고.. 그래서 기관사는 모든 승객들의 겉옷을 하나씩 벗겨 땔감으로 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편안한 좌석과 따뜻한 난방을 기대했던 승객들은 엄청난 실망감에 빠졌고 일부는 그런 결정에 반발하며 완강히 버티고 있습니다. 일반실이 아니라 특실내의 화려한 장식물과 10벌씩 껴입은 특실 사람들 겉 옷부터 땔감으로 써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 그 걸로는 이 큰 열차를 달리게 하기엔 턱없이 모자르다고 비아냥거리는 사람, 속도를 줄여 천천히 가자는 사람, 속도를 줄이다 열차가 멈추면 모두 공멸이라고 협박하는 사람들까지... 모두가 열 마디씩 외치다 보니 열차는 아수라장이 돼버렸고, 각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사태는 더욱 꼬여만 가고 있습니다.

지속불가능한 재정적자와 소비세 인상

오늘의 경제칼럼은 이웃나라 일본으로 가보겠습니다. 세금인상을 둘러싸고 뭔 그리 난리인가라고 의아해 할 텐데 그것을 둘러싼 계급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어있어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보여집니다. 앞서 말씀드린 달리는 열차의 풍경이 딱 현재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군요.

[출처: 매일경제 화면 캡처]

사건 1. 日 민주 '소비세 분열'...소비세 인상을 반대하는 의원 29명 당직 사표를 제출 2012.04.03. 서울신문

사건 2. 일본 소비세인상 대격돌, 46시간 격론거친 정부안 30일 국회제출, 야당은 물론 여권 일각에서도 극렬히 반대 2012.03.29 매일경제

사건 3. IMF "일본, 지진피해 복구와 국가부채 감축을 위해 소비세(부가가치세)를 지금의 3배인 15%로 올려야" 2011.06.17 아시아경제

사건 4. 일본 소비세 큰 폭 인상 추진, “재정난 해소 복지재원 마련” 고이즈미 퇴임 뒤 문제될 수도, 소비세 인상을 통해 세입을 늘리고, 소비세를 복지목적세로 삼는 내용의 재정재건 방안을 담은 중간보고를 자민당 재정개혁연구회에서 제출 - 2005.10.24 한겨레



위 기사에서도 보시다시피 현재 일본정국이 소비세(부가가치세) 문제로 정권이 바뀔지 모르는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지 필요는 없겠지만 도대체 소비세가 무엇이 길래 이런 상황으로 몰리는 한번 곱씹어봐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더구나 유럽의 일부 지나친 재정긴축이 되레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던 IMF가 장기침체에 빠져있는 일본에게 15%라는 소비세율을 권고한 것은 참으로 다시 생각해볼만한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할 만큼 절박하다는 것일까요?

일본의 소비세 인상 논란은 이미 고이즈미 정권시절부터 얘기되어온 역사가 긴 논쟁입니다. 처음엔 재정난 해소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복지목적세로 추진되었던 이 소비세 논쟁이 지금은 경제위기 이후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과 맞물려 일본판 긴축정책의 상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소비세 논쟁에서 현재 집권여당인 민주당과 자민당과의 인식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정치적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보니 자민당이 민주당 정부의 소비세 인상안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이미 그들도 고이즈미 집권시절부터 소비세 인상을 주도했던 세력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다른 나라들의 ‘부자증세’ 논쟁처럼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반발이 극심할 수밖에 소비세 인상을 내놓은 건지 참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민주당도 처음 집권 초기 당분간 절대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호언했던 사람들인데 말이죠. 그들도 국가운영을 하다 보니 이 부분이 불가피하다는 걸 깨달은 걸까요? 그래도 소비세라...언뜻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일단 명목상으로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것이라 선전하지만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현가능한 계획인가라는 점에서 강한 의문을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본재무성에서 발표한 소비세 지출 용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한국은행에서 재인용]

보시다시피 일본 정부는 기초연금, 노인의료 등 복지사업비의 부족분을 소비세 인상으로 충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표에서 보듯이 소비세로 걷은 재원 중에서 지방재원으로 절반 가까이 넘겨주고 나면 부족분에 대한 충원문제가 또 발생합니다. 더군다나 소비위축으로 발생하는 디플레이션의 심화와 경기침체는 이미 과거 97년 소비세 인상시 한번 경험한 터라 더욱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래 일본 내각부의 거시모형을 이용한 분석에서도 그 부정적 영향은 뚜렷이 드러납니다. 실제 지난 이십여 년 간의 재무성의 세입 세출 추이를 보아도 소비세를 인상한 97년부터 세입감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소비세 반대자들의 주장처럼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소비세 인상’이라는 구호는 국민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입니다. 설령 재정적자 해소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하더라도, 소비세가 갖는 역진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진의가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아래 그림에서 보듯 고소득자일수록 세금부담률이 적어지는 역진성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정말 국가재정이 벼랑 끝으로 몰려 긴급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면 소비세 뿐 만 아니라 법인세나 소득세에서도 동일한 목적을 위한 세제개편이 이뤄져야 하는데, 오히려 일본은 올해 4월1일부터 39.5%였던 법인세를 36.8%로 내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결국 그렇게 기업들이 세제혜택으로 누리는 수익이 다시 재정건전성에 도움이 되는 세수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 재계의 주장이지만, 지금도 대기업들의 유보잉여금 266조엔(약 3500조원)이 쌓여 있습니다. 이런 잉여금이 국가적 투자재원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금융자산의 버팀목 구실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재원으로 활용하기보다 제살을 깎아먹는 소비세 인상을 추진한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제개편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결여된 소비세인상은 그 실효성에서나 정당성에서나 실패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속 불가능한 재정적자의 위기를 민중들에게 전가하려는 반민중적인 정책일 뿐입니다.

한 박자 빠른 보수이데올로그들의 공세

이런 일본의 소비세 인상 공방을 두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재정정책의 재원인 세금을 어떻게 누구에게 거둬들이고 어떻게 분배하는 것이 맞는지 하나씩 따져 보는 신중함입니다. 또한 불황과 재정적자의 터널의 벗어나기 위한 효과적인 재정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일본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질문들과 맞닥뜨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건 5. 노다 총리의 ‘소비세 뚝심’2012.03.31 동아일보

사건 6. 공약 반성 전문 일본정부 2012.03.30. 파이낼셜 뉴스

사건 7. 부가가치세의 세율인상, 긍정적으로 검토...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2012.04.02 세정신문



이런 논란 가운데 일본의 소비세 인상을 두고 보수일간지들이 ‘노다 정권의 뚝심’ 운운하며 ‘포퓰리즘 복지’와 재정적자 문제를 연결 짓는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문제를 마냥 옆 나라 이야기로만 방관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이미 이들은 총선 이후를 겨냥한 날선 칼날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심지어 벌써부터 국내 조세연구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도 소비세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려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걸 볼 때, 한 박자 빠른 그들의 대응에 긴장을 늦출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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