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이라는 골리앗에 맞선 눈물의 10년

[기고]12월 13일, 코오롱 최일배 단식 39일차 ‘연대의 날’ 호소글

눈이 하얗게 하늘에서 내립니다.
코오롱 자본의 정리해고에 맞서 10년 동안 싸우는 우리가 과천 천막에 있습니다. 경영상의 이유를 빌미로 78명을 해고한 당시 재계 23위였던 코오롱 자본에 죽어도 죽지 못하는 고목처럼 질기게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습니다.

한때 그들은 우리를 가족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공장을 나가라고,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안면 몰수하며 하찮은 짐짝 버리듯 우리를 버렸습니다. 또한 정리해고를 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은지 치졸하고 야비한 짓을 끊임없이 저질렀습니다. 노동조합 선거에 향응으로 개입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해 남녀 구분 없이 무자비하게 폭행과 험한 막말까지 일삼았습니다. 이에 맞서 우리 노동자들은 현장에 돌아가기 위해, 부당한 정리해고를 주변에 알리기 위해 단식, 고공농성, 노숙, 로비점거, 불매운동, 회장집 방문 등 안 해 본 투쟁이 없었습니다. 철옹성 같은 코오롱 자본의 벽 앞에 손목을 그으며 절규도 해보고, 2012년에는 끝장 투쟁을 위해 과천 코오롱본사 앞 천막농성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자신들과 아무 상관없는 모르는 사람들”이라며 우리를 외면하고 투명인간처럼 취급했습니다.

10년을 함께 해 온 최일배 동지의 단식이 벌써 30일을 훌쩍 넘었습니다. 10년에 1년은 무슨 십일조라도 내듯 징역살이를 해야 했던 그 고단한 몸에 모든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살이 타고 피가 마르는 시간들입니다. 덩달아 제 몸에서도 모든 수분이 눈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10년 세월 악착같이 이 악물고 눈 부릅뜨고 살아왔는데 요즘엔 눈물만, 눈물만 흐릅니다.

  단식농성 중인 최일배 위원장

과천 시민들과 10여 년 간 더불어 살아왔던 동료 노동자들이 12월 13일(토) 오후 3시에 ‘코오롱 연대의 날’을 해주신다고 합니다. 너무나 고마운 일입니다. 10년 동안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해 왔던 코오롱 자본에게 코오롱 정투위도 수많은 동지와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정말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전국의 희망버스가 과천정부종합청사 바로 맞은편에 있는 코오롱 본사 앞으로 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런 피눈물에도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정부와 코오롱 재벌에 맞서 우리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습니다.

10년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입니다. 코오롱 자본이 이제는 대화의 장으로 나와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동지들이 도와주십시오. 열 달 동안 뱃속에 품었다가 세상 빛을 보게 했지만, 제대로 키우지도 못하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세 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 키워진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동지들이 함께해 주십시오. 내일은 사랑하는 아들의 열세 번째 생일이지만 구미에 가지를 못합니다. 또다시 미안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언제쯤 이 손으로 따뜻한 미역국을 끓여 줄 수 있을까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12월 13일 토요일 15시, 이날만큼은 과천벌을 여러분의 우렁찬 함성으로 채워 주십시오. 10년 투쟁을 하는 동안 천막생활을 하며 아픔이 있는 곳, 투쟁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라도 찾아다니고 연대해 왔습니다. 한번쯤은 코오롱 자본 응징을 위해 저희 손도 한번 잡아주십시오.

저는 다른 어떠한 거창한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욕심입니까? 남의 것을 빼앗는 것도 아니요, 나 스스로 열심히 내 전 재산인 몸뚱아리를 움직여 사시사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고단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가족을 위해,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앞만 보고 일하겠다는 것이 잘못입니까? 보이지 않는 희망이나마 가슴에 품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잔업, 특근 돌고 또 돌았습니다. 그러나 재계 순위 이십몇 위의 대재벌 코오롱은 몇십 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명절 공휴일도 없이 일한 우리에게 월급봉투가 아닌 해고를 알리는 노란 봉투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런 세상은 안 된다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고 있다는 생각으로 10년간 버텨왔습니다.

올해만큼은 사랑하는 가족의 숨결이 느껴지는 집으로 진짜 가고 싶어 고군분투했지만 우리의 힘만으로는 될 수가 없나 봅니다. 저들에겐 정리해고 요건을 더 완화시켜주겠다는 대통령과 정부와 의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찍소리라도 하면 다시 잡아넣겠다는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있습니다. 이들을 응원하는 공룡 보수 언론들이 있습니다. 저들의 비인간적, 반사회적, 반공공적 연대에 맞서 인간의 연대, 존엄의 연대, 생명의 연대, 분노의 연대, 정의의 연대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12월 13일(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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