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정치학자 유첼 데미레르(Yücel Demirer)가 튀르키예의 좌파 일간지 <에브렌셀>(Evrensel)에 기고한 세 개의 칼럼이다. 데미레르는 2025년 1월 11일 제30회 국제 로자 룩셈부르크 회의에서 연사로 참여할 예정이다.
출처: Unsplash, Alice Donovan Rouse
평화를 위한 호소(2024년 9월 1일)
지난 6월, 경제평화연구소(Institute for Economics and Peace)는 2024년의 평화와 안보 상태를 평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가 중요한 기로에 서 있으며, 공동의 노력이 없다면 주요 무력 분쟁의 수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의 전쟁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군사 기술의 발전과 지정학적 경쟁의 심화로 인해 그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전쟁과 달리,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속적인 분쟁은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보고서는 암울한 수치를 제시하고 있다. 2024년은 전 세계 평화 상황이 연속적으로 악화된 지 5년째 되는 해가 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6건의 무력 분쟁이 진행 중이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러한 분쟁은 점점 더 국제화되고 있는데, 92개국이 자국 국경 너머의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게다가 소규모 분쟁의 증가는 미래에 더 큰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9년에 소규모 분쟁으로 분류되었던 에티오피아, 우크라이나, 가자지구에서의 무력 충돌이 극적으로 확대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올해 튀르키예는 세계 평화 지수(Global Peace Index)에 포함된 163개국 중 139위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경찰 및 군 병력 수, 살인율, 수감자 수, 민간인의 무장, 정치적 불안정, 진행 중인 내부 및 외부 갈등, 이웃 국가와의 관계, 무기 거래, 군사화 수준 등의 요인을 기반으로 국가 내 평화와 안보를 측정한다.
튀르키예가 계속해서 하위권에 머무는 이유는 지속적인 분쟁과 안보 문제, 이웃 국가들과의 긴장, 증가하는 수감율, 민간인의 무장 증가, 확산되는 무기 거래 때문이다.
데이터는 전쟁과 평화가 일반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직접적임을 보여준다. 전쟁과 그로 인한 불확실성은 멀리 떨어진 분쟁의 텔레비전 영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다.
늘어나는 여성 살해, 민간인의 무장 증가, 점점 더 커지는 감옥의 건설, 동물에 대한 폭력은 모두 "전쟁적 사고방식"의 표현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폭력은 멀리 있다고 여기는 전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전쟁으로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얻는 이들의 주장에도 분쟁의 다양한 영향은 빠르게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며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폭력과 불안정은 노동자, 여성, 어린이, 동물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쟁을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정부는 그러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억압과 폭력에 의존한다.
군사적 해결책은 갈등의 근본 원인을 무시한다. 불평등, 불의, 배제와 같은 많은 갈등의 근본에 있는 문제들은 전쟁 시기에 더욱 악화된다. 폭력의 확산은 기존의 문제를 악화시키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증가시킨다. "폭력의 언어"는 이러한 갈등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측량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하고 생명을 파괴할 뿐이다.
전쟁 시기에 노동자들의 삶은 점점 더 참기 어려워진다. 안보를 우선으로 하는 정부는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를 침해한다. 자원 배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비상사태가 선포되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제한되고 부패와 뇌물이 확산한다.
빈곤 가속화기
전쟁의 그늘 속에서 삶이 참기 어려워진 노동자들에게 평화는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 오늘날 약 20억 명의 사람들이 폭력으로 얼룩진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갈등과 전쟁은 빈곤, 불평등, 연대 부족을 더욱 심화시킨다.
오직 지속적인 평화 속에서만 희망찬 미래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안전한 생계, 견고한 제도, 행복과 웰빙을 증진하는 건강한 사회적 관계는 평화 속에서 가능하다. 평화는 경제 발전, 사회적 진보, 번영에 집중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한다. 평화는 생명의 손실, 사람들의 강제 이주, 인프라와 자원의 파괴를 막으며, 노동자들이 생산한 물질적 부를 보호한다. 평화 시기에 정부는 교육, 건강, 기타 사회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다. 또한, 평화는 국제적 협력, 아이디어 교환, 기후 변화와 빈곤 같은 글로벌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을 촉진한다.
노동자의 복지를 중요시하는 정치인들은 평화로운 환경에서만 사회가 충격, 재난, 혼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와 불일치는 효과적으로 관리될 수 있으며, 삶의 역동성이 가져오는 필연적인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신뢰, 협력, 통합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평화를 위한 투쟁을 강조한다. 심지어 국수주의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억압의 가장 어두운 순간에도, 그들은 평화를 위한 호소를 포기하지 않는다.
출처: Unsplash, Sushil Nash
진정한 테러리스트는 누구인가?(2022년 10월 26일)
탁심광장(Taksim Square) 폭탄 테러(2022년 11월 13일 이스탄불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6명이 사망했다. 이후 정부는 전면적인 뉴스 보도를 금지하고 특히 트위터와 같은 소셜 미디어 접근을 차단했다. 정부는 PKK(쿠르드노동자당)와 YPG(쿠르드민병대)를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으나, PKK는 이를 부인했다.) 이후 전쟁 선전이 급속히 확산되었고, 이는 북부 이라크와 시리아에 대한 공습으로 이어졌다. 지상 작전 가능성에 대한 논의도 최고위층에서 제기되었다.
에르도안 정권의 언론은 탁심 공격에 대한 "공식적인 서사"의 붕괴를 은폐하기 위해 지상 작전을 정치적으로 정당화하는 논쟁을 벌였다. 논의는 시리아 영공을 통제하는 미국과 러시아가 동의했는지 여부와 이들 국가와의 협상 내용 및 결과에 초점이 맞춰졌다.
정부는 지역 불안을 국내 정치적 책략에 정기적으로 이용한다. 비록 국제 강대국들의 승인을 얻지 못하더라도, 인위적인 전쟁 의제를 만들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민족주의적 수사"는 튀르키예의 정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안보 부대의 과도한 무력 사용과 엄청난 법적 억압 속에서 반전(opposition to war) 진영은 정치적 분석을 넘어서는 도전을 하기 어렵다. 이러한 반전 운동의 무력함은 심지어 야당 연합 ‘알틸르 마사’(Altılı Masa, 2018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을 위해 결성된 케말리스트, 자유주의, 보수주의 성향의 6개 정당 연합)가 정부와 동조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모든 정치적 책략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 속에 담겨 있다. 새로운 전쟁은 과거 전쟁으로 정당화된다. 탁심 공격에서 공습, 공습에서 지상 작전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사건 서사의 사슬은 "역사적 서사"에 기반한다. 잘 알려져 있듯, 역사 서술은 단순히 과거의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으며 현재의 역학을 반영하기도 한다. 튀르키예에서는 쿠르드 문제와 같은 논쟁적이고 갈등이 심한 사안에 대한 "공식 서사"가 특히 억압적 정권 아래에서 역사적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전략의 현재 요구에 따라 형성된다. 이러한 접근법은 "과거의 타자"를 현재의 "적"과 연결하고 "타자"를 신속하고 폭력적으로 제거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대중의 의식 속에 "필연성"으로 자리 잡게 한다.
통제된 학문
"유일한 진실"로 제시되는 공식 서사의 지속적인 갱신은 그 효과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 갱신 과정에서 동조된 학문 세계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 기록 보관소 접근을 차단하고 학문 연구에서 대안적 관점을 막음으로써 역사가와 사회 과학자들이 "대안적 서사"에 기여하지 못하도록 한다. 용기를 낸 연구자들은 엄격한 학문 승진 기준으로 배제되고, "배신자"로 낙인 찍히며, 끝내 굴복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추방된다.
공식 개입에 의해 형성되고 대중 매체를 통해 퍼져나가는 역사 서사에 대응하려면 인내와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 대응은 이념적, 정치적 분석뿐만 아니라 전쟁의 사회적 측면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인간적 고통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수단 내에서 필수적이다. 사령관, 영웅, 국가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 서사에 맞서 전쟁의 비극, 노동자들의 빈곤, 자원의 낭비, 환경 파괴에 중점을 둬야 한다. 전쟁의 황폐화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와 그 결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대중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쟁 수사에 의해 전달되는 "무감각함"에 맞서 민족 간 형제애를 강조하는 것도 특히 중요하다.
전쟁이 생계를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며 일상을 참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싸움에서, 전쟁 정책이 개인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비추는 사진은 전쟁 정책에 대한 저항의 역학을 가시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전쟁의 필연성"과 "전쟁 문화"의 파괴적 역학에 맞서기 위해서는 전쟁 정책의 "잊힌 희생자"를 조명하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 이는 ‘클로우 소드 작전’(Operation Claw Sword, 2022년 11월 13일 폭탄 테러 이후,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 세력을 상대로 튀르키예군이 수행한 군사 작전의 명칭)과 같은 "개인의 진실"을 문제 삼는 것도 포함한다.
언제 어디서나 용기 있게 물어야 할 질문은 남아 있다. 무엇이 테러이며, 진정한 테러리스트는 누구인가?
출처: Unsplash, ivan malyi
억압의 지도(2024년 12월 1일)
미디어 및 법학 연구 협회(Media and Law Studies Association, 2017년에 설립된 인권 단체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최근 2024년 연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을 옹호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9월 1일부터 2024년 7월 20일까지 281건의 사건에서 1,856명의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 614회의 공판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피고인의 46.31%는 활동가였고, 20.25%는 학생, 19.71%는 언론인이었다.
무장 테러 조직의 "회원"으로 기소된 187명 중 64.2%가 언론인이었다. 마찬가지로, "테러 선전 확산" 혐의를 받은 162명의 피고인 중 34.6%가 언론인이었다. "공무원 모독"으로 기소된 101명 중 37.6%가 언론인이었으며, "대통령 모독" 혐의를 받은 63명 중 24%도 언론인이었다.
협회가 관찰한 107건의 사건에서 원고는 에르도안 대통령과 그의 가족, 고위 관료, 사법부 구성원, 지방 행정 공무원 및 경찰이었다. 이 사건들에서 피고인 230명 중 116명이 언론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억압은 언론인을 훨씬 넘어선다. 노동자, 여성, 실업 교사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점점 더 확대되고 심화되는 억압의 규모는 그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에르도안 정권 하의 억압을 자세히 살펴보면, 억압적 조치를 시작하기 전부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계산된 노력이 드러난다. 사회를 "순수한/도덕적 국민" 대 "부패한 엘리트," "애국자" 대 "테러리스트," "지역적/국가적" 대 "외부 지원" 등으로 전략적으로 나누고, 상황에 따라 이를 활용한다. 억압적 의제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대중이 지지하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구분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며, 그에 맞는 서사가 개발된다. 튀르키예 역사의 미해결된 사회정치적, 문화적 문제를 이용해, 포괄적인 일반화와 뻔뻔한 낙인을 통해 억압적 관행이 강화된다.
억압적 조치를 실행할 때, 우선 사회적 위협으로 여겨지는 긴급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런 다음 "책임 있는" 동시에 "위험한" 집단이 정의되고, 그들의 행동이 억압의 정당화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 이 억압 정책을 지지하는 집단이 고안되고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을에서 물이나 숲을 보호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시민은, 건설 예정인 화력발전소에서 경비원 직업을 약속받은 이웃과 대립하게 된다. 성평등과 폭력 종식을 주장하는 여성들은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어머니들과 대치된다. 공공 계약이 특정 인사들에게 할당되는 것을 항의하는 사람들은 혜택을 보는 회사의 하청업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최소 임금을 벌기 위해 자녀를 시립 어린이집에 맡기는 어머니는, 그곳에서 LGBTQ+ 가치가 강요된다는 주장으로 두려움에 빠진다. 건강하게 먹는 사람은 다른 동네의 경비원과 다른 식습관이나 사회적 습관을 두고 갈등을 겪는다.
억압에 대한 지지는 어떻게 구축되는가?
"도그 휘슬 정치(Dog Whistle Politics)"
"도그 휘슬 정치"라는 용어는 정치인들이 외견상 정상적이거나 무해해 보이는 발언을 통해 특정 사회 계층에 두려움이나 차별적 우월감을 은밀히 전달해 표를 얻는 방법을 묘사하기 위해 수년간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사용되어 왔다.
공포와 불안을 이용해 노동 계급을 분열시키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정치적 술책의 사례는 많다. 전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대선 캠페인에서 "캐딜락을 몰고 다니는 복지 여왕"과 "푸드 스탬프를 사용해 스테이크를 먹는 사람들"을 언급하며, 흑인들이 복지 시스템을 악용하고 있다는 암시를 통해 인종차별적 감정을 자극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 역시 더 백인적이고 앵글로색슨적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켜 표를 얻으려 했다.
튀르키예에서의 억압의 현재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려움을 이용하고 감정을 착취해 억압적 의제를 지지하게 만드는 전략이 드러난다. 이러한 지지는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지나치게 양극화된 사회 환경에서, 이러한 과정들은 사회 내 균열을 통해 실행되며, 국가에 동조하는 미디어를 통한 통제된 정보 흐름을 통해 강화된다.
따라서 에르도안 정권 하에서의 모든 억압 사례를 상세히 지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역학을 조명하고, 억압의 정당화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만이 정부가 감정적, 문화적, 사회적 서사를 실용적으로 어떻게 착취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지지자들을 포함하고 반대자들을 배제하는 "도그 휘슬 정치"의 각 메커니즘을 밝혀내어, 억압에 대한 저항을 강화할 수 있다.
[출처] Until Weapons Are Silenced There Can Be No Development. War Is the Greatest Enemy of Progress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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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첼 데르미레르(Yücel Demirer)는 터키의 정치학자로, 주로 좌파와 관련된 정치 이념, 사회 이슈, 민주주의, 그리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연구와 활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터키 내 학문적 자유와 정치적 억압에 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