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느닷없는 비상계엄은 80년 광주를 불러왔지만 다행히 몸서리쳐지는 전개 없이 2시간짜리 계엄 해프닝, 내란으로 끝났다. 이후 미국 NSC는 “미국은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는 성명을 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나서서 윤석열이 심한 오판을 했다거나, 비상계엄 도박을 했다는 등의 거친 언사로 비판하고, 약속되어 있던 미 국방장관의 한국방문을 취소한 것과 같은 대응을 보면 그들도 당혹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러한 반응과 달리 총을 들고 창문 유리창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는 영상은 미국인들에게 트럼프 등장 전후의 사회현상과 맞물려 기억을 상기시킨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과 트럼프의 겹치는 두 가지 단어는 군대 동원과 선거 부정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적 반대자들 사이에서, 군대를 배치할 시기를 대통령 혼자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내란법'을 개혁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선거운동 기간 트럼프는 특정 대도시들의 범죄를 단속하기 위해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데 군대를 동원하겠다는 공약1)을 내놓았었기에 그러하다. 아울러 ‘2020년 미 대선에서 패배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결과에 불복하자 이에 동조하는 극성 지지자 수천 명이 2021년 1월6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의원들을 위협하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부린 사건, 미국의 의회 폭동 사태와 유사하다고 언급’2)한 것이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에 들어서며 대대적인 종교적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톰 크루즈, 존 트라볼타와 같은 배우들이 신도로 유명한 사이언톨로지, 문선명의 통일교, 1978년 가이아나에서 집단자살하면서 세상을 경악하게 한 인민사원 등이 있는데, 그 근간은 미국에서 역사가 오래된 복음주의 기독교의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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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한경직 목사 주도로 여의도 5·16광장에 100만이 모인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 당시 전도 집회를 했던 빌리 그레이엄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동교회 한경직 목사는 해방 후 극우 서북청년회의 근간이었고 당시 통역을 맡았던 지금 극동방송 이사장인 김장환 목사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은 물론 이명박, 박근혜 재판을 ‘예수의 고난’으로 빗대어 옹호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들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종교적 메시지를 아주 정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기독교 우파의 여러 조직은 ‘지역문제에 대한 연방정부의 간섭에 반대하고 낙태와 이혼, 페미니즘, 동성애를 비난하는 한편, 제약 없는 자유기업을 옹호하고 세계적 강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을 지지했다. 또한 진화의 과학적 학설을 거부하면서 그 대신에 학교에서 성경에 나오는 창조설을 가르치라고 촉구했다. 이들 기독교 연합조직은 기독교적 가치가 미국적 생활양식을 규정했던 시대를 다시 한번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970년대 말 ‘기독교 우파’는 강력한 정치세력이 되었으며,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우익의 여러 싱크탱크, 자문회사, 로비스트, 재단, 학술기관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3)
미국에서 흑백 갈등, 인종 분리와 차별에 맞선 오랜 투쟁은 50년대 들어 본격화되고 원주민,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 운동, 베트남전쟁 반전운동과 함께했던 청년들의 대항문화, 페미니즘, 환경운동이 60년대를 뒤덮었다. 마침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던 TV를 타고 영상과 함께 빠른 속도로 확산했던 사회운동은 기존의 질서를 흔들었다. 그리고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고 워터 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대통령이 사임하는 등 국가와 권력의 권위가 흔들리면서 우익의 활동이 새로이 시작된다.
이들 복음주의적 신우파의 등장은 카터, 레이건과 같은 대통령을 배출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그 상징적인 정치적 등장이 두 번에 걸친 트럼프의 당선일 것이다. 이번 2024년 미국 대선에 대한 이와 연관된 평가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백인 복음주의 개신교 유권자들은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집단”이었으며, 트럼프 첫 임기 동안 임신 중지 반대 성향의 판사들을 연방대법원에 임명한 것을 “기독교인들, 복음주의자들에게 큰 승리”이며 트럼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이들 복음주의자, 백인 기독교단체들은 1960년대 민주당이 민권 운동과 연관되면서 공화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ing America Great Again)”라는 아이디어에 신앙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국가의 기독교적 성격을 복원하겠다는 약속과 연결된다”고 말한다.4)
그리고 대선 전에 같은 시각에서 미국 대선을 바라보는 글을 옮겨보면 이러하다. “'기독교 민족주의'란 기독교 신앙과 민족 정체성이 결합된 이념이다. 미국을 신이 선택한 국가로 여기며 정치, 사회, 교육 정책 등에 기독교적 교리와 원칙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믿는 운동이다. 자연스럽게 정교분리 원칙에 반대하며, '문화 전쟁'이나 '영적 전쟁'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난민, 이민자, 성소수자, 낙태, 페미니즘 등을 도덕적 타락으로 간주하고 강력한 배제와 규제를 주장한다. 이들은 또한 진보적, 세속적 삶에 반대하는 것을 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기후 변화나 진화론과 같은 과학을 부정하며, 공교육에서 창조론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미국이 본질적으로 백인들의 국가라고 믿기 때문에 이민 정책에 반대하고, 서류 미비 이민자의 즉각 추방과 속지주의(미국 태생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현 제도) 폐지와 같은 인종주의 정책을 옹호한다. 냉전 시기,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와 무신론이 미국에서 존재론적 위협으로 간주되면서, 반공주의가 특히 근본주의 개신교와 일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더욱 강하게 대두되었다. 그들은 매카시즘과 같은 반공 운동에 큰 지지를 보내며 정치적 보수주의와도 더욱 가까워졌다”고.5)
그간 광화문은 기독교 우익 세력들이 차지한 예배 장소였다. 그들 기독교 우익 세력의 직접 정치도 시도되고 있고, 최근에는 창조론자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든, 시장으로 나오든, 장관 자리를 노리든, 정치를 하는 이들은 광화문 기도소를 한번은 거치고 전광훈의 눈도장을 받아야 했다. 한편 이번 계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유튜브였다고 한다. 계엄 이후 홍준표마저도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관련해 "세상에 저렇게 허술하게 계엄하는 건 처음 본다", "극우 유튜버들한테 현혹됐을 것"이라고 할 정도이다. 우익보수, 기독교세력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퀴어나 페미니즘운동 그리고 노조운동 등에 발작적인 대응을 하면서 자신들의 자리를 확장해 왔다.
참세상 자료사진
지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은 한국 사회운동의 큰 전환점이었다. “지난 2016년 말에 시작된 광장투쟁에 6개월간 1700만 명이 거리에 나왔다. 대체로 불안정 노동자들과, 차별과 배제의 표적이 된 학생 및 청소년, 그리고 여성들이었다. 광장의 촛불은 전면화된 차별과 배제에 대한 투쟁이었다. … 다양성과 차이를 내걸고 여성혐오와 나이주의 등을 제기하면서 내면의 정치혁명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다양한 깃발 아래 다양한 퍼포먼스가 이루어졌고 그것이 광장의 힘이 됐다.”6) 그 이후 특히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페미니즘은 젊은 여성들에 내면화되어 왔다. 그리고 동성애, 장애인 운동과 같은 소수자 운동 역시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의 공간을 넓혀왔다. 역사적 근원을 미국에 두고 있는 보수우익 기독교 세력은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최근 진전하고 있는 한국 사회운동을 하나의 숙주로 하여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트럼프의 군대 동원과 선거 부정의 맥락이 닿아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고 관공서의 건물은 커져만 가도 백성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부동산, 주식, 코인과 같은 지대추구 한탕주의가 삶의 기준이 되어 노동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젊은이가 갈 일자리는 없고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노인들의 목구멍에 풀칠이나 할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스며들 듯 추진되어온 민영화로 공공서비스의 자리는 없어지고 없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세월호에서 가라앉은 청춘은 이태원에서 다시 질식했고 위험사회가 자본주의를 밀고 가는 하나의 추진 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지하철을 타기 위한 장애인을 가로막는 행정 권력,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정당화되고 있다. 이처럼 차별과 배제, 여성, 소수자에 대한 공격이 그들만의 하나님을 향한 방언이 넘쳐나는 기독교의 일부 우익정치의 토양이자 온라인 조회수 장사의 밑천이 되었다. 기독교 우익이 선 자리이지만 이는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축적 체제를 전면화시킨 자유주의 세력, 특히 민주당의 공(功)이기도 하다.
남쪽에서 트랙터를 타고 올라온 농민들이 남태령에 가로막혔을 때, 응원봉을 들고 달려왔던 2~30대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그들이 결국 경찰의 저지선을 뚫었다. 트랙터를 몰고 올라온 농민은 “농민들만 있을 때 경찰들이 폭력적으로 했었는데 20대 시민들이 왔을 때는 정말 큰 힘이 되어서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이었다. 농민들만 있었으면 다 연행되거나 더 심한 탄압이 있었을 텐데 20대 여성들이 지켜줘서 정말 감동했다”고 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지켜줘야 할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주는 존재’였다. 그리고 윤석열 내란, 탄핵 국면에서 그들은 응원, 연대를 넘어 삶을 바꿔나가는 주체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 정치에 미국 70년대 우익 복음주의 기독교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면, 동시에 한국 사회운동 역시 5·60년대 민권운동, 사회운동의 확장으로 대중적 정치운동의 토대를 구축한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로 대표되는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를 연상해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7)
1) 말 아끼는 미국정부…CNN기자가 본 ’탄핵 이후‘ 한국은. 2024.12.17. JTBC
2) CNN “美도 트럼프 취임하면 韓 계엄사태 벌어질 수도”. 2024.12.5. 뉴시스
3)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3⟫ 33장 한계의 시대에서 레이건의 시대로. 2 신우파의 출현.
4) 트럼프를 구세주로 여기는 기독교인들. 알림 막불. 2024.11.29. 참세상.
5) 트럼프와 극렬 기독교인들의 위험한 프로젝트.<소셜 코리아> 인종주의 옹호하는 기독교민족주의자들 ... 소수지만 경합주에 위협. 전후석/재미영화감독. 24.10.07.
6) 한국사회 전환기-‘17체제’. 2019.06. 이종회
7) 미국 사회주의자들의 도약을 어떻게 볼 것인가. <워커스> 인터내셔널. 2018.09.05. 김선철(에모리대 교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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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회는 전 노동당 대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