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8년, 모순으로 가득찬 재고용 조건

[낮은목소리](8) 이주노동자 장기체류의 권리가 필요하다

재입국 재고용 허용

지난 해 말 국회는 ‘외국인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된 골자는 4년 10개월간의 고용허가제 기간이 끝나는 노동자들에게 4년 10개월을 다시 일할 수 있게 해 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조건이 있다.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휴업, 폐업 등의 사유로 사업장 옮긴 이주노동자(이 경우는 사업장 이동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마지막 사업장에서 1년 이상 계약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즉, 4년 10개월 간 하나의 사업장에서만 혹은 이동 횟수에 포함되지 않는 사업장 이동을 한 경우에만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사업장과 재계약을 하고 본국에 3개월 갔다 와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결국 하나의 사업장에서만 일한 이주노동자에게는 최장 9년 8개월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이 개정안은 올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최근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확정된 구체 시행방안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으려면 ‘농축산업, 어업 또는 30인 이하 제조업’에서 근무하고 있어야 한다.

[출처: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배경;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양산

이 개정안이 나온 배경은 고용허가제가 상정한 이주노동자 고용기간의 한 순환이 지나면서 고용기간이 끝나고도 출국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2004년에 시작된 고용허가제하에서 2010년부터 고용기간 만료자가 나왔는데 2011년에 3만여 명, 2012년에 6만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이 가운데 현재까지 30% 정도가 초과체류를 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보면 3만여 명이 되고 이 숫자는 2013년이면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보니 2012년에는 미등록체류자 숫자도 17만 명을 넘어섰다.

고용허가제 도입 시기 당시부터 이주운동 진영에서는 고용기간이 끝나면 초과체류하는 노동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단기순환’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는데 이것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미등록체류자로 남는 이들을 내보내고 싶어도 일거에 단속해서 내보낼 능력도 가능성도 없다. 기업들도 오래된 인력을 원한다. 그러다보니 미등록체류자를 줄이고, 기업들의 이해에도 복무하기 위해 정부 스스로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단기순환 원칙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리면서까지 재입국 정책을 만들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성실근로자?

노동부는 이 제도를 ‘성실근로자 재입국제도’로 포장해서 말하고 있다. “사업장 변경 없이 성실근로 후 자진 귀국한 외국인근로자는 3개월 후 재입국하여 다시 4년 10개월간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노동부 보도자료, 2012.5.9)라고 발표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은 이주노동자가 성실한 근로자’라는 정부의 인식을 볼 수 있다. 즉 사업장에 어떠한 문제가 있든,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하든 사업장을 바꾸지만 않았으면 성실한 근로자로 보고 재입국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을 바꾸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나 사업장의 노동조건이나 여타의 상황이 괜찮으면 누가 이동하려 하겠는가? 사업장 이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고용허가제법에서도 4년 10개월 동안 총 5회의 변경을 허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같은 법 내에서 한 조항은 사업장 이동을 허용하고 있고, 다른 한 조항은 이동하지 않은 노동자에게 재입국 기회를 준다고 하니 법 자체로도 모순이 생긴다.

결국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은 경우’라는 조건은 이주노동자들을 사업주에게 더욱 강력히 종속시키는 효과를 낳게 될 것이다. 노동조건이나 사업장의 처우, 기숙사 상태 등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재고용되기 위해서는 참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사업주들은 이를 이용해서 노동조건을 더 저하시키려 할 가능성도 크다.

3개월 동안 출국?

또 하나의 조건은 4년 10개월 이후 사업장과 재계약을 체결하고, 3개월 동안 출국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3개월일까? 애초 노동부에서는 1개월로 방안을 냈는데 법무부의 주장으로 3개월로 늘렸다고 한다. 계속 고용하지 않고 출국 요건을 두는 이유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을 신청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에 합법적으로 5년 이상 거주한 이주민들은 영주권을 신청할 자격이 생기는데, 정부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들의 정착을 막으려 하므로 애초에 고용기간도 4년 10개월로 제한한 것이고 재고용에 있어서도 출국 요건을 둠으로써 ‘5년 계속 거주’를 채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5년 계속 거주를 확실히 차단하기 위해 법무부는 3개월이라는 충분한 단절기간을 두려는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견지한다고 표방하는 원칙은 내국인력 보완성(부족한 인력에 대해서만 받아들인다), 단기순환(단기간 노동한 이후에 내보내고 다른 인력을 다시 받아들이면서 순환시킨다), 정주화 방지(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인력이 정착하는 것을 막는다, 가족초청도 금지한다) 등이다. 즉 한국의 자본이 필요한 한에서만 이주노동자를 도입해서 단기간에 최대한 착취하여 쓰다가 내보내고 신규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제도가 고용허가제이다. 저임금 장시간 고강도 비정규노동을 아시아 차원에서 작동시키는 ‘단기순환 노동착취’ 시스템인 것이다.

이제 고용기간의 한 순환이 마감하면서 시스템 내의 모순이 표출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땜질처방으로, 그것도 사업주에게 노동자를 더 종속시켜 착취를 강화하는 꼼수같은 안을 내놓은 것이다.

조건없이 장기체류의 권리 보장해야

사업장을 변경하지 않은 이주노동자들에 한하여 4년 10개월의 고용기간을 한 번 더 부여한다는 정책은 이후 4년 10개월이 지나 후에 동일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즉 2017년에 가서 또 다시 체류 연장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3개월의 출국 요건이 있다고는 해도 일부 이주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는 9년 8개월의 장기 체류가 가능해진다는 것은 그들이 한국사회에 그만큼 공존하며 함께 노동하고 살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단기순환이라는 원칙에만 집착할게 아니라 장기체류가 불가피한 현실적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보장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서구에서도 대부분 처음에는 단기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였다가 이후에 문제점이 발생하여 장기체류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전환하였다. 장기체류를 이주노동자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보장하는 것이 인권에도 맞고 합리적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에서 사업주에 대한 종속성을 강화하여 노동착취를 더 심하게 만드는 ‘사업장 변경을 하지 않은 이주노동자’, ‘3개월의 출국기간’이라는 조건은 없어져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장기체류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올해 8월이 되면 고용허가제 시행 8년을 맞이한다. 근본적인 제도 변환의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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