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의 닮은꼴, 은행부실 책임은 어떻게 전가되는가

[기사로 보는 경제](12) 스페인과 닮은꼴 한국, 위기대책도 그대로?

은행은 왜 위기를 반복하나 – 글로벌 15개 대형은행 신용등급 강등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JP모건체이스, 모건스탠리, 도이체방크, BNP파리파, 크레디스위스, 캐나다왕립은행 ... 전세계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30개 대형금융기관들의 절반이 무디스에 의해 신용등급이 강등되었습니다. 특히 BOA는 ‘월가의 좀비’라 불릴 정도로 위험한 재무상태를 갖고 있었는데, 이번 강등조치로 씨티그룹과 함께 정크등급에서 불과 두 단계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무디스는 강등조치의 주요한 이유로 “단기차입에 바탕을 둔 투자사업이 글로벌 경기침체와 유럽발 채무위기가 증대되는 과정에서 자금조달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로부터 여전히 이들이 배운 교훈은 없었다는 걸 실토하는 장면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이런 조치를 취한 신용평가사들이야 말로 정말 말할 자격이 없는 핵심책임자임이 분명합니다. 부동산 모기지 부실채권에 말도 안 되는 신용을 남발한 주체들이니까요. 게다가 강등이유로 정부의 금융권 규제 강화를 예로 든 점은 여전히 규제되지 않은 시장에 대한 이들의 믿음이 얼마나 모순적인가를 또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용등급을 강등당한 이들이 금융시장에서 앞으로 어떤 부침을 겪을지는 정확히 예상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년간 벌어졌던 여러 은행위기 사례에서 보듯, 은행의 부실심화와 파산은 결국 구제금융을 위한 공적자금의 투입의 경로를 밟게 되고 다시 국가재정을 압박하게 되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재정긴축과 사회보장제도의 감축을 강요받게 됩니다.

다음 주 구제금융을 확정짓는 스페인과 이에 앞서 2010년 구제금융을 먼저 받았던 아일랜드 역시 그러하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의 진앙지였던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멀리 가면 90년대 부동산 버블붕괴로 지금까지 ‘잃어버진 20년’을 지내고 있는 일본도 그러합니다. 다들 모두 은행대출자산이 걷잡을 수 없이 부실화되어 폭발한 케이스들이죠.


위기국가들의 닮은꼴, 부채의 책임이 어떻게 전가되는가? - ‘손실의 사회화’

문제는 이런 위기에서 정작 책임져야할 주체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은행파산으로 인한 다수의 예금피해자들과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재정손실을 직간접적으로 떠맡게 되는 다수 국민들이 남게 됩니다. 다음 표에서 보듯 은행부실문제의 해결 수순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정부재정으로 메우는 방법으로 귀결됩니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장기불황의 경향이 지속되는 조건에서 국가재정의 압박은 국가채무위기로 전이되고, 위기 대응에 따른 긴축의 고통은 다시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일반 민중들에게 전가되는 과정을 밟습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이 90년대 일본의 버블붕괴를 제외하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이후 벌어진 은행위기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미국에서 시작된 2008년 위기의 후폭풍은 전 세계를 집어삼켰다고도 볼 수 있는데요. 이번에 신용등급 강등을 당한 세계대형은행들처럼 많은 글로벌 은행들이 아직도 단기차입에 따른 금융투기적 사업행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또한 스페인, 아일랜드, 미국, 일본 사례에서 보듯 부동산 버블과정에 남발된 무분별한 은행대출이 결국 부실사태의 근원이었으며, 화폐주권이 없는 취약국들의 경우 급격한 자본이탈로 인해 황급히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는 점입니다. 먼저 부동산 버블 발생과정을 보면 일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위기사례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자산거품 싸이클과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에 따른 투기적 양상이 2000년대 전세계에서 동일하게 광범위하게 벌어졌음을 의미하고 저금리기조에 따른 과잉유동성에 기초한 은행들의 대출경쟁과 모기지 파생상품이 결국 파국이 씨앗이었습니다.

일본의 버블 붕괴에서 보듯 버블해소를 위해 10년이 소요되었던 점을 본다면, 대출자산의 부실에 따른 은행위기는 계속 발생할 것이고 손실 보전을 위한 은행들의 과도한 투기적 행태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위험자산 운용에 따른 추가부실의 위험도 더욱 증가하게 되는 은행위기의 악순환이 계속 될 것입니다. 특히 덱시아의 사례에서 보듯 채무위기국가의 국채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은 담보가치의 하락으로 인해 유럽중앙은행 ECB의 지원 없이는 자금조달의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이미 ECB는 올해 1월 두 차례의 장기대출프로그램 LTRO를 통해 유럽 내 은행들을 지원한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이번 스페인 위기를 겪으면서 바닥났음이 확인되었고, 좀 더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은행연합’이라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은행위기를 둘러싼 갈등과 제언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불구경할 겨를 없다! 우리 집 뒷마당이 불타고 있다! - 한국과 스페인 싱크로율 90%

구제금융을 받게 될 스페인의 금융위기를 바라보는 국내 주요언론들은 우리와 닮은꼴인 스페인의 현 위기상황이 한국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과 스페인 경제 위기의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부동산 시장의 버블붕괴와 가계부채의 악화, 이에 따른 은행부실과 파산이 공통점으로 지목되기 때문입니다.

[출처: 한국은행]

위 표에서 보듯 우리와 스페인과의 싱크로율은 거의 90%에 가깝습니다. 어떤 지표에서는 더욱 심각하기도 한데요. 가령,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5% 포인트 가까이 더 큽니다. 이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 2007년 당시 미국의 145.8% 보다도 9.1% 포인트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현재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포르투갈, 그리스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이고요. (참고 : 포르투갈 154.1%, 그리스 97.8%, 이탈리아 80.1%)

최근 부동산 활황기에 이뤄졌던 집단대출 연체율이 일반가계대출 연체율 0.89%의 두 배에 가까운 1.56%로 급증했고, 은행의 집단대출 부실채권도 늘고 있습니다. 3월 말 부실채권 잔액은 1조 2000억원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33%나 증가했고, 부실채권비율도 0.91%에서 1.21% 상승했습니다. 아직 부실채권 비율 8.7%에 이르는 스페인과 비교할 때, 그리 염려할 수준은 아니겠지만 스페인보다 버블붕괴의 시작이 2년 늦었다는 점을 볼 때, 앞으로의 전개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각에서 제기되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한 DTI 규제 완화는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며, 이에 국토부가 부화뇌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민망스럽기까지 합니다.

다음 번 글에 은행위기를 필두로 한 국가채무위기의 대안에 대해 본격적으로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은행에 대해서는 그 본래의 목적에 맞게 되돌려 놓는 것이 대안의 시작일 것입니다. 몇몇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사후약방문과 같은 부실처리와 책임전가를 위한 형식적 국유화가 아니라, 선제적 대응으로서의 공적기관화를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은행 민영화’와 ‘자본시장통합법’에 더욱 공을 들이는 금융당국의 빗나간 시장주의와 저축은행 부실을 방조한 금융관료들의 행태가 빚어낼 끔직한 비극. 이것이 현실화되기 전에, 은행의 공적기관화를 의제로 제기하고 중지를 모아갈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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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 경제위기 , 스페인 , 은행위기 , 국가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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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옷

    이 연재기사 참유익합니다

  • 이명준

    시옷 님 / 감사합니다. 힘이 나는군요^^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