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는 공공이, 독점이윤은 길리어드?

미 정부, HIV 예방기술 길리어드에 무상 제공…약값·공급 의무는 없어

미국 정부가 공공 연구로 개발한 HIV 예방기술을 길리어드 사이언스에 무상 제공하면서도 약값 인하나 의약품 공급 확대 등 공공적 의무는 요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HIV 의약품 접근권 단체 프렙포올(PrEP4All)은 7월 14일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통해 확보한 미국 정부와 길리어드 간 물질연구개발협약(M-CRADA) 전문을 공개했다. 그러나 협약 전문에는 길리어드가 공공 연구 성과를 무상으로 이용하는 대가로 약값을 낮추거나 저소득층과 중저소득국가에 의약품을 공급하도록 요구하는 조항이 없었다. 제네릭 생산 허용이나 연구 이익의 공공 환수에 관한 조건도 담기지 않았다.

협약에는 미국 국립보건원과 질병통제예방센터가 HIV 노출 전 예방요법인 PrEP 연구 과정에서 개발한 특허를 길리어드가 전 세계에서 사용료 없이 이용(실시권)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담겼다. 길리어드는 이 권리를 다른 기업에 재허가하거나 이전할 수도 있다.

미국 정부가 민간기업으로부터 취득한 특허 실시권도 길리어드에 무상 제공된다. 공공기관이 연구 성과에 대한 독점적 실시권을 허가하려 할 경우에는 길리어드와 먼저 협상해야 한다. 계약 종료 조건도 길리어드에 유리하다. 길리어드는 60일 전에 서면으로 통보하면 협약을 일방적으로 끝낼 수 있지만, 미국 정부는 길리어드의 동의 없이 계약을 종료할 수 없다.


물질연구개발협약(M-CRADA) 전문 중 일부

연구는 공공이, 독점이윤은 길리어드?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이동근 활동가는 “공공자금에서 시작된 연구인데 공공은 아무런 혜택도 없고, 오히려 길리어드가 특허를 연장하거나 독점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 활동가는 “공공 연구를 통해 길리어드에 또 다른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라는 점에서 분노스러운 일”이라며 “길리어드의 독점권이 전 세계 HIV 예방약 접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단지 미국만의 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프렙포올의 제러마이아 존슨 사무총장도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가 “남아 있던 협상력을 내던지고, 사실상 정부 특허를 침해한 기업에 보상했다”고 비판했다.

미국 정부는 2019년 길리어드가 공공기관이 개발한 PrEP 관련 특허를 허가 없이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뒀다며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동근 활동가는 해당 소송이 “미국 행정부가 공공 연구 성과의 사유화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심 패소 뒤 항소하지 않고 길리어드와 협약을 체결하며 소송을 종결했다. 

미국 바이-돌법은 연방정부가 지원한 연구 성과가 공공의 필요에 맞게 사용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제3자에게 실시권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마치인 권리’가 실제 행사된 사례는 없다. 이 활동가는 “공공 연구가 공공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도록 보건당국의 행정규칙과 국립보건원의 가이드라인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국서도 공공연구 성과 기업이 독점해

공공 연구의 성과를 기업이 독점하는 구조는 한국에도 존재한다. 이동근 활동가는 “한국에서도 공공부문이 연구개발에 많은 돈을 지원하지만, 그 지원으로 개발된 약의 이윤은 제약회사가 가져가도록 구조화돼 있다”며 기술이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는 길리어드의 트루바다가 주로 PrEP으로 처방된다. 2025년 국비지원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한 달에 약 40만 원을 개인이 부담해야 했다. 지원 이후에도 개인부담금은 월 6만 원가량이다.

박형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 공동팀장은 “정부와 의료계는 한 달에 6만 원 정도면 건강에 투자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 돈이 누구의 주머니에서나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공동팀장은 “PrEP 가격은 게이·퀴어 커뮤니티가 부담 없이 낼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라며 제네릭 수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한 참가자가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GSK)의 부스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있다. 참세상 박도형 기자

“핑크워싱 아니라, 의약품 접근권 보장해야”

길리어드는 성소수자 행사와 단체를 후원하며 성소수자 친화적 기업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의약품 독점을 유지하면서 행사 후원에 나서는 것은 ‘핑크워싱’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길리어드 사이언스 코리아는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지속적으로 파트너십 단위로 참여하면서, 성소수자 커뮤니티로부터 퇴출 요구를 받기도 했다.

박형대 공동팀장은 “감염인의 건강과 목숨을 담보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면서 성소수자 행사나 단체에 돈을 대는 것은 위선적”이라고 했다.

이동근 활동가는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기업을 표방하려면 중저소득국가에서 HIV 치료제와 예방약을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자사 제품뿐 아니라 다른 기업의 제네릭 의약품도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권 보장에 기여해야 한다”고 했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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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권 제약자본 성소수자 HIV/AIDS 길리어드 핑크워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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