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고용·임금 등 구조적 성차별과 일터의 성희롱·괴롭힘 등 젠더기반폭력에 맞서 싸우는 여성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을 사회적으로 알리고자 합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병들어 쓰러지는 동료들, AI 도입 이후 더 빠르고 더 많이 일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안전은 보호받지 못하는 상담노동자들, 쉴 곳도 화장실도 없이 현장을 떠도는 돌봄노동자들, ‘단정함’이라는 이름으로 몸을 통제당하는 여성승무원들처럼, 여성노동자들은 일상 속 차별과 폭력의 현장에서 자신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번 기획은 여성노동자 건강권을 단순한 산재 예방을 넘어 저임금·감정·꾸밈노동, 젠더폭력, 휴식이 배제된 노동조건 등 여성에게 구조적으로 전가되는 신체적·정신적 손상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 조명하며,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학교 급식실은 아이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간입니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일하는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의 건강을 지키지 못한 채 일해왔습니다.
충북 음성의 한 학교에서 일하던 교육공무직 조리실무사가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뜨거운 불 앞에서, 기름 연기와 조리흄에 장시간 노출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급식실에서 일한 게 어떻게 폐암이 되냐”는 편견과 무지가 벽처럼 가로막았습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교육공무직 충북지부는 고인의 죽음이 개인의 질병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임을 알리며 싸웠습니다. 현장의 증언을 모으고, 전문가 의견을 확보하고, 기자회견과 집회를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폐암 산재 승인과 함께 순직 인정을 받아냈습니다.
폐암이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순직으로 인정받기까지 눈물로 보낸 시간들을 기억합니다. 1년도 훨씬 넘은 지난 시간이었지만, 세종 인사혁신처 앞에서 손가락 펴기도 힘들 만큼 시리고 춥던 그 날에 우리는 순직 인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하면서 억울한 죽음에 대한 울분은 결국피처럼 진한 눈물을 쏟아내었습니다. 1년의 싸움 끝에 우리는 고 이영미 동지의 1주기 추모식에서 드디어 순직 인정서를 영정에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전국 최초이자, 교육공무직 중에서도 처음으로 폐암 순직이 인정된 의미 있는 판례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 억울함을 푸는 것을 넘어, 학교 급식실 노동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사회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며, 급식실의 노동이 업무 수행의 가치로 평가받고 인정된 사건이 되었습니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지난해 7월 9일 세종시 인사혁신처 앞에서 폐암 산재로 사망한 고 이영미 조합원의 1주기를 앞두고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고 이영미 조합원은 순직을 인정받았다. 조리실무사가 순직 인정을 받은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다.
왜 이 일은 여성노동자의 일이 되었는가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입니다. ‘밥하는 일’, ‘돌보는 일’은 오래도록 여성의 몫으로 여겨졌고, 그만큼 저평가되어 왔습니다. 급식실 노동은 수백 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고강도·고위험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들이 하는 일’, ‘밥하는 아줌마’라는 인식 속에서 안전 대책과 인력 기준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는 정책적 배경도 있습니다. 학교 급식이 확대되던 과정에서 급식실 일자리는 ‘주부가 하기 좋은 일자리’, 즉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사회서비스 일자리로 기획되었습니다. 가사 노동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일자리’라는 이름 아래 시간제와 저임금 같은 조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급식 노동은 전문성과 위험이 있는 노동이라기보다 가사 노동의 연장처럼 취급되었고, 그 결과 노동 강도와 작업환경의 위험성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습니다.
여성의 노동은 숙련이 아니라 ‘희생’으로 소비되었습니다. 환기시설은 미흡했고, 인력은 부족했으며, 폐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밥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우리의 노동은 쉽게 가벼워졌고, 그 대가는 결국 우리의 몸이 감당해야 했습니다. 구조적 성차별이 우리의 건강을 병들게 한 것입니다.
투쟁으로 만들어낸 변화 - 학교급식법 개정의 의미
폐암으로 동지를 잃은 우리의 투쟁은 한 지점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번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대통령 시행령을 통해 전국 학교 급식실의 인력 배치 기준 마련의 토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또한 법으로 명시된 최초의 변화입니다. 그동안 모호하고 학교별 재량에 맡겨졌던 인력 기준이 제도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라, 현장의 노동자들이 싸워서 쟁취한 성과입니다.
학교 급식실 노동자의 노동 강도를 낮추고, 환기 개선과 안전 설비 확충의 근거를 만들며, 과로와 유해환경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해 문제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무엇이 더 바뀌어야 하는가
그러나 법이 만들어졌다고 해서 현장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흐른 것처럼, 이 법을 토대로 조리실무사들의 적정한 식수인원이 제대로 명시화되기까지는 많은 노력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정부에서 조사하고 연구하는 동안에도 우리는 제대로 된 적정한 평균 인원이 자리 잡기까지 매의 눈으로 지켜볼 것입니다. 인력 충원이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지, 환기시설 개선과 작업환경 측정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지, 폐암 등 직업병에 대한 선제적 건강검진과 예방 대책이 마련되는지. 이 모든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자리 잡도록 끝까지 지켜볼 것입니다. 노동조합은 감시하고, 요구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투쟁할 것입니다. 학교 급식실에서 더 이상 누군가가 병들어 쓰러지지 않도록. 여성노동자의 노동이 ‘당연한 희생’이 아니라 존중받는 권리가 되도록.
나는 투쟁하는 여성노동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건강권과 노동권을 스스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여성이 하는 일은 여성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성이 하는 일들이 저평가되는 사회의 인식도 여성 스스로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만들고, 실질적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법의 보호받을 수 있도록 법의 권리도 행사할 것입니다. 더 이상 사회의 약자가 아닌 저평가되는 것이 아닌 강한 여성들이 만들어내는 변화들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끊임없이 투쟁해 나갈 것입니다.
- 덧붙이는 말
-
박명숙은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충북지부 수석부지부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