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때문이라는 변명에 숨긴 국가시스템 붕괴

끝난 폭동을 막았다고 축하하는 좌파

지난주 영국 전역에서 발생한 폭동과 무질서에는 노골적인 인종 폭력협박범죄 피해와 약탈이 포함되었다폭동은 널리 비난받았고검찰은 폭도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또한역사적으로 볼 때 이번 폭동은 규모가 작았고 피해도 거의 없었다.

폭동은 말 그대로 가장 어리석은 형태의 정치적 표현이다폭동은 구호나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구시대적인 의미의 어리석음이 담겨 있다사실 대부분의 폭동은 너무나도 어리석어서 정치적 행위라고 부르기조차 어렵다폭동이 궁극적으로 정치적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라도대부분의 경우 강압적인 권력의 주장은 정치적 이념에 의해 매개되지 않고참가자 일부의 분노와 다른 일부의 범죄적 기회주의에 의해 동기 부여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분노의 원인을 외부에서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극좌파에서부터 데일리 메일(Daily Mail, 영국의 보수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극우'에 책임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이는 단순히 무슨 일이 일어났고왜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단순화했을 뿐만 아니라민주화 이후 집권한 세력에게 편리한 정치적 변명도 제공했다이러한 변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거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정치적(단순한 경찰 조치가 아닌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변명이다.

좌파는 '극우'라는 변명의 지적 핵심을 제공하며이는 결국 현 체제의 이념적 방어막 역할을 한다. 1930년대의 재연된 안전한 공간에서마치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파시즘은 항상 행진 중이고케이블 가(Cable Street)에서의 저항이 반복되고 있다며 좌파는 '노 파사란(No Pasaran, 그들이 통과하지 못하리라)'을 외친다그리고 이미 대부분 끝난 폭동을 저지했다고 군중을 동원한 자신들에게 축하를 보낸다그러나 좌파가 이야기하는 '행진 중인 파시즘'은 단순하고 시대착오적인 허구에 불과하다파시즘이 패배한 이후 지난 80년 동안 상황은 극적으로 변했다.

출처: Unsplash, Flavio

달라진 인종주의

이번 폭동에서 드러난 인종주의는 1930년대의 인종주의나 1970년대 영국 파시즘의 일시적 부활 때 나타난 인종주의와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잉글랜드 북동부의 잉글랜드 디펜스 리그(English Defence League, EDL) 지지자들에 대한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2024년 폭동 가담자들의 인종주의는 그렇지 않다.

“'서구 제국주의의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우월주의적 사고 방식의 표현'이 아니라실제로는 그 반대가 사실이다오늘날 우리가 '극우'와 연관 짓는 인종차별은 사실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국은 오래전에 사라졌다오늘날 브리타니아(Britannia)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브리타니아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오늘날의 인종주의는 인종종교성적 정체성이나 성 정체성을 주장하며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다른 집단들을 보고이에 대한 반응으로 일부 노동자 계층 백인들이 자발적으로 채택한 정체성 정치의 일부로 발생한다놀랍게도이 정체성 그룹의 상징은 제국주의적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아니라훨씬 더 지역적인 영국의 세인트 조지 십자가(Saint George’s Cross)이다이는 백인의 인종적 우월성을 상징하는 대영제국의 제국적 운명이 아니라자국 내 영국인들의 희생을 상징한다무엇보다도좌파의 인종 정체성 정치와 마찬가지로 '극우'의 인종 정치는 피해자 정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위와 폭동은 세 명의 어린 소녀가 살해된 사건으로 촉발되었고살해 혐의를 받는 10대 소녀는 르완다(Rwanda) 출신 이민자의 자녀였다이후 폭동과 관련된 시위에서 반복적으로 표출된 두려움은 영국인들특히 그들의 자녀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시위대는 사우스포트(Southport)에서 사망한 소녀들의 취약성과 자신들 및 자녀들의 취약성 사이에 당국의 보호 실패가 있다고 인식했다물론경찰이 사우스포트에서 일어난 공격을 직접적으로 막을 수 없었기에 그 사건과 전반적인 취약성 인식 사이에는 실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하지만 이는 피해자 정체성의 핵심인 상징적 연관성을 놓치는 것이다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먼 사건이 개인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소수 민족과 이른바 취약한 집단들은 그들 중 하나가 공격을 받을 때 종종 비슷한 상징적 연결을 느끼고 실질적인 공포를 경험한다이것이 바로 정체성 정치의 본질이다.

폭동으로 드러난 다양한 사람들

내가 이 점을 지적하는 이유는 영국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살인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폭력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오히려 시위대의 주장과 좌파의 강력한 인종차별주의자들 주장 사이의 유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과거 파시스트들도 유럽의 백인들이 유대인들의 음모로 희생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당시에는 아리안 인종 우월주의를 강력히 내세우며 이를 결합시켰다요점은이번 시위와 폭동을 특징짓는 영국의 피해자 정체성이 지난 40년 동안 좌파가 정치에 기여한 독특한 요소즉 문화와 피해자 이데올로기의 육성이라는 (의도치 않은결과물이라는 것이다또한 '극우'라는 변명과 '극우'라는 범주 자체는 파시즘의 조건이 사라진 사실과인종주의의 현대적 형태 발전에 좌파가 기여한 점을 모두 흐리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현대 피해자 정치의 특징은 '극우'라는 변명을 통해 또 다른 중요한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다실제 견해나 행동과 관계없이 다양한 집단을 하나로 묶어 모두 인종차별자로 낙인찍는 방식이다이번 시위와 폭동은 과거의 파시즘과 다를 뿐만 아니라앞서 인용한 런던 시위자의 주장처럼 피해의식이 반드시 인종차별적인 내용을 포함할 필요도 없다사실이번 소요 사태에 연루된 사람들은 소수의 시위대와 폭도들 사이에서도 적어도 네 가지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그룹은 실제로 우익 활동가들의 소규모 네트워크이다이들 중 일부는 자신을 파시스트라고 착각하고 있으며의심할 여지 없이 문제를 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이러한 그룹은 매우 기본적인 수준의 '인프라'와 조직을 갖추고 있지만대부분 지역 페이스북(Facebook), 텔레그램(Telegram) 또는 왓츠앱(WhatsApp) 그룹의 형태를 띠고 있다이들은 엄청난 범죄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악용하여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리로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이들은 최근 사건에 참여한 모든 개인을 '회원'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국가는 물론 소규모 커뮤니티를 장악할 수 있는 조직도 없다실제로 이들은 의미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나 조직이 부족하다이들의 성향을 대변하던 영국 국민당(British National Party)은 2000년대 후반에 몰락하여 2010년 총선에서 1.9%의 득표율로 정점을 찍었고, 2019년경에는 당이 붕괴하여 사라졌다영국독립당(UK Independence Party)은 한때 악명 높은 선동가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의 조언을 받아 반이슬람주의 정당으로 재편되었지만이로 인해 정치적 변방으로 밀려났다.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27.5%로 최고치를 기록했던 득표율은 2019년 총선에서 0.1%로 떨어졌다이번 폭동의 배후에 1930년대의 의미에서 심각한 '파시스트 위협'이 있다는 생각은 망상적 음모론이다이 집단은 제대로 조직되지 않았고 주변적일 뿐만 아니라전간(戰間유럽의 엘리트들처럼 공산주의 혁명의 위협에 직면하지 않은 사회 및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폭동에 가담한 두 번째 그룹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무산계급이라고 부르던 기회주의자들로잃을 것이 거의 없고 기회가 생기면 약간의 폭력과 약탈을 일삼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사우스포트에서 세 명의 소녀가 살해된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나왔다가 어느 정도 자진해서 무질서에 휩쓸린 더 넓은 계층에서 온 소수의 사람들이다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그룹에 속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인종차별적 태도를 동반한 백인 피해자 정체성을 채택했을 것이지만그렇다고 해서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네 번째 인접 그룹은 대량 이민에 반대하고 범죄에 대해 불안해하는 지역 활동가들이지만폭력과 우익이라는 꼬리표를 명시적으로 거부하는 그룹이다. '극우'로 불리는 시위 주최자 중 일부도 적어도 공개적인 발언에서는 인종차별을 거부한다이들의 두려움과 적대감은 이민 및 복지 제도를 악용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망명 신청자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적으로 인식되는 무슬림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이들 집단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당국에 향하고 있다.

그러나 '극우'라는 변명이 수행하는 중요한 정치적 작업은 이러한 다양한 집단을 정부의 대량 이민다문화주의그리고 교차주의 정책에 비판적인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나로 묶는 것이다이들은 모두 반민주적 우익 음모의 적극적 참여자이거나 그 속임수에 빠진 사람들로 묘사될 수 있다인종차별주의자나 우익은 아니지만엘리트 정책의 방향에 반대하는 훨씬 더 많은 인구 집단이 폭동의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를 회피하려는 정권의 필사적인 노력에 의해 진정한 정치적 목표가 되고 있다.

극우로 낙인찍힌 가난한 사람들

이번 시위에서 드러난 새로운 영국인 피해자 정체성의 암울한 측면 중 하나는 가난한 백인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는 피해자 의식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그 근거가 이민자나 무슬림의 행동에 있다는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폭동의 4분의 3은 미들랜드(Midlands)와 북부에서 발생했으며남부에서 발생한 6건 중 3건은 해안 도시에서 발생했다생활 수준인프라공공 서비스가 모두 심각하게 붕괴된 영국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이 지역의 백인 노동자의 자녀들은 (로마인과 아일랜드 여행자를 제외하고가장 교육적으로 취약한 인종이며대학 진학률이 가장 낮은 집단이다.

한때 자신들을 대변했던 노동당으로부터 버림받은 이 지역의 가난한 유권자들은 이제 값싼 노동력의 대량 유입을 대가로 자녀의 기술 교육이나 지역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희생되는 정치 경제에 반대하여 반복적으로 투표하고 있다그러나 2016년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그랬듯이이들이 국제적 자본의 지배에 맞서 자신들의 이익을 주장하려고 할 때마다 특히 노동당 활동가들과 지지자들로부터 무지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외국인 혐오주의자라는 조롱과 증오를 받아왔다가장 결정적으로 2019년에는 이민 통제와 지역 평준화를 약속한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나 나이절 패라지(Nigel Farage)에게 투표했고그 선거에서 패배한 노동당도 공공 지출을 늘리겠다는 제러미 코빈(Jeremy Corbyn)의 공약에 표를 던졌다그러나 유권자들이 대신 얻은 것은 똑같은 구태의연한 상황뿐이었다생활 수준은 계속 하락하고주거비와 에너지 비용은 치솟았으며이민자 수는 급격히 늘어났고이에 더해 모욕적인 조치들까지 겹쳤다.

이러한 오랜 정치적 배제 경험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대의 정치를 포기하게 되었다. 2024년 총선에서 유권자 중 48%가 투표하지 않았다. (투표한 사람들 중 주류 정당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응답이 높다인구의 상당 부분이 현재 국가 내에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고 있으며그 일부는 주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계속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빈곤층 유권자특히 젊은 유권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에서 자신들이 배제되었다는 허위 정보를 접할 필요도 없다가장 가난한 사람들 중 다수는 자신의 자녀들이 살 곳을 마련하고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상황에서 공공 비용으로 거주하는 이민자들에 대해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으며특히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는 불균형적으로 이민자들이 더 많이 거주하고 있다이 지역의 일부 백인 영국 시민들의 분노는 정치계급언론국가 관료무엇보다도 노동당이 자신들을 경멸하고 있다는 정당한 확신과 결부되어 있다당연히 이들은 버림받고희생당하고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의회 밖의 행동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견해는 자유주의적이지도 않고 일관성이 있지도 않다이 많은 인구 중 실제로 폭동을 일으킨 사람은 극소수이지만이러한 광범위한 경험이 불만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정치계급이 좌파가 제공하는 '극우변명을 왜 그렇게 빨리 채택했는지그리고 시위대의 피해자 정치가 왜 정치적으로 막다른 길인지 설명해 준다.

영국에서 인종적 적대감의 성격과 인종 갈등의 근원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인정하기는커녕 생각조차 하지 않고대신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극우'라는 낙인을 찍음으로써 정치계급은 불만의 정치적 원인을 근본적으로 다루지 않고 대신 정치적 표현과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위주의적 단속을 정당화하고 있다더욱이 평등다양성포용에 집착하는 국가는 '극우'라는 변명을 통해 소수의 가난한 백인 시민들을 지속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Unsplash, Chase Baker

통합은 이민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보통 '통합'을 이민자들만의 문제로 생각하지만사실 이는 훨씬 더 큰 문제다지금 우리 사회는 국가가 전쟁 중인 피해자 정체성 집단으로 완전히 통합되는 과정을 겪고 있다. '극우'라는 변명을 내세우는 것은 정부가 국가 붕괴의 근본적인 문제를 무시하고실제로는 없는 파시즘의 위협을 막기 위해 더 많은 검열과 강력한 치안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을 보여준다이 변명은 정치 시스템이 가난한 백인 시민들의 이익을 계속 무시한다면인종차별을 선동하는 지하 네트워크와 온갖 음모론이 계속될 것이라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기도 하다.

반면힘없는 시민 집단이 피해자나 취약성에 근거해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결국 상황을 변화시킬 힘을 발휘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무력함과 의존성을 강조하는 자기 패배적 전략이다이는 일부 활동가 그룹이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하는 모든 사회 영역에서 나타나는 문제다그러나 정치적 권력을 가진 다른 누군가가 그 취약한 집단을 '보호'하는 데 관심이 있다면그런 주장은 최소한 겉으로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하지만 지금의 가난한 백인 시민들에게는 그런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1970년대에 소수 민족은 대표성을 갖지 못했고소수 민족의 젊은이들은 결국 1980년대의 (훨씬 더 크고 파괴적인폭동으로 자신들에게 가해진 불의에 대응했다당시의 좌파는 소수자 배제를 인식하게 되었고엘리트들은 폭동에서 어느 정도 그 메시지를 '듣게되었다그리고 스카르만 보고서(Scarman Report, 1981년 영국 런던의 브릭스턴(Brixton)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동 이후에 작성된 공식 보고서)와 함께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고 불충분한 개혁의 과정이 시작되었다오늘날의 기성 정치계급이 가난한 백인 시민들의 불명료한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가능성은 훨씬 낮아 보인다진보주의자들과 좌파들도 이러한 사회 계층의 배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들에게는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게다가 이러한 배제를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려면 민주화 이후 정권이 추진한 정치 경제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가 필요하다이는 기존 정권이 감당할 수 없는 과제인 것 같다더 많은 인종 갈등과 검열정치적 억압이 보장된 것처럼 보인다.

영국의 피해자 정체성은 정치적으로 자기 패배적이다이는 시민들 간의 분열을 심화시키고국가 관료제를 비대하게 만들며관료제 속 좌파 변명가들의 허영심을 부추길 뿐이다결국가난한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려는 세계 시장의 국제 질서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그렇다면다른 사람의 희생자가 아닌 모두가 대표성을 찾을 수 있는 집단 자치에 기반한 정치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우리는 정권의 국제적 자유주의와 포퓰리스트의 희생자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국가 건설의 정치가 필요하다모든 시민의 이익을 하나로 통합하고 보호하려는 민주주의적 영국 국가에 대한 정치적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

[출처Peter Ramsay – The Far-Right Excuse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피터 램지(Peter Ramsay)는 런던 정경대학(London School of Economics)의 법학 교수이자, The Northern Star의 창립 편집자 중 한 명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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