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좌파에게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가자지구

프랑스 총선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가자지구에 대한 강력한 지지 입장을 취한 프랑스 인수미즈(La France Insoumise)를 유권자들이 응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유럽 전역에서 좌파 유권자들은 친이스라엘 주류에 저항하는 정당에 열광하고 있다.

지난 2월 3일 프랑스 대표단이 즉각적이고 지속 가능한 휴전을 요구하기 위해 이집트와 가자지구의 국경을 방문했다. 출처 : La France Insoumise 홈페이지

올해 초 하버드에서는 학생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학위를 받았고파리에서는 프랑스 인수미즈 의원들이 의회에서 같은 국기를 흔들었다이러한 장면들은 1960년대와 70년대 유럽과 미국의 좌파 정당들이 반식민지 및 평화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군의 학살이 계속된 지난 10개월 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평화와 연대를 위한 움직임은 분명히 증가했다많은 유럽 국가에서 학생반파시스트반제국주의 단체는 물론 전통적인 사회 정의 운동과 노동조합의 급진파가 연대 활동의 중추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인수미즈 의원들의 국회 내 행동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면유럽의 좌파 정당들은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제도권 안으로 얼마나 끌어들였을까사실그들의 성과는 다소 엇갈린다이스라엘의 전쟁에 대한 대중의 항의와 자국의 연루라는 독특한 순간에 직면한 이 정당들의 입장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존 가능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되기도 한다.

정부에서

최근 스페인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한 것은 대체로 중도 좌파 사회당(PSOE)의 페드로 산체스(Pedro Sánchez) 총리의 공로로 알려져 있다산체스 총리의 당과 함께 집권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좌파 동맹 수마르(Sumar)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되지 않았다.

수마르는 작년에 체결한 연정 협정에서 팔레스타인을 공동의 정책 의제로 인정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에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정당한 기여를 주장할 수 있다욜란다 디아즈(Yolanda Díaz) 노동부 장관의 지도 아래 수마르는 이러한 공식 인정을 스페인 정부 정책의 시작과 끝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또한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무기 금수 조치를 요구했다그러나 이 요구는 주로 산체스 총리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언론에서 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슬로베니아가 유럽 국가 중에서 최근에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유일한 국가라는 사실도 중요하다유럽 내 좌파 정당인 민주 사회당 레비차(Levica)가 이 연립정부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유운동당(Freedom Movement)이 이끄는 연립 정부에서 세 개의 부처를 맡고 있는 레비차(Levica)는 슬로베니아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이스라엘을 기소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합류하는 첫 번째 유럽 국가가 될 것을 촉구해왔다이 사안에 대한 레비차의 정부 내 활동은 최근 몇 달 동안 슬로베니아 의사당 앞까지 이어진 시위와 심지어 의회 회의를 중단시키기까지 한 시위와 맥을 같이한다.

거리에서 투표함까지?

많은 좌파 정당에게 팔레스타인은 6월 유럽연합 선거 캠페인의 핵심 이슈였다이들은 선언문의 강력한 입장 표명에서부터 시위와 직접 행동 지지까지친팔레스타인 노선을 지키기 위해 대중매체의 악마화와 자신들의 활동에 대한 범죄화까지 감수했다.

아일랜드의 신페인(Sinn Féin,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정당으로아일랜드의 통일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오랜 정치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신페인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의 폭력과 점령을 중단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며두 국가 해법을 위한 협상에 복귀할 것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왔다유럽연합 선거 선언문에서는 완전한 EU-팔레스타인 연합 협정을 체결하고아일랜드가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도록 다른 EU 국가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신페인은 또한 보이콧투자 철회제재(BDS, Boycott, Divestment, Sanctions) 운동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다.

정치 분석가 듀로얀 퍼틀(Duroyan Fertl)은 "아일랜드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가 거의 보편적이기 때문에 현재 신페인이 다른 정당에 비해 특별한 이점을 얻고 있지는 않지만더 많은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신 페인이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면이러한 광범위한 지지는 EU 차원에서 추가 조치를 이끌어 낼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올해 초 신 페인은 이 문제에서 실수를 저질러 비판을 받았다이스라엘 대사를 추방하자는 요청이 지연되었고신 페인 지도자 메리 루 맥도날드(Mary Lou McDonald)가 성 패트릭의 날에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Joe Biden)을 만난 사건이 비판을 불러일으켰다이 사건 이후 신페인 지도부는 더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신페인의 BDS 캠페인 지지는 벨기에 노동자당(PTB, Belgian Workers’ Party)도 공유하고 있으며, PTB는 유럽연합 선거 선언문에서도 이 문제를 언급했다신페인과 마찬가지로 PTB는 팔레스타인 대의를 지지하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최근 몇 달 동안 벨기에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왔다.

노르웨이에서는 사회주의 좌파당(SV, Socialist Left Party)과 뢰트(Rødt)가 유사한 역할을 해왔다오슬로 대학의 연구원 페데르 외스트링(Peder Østring)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르웨이의 팔레스타인 역사적 인정은 이러한 압력과 활발한 시민 사회의 결과였다뢰드트(Rødt)가 11월에 팔레스타인 인정을 요구했을 때이는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해 통과되지 않았지만노르웨이가 평화 프로세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점에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겠다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핀란드 좌파연합(Finland’s Left Alliance)의 유럽연합 선거 결과는 가자지구에 초점을 맞춘 캠페인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좌파 연대를 이끌었던 리 안데르손(Lee Andersson)은 최근 인터뷰에서 캠퍼스 점거와 청년 동원이 이번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좌파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모든 곳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는 지난해 11월 산체스 2기 정부에서 퇴출된 후 현재 야당으로 자리 잡았다이 정당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면서도 매일 팔레스타인 주민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의 외교 및 상업 관계를 끊지 않는 현 연립정부의 '이중 기준'을 강력히 비판해 왔다포데모스가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국제사법재판소 제소에 동참한다는 최근 소식이 알려지며팔레스타인 대의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Emmanuel Macron) 대통령 집권 이후 사회 운동에 대한 국가 탄압이 급증했다팔레스타인 연대도 예외는 아니어서 가자지구를 지지하는 시위가 반복적으로 금지되고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주류 언론은 특히 좌파 프랑스 인수미즈를 반유대주의 운동으로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현재 진행 중인 대량 학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범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랑스 인수미즈는 유럽에서 가장 큰 급진 좌파 세력 중 하나로팔레스타인에 대한 흔들림 없는 지지를 통해 국회 안팎에서 정치적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32세의 프랑스-팔레스타인 변호사 리마 하산(Rima Hassan)을 유럽 선거 후보로 선정한 것은 평화를 위한 투표대량 학살에 반대하는 투표라는 캠페인 프레임 워크의 일환이었다.

프랑스에서 신인민전선이 7월 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프랑스 인수미즈를 고립시키려는 시도가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선거운동 기간 동안 프랑스 인수미즈가 "친하마스및 "반유대주의정당이라는 비난이 주류 언론에 널리 퍼졌지만신인민전선은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며 이러한 비난을 무산시켰다팔레스타인의 대의를 끈질기게 옹호한 결과프랑스 인수미즈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주류화할 수 있었다.

잘못된 "균형"

하지만가자지구에서의 대량 학살이 유럽연합 전역의 급진 좌파 정당들에게 새로운 통합의 명분을 제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프랑스 인수미즈가 유럽에서 가장 큰 좌파 세력을 형성하고 있지만모든 정당이 비슷한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의 적녹연합(Enhedslisten)은 팔레스타인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으며이스라엘과의 무기 거래를 비판한 유일한 정당이다그러나 정기적인 대규모 시위와 학생 시위를 지지하는 데는 소극적이어서 회원들의 불만을 샀다. EU 선거를 앞두고 열린 총회에서 이스라엘의 '방어권'을 주장하는 문장이 포함된 요구 사항이 표결에 부쳐지면서유럽연합이 서로 상반된 입장을 어색하게 '균형잡으려 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독일은 여전히 예외다연대의 표시나 평화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한 억압적인 대응은 충격적이었다좌파 정당인 디 링크(DIE LINKE)의 초기 입장은 종종 "독일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설명되었지만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독일 대중의 태도는 크게 바뀌었다. 11월에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에 대해 63%가 지지했으나현재는 61%가 반대하고 있다이 변화는 독일산 무기가 가자지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전쟁의 현실과 여론의 변화가 디 링크의 입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이들은 여전히 유럽 선거 선언문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또 다른 좌파 정당인 메르아25(MeRA25)는 '대량 학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독일의 공모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기득권에 맞서기

그럼에도 유럽 전역에서 의미 있는 좌파 정당들은 가자지구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국제적으로 평화와 정의를 옹호하는 사회 세력에 동참했다이는 보통 집권 엘리트 및 대중 매체와 직접적인 대결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선거 캠페인에서 국제법을 강조하고 이스라엘 및 미국과의 단절을 요구하는 것은 국제주의와 반제국주의가 유럽 좌파 정치의 중심축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좌파 정당들 사이에 분열을 가져왔다면팔레스타인에서의 대량 학살은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를 가져왔다가자지구 문제와 시위에 거리를 두기로 결정한 소수의 정당들은 투표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최근 몇 년간 유럽 좌파의 공통된 정의는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 구조에 대한 반대였다이번 유럽 선거에서는 가자지구에서의 대량 학살과 EU의 공모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 같다유럽 선거 결과와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좌파가 진정으로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만약 좌파가 그리스의 시리자(SYRIZA)처럼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을 포기하고 이번에도 팔레스타인을 외면한다면비슷한 결과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출처Across Europe, Gaza Has Become a Litmus Test for the Left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네심 아슈쉬(Nessim Achouche)는 유럽 정치 분야에서 사회생태적 전환과 녹색 산업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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