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지역구 증설 진보진영이 나설 일인가?

[기고] 진보와 보수 모두 모인 충남 아산시

충남 아산시 국회의원 선거구 증설을 위한 범시민대책위가 발족해 활동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산시에 있는 276개 조직이 범시민대책위에 참여했다. 바르게살기운동, 자유총연맹, 리․통장협의회 등 관변단체부터 민주노총 아산시위원회, 농민회, 아산시민연대 등까지 말 그대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거대 규모 조직이다. ‘아산시민이면 모두 아산시 이익을 위해 단결해 배타적 권리를 요구하자’는 부름에 발 벗고 나선 것으로 이쯤 되면 신지역주의의 등장을 보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가 정치권과 국민의 관심사가 된 이유는 지난 해 10월 헌법재판소의 현행선거구의 헌법불합치 판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투표가치의 평등성’ 헌법 이념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현행법 조항대로 하면 인구가 적은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투표수보다 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낙선한 후보의 투표수가 많을 수 있다며 인구편차를 현행 3대1에서 2대1 이하로 낮출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헌재 판결은 기존 국회의원 선거구제에 비하면 좀 더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진보적인 결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소선거구제(엄밀하게는 소선구제와 비례대표제의 혼합)가 유권자의 의사를 공정하게 반영하는 제도로서 부적합하다는 주장이 많다. 예를 들어보자. 한 선거구 100명 중에서 40표 얻어 A후보가 당선되었다. 나머지 낙선한 후보들에게 행사한 60표는 사표가 되었다. 과연 다수는 어디인가?

부산의 선거구는 18곳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부산시민 중 지역구 및 비례대표로 새누리당에 표를 준 유권자가 50% 이내였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18석 중에서 16석의 국회의원을 차지했다. 절반에 이르는 유권자의 권리가 박탈당했다. 헌재가 바로잡은(?) 평등권보다 훨씬 심각하게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 ‘소선구제’ 제도 자체에 있는 것이다.

또한 소선구제는 소수정당의 정치적 진출을 상당히 제약하고 있다. 사표심리가 투표에 반영됨으로써 1위와 2위의 양당구조만 고착될 우려가 크다. 한국 보수양당이 평상시 많은 유권자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선거에서 거의 모든 권력을 독점(의석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소선거구제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보인다. 따라서 진보진영 입장에서는 제도정치로 진출하려면 선거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이번 헌재 판결이 이 같은 운동을 펼칠 기회를 제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을 비롯해 진보운동진영은 이를 활용하는데 실패했다. 최소한 이 문제가 국회 밖에서 공정하게 논의되고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아니더라도 비례대표 확대나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을 관철시켰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새누리, 새민주연합 양당은 여론은 물론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의 권고안도 무시한 채 차일피일 미루다가 내년 총선 제도 확정 마감시한이 다가오자 기존 제도에서 선거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아산시 국회의원 지역구 증설운동은 정치적으로 보수정당의 이권다툼과 궤를 같이 한다. 진보진영은 헌재의 선거제도에 문제 제기 해야지, 잘못된 제도에 기대어 지역의 이권을 가져오려는 흐름에 동참하면 안 된다.

선거 ‘제도’ 문제는 전국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이며 아산 지역에서만 소리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혹은 이미 소선거구제 지역구 나눠먹기로 가고 있으니 지역의 권리를 정당하게 가져오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선거제도에서 증설되는 아산지역의 두 번째 국회의원 자리가 지역 노동자․민중을 대표하는 자리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아산시의 두 번째 자본가 국회의원을 만드는 작업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만약, 지역 모든 단체가 참여하는데 노동과 농민, 진보시민 단체만 참여하지 않으면 지역민의 이익을 무시하는 조직이라고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면, 혹은 정치적 시민권이나 지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판단해 행보하는 것이라면 우리 운동이 지나치게 여유로운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역별 다툼이 일어나면 진보진영은 지역 이익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