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저널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룬 기사와 분석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서도 진보평론의 세월호 특집은 국가에 대한 심도 있는 사유를 촉구한다. 매우 익숙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많이 논의되지 않았던 이론 차원의 국가분석과 세월호 문제를 관련짓고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권창규(‘어떤 죽음을, 어떻게 슬퍼할 것인가: 세월호에 대해, 세월호로부터’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리계 논의를 언급하며 “세월호 참사는 자본과 일체를 이루는 ‘공리계’로부터 태어난 자본주의 국가가 자본 축적에 방해가 되는 국민들을 학살한 것”이라 주장한다. 현 국가는 민주주의라는 허울 이면에 힘없는 자들의 죽음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합의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주변인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는 2008년 여름 평택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있었고, 2009년 1월에는 서울 용산의 철거민들이 있었다.”
오창룡(‘세월호 참사와 책임회피 정치: 신자유주의 국가권력의 무능 전략’)은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권력의 중앙집권화와 ‘인격화’ 현상을 예측한 풀란차스의 논의를 소개한다. 풀란차스는 행정 권력이 지도자 일인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강조하면서도, 위기관리에 있어서만큼은 원칙 없는 전략부재가 일반화될 것이며,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정치적 위기 회피의 한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경향이다. “위기 상황을 사적인 책임의 문제로 돌리고 시스템의 문제를 은폐하는 것이 신자유주의 국가 전략의 본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1970년대에 예견된 바였다.
최원(‘멈춰진 세월, 멈춰진 국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폭력의 새로운 현상’)은 미셸 푸코의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개념과 발리바르의 ‘초객관적 폭력’ 개념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재조명한다. 푸코가 규율권력과 구분한 안전권력이란, “인구 전체에 관심을 두면서, 문제가 되는 행위 또는 현상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사회가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수 있는지 ‘비용계산’을 행하는” 권력이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사고방식은 “인구의 일부를 죽도록 방치하는” 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 국가 폭력의 새로운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이제 국가의 무기력과 방관이 낳은 참사는 “수백만의 내버릴 수 있는 사람들의 총체적 제거”로 등장하지만, 문제는 “폭력이 누군가에 의해 저질러진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에 의해 저질러진 것인 양, 자연적인 것인 양” 등장하는 데에 있다. 신자유주의 폭력은 권력의 위치, 사회적 지배를 식별할 수 없는 형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김종곤(‘세월호 트라우마와 죽은 자와의 연대’)은 세월호 애도에 대한 국가 통제를 프로이트의 트라우마 개념을 통해 비판한다. 300여명의 희생자들을 낸 세월호 참사는 죽음을 경험한 한국 사회에 우울, 불면증과 같은 대리 트라우마를 안겨 주었다. 기존 참사와 다르게 이 트라우마에는 “국가가 그들을 모두 살려낼 것”이라는 믿음의 붕괴가 깊게 개입되어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옥내에 설치된 분향소에 조문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애도의 방식도 불허”하는 행태는 국민을 “자존감의 상실과 무기력함이라는 ‘상태’에 빠뜨려 헤어 나올 수 없게” 하고 있다. 필자는 트라우마를 원한의 감정으로 전이시키고 눈물의 퍼포먼스를 통해 진정한 애도를 가로막는 ‘기억의 탈정치화’와 ‘정치적 멜랑꼴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서영표(‘국가만 문제 삼는 우리들이 더 큰 문제다!’)는 밀리반드와 풀란차스의 논쟁을 소개하며 국가의 이데올로기적이고 문화적인 기능을 부각시키고, 국가의 객관성과 분리될 수 없는 행위자들의 실천에 주목한다. 그리고 경쟁논리에 중독되고 마비된 한국사회의 현실을 지적한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소비한다. 더 이상 폭압적인 국가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 속에서 “스스로를 자본주의적 인간으로 규율하고 훈육한다.” 잠재적 재난 당사자로 생존해가면서도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국민 안 해”라는 자기 부정으로부터 “새로운 질서, 새로운 연대의 원리를 향해 나가는 첫걸음을 시작하자고 주장한다.
고민택은 “세월호 사태가 참사를 넘은 참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고 부르주아 국가에 내재되어진 ‘폭력성(계급성)’을 폭로한다.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자본주의 이윤체제 때문이며, 따라서 세월호 투쟁은 반자본주의 투쟁과 단 하나의 생명도 구하지 않고 몰살시킨 정권에 대한 투쟁이어야 하며 여야 협상이나 유가족의 사정에 갇히지 않는 노동자 민중의 독립적인 요구를 내걸고 독자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특별법에 제약되지 않는 독자적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을 해나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완화, 민영화’ 반대 등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결합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평론 특집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국가’이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란 무엇인가? 라는 고전적이고 이론적인 물음에서 더 나아가 새로운 물음을 사유하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해체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책무였던 국가, 기존에 정의되었던 혹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국가에 대한 하나의 정의는, 해체되어야 함을, 아니 이미 해체되었음을 상기시켜 준다. 국가 정의는 이미 허구적인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해체되어 텅 빈 국가의 내용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으로 치환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허구와 환상을 실체로 간주할 때, 대량 학살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파시즘은 이러한 것들 중에 대표적인 예다.
이렇듯 이번 진보평론 특집을 읽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국가의 정의는 이미 해체되었고 그 해체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를 제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기존 국가 정의를 해체함은 미래의 우리의 삶을 다시금 규정하기 위해서이다. ‘국가’라는 말의 해체 속에서 신자유주의적 국가라는 것은 다시금 강조된다. 이러한 강조는 우리에게 신자유주의 국가가 역사적으로 낡음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자유주의 체제로 되돌아가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금의 시대는 낡음의 시대, 퇴행의 역사이다. 세월호 참사는 그 낡음의 시대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집어 삼키는 현실을 드러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는 필연적으로 세월호 참사처럼 생동하는 모든 것을 이윤 가치라는 굳어진 환상과 허구 속에서 죽어가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비단 국가에 대한 질문만으로 그치질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분법적인 ‘사고 틀’은 방송뿐만 아니라 일베 현상 등에서도 이어진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쟁이라는 체제 그 자체의 운영 원리 때문에 세월호 참사 등을 낳게 하는 한편 타자에 대한 공감력을 약화시키는 보수적인 사유의 틀이 세상을 지배하게 만든다. 그 보수적인 사유 틀의 이면에 자리하고 괴물처럼 꿈틀거리고 있는 것은 이원적인 사유 틀이다. 문제는 그러한 사유 틀이 내재하고 있는 폭력성과 반사회성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자신들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 또한 정의와 민주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이원적 사유 틀로 무의식적인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내가, 혹은 우리가 이원론적 사유를 닮은 또 다른 유령의 자식들이 아닌지 말이다. 유령은 푸닥거리로만 물리칠 수 없다. 유령의 출몰은 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되물어야 한다. 역사의 거름 속으로 묻어야 할 사유와 도래해야 할 새로운 정의, 국가라는 체제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이 물음을 진보평론 특집과 함께 시작해 보자.
<진보평론 61호 목차>
편집자의 글: 멈춘 것은 유족들의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시간이다!
* 특집 : 세월호 참사가 던진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
- 어떤 죽음을, 어떻게 슬퍼할 것인가: 세월호에 대해, 세월호로부터/ 권창규
- 세월호 참사와 책임회피 정치: 신자유주의 국가권력의 무능 전략/ 오창룡
- 멈춰진 세월, 멈춰진 국가: 신자유주의적 통치성과 폭력의 새로운 형상/ 최원
- 세월호 트라우마와 죽은 자와의 연대/ 김종곤
- 세월호 참사 후 한국사회 정치지형 변화가능성/ 고민택
- 국가만 문제 삼는 우리들이 더 큰 문제다!/ 서영표
* 쟁점
-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 하성환
- 전교조, 불순한 정치를 말하다: 하성환의 ‘전교조 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적 제언’을 비판하며/ 이철호
* 정세
- 2014년 퀴어문화축제의 경험, 성적 혐오의 조직화를 방관해서는 안 되는 이유/ 나영
-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밑바닥 인생 하청기술자들의 저항/ 박점규
- 현대차비정규직, 불법파견을 둘러싼 쟁점과 해결방안/ 최병승
* 국제
2014 유럽의회 선거와 좌파의 대응/ 김강기명
* 일반논문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한국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손호철
* 다시읽기: “대표의 개념”과 “선거는 민주적인가”: 정치적 대표와 대의 민주주의의 미래/ 홍철기
*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소수자의 리액션’ 혹은 울프식의 ‘뼈 있는 수다’(“자기만의 방”)/ 조배준
* 서평: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오세영
* 독자투고: 최진석 비판: 자유인가 무책임인가, 경계와 교차로에 선 철학/ 이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