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내전의 가장 큰 희생자는 노동자들

출처: FRANCE 24 English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21년 미얀마 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이후, 미얀마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휩싸여 있다. 군대가 전쟁 체제를 지원하는 광산과 기타 산업을 통제하려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 노동자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의회의 25%를 군부가 차지하면서 다당제 민주주의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던 10년간의 기간을 종식시켰다. 그 이후 전국적으로 폭력적인 내전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8천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46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중 4분의 1은 미얀마를 완전히 떠났다.  

내전이 발발한 이후 3년 동안, 반쿠데타 세력은 군사정권을 도시에 국한시키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 미얀마 영토의 14%와 인구의 33%만이 군부의 통제 하에 있다. 2021년 군사 쿠데타에 대응하여, 노동조합, 청년, 여성, 공무원, 의료 종사자를 포함한 미얀마 사회의 다양한 계층이 '봄 혁명'에서 군사 정권에 맞서 수천 건의 시위를 조직했다. 그러나 군부가 실탄 발포, 암살, 성폭력, 통신 차단, 대규모 구금으로 대응하자, 많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무기를 들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3년 후, 게릴라들은 중앙 저지대에서 군사 정권의 병력을 자주 매복 공격하고 있으며, 이 지역은 독립 이후 중앙 정부의 진정한 통제를 받지 않았던 주들의 여러 무장단체들에 의해 사실상 포위된 상태다. 미얀마의 군사 통치는 항상 소수 민족에 대한  억압에 기초해 왔으며, 특히 로힝야족은 아웅산 수치의 통치 아래 박해와 시민권 박탈을 겪었다. 그 결과, 군부에 대한 반대는 주로 소수민족 무장 단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군부의 농촌 지역 공격은 반쿠데타 세력으로 하여금 자신들만의 조직 구조를 구축하게 만들었으며, 이들 모두가 2021년에 축출된 정부와 동맹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수적으로 열세에 처하고 고립된 군부는 주로 도시와 주둔지로 후퇴하여 무차별적인 공습을 감행하고, 제재를 피하며, 러시아와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은 군사 정권에 또 다른 휴전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1월과 6월에 군사 정권과 반대 세력 간의 휴전 협정을 중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지난 몇 주 동안 소수민족 무장 단체들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따앙민족해방군(TNLA), 아라칸군(AA)으로 구성된 '삼형제동맹'은 중국과 밀접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며  북부 지역에서 벨기에보다 넓은 지역을 장악했다. 지난주, 이 동맹은 군사 정권의 동북지역 사령부 본부가 있는 라시오(Lashio)를 성공적으로 점령했으며, 미얀마의 세계적인 루비 산업의 중심지인 모곡(Mogok)도 장악했다. 군부의 14개 군사 사령부 중 가장 먼저 함락된 라시오는 광활한 샨(Shan) 주를 통제하는 데 필수적인 도시다. 반쿠데타 세력은 이번 승리로 영토뿐만 아니라 경제 및 정치의 핵심 거점을 장악하고, 군부가 10년 동안 장악해온 국가 내 권력을 약화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는 군사 정부 장군들

미얀마 군대는 스스로를 탓마도(Tatmadaw, 왕립 군대)라고 부르지만, 일반 버마인들은 이를 덜 화려하게, 싯탓(Sittat, 군대)으로 알고 있다. 미얀마의 군대는 격동의 1940년대와 50년대에 영국과 일본 점령군, 공산주의 반군, 소수민족 민병대와 싸우며 80년 동안 미얀마 정치를 지배해 왔다. 반세기(1962~2011년)에 걸친 일당 통치 기간 동안, 싯탓 정권은 미얀마를 연출된 정치, 경제적 재앙, 국제적 고립의 늪에 빠뜨렸다. 독재자 네 윈(Ne Win, 1962-1988)은 처음에는 농민과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넘겨주지 않고 군부를 미화하는 불교-사회주의의 혼합을 시도를 했다. 충격적인 국유화 정책은 인도, 중국, 서구의 자산을 대부분 장군들의 손에 넘어가게 했고, 잘못된 농업 및 금융 정책은 대부분의 버마인들을 극심한 빈곤에 빠뜨렸다.

경제가 붕괴한 후, 네 윈과 싯탓의 이념과 구조는 더욱 유연해졌고, 군부의 지배력을 보존할 수 있는 어떤 형태로든 변형되었다. 그 절정은 8888 항쟁(1988년 8월 8일)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오늘날의 반대 세력에게도 영감을 주는 광범위한 친민주주의 시위 운동이었다. 싯탓은 수천 명의 시위대를 총으로 쏴 죽였고, 네 윈이 결국 축출되었지만, 군부는 대규모 구금, 고문, 방화, 처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이후 싯탓은 이념적 외양을 크게 벗어던지고, 자기 보존과 자기 이익 추구에 더욱 힘을 쏟았다. 군부는 도시 시위대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인공 수도(네피도)를 건설하고, 자국민에 맞서기 위한 국내 무기 산업을 키웠으며, 버마 경제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여 장교들의 충성심을 얻기 위한 교환 수단으로 사용했다.

2015년 싯탓이 마침내 민주 선거를 허용했을 때쯤, 장교들과 그 가족들로 이루어진 부유한 계층은 압류된 토지, 학대가 자행되는 공장, 그리고 찌는 듯한 광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거대한 후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심지어 친민주주의 장교들과 일부 민주화 운동 내 인사들조차 군부와 함께 소수 민족 억압과 약탈 정치에 대한 의지를 공유했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는 이러한 양보조차도 군부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었음을 증명했고, 민 아웅 흘라잉 장군의 지휘 아래 군부는 다시 한번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에 의지하게 되었다.

군부 독재의 정치 경제학  

오늘날의 군사 과두정권은 어느 한 수출품이나 산업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원, 소비재, 제조업, 토지는 모두 군부와 그 관련들에 의해 약탈당하고 있다. 옥, 금, 루비, 목재, 석유, 가스, 의류는 장교들이 소유하거나, 관련자들에게 증여되거나, 최고 입찰자에게 판매되거나, 외국 기업을 위해 보호된다. 강제 노동, 노조 파괴, 토지 수용, 공공 자금 횡령, 그리고 인허가 및 조달 과정의 부패와 같은 체계적이고 수십 년 된 관행을 통해 착취, 갈취, 이익 창출의 기회가 무자비하게 이용되고 있다.

싯탓은 중국 광산과 석유 시설을 치명적인 지뢰로 포위하고 의류 공장에 군인을 파견하여 파업을 진압한다. 전현직 장군이나 그 가족이 소유한 기업들, 예를 들어 미얀마경제지주회사(MEHL)는 복잡한 투자 및 돈세탁으로 수십억 달러를 싯탓의 고위층을 위해 벌어들이고 있다. 그 와중에 일반 정부군 병사들은 식량을 구하러 다니고 적절한 훈련이나 장비도 없이 전투에 투입된다.  

미얀마 경제의 근간이 되는 불평등과 약탈은 쿠데타 전후로 국제 공급망과 금융 네트워크에 잘 통합되어 왔다. 미얀마가 2011-12년에 국제 투자를 재개하면서, 여러 국가와 다국적 기업들은 지속적인 인권 침해, 만연한 부패, 많은 산업에서의 군부 세력의 명백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경제의 중심이 되는 모든 산업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2012년 카친 주에서 잔인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2015년 샨 주를 침공하며, 2017년 로힝야족을 상대로 집단 학살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국제 기업들과 국가 행위자들은 싯탓의 필수적인 파트너로 남아 있었다.

오늘날 싯탓은 러시아산 항공기를 인도 부품으로 정비하고, 중국과 베트남 기업들이 운송한 항공유를 사용해 민간인들을 폭격하고 있다. 동시에 싱가포르와 태국 은행들은 싯탓의 국영 은행들을 위한 무기 조달을 지원하고 있다. 쿠데타는 호주의 광산 기업들을 주춤하게 하지 않았고, 이스라엘과 인도네시아의 국영 무기 제조업체들을 방해하지 않았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증진한다고 알려진 유럽연합의 무역 협정이 발효되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결국 각국이 군사 정권과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며 때로는 제재를 가하거나 규제를 하고, 혹은 거래에서 철수하기도 하지만, 싯탓의 경제 구조는 여전히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유지되고 있다. 미얀마의 고통이 계속되는 동안, 투자 철수와 제재는 더디고 불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군사정권에 맞선 노동자들

매일 미얀마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군사 과두제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군사 정권이 법을 준수한다 하더라도, 미얀마의 노동자 보호 제도는 오랫동안 불충분한 상태였다. 노동자들은 빈번하고 자의적인 임금 삭감과 임금 착취, 긴 노동 시간과 열악한 근무 환경, 강제 및 무급 초과 근무, 언론 및 집회의 자유 제한, 해고와 체포, 그리고 직장에서의 성희롱과 폭력을 겪고 있다. 고용주들은 종종 싯탓, 경찰, 또는 친군사 정권 민병대를 불러 파업을 진압하거나 노동자들을 협박한다. 심지어 고용주들은 군대와 협정을 맺어 군인들이 언제든지 공장에 들어와 조직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한다.

전 세계에 옥과 루비를 공급하는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은 갱단, 민병대, 그리고 군인들이 가하는 자의적인 폭력으로부터 거의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산소 부족과 붕괴 위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미얀마 전역의 여성들은 성매매 조직, 고용주와 군인들의 성적 착취와 학대, 그리고 군사 정권의 과밀한 구금 시설에서의 성폭력과 고문으로부터 심각한 위험에 직면해 있다. 학교 폐쇄와 빈곤은 아동 노동을 광범위하게 만들었으며, LGBTQ 인구는 군사 정권과 그 지지자들에 의해 표적이 된 캠페인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자율성의 상당 부분을 상실했다.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얀마의 다양한 노동자들은 활발한 조직 활동을 하고 있다. 2021년까지 3천 개의 노조가 등록되었으며, 이들은 정기적으로 파업을 벌였고, 특히 2019년 의류 산업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의류노동자연맹 (Federation of Garment Workers)과 같은 노조들은 쿠데타 이후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의 선두에 섰다. 군사 정권은 등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6개의 대형 노조를 신속히 금지했지만, 철도 운영자, 공무원,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개월 동안 거리로 나서며 총파업이 나라 전체를 마비시켰다. 미얀마 최대의 산업 지구인 흘라잉타야에서 노동자들은, 싯탓이 폭력적으로 마을을 습격해 여러 명을 살해하기 전까지, 6주간 생산을 중단시켰다. 큰 개인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과 시위자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동원되었고, 군부와 연계된 기업들에 대한 국내외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시위가 진압되고 미얀마가 전쟁에 빠져들면서, 노동자들은 도시 거점을 고수하는 군사 정권의 감시와 억압적인 시선 아래 남겨졌다. 정권의 주요 수입원과 매우 근접해 있기 때문에, 노동자와 조직자들은 감시, 괴롭힘, 체포, 기소의 상시적인 표적이 되고 있다. 미얀마의 노동자들은 반정권의 필수적인 친민주주의 기반을 구성하지만, 지난 3년간의 전쟁과 경제 위기를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굳건하다. 2024년 2월 1일, 군사 정권의 통제 하에서도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은 쿠데타 3주년을 기념하는 "침묵 시위"를 통해 미얀마의 도시와 마을을 마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들이 안정의 외양을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출처] Workers Are Bearing the Brunt of Myanmar’s Civil War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스테판 바쿠멘코(Stefan Bakumenko)는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독립 연구자다. 그는 이전에 'Refugees International', 'the International Peace Institute', 'Center for Civilians in Conflict'에서 일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태그
태그를 한개 입력할 때마다 엔터키를 누르면 새로운 입력창이 나옵니다.

의견 쓰기

댓글 0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