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1년, 환자도 병원 노동자도 깊은 고통..."공공중심 의료체계로 근본적 변화를"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전공의 집단이탈 1년 병원 현장 실태조사 결과 발표

윤석열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계획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생과 사를 오가는 환자와 보호자들도, 그들의 곁을 지키는 병원 현장 노동자들도 깊은 고통을 겪고 있다. 병원 노동자들은 모든 시민의 건강권과 의료 현장 노동자의 노동권은 연결되어 있다며, 이를 함께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중심 의료체계를 공공중심 의료체계로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의료대란 1년, 공공의료가 답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18일 오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전공의 집단 사직 1년, 병원 현장의 현실을 톺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의료연대본부와 시민건강연구소는 이 자리에서 병원 현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년, '의료대란'의 영향으로 환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병원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의사와 관리직을 제외한 국립대와 사립대 병원 노동자 848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진행되었다. 

전공의 집단이탈, 환자들 제때 진료받지 못하고 안전사고도 늘어 

병원 현장 노동자들은 전공의들의 집단이탈 이후 외래진료・입원・수술이 축소・지연되면서 환자들이 적확한 시기에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응답자의 32.4%는 전공의 집단 사직 후 환자 안전사고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충분한 교육 없이 전공의 업무를 타 직종에 전가(59.8%)하는 것을 가장 많이 꼽았다. 

개방형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면 환자 상태나 치료계획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재정을 채우기 위해 비급여 항목이 증가했으며, 처지 지연으로 재원일수가 증가하는 등 환자에게 미친 여러 부정적인 영향들도 보고되었다. 

조중래 의료연대본부 경북대학교병원분회장은 "상급종합병원은 급성기 및 중증환자의 비율이 높은데 적정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면 생명과도 직결되는 상황이라 환자/보호자의 시름이 날로 깊어지 있다"고 깊은 우려를 전했다. 

신동훈 의료연대본부 제주대학교병원분회장도 "지난 1월 제주에 거주하는 임신 29주 된 임신부가 조산 위험으로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였으나 신생아 중환자실 병상 부족으로 긴급 분만에 대비하기 위해 순천에 있는 한 병원으로 헬기를 이용해 긴급 전원을 하였다.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응급실에 온 환자 중 손가락, 발가락 등이 절단됐을 때 봉합하는 수족지 접합 시술과 안과 응급 수술 등 중증응급환자 진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정갈등으로 인해 제주대학교병원의 의료 서비스가 제한되면서, 도민들은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증언했다. 

병원 현장 노동자, 노동환경은 더 열악해져 

병원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노동환경도 더 나빠진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병원들은 환자 감소를 이유로 근무조별 간호사 수를 줄이고, 무급 휴가를 권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79.2%가 근무조별 인원 감소로 인한 업무 과중을 호소했고, 급여 감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응답자들도 45.5%에 이르렀다. 

응답자들은 외래·입원·수술 축소와 관련한 환자 응대는 증가하고, 전공의 업무까지 떠맡게 되면서 현장의 노동강도는 더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응답자 중 23.9%가 초과근무 시간이 늘었고, 23.4%가 근무 시 식사를 거른 날이 증가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일반간호사에 대한 의사 업무 전가도 심화 

'간호사 종류별 수행 가능 업무기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일반간호사에게 위임 불가 업무로 분류된 업무를 일반간호사에게 전가하는 현상도 심화고 있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의사 ID를 이용한 대리 처방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간호사가 44.9%였고, 간호사 업무 범위를 벗어난 추가 업무 수행이 증가했다고 응답한 경우도 69.7%에 달했다.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진료지원 업무 배치도 

진료지원 업무를 전담하는 간호사의 경우에도 42.9%나 일방적 부서 배치 및 발령에 의해 비자발적으로 업무를 맡게 되었으며, 배치 전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응답한 간호사의 비율도 이론 교육의 경우 35.9%, 술기 교육의 경우 47.7%나 되었다. 

전담간호사인 응답자의 58.7%는 업무와 관련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했으며, 그 원인으로는 직무기술서 부재로 구분 없는 업무 전가(55.6%), 체계적인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부재(37.8%) 등을 꼽았다. 전담간호사의 61.1%는 역할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업무 책임 소재 불분명으로 인한 불안감(79.1%)을 짚었다. 

의료연대본부 서울대학교병원분회 선전부장인 권지은 간호사는 "병원 적자를 이유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후, 중증도가 높아지면서 손이 많이 가는 환자들을 제대로 보살피기는커녕 병동 간호사들을 무급휴가에 보내고 병동인력을 축소하여 간호사들은 더 힘들어지고 바빠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권 간호사는 "병원은 의사업무를 ‘시범사업팀, 진료지원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간호사들에게 떠넘겼다"면서 "처음엔 인턴이 하던 남자 소변줄 삽입 일을 시키더니 점차 환자에게 동의서 받기, 중심정맥관 제거 업무 등을 떠넘겼다. 이제는 오더 넣는 것까지 하도록 강제하면서 어느새 간호사끼리 오더를 내고 처치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병원 현장 노동자들 건강 악화로 

이러한 상황에서 응답자의 46.2%가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38.1%가 새로운 건강 문제를 겪거나 악화 건강 문제를 갖고 있다고 나타났다. 주요 건강문제로는 근골격계 질환(23.0%), 수면장애(22.2%), 위장관질환(11.2%) 등이 있었다.

안지홍 의료연대본부 울산대학교병원분회 총무부장은 "중증환자를 많이 봐서 힘들다고 경증 환자들만 보게 해달라고 우리 병원 노동자들은 투덜대지 않는다. 우리는 중증환자를 보는데 환자들 잘 케어 할 수 있는 적정인력을 주지 않는 현 상황을 규탄한다"며 "상급 종합병원에서는 홈벤트, 욕창, 각종의 기구를 달고 수많은 검사를 진행하는 중증의 환자가 많고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많은 환자가 있다. 그 곁에는 항상 병원 노동자가 함께하면서 치료를 이어 나간다. 8시간의 근무시간 중 수없이 터지는 응급상황에, 수시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바꿔가며 근무한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근무하는 우리 노동자들은 언젠간 번아웃이 올 것이며, 그 피해는 오롯이 환자들이 피해를 봐야 할 것이다. 중증도에 맞는 실질 인력 충원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비상경영 체제, 권위적・비민주적 운영을 강행하는 병원들 

의료대란 사태에서 환자와 병원 노동자의 피해를 키우는 병원의 비민주적 운영 실태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45.1%는 전공의가 수행하던 업무에 대한 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라고 평가했다. 38.7%는 노동자가 배제된 업무조정위원회 구성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했고, 42.0%는 업무 조정의 결과 역시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한 응답자의 50.7%는 병원의 재정 상황과 운영 계획이 투명하게 공유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상경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병원 노동자의 의견이 잘 반영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4.2%에 불과하지, 60.4%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윤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책임 연구위원은 "(의료대란 해결과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해서는) 병원 리더십의 개혁도 필수적이다. 현재의 권위적이고 비민주적인 병원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의료인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의사 중심의 권력 구조를 분산하고, 간호사와 기타 의료인들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료 시스템은 다양한 전문 인력이 협력해야 제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직종 간 상호 존중과 협력 체계가 필수적"이라 짚었다. 

"인력충원 제도개선 지금 당장 실시하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시장중심 의료체계에서 공공중심 의료체계로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은 "김윤 의원실 보도자료(25.2.4.)에 따르면 의료공백기간(24년 2월~7월) 3,136명의 초과사망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월평균 520명의 환자가 초과사망한 것이다. 정부는 정기적으로 비상진료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고 병원 방문환자가 준 것은 좋은 일이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증거"라 지적했다. 

박경득 본부장은 또한 "의료대란의 해법은 전공의가 빠진 자리를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의료대란의 원인이 전공의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전공의 사직 전부터 지역과 공공의료 붕괴, 지역•필수과 의사 부족, 병원•돌봄노동자들의 과로와 열악한 처우, 병원의 비민주적 운영은 오래된 문제로, 의료가 상품이 되어버린 한국의료의 문제를 근본부터 바꿔야 해결된다. 그것이 바로 광장에서 외치는 사회대개혁이고 일상에서 소망하는 안전한 삶"이라 강조했다. 

의료연대본부는 "의료대란 사태 해결과 붕괴위기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중심 의료체계를 공공중심 의료체계로 근본부터 바꾸어야 한다.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의사와 지역의사 양성, 간호인력을 포함한 보건의료 인력 충원, 그리고 적정한 보건의료인력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지금 당장 정부가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면서 "모든 시민의 건강한 삶을 지키는 요구를 걸고 시민들과 함께 투쟁할 것"이라 결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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