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이번 일요일 조기 총선을 치르는 가운데, 현재 집권 연립 정부인 사회민주당(SPD), 녹색당, 자유민주당(FDP)이 큰 패배를 앞두고 있다. 주요 야당인 보수 성향의 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CDU-CSU) 동맹은 지지율이 약 30%에 이르고 있으며, SPD는 지난 선거에서 26%를 기록했던 것과 달리 16%로 떨어졌다. 녹색당은 15%에서 13%로 하락했고, FDP는 연방의회(Bundestag) 의석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5%를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CDU-CSU의 득표율도 기존 선거에서 얻던 35~40%에 비해 크게 줄었다. 이는 반이민, 반EU 성향의 인종차별적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지율을 두 배로 끌어 올려 20%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현재 독일에는 두 개의 좌파 정당이 있다. 전통적인 좌파당(Die Linke)은 주로 옛 동독 지역에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자라 바겐크네히트(Bündnis Sahra Wagenknecht, BSW)가 이끄는 분파 정당도 있다. BSW는 최근 주(州) 선거에서 상당한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연방의회 의석을 차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반면, 좌파당은 간신히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는 당이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면서 총리직을 맡을 가능성이 크지만,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최소한 한 개 이상의 연정 파트너가 필요하다. CDU는 AfD와 연정을 하지 않겠다는 ‘브란트마우어(Brandmauer, 방화벽)’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녹색당을 연정 파트너로 삼거나,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을 구성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는 심각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독일 경제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위축됐으며, 올해도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45년 히틀러 정권 붕괴 이후 가장 긴 기간 동안 지속된 경제 침체다.
유럽의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팬데믹 이후 사실상 멈춰 섰다. 독일의 실질 GDP는 지난 5년 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 독일의 실질 기업 투자 감소 폭은 유로존 전체보다 훨씬 심각하며, 실질 가계 소비도 큰 타격을 입었다.
독일 정부는 서방 NATO 동맹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면서 러시아산 저렴한 에너지 의존도를 끊었다. 심지어 핵심 가스 공급망인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 폭파에도 동조했다. 그 결과 독일 가계의 에너지 비용이 급등했다.
그러나 독일 자본에 더 중요한 문제는 제조업 부문의 에너지 비용 상승이다. 경제의 동력이 사실상 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제재로 러시아산 저렴한 화석연료 수입이 중단되었고, 그 자리를 미국산 고가의 LNG가 대체하면서 전기 비용이 급등했다.
독일 산업·상공회의소(DIHK)는 이에 대해 "높은 에너지 가격이 기업의 투자 활동과 혁신 역량에도 영향을 미친다. 산업 기업의 3분의 1 이상이 에너지 비용 부담으로 인해 현재 핵심 운영 프로세스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DIHK의 아힘 데르크스(Achim Dercks)는 "기업들이 핵심 프로세스에 투자하지 못하면 결국 점진적인 해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결과 제조업 생산량과 설비 가동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유로 도입 이후 독일 자본이 누렸던 수익성 회복 국면은 끝났다. 산업 시설을 EU 동부로 이전하고,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저임금으로 유지하며 얻었던 이익이 더 이상 지속되지 않고 있다.
수익성은 글로벌 금융위기(Great Recession) 때부터 하락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 장기 침체 동안 계속 감소했다. 가장 큰 타격은 팬데믹 기간에 발생했으며, 현재 독일 자본의 수익성은 역사상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생산 비용(에너지, 운송, 부품)이 급등하면서 총이익 규모마저 감소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질 총자본형성(투자의 대표적 지표)도 축소되고 있다.
독일 기업 파산 건수가 2,000건 증가하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3년 동안 두 배로 늘어나 2024년 말에는 총 4,215건에 달했다.
독일의 실질 임금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경제연구소(German Economic Institute)가 가계 설문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발표한 ‘2024년 분배 보고서’(Distribution Report 2024)에 따르면, 독일인의 4분의 1이 생계를 유지하기에 부족한 소득을 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 지출이 급감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불과 몇 달 안에 독일의 실업자 수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3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잇따라 파산하거나, 도무지 찾아오지 않는 경기 반등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사업을 접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화학 등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서 공장 폐쇄가 잇따랐고, 지난해에는 핵심 산업인 자동차 부문마저 무너졌다. 폭스바겐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이 수천 명 규모의 정리해고를 발표했다. 현재 실업률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며, 팬데믹 당시 정점에 거의 근접했다. 독일 경제연구소 Ifo의 설문조사 책임자인 클라우스 볼라르베는 올해 중반까지 실업자 수가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독일 경제의 쇠퇴는 근본적인 문제인 ‘이중 노동시장’을 더욱 부각했다. 많은 기업이 극히 낮은 임금을 받는 파트타임·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해 왔다. 현재 독일 전체 노동자의 약 4분의 1이 ‘저임금’ 노동자로 분류되는데, 이는 중위소득의 3분의 2 미만을 받는 경우를 의미하며, 리투아니아를 제외한 17개 유럽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특히 동독 지역에 집중된 이 저임금 노동자들은 최근 2년간 대거 유입된 난민들과 일자리를 놓고 직접 경쟁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독 지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을 이민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강해졌고, AfD가 지지를 얻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다만, 유권자들이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는 것은 여전히 이민이지만, 경제 상황, 에너지 문제, 인플레이션을 합하면 58%에 달한다.
CDU 대표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내놓은 해법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정부 지출 삭감(복지 축소)과 기업 규제 완화가 핵심이다. SPD 연립정부는 이미 군사비 증액, ‘우크라이나 프로젝트’, 에너지 비용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사회복지 지출을 삭감한 바 있다. 그런데도 메르츠는 국방비를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독일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메르츠는 민간 투자를 유치해 경제를 정상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독일의 인프라 투자—철도, 다리 등—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독일의 효율성을 상징하던 명성도 이제는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차는 제시간에 운행되지 않고,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망은 불안정하며, 도로와 다리는 곳곳에서 노후화가 심각하다. 2022년 독일 교통부 보고서에 따르면, 개보수가 필요한 다리가 4,000개에 달한다. 독일의 고정 초고속 인터넷망(광섬유 기반) 보급률도 11%에 불과해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독일이 공공 부문 투자를 확대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른바 ‘부채 제한’ 때문이다. 이는 정부 지출을 헌법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으로, 2009년에 도입되었다. 이 규정에 따라 독일의 재정 적자는 구조적 GDP의 0.35%를 초과할 수 없다. 이 규정이 정부의 투자 능력을 크게 제한해 왔다.
하지만 독일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을 폐지하려는 시도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설령 부채 제한 완화 조치가 사법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 폭이 미미하여 독일의 재정 운용 여력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CDU/CSU 지지자의 3분의 2, AfD 지지자의 4분의 3이 부채 제한 완화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SPD가 주도한 연립정부가 무너진 결정적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자유민주당(FDP) 출신의 재무장관이 추가 차입을 단호히 거부하고, 오히려 세금 감면과 지출 삭감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AfD는 독일 경제 위기의 해법으로 이민 중단, 유로존 탈퇴, EU 분담금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현재 EU는 우크라이나 방어를 위해 1,150억 유로(약 956억 파운드)를 지원했으며, 이는 미국의 1,190억 유로보다 약간 적은 수준이다. 한편, BSW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고 대러시아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선진 자본주의 경제인 독일조차 2010년대 장기 침체의 균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독일 연립정부가 ‘서방 민주주의’라는 명목 아래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문제에서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무조건 따라간 결과, 독일 자본이 유럽에서 누리던 헤게모니가 무너졌으며,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수준까지 악화하였다. 이러니 민족주의와 반동적인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 아이러니한 점은, 정작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 지도자들을 배제한 채 러시아와 평화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독일 자본주의는 동서독 통일 이후 오랜 기간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제 장기적인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노동력은 감소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반면, 해외에서 새로운 저임금 노동력을 확보할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게다가 메르츠는 독일산 수입품에 대한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출처] Germany: drained of power; der Kraft beraubt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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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