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어두운 절망의 봄을 뚫고

[양규헌 칼럼]

봄은 시작의 계절이다. 자연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움돋음하고 부드러운 바람은 봄의 향기를 담아낸다. 새로운 생명체가 자연의 변화법칙에 응답하는 계절이다. 사람들은 긴 겨울을 딛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한다. 툴툴 털고 봄바람에 실려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계절이기도 하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바쁘게 달려가거나 짝을 지어 왁자지껄 학교로 가는 뒷모습에서 아롱거리는 화사한 봄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봄은 새로운 계절, 생명의 계절, 희망의 계절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며 긴 겨울을 뚫고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레이젤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으로 선정될 만큼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작가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에는 밝음과 어두운 면이 있다고 한다. 화학약품(농약)은 인류의 절대적인 식량기아를 해결하여 오늘날의 부유한 삶을 이끌어 낸 공로로 ‘과학영농’이라고 칭송되었는데, 이 책의 출간으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화학약품의 어두운 면이 환경과 삶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온 세상에 드러났다.

이야기는 미국대륙 한가운데 어느 아름답고 따뜻했던 마을에 언제부터인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며 시작한다. 새들이 죽고, 물고기가 죽고, 꽃은 피지 않아 나무는 말라비틀어지고, 사람은 이유 없이 죽어 나간다. 이런 섬뜩한 상황은 도처에서 쉽게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원인은 무엇일까?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작가는 ‘침묵의 봄’이 계절을 알리는 소리가 점점 없어지는 것도 있지만, 모든 생물이 아무런 반응도 없고 생명력을 잃어가면서 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책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재앙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풀을 죽이는 제초제가 살포되고 수많은 유독물질에 노출되어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돈이 주인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욕심과 욕망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파괴시키고 해체시키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 충격적인 공포는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보게 된다. 장마철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 꽁무니를 아이들이 좋다고 따라다니는 모습은 무지에서 온 위기일 것이다. 모기를 잡는 하얀 연기가 우리 몸에 쌓이면 죽음을 부를 수도 있다는데,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의 즐거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민중의 보건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재앙, 즉 죽음의 공포 속으로 우리를 차츰 몰아넣는 것은 아닐까.

공장에서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폐수로 강 상류의 지표수와 지하수가 오염되어 강과 바다가 오염되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하며, 오염된 물고기가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외침이 바다건너 일본과 미국만의 이야기일까. 한강에서 기형적인 물고기가 나타나고, 영산강과 낙동강에서 떼죽음 당한 물고기가 나타나는 현상이 물고기에만 국한된 저주라고 할 수는 없다. 심해에서 잡은 참치는 중금속에 오염되었다 하고, 태평양에서 잡은 물고기는 일본 방사능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지속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고 있다. 아무리 그 양이 미미해도 거듭되다 보면 몸속에 축적되어 마침내 중독을 일으킨다. 가정용 세제에는 독성이 심한 디엘드린이 함유되어 있고, 식탁 위 고기와 동물성 지방을 포함한 음식에도 독성물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허용량이라 불리는 오염의 최대 한계치를 제정하는데,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결점이 있다. 식품에 있어서 유독물질의 안전한 수준이나 바람직한 수준이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섭취행위로 그 위험이 누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건강에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보다는 로비의 힘이 강하게 작동한다는 점도 심각한 사안이다.

한국은 예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라 했다. 산지가 많고 농경지가 좁아 인구밀도는 높았지만, 자연의 높은 자정능력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문화와 관습 덕분에 환경오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초에 시작된 경제개발은 고도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이루었고, 20년도 안 되어 환경오염과 파괴가 심각한 수준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생활의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구실로 모호한 안전수준은 형식에 그치고, 위험요소들은 마구잡이로 인간의 몸속으로 스며든다. 지구온난화나 수질, 토양 대기오염의 주요 요인은 인구증가, 산업화, 도시화라고 한다.

올바른 지적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분석은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라는 도식의 배후에는 자본이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정능력을 벗어나 버린 현재 상태에서 오염의 원인은 ‘자본의 탐욕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윤배가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더 많은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배설물을 마구잡이로 쏟아낼 뿐, 정화단계도 없이 배설물을 도처에 흘려보내 인간에게 스며들게 한다.

인간이 독성오물을 피해나갈 수 있는 도피처나 퇴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환경오염은 연안지역으로 확대됐다. 1980년에 마산 앞바다가 ‘사해선언’이 되었고, 서해의 주요 연안은 3등급 이하의 수질을 보인다. 육지에서 생긴 오염 물질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주요 하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든다. 이러한 환경오염은 동식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건강과 재산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데, 그 정도는 갈수록 심각한 수준이다.

봄을 껴안고 나비가 되는 꿈을 꾼다고 찬란한 빛의 봄이 다가오지는 않는다. 봄철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소중한 가치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낡은 말뚝도 봄이 오면 푸른빛이 되기를 희망한다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의 희망은 오죽할까. 그런데 우리의 봄은 전쟁처럼 다가오고 있다. 총성 없는 포화가 온 산야를 점령하고도 모자라 인간까지 지배하는 자본의 축배 소리가 우리를 암울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다. 메마른 가지 끝이 싱그러운 생명을 재촉하듯, 사람의 긴 생명과 건강한 삶, 행복을 위해 우리도 저들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총성 없는 전쟁에 나서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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