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은 장소가 아니라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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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라 자페의 ⟪잿더미에서: 타오르는 세상에서의 슬픔과 혁명(From the Ashes: Grief and Revolution in a World on Fire)⟫(Bold Type Books)에서 발췌한 것이다.

다섯 명의 부유한 남자가 관광용 잠수정에서 사라졌고, 부유한 세계는 그들에게 집착했다. 같은 주에 750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아드리아나라는 어선에 밀집되어 있었고, 부유한 세계는 그 배가 가라앉도록 내버려 두었다.

잠수정에는 두 명의 억만장자, 두 명의 백만장자, 그리고 한 명의 백만장자 아들이 타고 있었다. 백만장자 중 한 명과 그의 아들은, 아드리아나에 타고 있던 많은 이민자들이 유럽에서 피난처를 찾기 위해 떠나온 나라, 파키스탄 출신이었다. 잠수정에서는 모험을 추구하며 타이타닉의 잔해로 짧은 여행을 떠났는데, 그곳은 잘 알려진 것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구명보트를 차지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익사하게 내버려 두었던 곳이다. 아드리아나에서 사람들은 다른 삶을 추구했다. 끝내 안전이라는 결실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 위험한 항해였다. 그들 중 104명은 구조되었고, 나머지는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잠수정을 위한 구조 작업은 국제적으로, 비용을 많이 들여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아드리아나의 생존자 모하메드는 그들이 타고 있던 과밀한 배가 멈췄을 때 헬리콥터와 배들이 그들을 지나쳤고, 구조 요청을 무시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해안 경비대가 결국 도착했을 때,  “배가 전복될 무렵, 그들은 우리 바로 옆에 있었지만, 배가 가라앉는 순간 그들은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그들은 우리를 의도적으로 침몰시켰다.”(그리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자세한 조사에서 “최근 몇 년간 가장 치명적인 지중해 선박 침몰 사고는 예방 가능한 비극이었다”고 지적했다. 익명의 전 지중해 해안 경비대 관계자는 워싱턴 포스트에 “아무도 그들을 데려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라고 말했다.

EU 관계자 중 한 명에 따르면, 아드리아나의 침몰은 그 바다에서 "역대 최악의 비극"일 수 있지만, 드문 일은 아니었다. 테살로니키에서 침몰에 대한 반응으로 시위자들은 "유럽 최대의 이민자 묘지에서 크루즈를 즐겨라"라는 문구가 적힌 거대한 배너를 들고 항구로 행진했는데, 이는 2021년 그리스의 이민자 수용소를 방문하기 전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었다.

독일인 선장 카롤라 라케테는 이 절박한 이민자들을 태운 여러 종류의 허술한 배나 뗏목을 "유령 배"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배들은 너무 자주 항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 라케테가 구조 작업을 이끌던 시기는 이러한 절박한 항로를 범죄화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던 시기와 일치했다. 2019년 6월, 그의 배는 리비아와 이탈리아령 람페두사 섬 사이에서 떠다니던 뗏목에서 53명을 구조했는데, 당시 이탈리아의 상대적으로 새로운 정부에는 극우 반이민 정당인 레가(Lega)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목소리를 낸 사람은 내무부 장관 마테오 살비니였다. 뗏목에서 'Sea-Watch 3'에 올라탄 사람들 중 일부는 아프고, 다치고, 임신 중이었으며, 일부는 어린아이들이었다. 라케테는 람페두사에 입항하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며칠간의 교착 상태 끝에 그는 결국 입항을 강행했다.

다른 나라들은 라케테의 배에서 보낸 조난 요청을 거부하거나 무시했다. 그는 "불법 이민 촉진" 혐의로 기소될 것이었지만, 그는 해상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은 UN 해양법 협약 제98조에 따른 의무라고 언급했다. 단순히 배를 금지하는 것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누구도 모험을 위해서, 혹은 대수롭지 않은 변덕으로 이런 일을 자청하지 않는다. 이미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는 겁을 준다고 집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국-소말리아 출신 시인 워샨 샤이어는 "고향이 상어의 입이 아니라면 누구도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러나 그들이 유럽의 항구에 도착한다면, 이민자들은 안락한 관리들이 의미를 분석하고 절박함을 평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줘야 한다. 그들이 고향을 떠난 이유가 충분히 끔찍하다고 여겨질 때에만 머무를 수 있는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라케테는 결국 석방되었고, 판사는 그가 람페두사에 입항한 행동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2021년까지 그에 대한 마지막 혐의는 모두 철회되었고, 살비니는 이민자들이 이탈리아 항구에 입항하는 것을 거부한 것과 관련해 자신의 혐의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국경은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확장되고 있다. 미국 국경 순찰 기관과 마찬가지로 유럽 국경 순찰 기관인 프론텍스(Frontex)는 정치인들이 이민자들을 점점 더 크게 외치면서, 그들을 단순한 인간이 아닌 보안 위협으로 묘사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유럽인들 자신이 수세기 동안 자유롭게 이동했던 것과는 달리 말이다. 라케테는 "사실상, 망명 제도는 이미 작동하지 않거나 제네바 협약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호주에서도 그렇다. 이미 거의 죽었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노력으로 그것을 조금이나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케테는 누군가가 자신처럼 어떤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거나, 이민자들이 이동하면서 법을 어겼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쉽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누군가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즉 방치에 대해, 조난 요청을 듣지 못한 척하며 배를 몇 시간, 며칠, 몇 주 동안 파도 속에 떠돌게 내버려둔 것에 대해 기소하는 것은 더 어렵다. 2019년 이탈리아의 살비니는 이례적인 인물처럼 보였지만, 2023년에는 “지금 파시스트 경향이 유럽 전역에서 훨씬 더 크고 두드러져 보인다”고 그는 말했다. 중도좌파 정당들은 우파로부터 표를 되찾기 위해 이민 문제에서 양보하며, 바다로 나서는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약속으로 정치 경력을 쌓았으며, 그 장벽은 어떻게든 미국의 정치 구조를 침투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 다니엘 덴버는 그 장벽을 "정치적 감정의 구조물"이라고 언급했다.

“나는 남서부 출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국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내 할머니가 국경이 그어질 때 살아계셨다고 말해요.” 지금은 필라델피아에서 이민 변호사로 일하고 있지만 국경지대에서 자란 빅토리아 제르다가 내게 말했다. 국경은 그의 가족을 가로질러 그어졌고, 그 가족은 지금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의 선 양쪽에 존재하고 있다. 오랫동안 그들은 자유롭게 왕래했으나 점차 국경이 강화되었고, 그 여정은 불법이 되었으며, 가족은 둘로 갈라졌다. 미국은 멕시코가 노예제를 폐지하려는 결정에 반대했던 정착민들로 인해 촉발된 전쟁에서 텍사스와 주변 영토를 멕시코로부터 획득했다. 노예 소유자들이 승리했고, 그 과정에서 수만 명의 멕시코인들이 미국인이 되었다. 또는, 시위 구호에서처럼 "국경이 우리를 가로질렀다"고 할 수 있다.

변화하는 국경의 본질이 우리에게 상기시켜야 할 것은, 국경이 이민자를 만든다는 것이다. 국경은 물, 강, 바다와 같은 자연적 요소일지라도 결코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국가들은 강의 어느 부분이 그들의 것인지, 바다 속 영토가 어디까지 확장되는지에 대해 협상하고 세세하게 따진다. 그리고 이민자는 반대로 국가를 구성한다. 로빈 D.G. 켈리가 썼듯이, 그들의 이미지는 누가 속하는지를 정의하고, “포용, 배제, 그리고 완전한 범죄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국경은 장소인 동시에 과정이다. 해상에서 표류하는 배를 구조할지, 사막에 자원봉사자들이 남겨둔 물병을 깨버릴지, 음식과 옷을 파괴하고 그 위에 소변을 볼지, 어떤 사람은 통과시키고 다른 차는 수색할지, 취업 신청자나 과속으로 멈춰 선 사람에게 시민권 서류를 요구할지에 대한 결정이다. 정책은 바뀌고 정치인들은 테이블을 두드리며 설교하지만, 국경에서, 국경의 과정은 날마다 계속된다. 이러한 가식적인 태도는 다른 많은 것들처럼 실제 인간을 가려버린다. 제르다는 "사람들이 국경 정책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천, 수만 명이 국경지대에서 목숨을 잃고 있으며, 텍사스 전역에서 집단 묘지가 발견되었다. 여행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폭행, 탈수, 열사병, 부상, 체포와 추방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며, 결국 그들의 여정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

"국경"이라는 상상의 공간에는 그런 것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국경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영토 약탈, 소규모 전투, 전쟁의 역사이며, 조직적인 방기와 범죄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커다란 이윤의 역사다. 식민 열강은 다른 식민 열강들이 총구로 강제할 수 있는 경계를 제외하고는 자신들이 존중해야 할 국경이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미국 국경에 의해 땅이 가로질러진 토호노 오오담 같은 민족은 더 크고 무장한 국가의 세력을 막을 힘이 없었다. 거의 8천만 명의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를 식민화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계약 노동자와 노예를 데려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은 자신들이 점령했던 사람들에게 포위되었다고 상상했다.

국경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다. 그것은 단지 두 장소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엄격하면서도 유동적인 계층으로 나눈다. 때때로 이 계층은 재구성되며 이동하기도 한다. 오늘날 여권의 세계는 수세기에 걸친 토지 몰수와 압류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식민지는 실험과 분류의 연구실이었다.

식민지 주민들은 유럽 배에 의해 노예나 계약 노동자로 끌려가지 않는 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았다. 그들의 물품과 예술품은 유럽으로 가져가졌지만, 오늘날 과거 식민지 출신 사람들은 빼앗긴 보물이 전시된 반짝이는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 비자가 필요하다.

저널리스트 안나 레카스 밀러는 그녀의 책 ⟪국경을 가로지른 사랑: 분단된 세상에서의 여권, 서류, 그리고 로맨스(Love Across Borders: Passports, Papers, and Romance in a Divided World)⟫에서 여권은 처음부터 신분에 따라 차별하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시민이며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 "여권"이라는 이름은 중세 프랑스에서 유래한 문서에서 온 것으로 보이며, 이 문서는 "귀족들이 자신들이 보기에 하찮은 농민과 부랑자들이 도시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덧붙였다. 신분보다 국적에 중점을 둔 현대의 여권 제도는 1차 세계대전 중과 그 이후에 정립되었다. 레카스 밀러는 1920년 평화의 형태를 결정할 때 유럽 열강이 이동의 자유를 회복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결국 그것을 반대하기로 결정했다고 썼다.

미국은 초기부터 시민권과 인종을 연관지었다. "태어난 자는 어머니의 신분을 따른다"는 원칙을 가진 재산 노예 제도는 입국 시점에서 차별을 요구했다. 당신은 이민자인가, 노예인가? 1790년 귀화법에 따르면 "자유로운 백인"만이 시민이 될 수 있었으며, 1882년에는 중국인의 이민이 특별히 금지되었고, 1920년대에는 출신 국가별 할당제가 도입되었다. 권리와 노동 지위가 남성과 달랐던 여성은 '잘못된' 이민자와 결혼할 경우 시민권을 잃을 수 있었던 반면, 남성은 외국 출신 아내를 더 쉽게 귀화시킬 수 있었다.

지도 위의 식민지 경계는 지속되지 않았고, 식민지에 강요된 폭력도 본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많은 유럽인들이 침략과 점령을 피해 도망쳐야 했고, 프란츠 파농의 말에 따르면 나치는 유럽을 "진정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도망친 유대인들은 미국 국경에서 쫓겨났다. 908명의 난민이 탄 SS 세인트 루이스 호는 할당량(독일과 오스트리아 이민자에 대한)이 이미 다 찼다는 이유로 유럽으로 돌려보내졌다. 전쟁이 끝난 후, 세계의 국경은 다시 그어졌다. 냉전은 소위 "철의 장막"에 의해 분열된 세계를 형성하게 되었고, 탈식민지 국가들은 소위 "선진국"의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미국은 더 넓은 정치적 개편의 일환으로 할당제를 폐지하고 "이민자의 나라"라는 이상을 포용하게 되었지만, 이는 결코 현실이 아니었다. 남부 국경은 동시에 더욱 강화되었지만, 이 이야기는 국가의 외양을 아름답게 꾸미는 좋은 이야기였다.

식민주의는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지만, 그 권력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약탈이 과거의 약탈을 대신했으며, 자본주의는 재편되었지만 떠나지 않았다. "구조 조정"은 다시 한 번 글로벌 남반구의 경제를 북반구의 의지에 굴복시키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자신들이 창출한 일부 부를 "대출" 형태로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굴복한 것처럼 보였다. 이민자들은 고향에 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떠났고, 불안정과 전쟁을 피해 떠났으며, 연인, 친구, 사촌, 부모를 뒤로한 채 매달 돈을 보내면서 그 경제를 유지시켰다.

세계 인구의 약 3.5%는 이민자나 난민으로, 폭력, 경제적 필요, 사랑, 또는 다른 상실로 인해 집을 떠나야만 했다. 그들이 향하는 부유한 국가들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고, 그들의 세부 사항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 이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음식물을 수확하고, 포장하고, 서빙하며, 환자를 돌보고, 택시와 트럭을 몰고, 청소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창고에서 물품을 포장하고, 사업을 시작하고, 책을 쓴다. 그들은 이분법으로 나뉜다: 난민 혹은 이민자, 합법 혹은 불법, 선하거나 악한 사람, 흑인 또는 백인. 하르샤 왈리아는 "차별의 대량 생산과 사회적 조직화가 국경 관리의 핵심이다"라고 썼다.

오직 특정한 이민자들만이 국경의 위협으로 간주된다. 장벽이 세워질 예정이었던 미국의 국경은 물론 남쪽 국경이었지, 얼마 전 내 가족 절반이 넘었던 캐나다와의 국경은 아니었다. 유럽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은 프론텍스와 각국의 국경 수비대가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막아냄으로써 유지된다.

다시 말해, 국경은 관계이다. 국경은 분리하지만 동시에 연결하기도 한다. 국경은 많은 경우 일방적이다. 미국인들은 해변 휴가나 모험을 위해 여러 나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지만, 그 반대는 훨씬 더 어렵다. 글로벌 남반구 출신 사람들은 모험가나 관광객, 손님이 아니라 의심스러운 존재로 취급된다. 정치적 흐름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이민자의 기준이 달라지는데, 쿠바 망명자들은 미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반면,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서 촉발한 폭력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은 추방되거나 억류된다고 제르다는 지적했다. 국경은 사람들을 막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내부의 것들이 소중하고 마법 같아서 무분별한 외부인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경이 주로 보호하는 것은 약탈한 부와 땅이며, 그 불의한 도둑질로 인한 불안감이다. “국경 전체를 수십억 달러로 군사화해야 한다면, 이 땅은 정말 당신의 것인가?” 제르다는 물었다. 미국만이 장벽의 유혹에 사로잡힌 유일한 곳은 아니다. 최근 스페인과 모로코, 그리스와 튀르키예, 튀르키예와 시리아, 헝가리와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사이에도 울타리와 장벽이 세워졌다. 이스라엘은 심지어 지하까지도 벽으로 둘러싸고 있다. 벽은 정치적 감정의 구조물이며, 국경 자체도 그렇다.

[출처] Borders Are Drawn to Protect Stolen Wealth. They Are a Process, Not a Place.

[번역] 류민 

덧붙이는 말

세라 자페(Sarah Jaffe)는 뉴올리언스와 도로 위에서 살아가는 작가이자 기자로, 일터에서 거리까지, 권력의 정치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룬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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