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전쟁의 사실 보도를 두려워하는 BBC

[편집자 주] 익명의 한 BBC 기자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의 참상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BBC의 현실을 폭로한다. 편집자들이 이스라엘 정부를 불쾌하게 하는 보도에 대한 관리자들의 질책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 기자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 조직'의 무대 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린다.

출처 :  BBC 화면 갈무리 

몇 달 전인 10월 7일, 하마스(Hamas)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 시작될 무렵, 나는 자코뱅(Jacobin)에 BBC의 안일한 사건 보도에 대한 글을 기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소속 기자 8명이 카타르(Qatar)에 본사를 둔 방송사 알 자지라 - 현재 이스라엘에서 방송이 금지된 - 에 비슷한 불만을 표출하는 공개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은 BBC가 수십 년에 걸친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배제하고 이스라엘의 사건 서술을 특권화하여 잔인한 보복 공격을 "정당방위"로 이해하도록 허용했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이 '정당방위'로 간주되려면 하마스가 주도한 공격으로부터 사건이 시작되어야 한다. (BBC의) 보도들은 75년간의 점령, 나크바(Nakba), 수십 년에 걸친 비대칭적인 사망자 수 등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한두 줄도 포함하지 않는다."

관점의 부재

이러한 주장은 데이터에서도 입증되었다. 오픈데모크라시(openDemocracy)가 전쟁 첫 달 동안 BBC One 텔레비전 채널의 주간 보도를 조사해 지난 12월 발표한 연구 결과를 살펴보자:

"분쟁의 이유와, 그들이 살아가는 '점령'의 본질을 이해하는 팔레스타인의 관점은, BBC의 보도에서 사실상 부재했다. 이러한 관점은 설사 나타나더라도, 기자들의 주된 관점으로 개발되거나, 사건의 반복적 양상을 제대로 추적하는데에 반영되지도 못할 뿐더러, 이스라엘의 관점에 주어진 것과 같은 지위를 갖지 못한다. BBC의 보도는 분쟁의 기원을 하마스의 최근 행동에서 찾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지난 수십 년간 이스라엘이 벌인 일에 대한 저항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 맥락을 생략한 것은 BBC가 저지른 여러 실패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이 연구는 또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망자에 대한 방송 시간과 감정적 표현에 있어서도 상당한 불균형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BBC는 이스라엘인의 사망과 관련하여 '학살', '살인', '도살' 등의 용어를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결론은 데이터 과학자인 다나 나자르(Dana Najjar)와 얀 리에타바(Jan Lietava)가 10월 7일부터 12월 2일까지 BBC 웹사이트에서 총 600개의 기사와 4천 개의 실시간 피드 게시물을 분석하여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망자가 처리되는 방식에 체계적인 격차"가 있음을 입증한 결과다.

가디언(Guardian)의 저널리스트 모나 찰라비(Mona Chalabi)가 작성한 보고서는 이 방송사가 이스라엘인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학살', '살인', '도살'과 같은 용어를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한 반면, 팔레스타인인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살해' 또는 '사망' 같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고 기록했다. 또한 BBC는 팔레스타인인보다 이스라엘인을 지칭할 때 '어머니', '할머니', '딸', '아버지'와 같은 가족 명사를 훨씬 더 많이 사용했다.

신빙성과 경솔한 믿음

한심한 이들 보도의 또 다른 측면은 이스라엘의 인물과 주장에 명백히 자격이 없는 수준의 신빙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3월 27일, BBC 진행자 매튜 암롤리왈라(Matthew Amroliwala)는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 데이비드 멘서(David Mencer)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멘서의 핵심 주장 중 하나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문제의 진실은 현재 전투의 비율이 ... 1대 1이라는 것이다. 즉, 테러리스트 한 명에 민간인 한 명이라는 뜻이다. 총리는 이 점을 분명히 밝혔다."

암롤리왈라는 '모순된' 증거를 제시하는 (멘서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또한 계산에 사용된 방법론에 대한 설명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다음 달 노르웨이 방송국 진행자 야마 볼라스말(Yama Wolasmal)과 멘서의 인터뷰는 다소 다르게 진행되었다. 소셜 미디어에서 BBC의 저널리즘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호평을 받은 이 인터뷰는 멘서의 유튜브 채널에서는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이스라엘이 하마스 18개 대대를 파괴했다는 멘서의 주장에 대해 볼라스말이 멘서에게 5번 이상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멘서가 이스라엘의 작전으로 총 "1만 3천 명의 전투원이 사망했다"고 주장하자, 볼라스말은 "그것은 단지 숫자일 뿐입니다, 멘서씨. 이 숫자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를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노르웨이 언론인은 또한 10월 7일 공격에, 몇몇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또 다른 근거 없는 이스라엘의 주장에 대해서도 짧게 언급했다. 이 주장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일부 동맹국들은 이 기구에 대한 중요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가자지구로의 원조 흐름을 심각하게 방해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이스라엘 정부의 말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 1만 3천 명의 하마스 요원이 사망했고 병원은 군사 통제 및 전투 지휘 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 요원들이 테러 공격에 가담했다(는) ... 근거 없는 주장을 계속 밀어붙이는데 왜 세계가 당신들의 이야기를 믿어야 하나요?“

이러한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볼라스말의 지적은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이스라엘의 목소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리를 제시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피어스 모건(Piers Morgan)은 최근 이스라엘 대변인 아비 하이만(Avi Hyman)에게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것만으로도 온라인에서 찬사를 받았다.

지난 2월 BBC의 프로그램 하드토크(HARDtalk)에서 스티븐 사쿠르(Stephen Sackur)가 진행한 이스라엘 선전가 마크 레게브(Mark Regev)와의 인터뷰와 비교해보자. 미국 뉴스 브랜드들의 인터뷰에서 볼법한 공연적 마초주의를 그대로 답습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연출이었다. 레게브는 현재까지 사망자 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마스는 당신에게,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 이스라엘이 어린이를 죽이고 있다고 믿게 하려고 한다. ... 그게 하마스가 원하는 스토리다."

볼라스말이나 모건도 다음 질문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레게브가 파악한 수치는 얼마였나요? 어떻게 계산된 수치였나요? 이스라엘은 전투원과 민간인을 어떻게 구분했을까요? 이런 질문 대신 사쿠르는 유엔 고위 관리들의 발언에 호소하여 레게브가 잘 연습된 유엔 기관에 대한 비난으로 쉽게 선회할 수 있도록 했다.

이중 잣대

때로는 이중 잣대가 너무 뻔뻔해서 검토가 거의 필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휴고 바체가(Hugo Bachega) 특파원이 하마스의 가지 하마드(Ghazi Hamad)에게 한 말처럼, BBC 기자가 이스라엘 대변인에게 이렇게 말하며 인터뷰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잠자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라파(Rafah) 공습으로 절망에 빠진 수십만 가자지구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마지막 피난처를 떠나고 있는 가운데, 이제 외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가 가장 높았던 서방에서도 서서히 시계바늘이 움직이고 있다.

잔인한 공격에 반대하는 캠퍼스 시위가 미국과 많은 유럽 국가를 휩쓸었고, 일부 대학은 이스라엘 기관으로부터 투자를 철회하는 데 제한적으로 성공했다.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 미국 국무장관은 이스라엘군의 국제 인도법 위반 가능성을 고발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스라엘은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적 왕따(global pariah)'의 위상에 가까워졌다. 이러한 상황 변화에 대응하여 BBC도 진로를 바꾸어 용감하고 공정한 언론 매체라는 신화를 무너뜨리고 변화하는 서방의 합의를 위한 선전 기계로서의 본질을 드러냈다.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잔학 행위에 직면한 이 방송사는 점차 이전의 표준 전술을 버리고 있다. 시신들이 쌓여가면서, 더는 팔레스타인 게스트가 방송에서 하마스를 비난하거나, 팔레스타인 옹호자들이 이스라엘의 "방어할 권리"를 강력하게 지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암롤리왈라 인터뷰 이후 이스라엘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했던 가자지구의 나세르(Nasser) 병원과 알-시파(al-Shifa) 병원에서 집단 무덤이 발견되었다. 수습된 시신 중 일부는 손이 묶여 있었다. 일부는 고문의 흔적을 보였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BBC가 용서받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가정해보면, BBC가 다루는 그 모든 이스라엘 대변자들에게, 10월 7일 직후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이 직면했던 것과 같은 타협하지 않는 태도로 (이스라엘이 벌인 일) 답변을 요구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BBC의 편집자들은 관리자들로부터 질책을 당할까 봐 두려워하고, 항상 경계하는 이스라엘 대사관으로부터 부당함을 지적받을까 봐 불안해 한다. 이스라엘은 정교한 미디어 운영을 하고 있다. 대변인은 쉽게 연락할 수 있으며 거의 매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들은 홍보 분야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과 방송의 관습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메시지를 통제한다. 예를 들어, 이들은 편집의 위험이 있는 사전 녹화 방송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어색한 질문이 빠르게 이어지는 반박으로 묻혀버릴 수 있는 라이브 형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종종 미국이나 영국에서 활동하며 해당 시청자의 특정 시간대에 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자금 삭감이라는 상시적인 생존 위협 속에서 경영해야 하는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 정치인들과 연계하기도 한다.

권력에의 근접성

이러한 모순에는 또 다른, 더 확고한 이유가 있다. BBC가 점령과 나크바에 관한 맥락을 제공하지 않는 이유,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불평등으로 가득 찬 이유, 한쪽의 숫자가 다른 쪽의 숫자보다 암묵적으로 더 큰 진실성을 부여받는 이유와 같은 이유다.

BBC는 여러 측면에서 영국 국가의 기관이다. 따라서 BBC의 저널리즘은 서구 패권주의 사상에 대한 기관 내적 연결에 의해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회사의 조직 구조에 깊이 내재되어 유지되고 있다. 직원이 편집권을 획득하려면 신중하고 정치적 관계를 손상시키지 않는 저널리즘 방식을 고수하는 동시에 결정적으로 '공정성'의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줘야 한다. 이는 BBC에서 승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러한 원칙의 우위를 일관되게 지킬 것임을 입증한 사람만이 관리직으로 승진할 수 있다.

'공정성'이라는 허구적 신조에 대한 충실성은 BBC 기구에 내장된 보수적 알고리즘의 근간을 가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는 '불순응'을 근절하고, 궁극적으로 서구화된 세계관을 보호하여, 자본주의, 자유주의, 제국주의, 대서양주의의 미덕과 그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는 모든 내러티브를 강등시키는 것을 목표로 설계된 기능이다.

최근 BBC의 베테랑 기자 존 심슨(John Simpson)이 다시 제시한 익숙한 '양비론'을 넘어 데이터에 주목해야 한다. 알 자지라와 노르웨이 방송국의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 심지어는 피어스 모건도 살펴봐야 한다.

물론 알 자지라와 노르웨이 방송국의 보도는 카타르와 노르웨이의 정치적 특권과 관계한다. 반면에 모건의 클릭베이트 모델(clickbait model)에 연료를 공급하는 격렬한 갈등의 광경은 때때로 우연히 그를 논쟁의 옳은 편에 서게 만들기도 한다.

근본적으로 BBC는 영국의 기존 권력, 더 나아가 시오니스트(Zionist) 대의에 대한 특별한 근접성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때문에 가자지구에 대한 우리의 보도는 실패했고 앞으로도 계속 실패할 것이다.

[출처] The BBC Is Afraid to Report the Facts About Israel’s War

[번역] 참세상 번역팀

덧붙이는 말

익명을 전제로 BBC의 기자가 작성한 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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