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봉이 김선달,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소셜파워] 재벌기업 경영권 환수를 강화해야 한다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과 순환출자

롯데그룹 신격호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누가 어디 이사회를 장악했네, 아버지가 장남을 지지할 것이네, 사장단이 동생을 지지하네, 그룹이 어떻게 쪼개지네... 재벌 순위 5위의 롯데그룹이 껌이라면 역시 롯데 껌인 것처럼 이리저리 씹히고 있다.

그러나 신동빈, 신동주 형제의 경영권 논란처럼 재벌가의 분쟁은 낯선 일이 아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재벌기업 40개 가운데 18곳에서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다. 대표적으로 2001년 현대그룹에서 정몽구, 정몽헌, 정몽준 3형제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세 개로 쪼개졌다. 삼성그룹도 이건희와 이맹희의 해묵은 분쟁이 있었고, 두산그룹은 박용오, 박용성의 싸움이 터져 나와 박용오의 자살로 결말이 났다. 금호그룹은 박삼구, 박찬구의 싸움이 법정분쟁으로까지 진행됐고, 효성그룹도 조현준, 조현문의 갈등이 터져 나왔다.

이런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은 단순히 집안싸움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하면 국가경제가 휘청일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다. 범 5대재벌의 자산규모만 1000조 원이 넘어, 대한민국 전체 모든 자산의 12%를 5대 재벌이 소유하고 있다. 정부의 자산총액이 1,610조 원(2012년 기준) 정도임을 감안해 보면 5대재벌의 자산은 정부 자산 대비 2/3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재벌구조 속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니 대통령 선거전에서 후보들이 격돌하는 것 같은 권력투쟁이 난무한다. 선거의 공정성 시비가 국가를 뒤흔들 수 있듯이 그만큼이나 위험하기도 하다.

적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재벌구조 속에 이러한 분쟁의 씨앗은 필연적으로 잉태되어 있다. 제 아비들이 지분율 0.03%, 0.05%로도 그 어마어마한 재벌그룹 전체를 지배해 왔는데, 난들 못하겠는가 하는 재벌 집 자식들의 반란이 들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공정거래위원회]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지분율은 고작 0.7% 정도다. 총수일가 전체로도 1.28%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또 다시 조기석방 논란이 일고 있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재벌 가운데 가장 작아 0.03%에 지나지 않는다. 봉이 김선달이 환생해 재벌을 본다면 대동강 물이나 팔아먹은 자신의 소박한 스케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재벌이 이렇게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계열사 간 순환출자와 내부지분 보유 때문이다. 2015년 4월 현재 대기업집단 중 삼성, 현대차, 롯데 등 11개 그룹에서 458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존재한다. 이중 롯데가 416개로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삼성이 10개의 순환출자 고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롯데그룹은 총수의 지분율이 0.05%밖에 되지 않지만, 계열사 간 순환출자를 통해 5대 그룹 중 가장 높은 계열회사 지분율(59.56%)로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2013년 관련법을 개정하면서 새롭게 순환출자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금지됐지만, 기존의 순환출자는 그대로 용인됐다. 기존 순환출자는 2년 사이 개수는 많이 줄었지만, 지배구조가 단순화된 것일 뿐 지배구조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과 같이 순환출자고리가 이동되면서 재벌의 변칙 상속의 수단으로도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한다면 재벌지배체제는 용인될 수 있는가?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이 순환출자구조를 없애거나 단순화해 지주회사체제로 옮겨 간다고 하더라도 ‘소유지배의 괴리’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SK그룹이다. SK그룹은 (주)SK가 그룹의 지주회사지만, 최태원 회장 일가는 SK C&C를 통해 (주)SK를 옥상옥 형태로 지배해 왔고, 최근에 두 기업의 합병을 결정했다. SK그룹은 순환출자도 사라졌지만, 최태원의 지분율은 여전히 최저다.

그러면 이른바 주주친화적인 경영을 펼치고, 소수 주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고 이러한 괴리가 해소될까? 도대체 수십 수백 개의 상장, 비상장 기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기업집단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주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지주회사 또는 핵심회사의 주주들이 그룹을 대표하는가? 아니면, 그룹계열사의 모든 주주가 모여 총회라도 열어야 하는 걸까? 이른바 ‘잔여청구권’을 갖는다고 주주를 회사의 주인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주주는 기업에 대해서 ‘유한책임’을 지고 있을 뿐이다. 거의 모든 기업에서 ‘남의 돈’으로 운영하고 있는 기업현실에서 주주가 과연 기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반문해 봐야 한다.

재벌 총수는 범죄자... 대주주 적격성 심사

재벌지배의 또 다른 문제는 재벌 총수, 바로 본인들에게 있다.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대부분 범죄자들이다. 개인적인 문제로 법정에 서는 경우도 있고, 각종 정치자금 제공과 비자금 조성, 횡령, 배임 등의 범죄도 만연해 있다. 그 중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지금까지 모두 다섯 번 법정에 섰고, 세 번 구속됐다. 1993년 580억 달러 외화밀반출 혐의로 첫 번째 수감된 후, 2004년에는 불법정치 자금제공, 2005년 비자금조성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07년에는 둘째 아들 김동원 대신 클럽 종업원을 보복 폭행해 두 번째 수감됐고, 2012년에는 계열사를 동원해 배임과 횡령을 한 혐의로 그해 8월 법정 구속됐다. 감옥에 수감된 후 마스크를 쓰고 병석에 누워 있던 김 회장은 이듬해 1월 건강악화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로 감옥에서 나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경우도 계속해서 검찰 수사와 법원 그리고 이어진 사면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건희는 대통령 비자금 문제, 차떼기 사건, 삼성X파일 등 많은 사건에 연루됐지만, 그때마다 빠져나왔다. 그러다가 삼성 법무팀 소속이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이어졌다. 면죄부, 봐주기 수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은 2009년 8월 세금포탈, 주식시장 불법행위, 배임혐의 등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그러나 4개월만인 2009년 12월 24일, 이 회장 1인만을 위한 특별사면 심사위원회가 열려 사면을 결정, 큰 비난을 받았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1977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대한 특혜분양 사건'과 관련해 1978년 7월 특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그리고 2006년 현대차 비자금 문제로 구속돼 2008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명령 300시간이 확정됐다. 또한 현대차는 2014년 9월 대법원으로부터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최종판정을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무수한 조사와 법원을 오락가락했다. 2003년 2월 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SK네트웍스 분식회계사건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7개월 정도 복역했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 사건은 최종적으로 2008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지만, 불과 2개월 18일 만에 사면됐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2013년, 이번에는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주식 등에 투기해 5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에 대한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의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범에다 개인적인 용도로 거액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범죄자다.

이 외에도 박용성 두산그룹 전 회장의 비자금 사건, 효성그룹 횡령 및 비자금 폭로,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014년 2월 1000억 원대의 조세포탈과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등 거의 매년 재벌그룹 총수들이 감옥에 없는 날이 없을 정도다.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다는 이유로 대부분 검찰과 법원의 비호까지 받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재벌 총수들의 범죄 사실은 실제 드러난 것보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재벌 총수가 감옥에 가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경영이 힘들다는 이유로 어서 빨리 석방하라고 아우성이다. 이건희 회장이 구속됐을 당시 이건희 회장만을 석방하기 위한 특별사면위원회가 열렸고, 평창올림픽 유치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단 4개월 만에 사면받고 나왔다. 또, 횡령으로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영권을 박탈해도 모자란 판에 경제활성화를 위해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과 재계 쪽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를 칭송하고 미국식 글로벌스탠다드를 찬양하는 기업문화에서 왜 기업인들의 범죄에 대해서는 그렇게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2001년 당시 미국 재계 서열 7위였던 엔론은 고작(!) 순이익을 5억8,600만 달러(6,500억 원) 부풀렸고, 부채 6억2,800만 달러(7,000억 원)를 감췄다는 이유로 경영진은 구속됐고(한 명은 자살했다), 기업은 파산당했다. 당시 엔론의 분식회계를 눈감아준 세계적인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은 그 이듬해 이 사건 때문에 해체됐다. 뒤 이어 월드컴(WorldCom)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당시 CEO 버너드 에버스는 25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월드컴은 파산했다. 월드컴의 분식회계 규모는 그 당시 미국 최대인 110억 달러(12조 원)에 달했으나, 1999년 대우그룹 분식회계 규모인 41조 원의 1/4 수준에 불과했다. 이 같은 사례들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에 미치지도 못하는 한심한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재벌 경영권 환수’를 강화해야

경영권 분쟁이든, 지배구조 문제든, 3대 세습을 위한 합병이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벌문제는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권’의 모순에 기인한다. 경영권이 곧 소유권인 현실에서 이 모순은 재벌과 같은 사회적인 대자본으로 구성된 기업의 개인소유를 인정하는 한 해결될 수 없는 모순이다.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오늘의 재벌이고, 어떻게든 규제를 다 빠져 나가겠지만, 경영권 자체를 사회로 환원시키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동종업종에서 해당 사업에 대한 비리나 비위 등으로 처벌받게 되면 대표나 임원으로 취임할 수가 없다. 공기업이나 기관은 물론이고 사단법인, 언론사, 단체나 협회 등 대부분 그렇다. 그러나 주식회사는 다르다. 이사에 취임하는 데는 오직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는 조건 외에는 어떠한 제한사유도 없다. 게다가 그룹의 회장, 부회장 등은 등기 이사도 아니어서 취임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물러나거나 순환출자 구조상 주식보유분을 잃어버려 그룹 지배권을 상실하는 경우가 아니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은행과 저축은행은 매시기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진행한다. 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고, 금융기관으로서 공공적 성격이 존재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아가 정부와 정치권에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제정을 기다리고 있다. 은행과 저축은행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보험, 증권, 여신전문업 등 전체 금융기관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제2금융권은 재벌기업이 대다수 지배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같이 순환출자구조상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금융회사들도 있어 재벌의 소유지배구조를 바꿔 나가는 데도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멈추지 말고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집단으로 확대해야 한다. 재벌 또한 은행 그 이상으로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사회적 자원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동원하고 있기 때문에 재벌기업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필요하다. 또한 금산분리 강화와 순환출자금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도입 등도 재벌 길들이기나 주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유권, 경영권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조치로서 더욱 강화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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