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사태를 보는 한국의 교훈

[소셜파워] 디폴트, 시장 방식으로 해결해라

그리스 사태, 복지병이 원인이라고 떠드는 이유

채권단의 긴축안에 대한 그리스 국민투표에서 ‘반대(Oxi)’가 많으면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퇴출)가 되고, 그렇게 되면 그리스는 국가부도와 함께 경제가 절망과 도탄에 빠지게 된다고 메르켈 독일 총리와 유럽 지도부는 연일 주장해 왔다. 그러나 그리스 국민들은 압도적 ‘반대’로 협상안을 부결시켰다.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그렉시트도, 국가부도도, 그리스 경제의 추락도,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긴축을 받아들여 연금을 줄이고 정부지출을 줄여 빚을 갚으라고 하는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의 위협이었을 뿐이다. 긴축안을 반대한 그리스 국민과 정부는 현재 부채탕감을 목표로 유로그룹 내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리스 국가부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접적으로는 선박금융에 대한 투기와 은행부실, 이 은행부실을 국가부채로 떠안은 ‘손실의 사회화’, 유로존 가입 조건을 맞추기 위한 보수당 정부의 분식회계, 초국적 투자은행의 금융사기, 신용평가사의 의도적 신용하락 등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해운과 관광산업 중심의 그리스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유로존으로 진입하면서 발생한 문제가 있다. 또한, 그리스의 심각한 빈부 격차와 만연한 부정부패도 문제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때만 되면 들리는 캐롤송이나 고장난 라디오처럼 그리스가 복지병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소리가 똑같이 되풀이된다. 조선일보와 일부 시장주의 경제학자, 심지어 기획재정부 관료들까지 거들면서 그리스의 국가부도 사태가 그리스 국민들의 안일함, 복지병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호도하고 있다(여기에 옵션으로 추가되는 것이 탈세와 만연한 부정부패다). 이들의 주장은 지난 수십 년간 한결같다. 남미에서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포퓰리즘 때문이고, 유럽에서 발생한 문제는 복지병이 원인이란다. 포퓰리즘과 복지병은 똑 같은 얘기인데, 정치인들의 권력욕이 대중의 이기적 욕망과 결합한 정치가 포퓰리즘이고, 국가의 미래는 아랑곳없이 국민대중이 자신들만 생각해서 당장 편하게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이 복지병이다. 어느 것이나 대중의 탐욕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은 문제의 원인으로 부정부패와 탈세 문제를 언급하지만 그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이기 위한 근거이며 가장 중요하게 복지병을 거론한다. 부정부패가 문제라고 하면 정부의 재정지출 규율과 감시기능을 강화하고 부정부패를 일소할 수 있는 국가적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단 한 가지도 촉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탈세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내놓은 부자증세 등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오직 복지병에 대해서는 연금은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유야 명백해 보인다. 유럽 채권단은 빚을 빨리 돌려받기 위해 정부지출 중 연금지급 부분을 줄이라는 것이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한국경제에 위기가 찾아오면 국민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근거를 국민들의 복지병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복지병?,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스의 탈세문제가 심각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세금을 잘 내왔다. 탈세는 대기업과 부자들 또는 전문직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 당시 그리스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조세와 사회보장비를 합친 부담률)은 OECD 34개국의 딱 중간인 18위와 16위다. 반면, 한국은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모두 뒤에서 네 번째인 31위에 불과하다.

지하경제야말로 탈세의 온상이라고 하는데, 조선일보 같은 보수일간지들은 그리스 지하경제 규모가 커 정부의 조세수입이 줄어 국가부도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지하경제의 규모는 누구든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그렇게 심각하다는 그리스 지하경제 규모가 전체 경제의 1/4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는 한국의 지하경제가 24%라고 주장해 왔다. 어째 한국과 그리스의 지하경제의 규모는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그뿐인가? 우리 상황은 지하경제는 고사하고 지상경제에서도 걷을 수 있는 세금도 제대로 걷지 않고 있다. 법인세율은 23%로 미국 39.1%, 일본 37.0%, 독일 30.2%, 프랑스 34.4%에 비해 턱없이 낮고, 그리스는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평균 25% 이상이다. 이 법인세율은 법률상의 지표일 뿐 실제 걷은 실효세율은 이보다 더 낮다. 2010년 10대 재벌의 실효세율은 평균 15.1%, 대기업 평균 16.5%에 불과하다. 특히 영업이익이 사상최대였던 삼성전자는 11.9%로 다른 재벌기업들보다도 낮다. 2010년 삼성전자의 결정세액 추정액은 3조6371억 원이었는데 이 중 50.7%를 감면받았다. 세금 도둑놈이 과연 누구란 말인가?

또한 국민 1인당 노동시간은 당시 세계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던 한국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그리스가 2위를 차지했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금이며 사회보장비도 낼만큼 냈고, 세계에서 제일 열심히 일했던 그리스 국민들이 복지병 때문에 국가가 망했다고 하면 이게 말이나 되는 얘기인가? 그리스 연금문제에 대해서도 그리스 연기금은 그리스 국채가격이 반토막 나면서 이미 100억 유로 이상의 손실을 봤다. 그리스 국채 가격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그리스 연기금은 오히려 국채 보유량을 더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스 연금기금마저 그리스 국채를 포기하면 전세계 누구도 국채를 사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채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 위기 상황에서 이미 그리스 국민들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고 있었다.

보수주의자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그리스보다 세 번은 더 국가가 거덜났어야 한다. 이제 입장을 바꿔서 그리스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 별로 없어서 국민의 의료비 지출 1위, 교육비 지출 1위, 노인빈곤률 1위인 한국에서,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 중 하나인 한국에서 국민들이 복지병과 게으름과 탈세에 눈이 멀어 국가부도 사태가 왔다고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국채 발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해서 국채 매입을 늘렸다가 결국 위기가 와서 연기금이 반토막 났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그런데도 채권단은 정부의 연기금 지출을 더 줄이라며 긴축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위기가 계속되어, 공식 실업률이 25%가 넘고 청년 실업률도 50%를 넘어서 젊은이들이 일을 하지 못해 전체 가구의 절반이 100만원 받는 연금 수입만으로 살아가는데, 이것을 더 줄여야 한다면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6년이 흘러도 끝날지도 모르는 이 위기 속에서 부채조정없이 연금을 계속 줄이고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당신은 언제까지 그럴 수 있겠는가?

기회를 두 번 놓친 그리스

2009년 말 드러나기 시작한 그리스 사태에서 그리스는 적어도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최초의 기회는 2010년 그리스 국가부도 상황에 몰렸을 때다. 그리스는 디폴트를 선언하고 부실에 빠진 은행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파산시켜야 했다. 그것이 그나마 그리스에 가장 피해가 덜한 방식이고 유로존 전체로도 위기를 가장 빨리 수습하는 방안이 되었을 것이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것도 거래행위기 때문에 위험이 따른다. 이 때문에 채권자는 부도 위험이 높은 채무자에게 더 높은 이자율을 매겨 위험부담을 나눈다. 그것도 모자라 CDS(신용부도스왑)라는 보험상품을 보험회사에서 구매한다(그리스 사태에서 이 CDS를 가지고 골드만삭스가 사기를 쳐서 엄청난 수익을 거둬들였고 그 반대급부로 그리스의 국가부도 위험은 더 커졌다).

그래서 결국 부도가 나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시장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면 된다. 보험회사는 CDS 보험금을 CDS 소유자에게 지급하면 되고, 채권국과 채권은행은 채권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시장에 내다 팔던가, 아니면 오를 때까지 기다리면서 가지고 있으면 된다. 채무국은 종이값이 된 부실채권을 시장에서 회수하던가 아니면, 시장방식대로 은행을 파산시켜 소멸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위기가 발생하면 결코 채권국이나 채권자들은 시장적인 방식을 원하지 않는다. 국내의 금융자산가와 대자본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채권이 시장에서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항상 긴축재정을 압박하는 것과 같은 ‘비시장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그리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시장적 방식으로 처리를 하거나 적어도 투자자의 투자실패의 책임도 함께 물어야 했지만,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과 유럽연합, IMF)는 그리스에게 이 모든 책임을 강요했고 그리스 정부는 트로이카의 구제금융 조건을 수락하고 말았다. 결국 아무 죄없는 그리스 국민들은 마치 보증인처럼 국가부도 사태에서 모든 책임을 떠안고 말았다.

두 번째 구제금융 협상을 하던 2012년에도 똑 같은 기회가 찾아왔지만 그리스는 여전히 채권단의 긴축을 수용한 채,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악순환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벌써 그리스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진지 6년이 되었다. 그동안 그리스 정권만 두 번이 바뀌었고 그리스 사회는 여전히 혼란에 휩싸여 있다. 그리스 경제는 회생조짐은커녕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채권국에서 벌어진 ‘손실의 사회화’
독일과 유럽 국민들도 피해자...트로이카의 구제금융


2010년 국가부도 위기 당시 그리스 부채 총액은 3100억 유로였다. 그 과정에서 그리스는 2520억 유로를 트로이카로부터 구제금융으로 지원받았고 이 가운데, 약 92%에 달하는 2300억 유로를 채권자들의 빚을 갚는 데에 썼다. 그 결과 2015년 그리스 부채는 3170억 유로로 70억 유로 늘었다. 그리스 부채가 줄지 않고 늘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부분이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변화가 하나 있는데, 그리스 국가부채의 구성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거의 전부 민간채권자들의 빚이던 것에서 이제 민간채권자의 빚은 거의 다 갚아 22% 정도만 남게 되었고, 대신 트로이카가 채권자가 되었다. 즉, 민간채권자에서 EU나 유럽중앙은행 등 공공기구가 채권자가 되었다.

이는 채권국 내부에서도 자국 은행이나 큰손들이 가지고 있던 못 받을지도 모르는 채권, 부실 채권을 자국 정부나 유럽중앙은행 등이 인수해서 부실을 정리해주는 ‘손실의 사회화’가 진행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자국 금융자본이 져야 할 부실의 부담을 그리스를 경유해서 자국의 국민들에게로 이전시켰다. 이렇게 되면서 유럽의 지도부 특히 독일 메르켈 정부는 “독일 금융자본 VS 그리스 국민”이던 구도에서 “독일 국민 VS 그리스 국민”이라는 대립구도를 현실화시켰다. 독일과 유럽의 국민들도 유럽 은행과 금융자본이 책임져야 할 부실의 부담을 떠안게 되면서 또 다른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시장에서 진 부담은 시장에서 해결해야
디폴트는 권리이며, 채무조정은 의무다


그리스 사태의 전개과정을 보면 채권단은 결코 그리스의 디폴트 즉, 국가부도 선언을 하지 못하게 했다. 기술적 디폴트니 뭐니 하는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지만 돈줄을 쥔 채권단 트로이카는 그리스가 디폴트 선언을 하지 않을 정도로만 돈을 주면서 (유럽의 자국은행의 빚을 갚는데 쓸 돈만 주면서) 계속해서 긴축을 강요했다. 결국 그리스는 지금까지도 디폴트 상태가 아니다. 지난 7월 2일 IMF 채무를 갚지 못한 것은 채무불이행 상태이긴 하지만 민간채권자의 빚이 아니므로 디폴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빚 돌려막기로 민간채권자의 빚을 다 갚게 되면 그리스는 영원히 디폴트를 못(?)하게 된다.

한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당장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채권국과 채무국의 돈 많은 부자들뿐이다. 2008년 IMF가 발행한 “국가 부도의 비용The Costs of Sovereign Default”이라는 보고서는 100년간 257건의 국가부도 사례를 연구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GDP 성장률은 디폴트가 일어난 해에 평균 1.2%포인트 하락했지만, 1년이 지난 후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리스크 프리미엄은 디폴트가 일어난 직후 1년간 4% 높아지고 그다음 해에 2.5% 높아졌지만, 2년이 지난 후에는 유의미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즉, 디폴트를 하면 1년 정도 힘들지만, 2년 이후부터 큰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다. (부채전쟁, 265쪽)

비슷한 시기 2009년 국가부도 사태에 빠졌던 아이슬란드는 아이슬란드에 투자했던 유럽은행들의 원금 지급계획을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시키고 디폴트를 선언하고 은행을 파산시켰다. 이는 채무자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채권자인 투자자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묻는 조치이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는 이런 조치들에 기반해서 2년 만인 2011년 IMF구제금융 프로그램에서 졸업했다.

그런데,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은 그리스는 무려 6년간이나 피만 쪽쪽 빨리면서 이 난리를 떨고 있다. 디폴트는 선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권국과의 협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부도 사태에서는 오직 부채탕감만이 채무국의 경기회복을 돕고 그나마 부채를 일부라도 상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보여준다. 지난 20년 동안 디폴트 사례에서 부채탕감(헤어컷) 비율은 40%가 넘는다. 2006년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미국과 유럽의 전승국들은 이라크 부채의 90%를 탕감해 주기도 했다.

그리스는 이제 세 번째 기회를 맞고 있다. 국민투표를 통해 트로이카와의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을 수 있게 됐다. 뒤늦었지만 투자자의 책임도 함께 묻고 그리스를 국가부도로 빠져들게 만든 그리스 국내 자본과 이들과 결탁한 정치세력들에게 책임을 묻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또한 독일과 유럽의 국민들도 자국의 금융자본이 져야 할 투자실패에 따른 부실의 부담을 국민들에게 전가하는 트로이카의 구제금융 지원방식을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돈으로 투자에 실패한 금융자본을 살려 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건 시장에서 진 부담은 시장 스스로 책임지게 하면 된다. [참세상연구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