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선거의 잠정 결과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번 선거는 숄츠 연정을 구성한 정당들에 치명적인 패배였다.
SPD((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 독일 사회민주당)는 독일연방공화국 역사상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다. 녹색당은 이전 최고 기록을 넘지 못했다. FDP(Freie Demokratische Partei, 자유민주당)는 5% 봉쇄조항(정당이 의석을 배분받기 위해 최소한 넘어야 하는 득표율 기준)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는 CDU(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결정적인 승리도 아니었다. CDU는 30%를 넘지 못했으며, 역사상 두 번째로 낮은 결과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구’ 독일연방공화국 정당들은 총 62% 이상의 득표를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에서 도전장을 내민 세 정당은 모두 구동독 지역에서 강력한 기반을 갖고 있다.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당)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20%를 결정적으로 넘지는 못했다. 이번 선거의 진정한 이변은 좌파에서 발생했다. 바겐크네히트의 신당은 5%를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좌파당(Die Linke)은 놀라운 부활을 이루며 8.5%를 기록했다.
이러한 정당 정치 스펙트럼의 분열을 "민주주의의 위기" 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번 여름 유럽의회 선거에서 분명히 드러났듯이, 독일 민주주의는 건재하다.
투표율은 거의 84%에 달했으며, 2021년과 비교했을 때 큰 폭으로 증가 했다.
문제는 정당의 정책과 지도력에 있다.
이번 선거는 대통령제 방식의 선택이 아니었다. CDU의 메르츠는 숄츠보다 더 유능하다고 여겨지지만, CDU를 제외하면 개인적인 지지층이 거의 없다. 유권자의 4분의 1만이 메르츠를 호감 가는 인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유권자들이 주요 후보 중에서 선택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SPD 소속 국방부 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Boris Pistorius)이지만, 그는 어떤 정당에서도 선거의 대표 후보가 아니었다.
출처: 타게스샤우(Tagesschau)
상단 이미지 번역 : 누가 좋은 총리가 될 것인가?
하단 이미지 번역 : 숄츠와 메르츠 중, (순서대로) 총리직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다. 호감이 간다
이번 선거는 정당과 연정에 관한 것이었다. 독일은 새로운 정부가 필요했다. 문제는 새로운 연정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였다.
CDU는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으며 2021년의 참사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30%를 결정적으로 넘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했음이 분명하다. 메르츠는 이민 문제와 관련해 AfD와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으며, 이는 진보 성향의 독일인들에게 용납할 수 없는 행보였다. 하지만 CDU는 우파에서도 한계를 마주하고 있다. 외국인 혐오 성향을 보인 독일인들 사이에서는 기억이 길며,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과 그의 2015년 개방 정책이 현재의 난민 및 망명 신청자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미지 번역 : (위) 어느 정당이 현재 국가의 문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아래) 어느 정당이 대규모 난민 및 망명 신청자 유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
많은 독일인은 이주 규모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이는 AfD 지지자의 89%, 메르츠의 CDU 지지층 70%에게 해당하는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 유권자의 55%가 이주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논란이 된 쟁점이었다.
이미지 번역 : 너무 많은 외국인이 독일로 오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된다.(각 정당 지지자 중)
그러나 메르츠, AfD, 그리고 J.D. 밴스가 모든 관심을 이주 문제에 집중시키려 했음에도 이는 이번 선거에서 다뤄진 여러 쟁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설사 "내부 안보" 와 "이주" 를 동일한 주제로 간주하더라도, 독일 유권자의 3분의 1만이 이를 결정적인 이슈로 지목했다.
상단 이미지 번역 : 어떤 이슈가 당신의 투표 결정에 가장 중요했는가? (순서대로) 내부 안보, 사회 보장, 이주, 경제 성장. 환경과 기후, 평화 확보, 물가 상승
하단 이미지 번역 : 독일의 상황은 신뢰를 주는가, 아니면 우려를 불러일으키는가?
만약 데이터를 신뢰한다면, 이번 선거는 단순히 이주 문제 하나만이 아니라, 독일 전반에 걸친 더 넓은 차원의 불안감(malaise)에 관한 것이었다. 내부 안보, 사회 보장, 이주, 경제 성장, 기후, 평화 모두 두 자릿수 비율의 중요성을 지닌 이슈였다.
이번 선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한 가지 이슈는 인플레이션이다.
AfD 지지층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들은 독일의 경제 상황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AfD 지지자들은 가격이 너무 빠르게 상승하여 자신들의 청구서를 지불할 수 없게 될 것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상단 패널: 75%). 그들은 노년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간 패널: 71%). 또한, AfD 지지자들은 현재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하단 패널: 74%).
AfD는 경제적 상황이 "열악하다" 고 평가되는 독일인들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AfD 지지자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해도, 인플레이션은 이번 선거에서 핵심 이슈가 아니었다. AfD 지지자들에게 이주 문제는 인플레이션보다 6배 더 중요했으며, 내부 안보는 5배 더 중요했다.
이미지 번역: 어떤 주제가 당신의 투표 결정에 가장 중요했는가? (순서대로) 이주, 내부 안보, 경제 성장, 평화, 물가 상승
만약 이번 선거가 2023년에 치러졌다면, 인플레이션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던 쪽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인 충격에 불과했다.
지금 독일에서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 경기 변동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논의된 것은 국가의 방향을 결정할 핵심적인 전략적 질문들이다. 유권자들이 의문을 제기한 것은, 쉽게 말해 "사회적 계약", 즉 독일 사회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합의다.
[출처] Chartbook 355 Germany's election: The end of Scholz's coalition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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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투즈(Adam Tooze)는 컬럼비아대학 교수이며 경제, 지정학 및 역사에 관한 차트북을 발행하고 있다. ⟪붕괴(Crashed)⟫, ⟪대격변(The Deluge)⟫, ⟪셧다운(Shutdown)⟫의 저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