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탑구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은 눈부셨다

[포토뉴스] 재능교육 종탑 노동자들과 함께한 윷놀이 한판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1일 오후, 20미터 높이 혜화동 성당 종탑 꼭대기에서 농성중인 재능교육지부(노조) 오수영·여민희 조합원과 함께 하는 윷놀이 한판이 열렸다.



수영 투쟁팀과 민희 연대팀으로 나뉜 30여 남짓 참가자들은 멀리 종탑 위 두 사람에게 말이 잘 보이도록 피켓으로 윷놀이 판을 놓고, 서로 다른 무릎담요를 두른 인간 말이 윷판을 돌아다녔다. 지상에서 같은 팀원이 윷을 던지면, 종탑 위 농성자들이 무선 마이크로 인간 말의 진행방향을 지시했다. 무선 마이크를 통해 도로 한가운데를 서로의 목소리가 가로지르고, 윷놀이를 즐기는 기세가 혜화동 로타리 거리를 울렸다. 윷놀이는 빽도 두 번이 나오는 바람에 수영 투쟁 팀이 승리.

  종탑 속 창틀에서 바라본 재능교육 본사

윷놀이가 끝나고 오수영 조합원과 여민희 조합원은 종탑위에서 노래도 불렀다. 노랫소리도 혜화동으로 퍼져나갔다.

누가 이기든 승리의 선물로 준비된 구안와사 방지용 쿠션 두 개는 승리팀 참가자를 통해 종탑 위로 전달됐다.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로 오래된 적벽돌이 교차하는 종탑 속 백열등 불빛을 따라 굽이굽이 계단을 오르면, 조잡하게 만든 조그만 철근 콘크리트 발판에 마지막 나무 사다리가 걸쳐 있다.


그 발판위로 난 사람 하나 올라갈 구멍을 향해 두 농성자의 이름을 부르면 두 사람이 얼굴을 내밀고 반갑게 손을 흔든다. 안전 문제 때문에 더는 그 구멍으로 올라갈 수 없고, 승리의 선물도, 음식도 줄에 매달아 전해줘야 하지만, 그 구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은 눈부셨다.


짧아서 아쉬웠고, 농성 노동자들이 못내 마음에 걸려 짧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인 설 연휴는 그렇게 끝나갔다. 오수영 조합원의 하나 뿐인 아들 아홉 살 채운이는, 사촌들과 노는 게 더 재미있다고 오기로 한 윷놀이 판에 오지 않았다는 엄마의 유쾌한 농담이 유독 귀에 남는다.

재능 투쟁은 11일로 1,881일차가 됐고, 노동자들의 요구는 노동조합 인정과 해고자 복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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