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추진의 숨겨진 진실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7) 동아시아 경제패권의 충돌

‘한중 FTA’는 일본 낚기 위한 중국의 미끼

사건 1. “올해 안으로 ‘한중 FTA’, ‘한중일 FTA’ 협상 동시에 시작”...박태호 본부장 밝혀 – 연합뉴스 2012.05.08

사건 2. ‘한중 FTA’ 개시에 일본 언론이 발끈한 이유, 닛케이신문 “일본은 또 외톨이” ... 무역 주도권 잡기 위한 한중일 간 기싸움 - SBS 2012.05.08


지난 2일 북경에서 ‘한중 FTA’ 협상개시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3월말 ‘한중일 FTA’에 관한 ‘산관학 공동연구 보고서’가 제출되었던 터라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였습니다. 헌데 일본 쪽에서는 ‘한중 FTA’가 먼저 전격적으로 발표되자 ‘한미 FTA’에 이어 또 한번 한국에 뒤처지는 게 아니냐는 질타가 쏟아지면서 작지 않은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작년 대지진과 후쿠시마 핵사태 이후 성장동력이 더욱 저하된 일본이 수출시장 확대로 돌파구를 찾던 중이었는데, 국내 정치의 혼란과 리더쉽 부재로 진척이 더뎠기 때문이죠.

사건 3. “ ‘한중일 FTA’ 협상 연내 개시” 13일 정상회의에서 선언 ... 외교부 통상교섭조정관 브리핑 – 머니투데이 2012.05.09.

사건 4. 중국 외교부 ‘한중일 협력 백서(1999-2012)’ 발표, “한중일 우호 교류의 여정과 실무 협력 성과를 돌아보고 큰 미래를 전망하자” - 인민일보 2012.05.10


결국 곧바로 ‘한중일 FTA’ 협상 연내 개시에 대한 발표가 13일 정상회의를 통해 추진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중FTA’를 지렛대 삼아 일본을 끌어들여 ‘한중일 FTA’를 성사시키려는 중국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에 발맞춰 중국 외교부는 한중일 협력 백서를 발표했는데요. 여기엔 ‘정치안보분야’, ‘경제무역 재정 금융 분야’ ‘지속 가능한 발전 분야’ ‘사회 인문 분야’ 등 지난 십여년간 3국간에 벌어진 모든 교류관계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미국 vs 중국’ : 동아시아 경제패권 경쟁과 일본의 역할

“한중일 FTA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자” (원자바오 중국 총리, 2011년 11월 ASEAN 정상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겠다” (노다 요시히코 일 총리, 2011년 11월 일본 국회)


이러한 중국의 노력은 미국의 대 중국 포위전략에 대항해 지역패권 확보하려는 전략적 선택 속에 나오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중국과 인접하고 있는 주변국들과 미국의 군사공조가 수십 년 동안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쪽으로는 이미 10만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타자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나라에 육군 및 공군기지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호주 등지에 수십개의 육해공 군사기지와 기동군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대규모의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국을 가운데 두고 빙둘러싼 형국을 취하고 있는 셈이죠. 심지어 미국은 인도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 마저 용인하면서까지 중국의 해양진출을 막기 위한 안보벨트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포위망에 의한 군사적 긴장과 더불어, 몇 년 전부터 미국과 중국은 환율문제와 무역분쟁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미중전략대화에서 항상 논란이 되는 것이 환율문제였는데, 미국내 보수세력들은 중국의 위안화 저평가가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에 발목을 잡는다는 여론몰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해를 위해 국제원자재투기를 방조하면서까지 양적완화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책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무역문제에서도 작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과 관련 미국이 중국을 WTO에 제소하였고, 각종 교역물품에 대한 반덤핑 조치들을 가지고 서로 무역보복을 벌이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미중간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출처: 삼성경제연구소(2012), <중국의 부상과 미중 통상분쟁>에서 인용]

그러면 여기서 왜 일본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그 이유는 주일미군의 존재뿐만 아니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에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태평양질서를 새롭게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신속배치군을 호주에 상주시키면서 주일미군과 함께 태평양 연안국들의 안보를 보장하고 이와 맞물린 경제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미국이 이런 구상에 베트남과 일본을 참여하도록 설득함으로서 남중국해에서 동중국해와 극동을 잇는 대 중국 봉쇄라인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국도 이런 미국에 맞서기 위한 정치경제인 이유 때문에 ‘한중일+ASEAN(아세안) FTA’ 건설을 줄기차게 주장하였고 많은 공력을 들여온 것입니다.


중국이 여기에 매진하는 이유는 이미 한중일 3국이 ASEAN(아세안)과 FTA를 맺고 있는 터라 협상을 진척하기 훨씬 수월한 면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경제효과를 볼 때, 한중일 3국까지 포함된 FTA 블록이 완성되면 동아시아 경제규모의 90% 이상을 점유하게 되어, 중국이 원하는 경제패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이 이런 중국의 팽창에 두려움이 있어 협상에 소극적이었는데, 일본이 TPP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중국의 행보가 빨라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시점에서 ‘한중 FTA’ 협상이 개시된 것이고, 곧이어 ‘한중일 FTA’ 협상이 동시에 진행될 예정에 놓인 것입니다. 결국 밀고 당기는 국제정치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지역경제패권을 잡으려는 힘의 논리가 낳은 결과인거죠.

‘한중일 FTA’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시험대에 오른 일본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 간 힘의 논리 속에 시작된 ‘한중 FTA’이지만 국내자본의 이해와 요구가 없다면 협상이 이렇게 순조롭게 개시되진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미국과의 FTA협상 휴유증이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미국과의 군사적 예속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말이죠. 하지만 아래 그림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교역비중에 따른 영향력이 이미 중국으로 기운 상태입니다.


이미 FTA를 체결한 미국, EU를 합쳐도 중국보다 수출비중이 작은 현실이 이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친미보수언론들도 대북문제에서 미온적 태도를 보였던 중국과 FTA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를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중국을 지렛대 삼아 대북문제를 풀 수 있다는 논리까지도 등장하는데,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정반대로 파악하는 웃지 못 할 일이죠. 지금은 중국이 ‘한중 FTA’를 미끼로 ‘중일 FTA’를 실현하려고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양국 간 FTA체결에서는 ‘중일FTA’가 일본에 가장 유리합니다. 일본 노무라증권 금융경제연구소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중일 FTA’를 시행할 경우 일본의 실질 GDP가 0.68% 증가한다고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한중일 FTA’가 일본 실질GDP를 0.74% 증가시키지만 일본이 참여하는 지금의 TPP는 GDP 증가율이 0.54%에 불과하다고 밝히면서 ‘중일 FTA’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국이 미끼가 될 떡밥(한국)과 잡을 물고기(일본)에 대해 경제적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이라, ‘한중 FTA’는 ‘한중일 FTA’로 수렴되기 위한 전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TPP’ 협상국에 일본을 끌어들인 것에서 보듯, 미국은 일본의 ‘한중일 FTA’ 참여를 막기 위해 온갖 애를 쓸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농업시장 개방에 관한 내부적 갈등과 정치력 부재, 미일안보동맹과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과의 갈등 때문에 ‘TPP’든 ‘한중일 FTA’든 확실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도 2012년 연내 타결을 내걸면서 일본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도 ‘한중 FTA’ 협상을 개시하면서 일본의 우유부단한 행동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일본 내 자본분파들의 이해가 중첩되면서 일본은 한층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연일 일본의 주류경제언론에서 보여 지는 “뒤처지는 일본”에 대한 비판이 이를 잘 드러내 줍니다. 일본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이후 동아시아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낳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미국과의 안보동맹과 자본분파들 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이 어떤 타협과 갈등을 낳을 것인지, 이것이 ‘한중 FTA’ 와 ‘한중일 FTA’의 결말을 결정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일본이 결정적인 시험대에 올랐다고 봐야하겠지요.

동아시아 통화안정을 위한 공조체제의 가속화

사건 5. ASEAN+3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의, ‘국채투자’ 두 배 확충 - 교도뉴스 2012.05.03.

사건 6. 한중일 `3각 국채투자` 로 금융안전망 구축,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공동선언 - 매일경제 2012.05.03


이런 FTA를 둘러싼 논란 와중에 또 하나 주목할 사건이 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ASEAN+한중일’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총재 회담입니다. 여기서 금융위기에 직면한 국가에 국제통화를 차입하는 국채의 기금 규모(지난 2000년 탄생된 통화스왑 협정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2,400억 달러로 두 배 늘리는 등 각국이 아시아경제 안전망을 강화하는 데 합의하였습니다. 특히 일본이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768억 달러를 출자하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또한 한중일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회의도 따로 열렸는데, 3개국이 상호 국채를 매입해 경제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 것이죠. 이로써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ASEAN+한중일 FTA’ 국가들 간의 통화공조 체제가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그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유럽발 통화위기’가 지역 내로 전염되지 않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통화 공조체제가 요구되었는데, 이 당면한 현실의 목적 앞에서 한중일간 공조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입니다. 이제 ASEAN+한중일 FTA’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여 진 것이라 봐야 할까요?

이후 전망 : 국지적 갈등의 지속

사건 7. 중-필리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가열 – 연합뉴스 2012.05.11

하지만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갈등들을 보면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몇 주 전부터 ‘황옌다오(중국명칭)-스카보러(필리핀명칭)’ 섬을 둘러싼 필리핀과 중국의 영유권 분쟁이 일촉즉발의 군사적 충돌로 치닫고 있는데요, 중국의 지역패권의지가 주변국들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만과의 관계에서는 이미 친중 쪽으로 대만이 넘어갔지만, 아직 미국의 영향력이 막대한 다른 주변국들에서는 영토분쟁을 매개로 미중간의 상징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중국이 일본과 벌이고 있는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토분쟁, 그리고 지난해 충돌한 베트남과의 남중국해 국경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갈등들은 미국이 올해 발표한 신 국방전략에서 보듯 이미 예견되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11년 11월 호 Foreign Policy 기고문에서 “21세기 지정학은 아시아에서 결정된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가 아니다. 미국은 이곳에서 행동의 중심에 있어야만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는 곧 2012년 미국의 ‘신국방전략지침’ 에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중국이 1980년대 중반 이후 채택한 국방전략은 미국 해군이 중국 근해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하는 Anti-Access 혹은 Area Denial (반 접근 혹은 지역적 접근거부)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미국이 새로 발표한 신 국방전략은 중국의 이 전략을 노골적으로 거부한 것이며, 중국의 해양진출을 저지하고 아시아에서의 정치군사적 패권을 지키겠다는 것을 표방한 것입니다.

경제패권의 뒤에는 항상 정치군사적 패권이 함께 놓여져 있음을 미국의 국제질서 운용에서 분명히 봐온 터라, 미중간 정치적, 군사적 대리전은 앞으로 계속 빈번히 등장할 시한폭탄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역내 당사자들의 복잡한 갈등구조 속에도 동아시아 지역패권을 향한 미중간의 이해관계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상황 속에 체결된 ‘한미 FTA’나 ‘한중 FTA’ 협상은 단순히 자동차를 더 팔고 말고 하는 수준의 협상이 아님은 명백합니다. 미국의 중국봉쇄와 이를 뚫으려는 중국의 의도, 지역경제통합을 향한 자본분파들의 요구, 양강들과의 역학관계에서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주변국들의 이해가 한데 뒤섞인 정치외교전의 상징입니다. 그러기에 ‘한중 FTA’가 바로 동아시아 경제패권의 구도를 바꿔가는 첫 단추임을 꿰뚫어 보고, 자본의 이해와 요구가 어떻게 집약되고 조직되는지 당신의 그 번뜩이는 눈으로 지켜봐야 함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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