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이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면서 선을 그었다. 광장의 시민들은 "민주당은 더는 차별받는 이들의 존재와 삶을 나중으로 미뤄두어선 안된다"며 "윤석열 없는 세상"과 함께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명확한 당론을 밝히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전남 여수갑)은 지난 22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차별금지법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입니다"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렸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면서 "민주당의 최우선 과제는 내란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이고, 교계의 반대가 극심한 ‘차별금지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선을 긋는 글이었다.
24일에는 같은 글이 더불어민주당 전남도위원장 명의의 문자로 시민들에게 발송되기도 했다.
광장의 시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비상계엄 이후 매주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남모씨(33)는 "시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여러 정체성을 용기 있게 밝히고 서로를 환대하면서 차별없이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민주주의라 외치고 있다"면서 "주철현 의원의 글은 광장에 나선 시민들을 배신하는 선 긋기"라 비판했다. 그는 "8년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나중에'라는 말로 밀려났던 평등에 대한 요구는 민주당이 집권하고 원내 다수당이 된 이후에도 끝없이 밀려나기만 했다"며 "민주당은 더는 차별받는 이들의 존재와 삶을 미뤄두어선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주철현 의원은 과거 더불어민주당의 인권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2022년 12월 당 인권위원회 출범식에서 “OECD 34개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평등법이 시행 중에 있는 만큼, 평등법(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명칭)은 국제적, 보편적 입법이 됐다”면서 “민주당 인권위원회는 평등 및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적 공감대 증진을 위한 활동에도 더 많은 노력을 경주해 나아갈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는 이재명 당대표와 함께, 어떤 정권, 어떤 시대에서도 인권에 담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가 지켜지고, 인권 상황이 더욱 개선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싸워 나아갈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과거 스스로가 한 말조차 거스르는 주철현 의원의 입장에 시민들이 감각하는 배신감과 실망이 깊다.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에서도 입장을 내 주철현 의원의 행보를 규탄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25일 논평에서 "김대중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차별대우 금지’ 공약, 노무현 정부의 ‘사회적 차별금지법’ 공약과 추진, 의원 시절 문재인 전 대통령의 차별금지법안 공동발의 참여, 이후 국회에서의 차별금지/평등법 발의는 다름 아닌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자임한 ‘민주당’의 이름으로 추진됐다"며 "주 의원이 황당한 선언 이전에 먼저 돌아봐야 했던 것은 자당의 연혁"이라 짚었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다"는 주철현 의원의 글이 사실과 다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설령 민주당이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에 나선 적이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 한들 주 의원은 그것이 자랑스러운가. 여당 혹은 제1야당을 도맡아하는 정당이 그런 노력조차 한 바 없다면 그건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워야 할 지점"이라고도 덧붙였다.
주철현 의원이 "몇몇 목사님과 교인들께서, 우려의 말씀을 해주셨다"며 "교계의 반대가 극심한 차별금지법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내란 사태를 부인하고 부정선거론을 펼치며 가짜뉴스를 확산시키고 내란을 옹호하는 집단의 핵심에는 전광훈을 앞세운 보수개신교, 아니 극우개신교 세력이 있다. 손현보를 필두로 한 대다수 대형교회와 개신교 세력도 마찬가지"라면서 "그들이 반동성애, 반페미니즘, 반차별금지법 선동으로 세력을 키우고 더 많은 혐오를 확산시키며 현재 적대와 분열 시대를 여는데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극우 개신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눈치보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차별은 시민들이 교육받고 노동하고 생활을 꾸려가는 “먹고사는” 모든 일상에 영향을 끼친다"며 "더불어민주당은 비상계엄의 그날 밤, 국회 앞을 지키고 국회의원들이 담장넘도록 지켰던 시민들의 광장을 주목하고 있는 것인가. 광장은 내란세력이 짓밟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더 나은 세상, 평등으로의 전진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로운 민주주의의 출발점은 차별금지법 제정부터 시작되어야 함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정의당도 같은 날 성명을 내고 "차별금지법은 ‘먹고사는’ 문제이고 ‘죽고 사는’ 문제"라 짚었다. 정의당은 "일터와 삶터의 만연한 차별로 인해 취업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공공연한 차별로 직장을 관둬야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차별금지법이 어떻게 먹고사는 문제가 아닐 수 있는가"라고 묻고 "차별에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나는 소수자들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가"라며 "(4주기를 맞은 변희수 하사의) 영전에 아직도 차별금지법을 바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울분이 터진다"고 밝혔다.
진보당도 26일 이미선 부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주철현 의원이) 엄연히 있었던 일을 없었다며 거짓 주장하는 것도 당혹스러운데, 차별과 먹고사는 문제를 상충한다고 인식하는 것 자체에도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차별금지법은 '먹고사는 문제'이며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문제'다.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직장에서 쫓겨나며 살아내기 어려운 현실은 이미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광화문에서 절절히 울려퍼진 바 있다. 차별과 배제, 혐오에 뿌리를 둔 내란 선동 극우세력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고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출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페이스북 (사진 촬영: 비주류사진관)
더불어민주당은 차별금지법에 대해 명확한 당론을 밝히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6일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이 주제는 정치·문화·종교적으로 매우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충분한 숙고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당내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차별금지법 반대가 당론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당내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과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혼재돼 있다”며 “결론 난 바 없는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천만의 연결'에는 사회대개혁의 핵심 과제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잇따르고 있다.
권은숙 씨는 '천만의 연결'에 "윤석열의 퇴진은 단순히 권력 교체가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넘어 평등과 정의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입니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이 자리잡은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는 사회대개혁을 이루어야 합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대개혁의 첫걸음입니다. 성별, 장애, 성적 지향, 종교, 나이, 출신 지역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지난 1월 비상행동이 주최한 '광야에서 광장으로 시민공론장'에 참여한 시민들도 윤석열 퇴진과 함께 '우리 일상을 바꾸기 위해 만나고 싶은·만나야 하는 운동’ 세 가지로 '차별금지·소수자인권', '페미니즘', 민주주의·시민참여'를 꼽았다. 구체적인 과제를 토론하는 과정에서도 다수의 시민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이야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빛의 혁명'이라 일컬은, 광장을 밝힌 시민들은 "윤석열 없는 세상"과 함께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민주당이 수없이 말해온 '나중'은 '바로 지금'어야 한다고 짚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