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

[최인기의 사진세상](17) 따뜻한 그림을 보듬은 태극도 마을


태극도 마을은 파란색 레고블록을 짜 맞춰놓은 듯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산 사하구 감천 2동입니다. 이국적인 정취와 독특한 풍경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진가들이 찾았던 곳이, 지금은 매년 7만 명이 넘게 방문하는 부산의 명소로 바뀌었습니다. 우선 찾아가는 방법은 부산지하철 괴정역 6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1번을 타거나, 택시를 잡아타는 것입니다. 감전초등학교에서 하차하면 기본요금 정도 나옵니다.

마을버스 정거장에 내리자마자 바로 눈에 띄는 근처의 돼지국밥집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부산에 내려가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돼지국밥입니다. 서울의 순대국과 비슷한 맛인데 순대가 빠지고 돼지고기를 얼큰하고 담백하게 끓인 음식입니다.



조금 걸어 내려오면 마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작년 초에 방문했고, 가을에 다시 들렀습니다. 감천동은 마을을 관통하는 도로와 미세한 골목길이 가로세로 촘촘히 이어져 있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가는 산복도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탈에 자리 잡은 탓에 앞집의 옥상 위에 마치 뒷집이 계단처럼 이어진 주거형태로 오래된 도시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솔밭3길 ‘할배 산소’라고 부르는 태극도 교주의 무덤에서 계단으로 진입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빨랫줄에 걸린 옷들과 지붕에 말려놓은 운동화, 문 밖까지 나와 골목에서 배추를 다듬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올레길을 걷는 재미가 자연에 좀 더 가까워지려는 노력이라면 골목길을 걷는 이유는 사라져 가는 골목길을 통해 과거의 회상에 빠져보거나, 사람 사는 모습을 직접 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작은 쌈지공원이 나타나고, 계단을 따라 천천히 돌아 솔밭3길에서 좌회전하면, 폭이 1미터가 채 되지 않는 지붕과 처마가 위태롭게 맞닿아 있으며, 마치 아케이드 같은 길이 끝없이 계속됩니다. 작년 봄에 왔을 때와 달리 감천동의 변화는 눈부십니다. 그런데 여기의 변화는 모든 걸 허물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게 아니라, 거친 계단과 위태롭게 서 있던 녹슨 철 난간은 없애고 새롭게 단장하거나, 골목의 담벼락을 화사하게 칠하고 낡은 지붕들도 더욱 새파란 색으로 단장한 모습입니다. 그 사이 사이로 벽화들을 배치하여 마을 전체를 하나의 박물관처럼 다듬었습니다. 원래 있던 구멍가게도, 식당들도 새로 단장을 마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어디론가 마실 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벽화의 모습과 퍽이나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얼마나 자주 이 길을 다니셨을까요?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맞서 버티고 서 있는 나무처럼 뒷모습이 당당하십니다. 푸른 파를 심어놓은 화분과 그 옆 골목엔 누군가 의자를 내놓았고, 바로 밑 양지바른 곳에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길고양이 한마리가 게으른 모습으로 한없이 길게 하품을 합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든 말든 상관없다는 표정이 귀엽고 능청스럽기도 합니다.

정자 밑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던 어르신들 사이에 슬쩍 끼어들어 말을 건넸습니다. 이곳이 태극마을로 불리게 된 배경은 한국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극도를 믿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피난을 와 모여 살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마을의 내력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스물네 살 적부터 이곳에 정착하셨다는 정재암(81) 씨는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원래 여기는 왜놈 땅이었어, 그 후에 땅을 불하받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게야. 56년도에 보수동에 살던 태극도 사람들이 철거로 이리로 들어오기 시작했지. 그전에는 산에 초가집 서너 개 모여 있는기라. 물도 없어서 저 밑까지 내려가 길어 먹었는기라. 그 후에 발전소도 생기면서 부로끄 집들이 점점 늘어나고 전국에 태극도 사람들이 모여 정착했고마. 나중에 다시 서울 중곡동으로 이전을 했어. 처음에는 저 밑에 집값이 이곳보다 못했어. 여기서 고개를 넘어 20분이면 부산 중심지로 갈 수 있어서 비교적 교통이 좋지. 아랫집 두 채 팔아서 한 채 샀는데 그 후에 발전소 생겨서 바뀌었어…….”


부산은 한국전쟁 중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산꼭대기나 바닷가 근처에 집단 거주지를 형성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구 영주동과 동광동이고, 그 외 영도 신선동, 영선동, 청학동, 우암동이며 감천동도 대표적인 피난민 집단 주거지였답니다.

작년 초 봄에 이곳을 방문 했을 때는 건강탕이라는 동네 목욕탕이 있었지만 이제는 4층짜리 마을회관으로 산뜻하게 바뀌었습니다. 목욕탕을 개조한 마을주민센터인 감내어울터 옥상에는 전망대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감내어울터에서 잠시 쉬면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감천 앞바다를 바라보며 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작년부터 감천동에 가난한 마을을 보듬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이 마을 곳곳에 다양한 벽화와 미술품들을 전시해 놓기 시작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아트팩토리 인 다대포’라는 단체가 ‘꿈을 꾸는 부산의 마추픽추’라는 주제로 당선되면서 마을의 변화는 큰 폭으로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2010년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와 2011년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해 마을 안에는 감내카페와 마을 홍보소인 하늘마루, 기념품 판매소인 아트샵, 작은 박물관, 미술관 등 다양한 공간과 사업들이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2012년 지역전통 문화브랜드’ 우수상에 선정되면서 주민들이 주도하는 협의회를 구성하여 문화예술인, 학계, 주민, 행정기관이 참여하는 문화마을 조성사업과 다양한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조례 제정과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체계적인 마을 만들기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는 소식입니다.


마을에 따뜻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일 텐데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지 알아봤습니다. 이곳에서 약 30년을 거주하신 사진 속의 주민 제갈영자(56) 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들에게는 집수리 등의 지원이 이루어지는데 다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가난해도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혜택이 없어 불만이 많다고 합니다. 곳곳엔 지붕이 낡았거나 군데군데 무너질 듯한 담장들이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10년 전 화재로 두 채의 집이 불에 탄 사건을 언급하면서 대형화재가 나지 않도록 지원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도시가스 보급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골목길을 서성이는 외부인의 시선도 주민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듯 했습니다. 어떤 주민은 일단 마구잡이로 들이대는 카메라 공해를 지적하기도 하고, 한번은 바깥에 널어놓은 신발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마을 만들기의 사례 중 가장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일이년 만에 마을의 변화를 실감케 했습니다. 천마산과 옥녀봉 사이에 위치한 마을 특유의 정경 때문에 문화예술인 등 외부의 관심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마을 만들기 참여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애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공간이었기에 이들의 경제적 문제에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좀 더 많이 기획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만난 주민들의 반응은 이러한 변화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특히 마을이 왁자지껄해지면서 활력이 넘쳐 무엇보다 즐겁다고 합니다. 덩달아 식당들과 집을 수선해 주는 업소나 철물점은 활황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밖에도 마을의 북 카페와 기타 다양한 문화시설에서 일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는 듯 했습니다.

작년 초 봄에 방문했을 때와는 달리 주민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나뭇잎과 나뭇잎의 경계가 무너져 푸르른 숲을 이루듯, 호기심의 눈초리로 마을 곳곳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줍니다.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마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듯합니다. 사진 속의 작은 아이는 이 마을의 모델이라며, 카메라 앞에 넉살좋게 포즈를 취해줬습니다. 붙임성 좋은 아이들의 눈망울에 순진함이 잔뜩 고여 있어 각박하게 찌든 서울 사람의 가슴에 촉촉한 단비를 적셔주는 것 같습니다. 마을의 변화를 결정하는 순간 타인에 대한 경계를 허물고 연대로 돌아선 주민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멀리서 보면 작고 예쁜 푸른색 지붕들이지만 막상 돌아보면 막혔다 돌아가고 끊긴 듯 이어지는 골목길처럼, 어쩌면 감천동 골목길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을 꼭 닮지 않았나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골목길을 돌아보는 것은 이기적이긴 하지만 타인의 삶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아주 짧은 시간 푸르른 빛으로 바뀌어 가면서 하나둘씩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창가에 비춰지는 주황색 불빛은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듯 고즈넉해 보입니다. 사람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부산은 급히 왔다가 서둘러 떠나야 하는 곳. 그래서 언제나 아쉽고 그리운 곳입니다. 오랫동안 돌아보고 싶은 부산의 감천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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